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다니엘 3,14-20.91-92.95)와 복음(요한 8,31-42)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의 모습. 즉, 내적 자유에 대해 알려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이 죄의 종이 되기보다 하느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 자녀로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를 알리기 위해 예수님은 땅으로 내려오셨으며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을 찾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다가 고등학교 때 배운 '용접'이 생각이 났습니다. 여러분에겐 생소한 공업용어 일 수 있으나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금속안경 코걸이, 감실이음새, 자동차와 철의자와 탁자 그리고 병원침대, 휠체어, 공원 난간 등을 제작하는데 쓰이며 비행기와 배를 건조할 때도 사용됩니다. 용접의 종류 중에 아크용접을 하기위해서는 일회용 용접봉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타는 모습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이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여기보시는 것처럼 (화면) 아크용접봉은 전기의 아크방전에서 생기는 4000~5000℃의 열로 쇠붙이와 자신을 녹입니다. 용접봉이 녹고 쇠붙이를 녹이는 이 작업을 통해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 하나가 됩니다. 하느님 백성을 모으는 예수님과 닮았습니다. 마치 십자가라는 사랑의 표현을 통해 우리 죄는 사랑의 열과 강렬한 빛으로 모두 타버리고, 하느님과 분리되었던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하게 하는 것. 이것이 십자가상 예수님을 닮은 용접봉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성인들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또한 용접봉의 삶(?^^)을 통해 잠시나마 예수님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묵상해 봅니다. 아크방전을 통해 생겨난 뜨거운 열과 강한 빛은, 죄 때문에 잠시 잊어버렸던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빛의 자녀, 즉 ‘하느님을 닮은 인간 본래 모습’(참고 창세 1,26: 2,7)을 기억하게 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제정신이 든 탕자가 아버지를 기억한 것처럼(참고: 루카 15,17-18)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논점이 된 아브라함은 하느님과 구원계약을 맺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됨됨이는 어렵게 얻은 이사악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모습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죄인이지만 열 명의 의인을 보아서라도 파멸하지 말아달라고 하느님께 청원을 했던 사람입니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하며 쉰명, 마흔명... 열 명의 의인만 있어도 전체를 파멸시키지 않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받아 낸 하느님의 의로운 종입니다.(참고: 창세 18,23-33: 22,12)
예수님은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고 하시며 아브라함처럼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자의 모습을 알립니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셨던 아브라함과는 다르게 아버지라 부르셨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를 닮은 자녀의 모습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성자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을 실현시키는 메시아로 우리 가운데 계시며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할 것을 몸소 가르쳐주십니다.
용서(참고: 요한 20,22-23)와 사랑(참고: 레위 19,2.18 ;요한 13,34)은 용접봉처럼 강한 빛과 뜨거운 열로 자신을 태워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입니다. 십자가 길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용서와 사랑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순시기동안 이런 모습을 겸손되이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용서하고 사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셨고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예수님의 마음에 빛의 자녀가 되고 싶은 제 마음을 기대어 봅니다.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레위 19,2)
첫댓글 용접봉의 삶 신선한 묵상의 소재군요,나눔에 감사드립니다.
일상의 일안에서 주님을 느끼게 해 주시는 묵상 감사드립니다.
용접봉을 통해서 자신을 태우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묵상해봅니다...감사합니다..
예수님도 인간으로 사셨을때 주위의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 취급받고 소외받고 힘겹게 살아가는 그리고 진정한 지도자가 없어서 버려진 양 같이 기가 꺽이며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서도 그리고 예수님도 자신의 가난과 이러한 삶에서의 비애 고통을 통해서(예수님도 간접적으로라도 이들의 아픔을 몸소 자신의 몸에 아픔으로 겪으셨읍니다) 세상에는 단순하면서도 모두의 포근한 요람인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밖에 없구나 하는 진리를 속속들이 체험을하셨읍니다.
저도 뭐 큰일을 하지는 못하고요(힘없어요 ㅠ_ㅠ 사실 내가 누군지도 몰라요 알고보면 오히려 무서워요ㅠ_ㅠ) 작은 일 안에서도 소리없이 행동으로 이웃과 기쁘게 살아 복음선포 함
곳곳에 숨겨 놓은신 하느님의 신비를 찾아가는 일은 보물 찾기와도 같은 신선한 즐거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