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기도는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실 때 받으셨던 고통과 상처를 기리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그분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그분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고 그분을 위로해 드리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이는 곧 '예수성심'으로 집약된다.
안셀모 성인은 우리가 주님의 상처와 고통으로 구원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으로 구원되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당했다. 내 상처가 이렇게 크다”가 아니라 “내가 이렇듯 고통과 상처를 이겨 받을 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다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로서, 그것이 바로 성찬례이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 이는 곧 “내 사랑을 잊지 말고 기억해다오”인 것이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고백하시며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바로 예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15기도는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기에 우리 신자들 모두에게 중요하고 또 권장할 만한 기도문이다.
우리는 2000년 전 이스라엘의 나자렛이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살았던 예수라는 사람을 우리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종교와 다르게 하는가?
첫째,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을 인간으로 만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모두 하느님을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자신들이 믿는 신을 인간으로 만나지 못한다. 오로지 그리스도교만이 자신이 믿는 신을 인간으로 만나며, 신을 아버지라 부른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믿는 신을 반드시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우리와 같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 만나 그분과 인간적인 감정의 교류를 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성심과의 만남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누군가를 믿는 사람들이 다.(“We do not believe in something, but we do believe in someone.” Thomas H. Green, SJ)
우리에게는 '그저 알고 있는 관계'가 있고 '인격적인 관계'가 있다.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우리는 그저 알고 있을 뿐, 그들과는 아무런 인격적 관계가 없다. 인격적인 관계라함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를 함께하며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이다. 우리가 그저 머리로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 결코 인격적인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기쁨을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며 그분의 마음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인가?
둘째, 겸손이다. 물론 겸손은 다른 종교에서도 강조하지만, 특별히 우리들에게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그분께서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고 스스로를 낮추시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필리피 2,6-8) 우리가 믿고 따르는 분이 스스로 겸손의 길을 가셨기에, 지금 겸손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 신앙의 뿌리라면, 겸손은 우리의 신앙을 지탱해 주는 줄기이다. 바로 그 줄기를 통해 우리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복음의 말씀이 좋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예수님의 계명은 겸손한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상대방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낮추며 기쁨을 얻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추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기 때문이다.(필리피 2,5-9) 겸손은 하늘나라의 열쇠이다. 가나안 여인이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오 15,21-28)라고 말씀드릴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바꾸셨듯이, 겸손은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셋째, 일상으로의 육화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저 너머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있는 세상에 육화하시어 구체적으로 현존하시는 분이다. 그분이 바로 임마누엘 하느님이시다.(마태오 1,23)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찾아야 하며(Finding God in our ordinary life), 우리 역시 세상에 육화하여야 한다. 그것은 곧 내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육화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영성이나 신학적 지식 그리고 체험이 단지 머리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의 삶 안으로 육화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신앙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마태오 7,26) 육화는 그리스도의 영성이며, 하느님의 영성이다.
넷째, 십자가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에는 십자가가 없다. 그들도 예수라는 사람이 특별한 예언자라는 것을 믿지만, 그들에게는 십자가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십자가를 마냥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바로 지금 십자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몬과 같이 그분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는 그분의 협력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분 십자가의 길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단지 기복적인 것을 위해 믿는 종교와 우리를 구별 짓고 있다.
다섯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과 함께하며 그분을 위로해 드리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통 속에 기도하시며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왜 예수께서는 기도 중에 제자들을 찾아가셨을까? 바로 우리들의 위로가 필요하셨던 것이다. 당신의 수난과 고통을 함께하며 당신 옆을 지켜줄 사람들을 찾으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겟세마니의 제자들처럼 위로를 받으시고자 당신께서 택하시어 세례성사를 주신 사람들이다. 15기도는 그분의 고통과 함께하며 그분을 위로해 드리는 기도이다. 우리는 청원기도만 드릴 것이 아니라 이러한 위로의 기도를 그분께 드려야 할 것이다. 특별히 첫목요일 저녁에 지내는 성시간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통 중에 계시는 예수님 곁에 함께 하며 그분을 위로해 드리는 시간이다.
우리가 그분의 십자가 길에 동참하고 그분께 위로를 드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회심이다. 주님의 사랑을 떠나 세속적인 욕망을 찾아 나섰던 우리가 사랑 가득하신 예수성심께 돌아와 그분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5기도를 통해 우리의 참된 회심을 청한다.
“주님은 사랑이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이미 주님께 대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마음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한 사람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사랑을 체험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성심과의 만남이다. 그래서 우리는 15기도를 통해 당신의 사랑과 당신을 향한 열정을 청한다.
우리 스스로 누구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의 사랑이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 사랑 안에 머물 때 비로소 가능하다.(요한 15,4-5)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마태오 19,26)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는 저절로 맺히게 된다. 따라서 열매를 청하지 말고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기를 청하라! 먼저 사랑에 빠진다면, 열매는 저절로 맺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성심과의 만남이며,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이다.
이 기도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문이다. 우리는 이 기도문을 통해 그분의 사랑과 일치하고픈 열망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도문을 의미 없이 그저 되풀이하기보다는 기도문 글귀에 온 마음을 담아 기도드리며, 그분 성심의 사랑과 인간적인 감정의 교류를 가져야 할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예수성심께 당신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를 청하며,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우리의 참된 회심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청한다.
첫댓글 아멘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