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프의 시
- 유 정
하루해가 지면
다시 돌아드는 남루한 마음 앞에
조심 된 손길이
지켜서 밝혀놓은 램프
유리는 매끈하여 아랫배 불룩한 볼륨
시원한 석유에 심지를 담그고
기쁜 듯 타오르는 하얀 불빛!
쬐이고 있노라면
서렸던 어둠이
한 켜 한 켜 시름없는 듯 걷히어 간다.
아내여, 바지런히 밥그릇을 섬기는
그대 눈동자 속에도 등불이 영롱하거니
키 작은 그대는 오늘도
생활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얼빠진 내가
길 잃고 먼 거리에 서서 저물 때
저무는 그 하늘에
호호 그대는 입김을 모았는가
입김은 얼어서 뽀얗게 엉기던가
닦고 닦아서 더 없는 등피!
세월은 덧없이 간다 하지만
우리들의 보람은 덧없다 말라
굶주려 그대는 구걸하지 않았고
배불러 나는
지나가는 동포를 넘보지 않았다.
램프의 마음은 맑아서 스스럽다
거리에
동짓달 바람은 바늘같이 쌀쌀하나
우리들의 밤은
조용히 호동그라니 타는 램프!
날마다 켜지던 창에
오늘도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앉았다.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
램프를,
그 따뜻한 것을 켜자.
얼어서 찬 등피(燈皮)여, 호오 입김이 수심(愁心)되어
가라앉으면
석윳내 서린 골짜구니
뽀얀 안개 속
홀로 울고 가는
가냘픈 네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전쟁이 너를 데리고 갔다 한다.
내가 갈 수 없는 그 가물가물한 길은 어디냐.
안개와 같이
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지는 내 그리운 것아.
싸늘하게 타는 램프
싸늘하게 흔들리는 내 그림자만 또 남는다.
어느새 다시 오는 밤 검은 창 안에
앉아 30년 전 밤바다와
아다지오로 흐르던 첼로의 저음을 떠올리고 있다.
(여원, 1958.3)
<감상의 길잡이>
일본에서 시작한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귀국한 이후 6․25를 전후해 우리말로 시 창작을 재개한 유정 시인은 평이한 언어와 일상적 소재를 통하여 현실과 생활을 반영시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시화하는 작품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 시는 전쟁으로 페허화된 절망적인 현실을 램프의 불빛으로 밝히고 싶어하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오늘도 /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자는 그 어둠 속에서 마치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어둡고 두려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화자는 ‘램프를, / 그 따뜻한 것을 켜’려고 ‘얼어서 찬 등피’를 ‘호오 입김’ 불어 닦는다. 그러자 램프의 ‘석윳내’ 같은 화약 냄새가 풍기던 ‘골짜구니’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가냘픈 뒷모습’을 보이며 ‘내가 갈 수 없는 그 가물가물한 길’로 떠나 버린 그들은 바로 ‘전쟁이 데리고’ 간 사람들로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가 화자의 가슴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듯 6․25의 폐허 속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허무감이 삶의 비애감과 어울려 절망적인 분위기로 나타나 있다. ‘내 그리운 것들아’라고 소리쳐 불러 보지만, ‘안개와 같이 / 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진 그들은 돌아올 줄 모르고, 화자의 허탈한 마음 안에선 ‘램프’만 ‘싸늘하게 타’오를 뿐이다. 어두운 방안 한구석 ‘싸늘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화자가 깊은 ‘수심’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다시’ 밤은 ‘검은 창 안’에 가득차 흐른다.
이 시는 전쟁의 아픔을 반추하며 그 고통과 절망을 노래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어와 회화적 기법을 이용한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염원을 ‘램프’의 불빛처럼 보여 줌으로써,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시인의 비극적 체험과 소망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해 준다.
■ 핵심정리
▪형식 : 전연의 자유시
▪경향 : 서정적, 감각적
▪표현상 특징
1) 산문체의 표현이면서도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어 구사가 정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2) 회화적인 수법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연상시켜 주고 있다.
3) 마지막 시행의 도치는 이미지를 더욱 짙게 강화시키는 효과적 수사법이다.
▪제재 : 램프
▪주제 : 전쟁을 통한 인간애와 불안 의식
■ 이해와 감상
유정의 작품『램프의 시 5』에서 시인은 환한 빛을 가진 램프를 소재로 하여 어두운 현실 속에 갇혀있는 자신에게 늘 램프와 같은 존재로 있어주었던 아내를 투영시켰다. 이 시는 한국전쟁이후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정신적인 허무주의(虛無主義)와 현실적으로 겪는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 하던 시인 자신을 시적화자와 동일시하여 당시 진솔한 느낌을 가장 일상적인 소재인 램프를 통해 비유적(比喩的)으로 묘사하였다.
매일처럼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는 늘 힘들고 초라한 마음이지만, 아내의 사랑과 헌신으로 밝혀진 환한 램프의 빛은 그의 마음을 환한 기쁨으로 가득하게 해준다. 아내가 밝힌 램프는 바로 아내의 사랑이자 아내 자신인 것이다.
■ 이해와 감상 2
일본에서 시작한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귀국한 이후 6․25를 전후해 우리말로 시 창작을 재개한 유정 시인은 평이한 언어와 일상적 소재를 통하여 현실과 생활을 반영시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시화하는 작품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 시는 전쟁으로 페허화된 절망적인 현실을 램프의 불빛으로 밝히고 싶어하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오늘도 /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자는 그 어둠 속에서 마치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어둡고 두려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화자는 ‘램프를, / 그 따뜻한 것을 켜’려고 ‘얼어서 찬 등피’를 ‘호오 입김’ 불어 닦는다. 그러자 램프의 ‘석윳내’ 같은 화약 냄새가 풍기던 ‘골짜구니’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가냘픈 뒷모습’을 보이며 ‘내가 갈 수 없는 그 가물가물한 길’로 떠나 버린 그들은 바로 ‘전쟁이 데리고’ 간 사람들로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가 화자의 가슴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듯 6․25의 폐허 속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허무감이 삶의 비애감과 어울려 절망적인 분위기로 나타나 있다. ‘내 그리운 것들아’라고 소리쳐 불러 보지만, ‘안개와 같이 / 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진 그들은 돌아올 줄 모르고, 화자의 허탈한 마음 안에선 ‘램프’만 ‘싸늘하게 타’오를 뿐이다. 어두운 방안 한구석 ‘싸늘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화자가 깊은 ‘수심’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다시’ 밤은 ‘검은 창 안’에 가득차 흐른다.
이 시는 전쟁의 아픔을 반추하며 그 고통과 절망을 노래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어와 회화적 기법을 이용한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염원을 ‘램프’의 불빛처럼 보여 줌으로써,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시인의 비극적 체험과 소망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해 준다.
■ 시인 유정
함경북도 경성출생
1945년 일본 죠오지 상지(上智)대학 철학과 중퇴
시인 유정은 일본에서 시작한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귀국한 이후 6·25를 전후해 우리말로 시 창작을 재개한 유정 시인은 평이한 언어와 일상적 소재를 통하여 현실과 생활을 반영시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시화하는 작품 경향을 보여 주었다.
시집으로 <사랑과 미움의 시(195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