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에서 용 났다 / 석위수
고향 후배 성공담이다. 두메산골에서도 비가 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천수답 한 마지기를 상속받아 팔백 마지기 대농장주로 우뚝 선 재득씨, 김 사장 이야기다.
고향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첩첩 산골, 다락논과 가난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둔 김 사장 집에는 반반한 이불 하나 없었다. 낙엽을 방바닥에 깔고 8가족이 어렵게 겨울을 지내야했던 가난한 집 6남매의 장남이다.
김 사장은 초등학교 4년 중퇴 후 일찌감치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면소재지에 있는 부자 집에서 작은 머슴살이를 한다는 소문만 들었다. 나도 주경야독에 버금가는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대학에 진학했다. 입학 후에는 학비와 의식주까지 스스로 해결했고 졸업 후 43년 동안은 직장에서 경쟁생활의 연속이었으니 고향 주변 이야기들은 관심을 둘 여력조차 없었다.
지난 4월 중순, 김 사장은 큰 부자가 되어 면 소재지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고향 선배로부터 들었다. 반가우면서도 믿기지 않았기에 수소문해서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우선 농촌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것에 “도랑에서 용 났다”며 축하인사를 시작으로 그 간의 궁금증들을 물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지난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면 소재지에 있는 00씨 집에 작은 머슴으로 들어가서 농사일을 배웠다. 부자 집에 기죽어 사는 것이 힘은 들었으나 배고픔 걱정이 없어진 것이 좋았다. 성년이 되어서는 남의 집 머슴살이로서는 희망이 없겠다는 것을 느끼고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익힌 벼농사 기술과 근면을 바탕으로 남의 논 소작을 시작해서 저축을 조금씩 했다. 27세가 되어서는 그 동안 저축한 돈과 농어촌 공사에서 융자를 받아 논 3마지기를 샀다. 소작농 면적은 근면과 신의를 바탕으로 계속 늘여나갔다. 50대 초반까지 내 소유의 논을 계속 구입했고 소작농 면적도 증가시켜 800여 마지기에 이르는 대농(大農) 경영자가 되었다. 성주군 내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60대 후반이 되어 건강도 옛날 같지 않아 규모를 반으로 줄여 농사를 짓고 있다. 머지않아 구미에서 스포츠 센터를 운영하는 삼십 대 아들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제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 일꾼 문제와 농업용수 문제 해결이었기에 문의했더니 이외로 대답이 간단했다.
“농기계를 운전할 줄 아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봄철 이앙기 때와 가을철 수확기 때에 집중해서 고용한다. 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는 농촌지역 전역에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농업 현대화가 잘 되어 50~60년 전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이다.”
대한민국은 공업뿐만 아니라 농업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해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것을 기적이라 표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일찌감치 농사일을 배워서 오늘에 이른 것에 대한 소감을 물었더니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가난했던 소년기 시절엔 부모님 뜻대로 학교를 중퇴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시킨 것에 눈물과 원망의 연속이 지금 생각하면 참 잘 된 결정이었다. 나도 장래에 논농사를 많이 짓는 큰 부자가 되어서 자식들을 나같이 기죽지 않게 하겠다는 것을 굳게 명세했다. 소작농을 넓혀나가기 위해서는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주인과의 약속은 꼭 지켰더니 주변에서 소작농 의뢰가 계속 증가했다. 지금은 군청이나 면사무소와 군내(郡內) 어디를 가도 김 사장이라고 호칭해 주니 대농(大農) 경작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빈민가에서 군내에서 최상의 영농 유지가 된 것을 부모님 산소를 잘 모신 덕분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쉽게 얘기할 때는 쑥스럽다.”
고향 사람들은 나를 제일 출세한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난 무에서 유를 창출한 후배가 일등이라고 생각한다. 성공담을 말하는 내내 긍지와 자부심이 역력했지만 어찌 꽃길만 걸었을까. 농사를 투기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또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풍년이 가능한 일이지 않던가. 때로는 좌절하면서 부모님 원망도 수없이 했을 것이다. 수많은 고비들을 극복하고 대농경작(大農耕作)을 하고 있는 재득씨가 자랑스럽다.
올 가을엔 직접 만나 그가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광활한 황금 들판을 누비면서 어려웠던 고비들을 듣고 싶다. 못 마시는 술이지만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시면서 햇볕에 탄 재득 씨 구리 빛 팔뚝이라도 만져 봐야겠다.
재득 씨, 자네는 어릴 적 가난을 밑천 삼아 큰 성공 한 사람이라네. 자라는 후손들에게 귀감이 될 자네가 자랑스럽네. 이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여생도 즐길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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