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소주산업의 변천사
우리 나라의 소주제조는 고려시대를
비롯하여 이조시대를 지나는 동안 약간 변천되었으나, 양조과정이나 방법에 있어서 뚜렷한 발전 없이 재래식 방법으로 제조되었으며,
판매목적으로는 '고리(토고리,
동고리, 철고리 등)'라는 증류기를 이용하여
만들어 졌다.
국내 소주 산업은 1909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한 주세령 공포로 처음 면허제가 실시되면서 산업으로서 기본틀을 세우게 되었고, 1916년
일제가 주류 단속을 강화하여 일본인들이 많은 자본으로 소주 제조장을 기업화하기 시작하여 종래의 단식증류기에서 연속식증류기로 소위
'신식 소주(당밀 소주)'를 대량 생산하였다.
1927년에 이르러 주정과 물을 희석한 소주가 상당한 진전을 보여 희석식 소주의 개화기였다.
해방과 함께 양조업체가 한국인에게
넘어오게 되었고, 양조용 양곡사용 제한의 철폐로 활기를 되찾았으나, 국토의 남, 북 양분과 정치적 혼란 및 6.25사변의 발발로
인해 1953년 휴전이후 안정을 되찾았다.
1965년 1월부터 시행된 양곡관리법에 따라 소주의
원료대체가 불가피하여 전국의 수많은 증류식 소주 업체들이 희석식 소주 업체로 전환하여 곡류원료의 증류식 소주는 제조금지 됨에
따라, 본격적인 희석식 소주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68년에는 종량 세제에서 종가세제로 변동되었으며,
필요 이상으로 난립상태(약 250여개)였던 소주 제조장을 1970년부터 합동 제조할 수 있도록 통합방침을 세우고 통합을 유도한
결과, 60개소의 합동체제로 제조형태를 유지, 운영하였으나,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시설 규모로 규격미달의 저질주류 생산과 치열한
판매 경쟁으로 부실한 경영상태였다.
1973년 4월부터 국세청이 3개월간에 걸쳐 주류관련
규정을 정비, '주류 제조장 통폐합 방침'을 세우고 7월부터 통합작업하였다.
이때 제조장 시설기준, 제조장별 제조비율제, 주조원료 배정제, 자가병 사용 등을 제도화하였고, 1977년에는 각 지방별 제조장
기준으로 하여 각도에 1개씩 총 10개의 희석식 소주업체가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소주가 싼술로 이미지를 굳힌 것은 3공화국시대에
수출의 역군인 저임금의 노동자들이 소줏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도록 소주값을 크게 못올리게 하였고, 1965년 식량난이 닥치자
양곡관리법을 제정, 쌀을 원료로 한 술은 아예 개발도 못하도록 했다.
그 결과 지금의 25도 짜리 희석식 소주가 30년이 넘도록 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고 애주가들의 입맛도 그 균일한 맛에 길들여졌다.
국민의 술 소주도 애주가들의 취향이 고급화되고 제조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프리미엄 소주라는 고급제품이 등장했다.
1991년 7월부터 쌀로 술을 빚을 수 있게 되었지만, 순수한 의미의 증류식 소주는 아직 생산되지 않고 있다..
첫댓글 헉! 혹시 모주류회사에 몸담구 계시는건 아니신지요?? ㅋㅋㅋ
정말좋은방이네여,,,,,,술정보는이방이최고,,,,,,,혹시....소주회사에근무라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