밥으로 한국인의 하루 동선을 그리면 어떤 모습일까? '칼로리 플래닛' 국내편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지난 7월 26일, 2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의 특징을 드러내는 4명의 하루 식탁을 촬영했다.
애초 이들의 하루 칼로리를 측정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였지만, 찌개와 반찬을 나눠먹는 한식의 특성상 이들이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정확하게 측정하기란 불가능했다.
다만 20대 고시생 이성엽씨와 30대 프리랜서 석정은씨의 칼로리는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했는데 이씨의 경우 섭취한 음식 중 상당수가 인스턴트식이라 칼로리가 공개돼있었고, 석씨의 경우 체중관리 때문에 도시락 업체에서 점심과 저녁을 받아먹기 때문이었다.
40대 김계옥씨와 50대 송창운씨는 꽤 균형 잡힌 식단으로 식사를 했는데, 식탁에 차려진 음식 양으로만 봐서는 1일 권장량(남성 2400칼로리, 여성 2000칼로리)을 훨씬 넘을 것 같았다. 단 김계옥씨의 실제 식사량은 상당히 적었고, 송창운씨도 차려진 음식을 다 먹지는 못했다.
'싸고 빠르고 맛있고' 88만원 세대
대학생 이성엽씨(26)는 88만원세대의 전형적인 사례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해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노량진에서 공부하고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학원 강의실 자리를 맡고, 이 학원 6층의 고시원 방으로 돌아와 책을 본다. 9시에 시작한 수업은 오후 5시 반에 끝난다. 이씨는 수업 후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고시원에서 복습한다.
새벽 6시, 오후 1시, 저녁 8시가 그의 식사시간이다. 보통 혼자 먹지만 피곤하면 밥을 먹기보다 잠을 자는 편이다. 때문에 하루에 한끼도 먹지 않은 날도 있다고. '체력이 경쟁력'이란 생각에 최근에는 헬스클럽에서 하루 한 시간가량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씨가 음식을 고르는 기준은 "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것". 최근 여기에 "동선이 가까워야 한다"는 기준도 포함됐다. 주로 애용하는 음식은 학원 근처 베트남 음식점에서 파는 쌀국수(3500원)와 포장마차에서 파는 제육덮밥(2500원). 가끔 고시원 옆방 '형'과 특식으로 치킨이나 탕수육을 먹기도 한다.
"여기(고시원) 들어오고 난 후 몸무게가 10kg늘었어요. 하루종일 움직이질 않으니까 적게 먹어도 금방 살이 찌죠. 원래 말라서 걱정이었는데…."
1일 식단, 약 2200칼로리
관건은 칼로리 30대 골드미스
아침 삶은 감자 1개, 토마토 1개
점심 '돈까스 도련님도시락' (한솥도시락) 1인분
저녁 치킨샐러드샌드위치(홈플러스) 165g, 마시는 홍초 250ml
간식 쑥떡 150g, 요하임 요구르트 200ml
'관건은 칼로리' 30대 골드미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석정은(32)씨의 직업은 미술과외교사다. 대학 4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과외 교사를 시작해 지금은 아예 직업이 됐는데, 입소문 덕분에 월수입 450-460만원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주말과 저녁에 수업 스케줄을 짜거나 중학생 방과 후 수업을 하느라 생활이 들쭉날쭉하지만, 방학인 요즘은 하루 적게는 6팀, 많게는 7팀 수업을 하고 주말에 쉰다.
요즘 운동에 관심이 생기면서 한달 전부터는 개인 트레이너를 붙여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달에 40만원, 꽤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마음먹고 6개월 정도 꾸준히 운동해볼 생각이라고. 얼마 전부터는 아예 열량이 계산된 다이어트 도시락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생활이 불규칙한데다 혼자 살면서 끼니 거를 때도 많아 몸이 자주 피곤했어요. 병원 검진 받아보니 근육이 거의 없어 쉽게 피곤하고 살도 잘 찌는 체질이라고 하더라고요. 체력 기르자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재미가 붙었어요."
아침 운동 전 식빵, 감자 등으로 탄수화물을 보충 한 후 1시간가량 근육운동을 하고 과외 수업을 시작해 저녁 6,7시까지 수업을 해야 한다. 주로 이동 중인 차에서 점심을 해결할 때가 많다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헬스클럽에 가 유산소운동을 1시간가량 한다.
"수업을 하다 보면 학부모들이 간식을 챙겨주시는데 안 먹을 수가 없거든요. 요즘은 다이어트한다고 말씀 드리고 물이나 주스만 마셔요. 예전에는 피자나 치킨 같은 음식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뭘 먹기 전에 칼로리부터 따지게 되요."
1일 식단, 1280칼로리
아침 토스트, 삶은 감자 반개, 토마토, 닭가슴살
영양 먼저 아이 먼저 40대 주부
점심 베지두부버거, 삶은 달걀 1개, 아몬드, 호두, 건포토, 채소샐러드, 바나나 반쪽
저?/b> 감자샐러드, 단호박 1/6쪽, 채소샐러드, 방울토마토
기타음식 단백질파우더 30g (근육운동 시)
'영양 먼저 아이 먼저' 40대 주부
주부 김계옥(49)씨 하루 일과는 5시 반에 시작된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과 밥을 먹으면 7시 반. 이때부터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다. 방학인 요즘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은 8시에서 8시 반. 아침밥상을 또 한 번 차려야 한다.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교 5학년인 쌍둥이 아들의 공부를 봐주다 보면 점심때가 돌아온다. 점심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장보고 요리하다 보면 벌써 저녁때가 된다.
"음식을 많이 해두는 편이 아니라 매일 밑반찬을 새로 만들어야 돼요. 콩조림이나 멸치볶음도 3일에 한번은 만들어야 되고요. 아이들이 잘 먹는 편이라 하루에 6,7인분 밥을 해두면 먹고 모자라, 국수나 스파게티를 다시 삶아줘야 하기도 하고요."
혼자 점심을 먹을 때는 주로 빵을 먹는다. 사진을 촬영한 26일도 점심 메뉴로 흰 식빵과 치즈, 토마토, 커피가 나왔다. 점심을 거르는 날에는 떡이나 찐 감자를 간식으로 먹는다고. 김씨가 자주 먹는 간식은 '아주 묽게 탄 블랙커피'란다. 보리차처럼 묽은 커피를 하루 두 번 마시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김씨는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을 '영양'이라고 말했는데, 예를 들어 햄이나 베이컨을 사면 물에 한번 데쳐 요리하고, 밥도 쌀보다 잡곡을 더 많이 넣어 짓는다. 본인은 채식을 주로 먹지만 아이들을 위해 고기요리를 자주 하는 편이다.
"되도록 채소를 먹이려고 하는데, 애들은 아무래도 인스턴트를 좋아하죠. 고기음식도 많이 찾아서 다섯 식구 식비가 한 달에 80-90만원은 드는 것 같아요."
아리랑 국제방송 홍보고객만족전략팀장인 송창운(50)씨는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의 전형이다. '사모님 취향'과 '회사식당 아줌마 취향'에 입맛을 잘 맞춘 덕분인지, 그는 새벽 6시에 출근하면서도 하루 세끼를 잘 챙겨먹으며 일한다. 음식을 고를 때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한식을 먹을 때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아침 메뉴로 빵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집이 일산인데 서초동 사무실까지 출근시간에 엄청 밀리거든요. 아예 6시에 집에서 나와 회사근처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출근해요. 차에서 아침밥을 먹는 날이 많아 먹기 편한 빵을 선호하죠."
러닝머신에서 4km정도를 걷고 가끔 시간이 되면 요가수업도 듣는다. 헬스클럽에 다닌 지는 7년째라고.
출근 후 사무실에 배달된 녹즙을 마신다. 26일 아침 마신 녹즙은 '남자를 위한 복분자와 산수유'. 녹즙을 제외하면 업무 중간에 마시는 커피 두어 잔과 점심시간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간식의 전부다. 1시 식당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내와 저녁상을 마주할 때면 7시 반이 훌쩍 넘는다.
"근데 회식 때문에 살쪄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회식이 있는 것 같은데, 호프집을 자주 가는데 요즘은 막걸리집도 애용하죠. 보통 맥주 마시면 훈제족발, 막걸리 마시면 부침개를 먹게 되거든요."
1일 식단 (양은 측정 불가)
아침 토마토주스, 감자, 모닝빵, 바나나
점심 쌀밥, 김치국, 탕수육, 부추김치, 김무침, 배추김치
저녁 잡곡밥, 호박된장찌개, 열무김치, 꽁치조림, 오이소박이, 멸치볶음, 고구마줄기볶음, 양파간장, 김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