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무게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살레시오의 집 원장)-
◆「화엄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나운 매를 피해 비둘기 한 마리가 부처님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매는 부처님께 비둘기를 살려주면 자신이 굶주리게 되는데,
이는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은 옳다 하시고 비둘기 대신 자신의 허벅지살을 잘라주겠다고 하셨다.
그러자 매는 저울을 내보이며 비둘기의 무게와 같은 양의 살을 내어 달라 했다.
부처님이 허벅지살을 한 덩이 베어내어 저울에 올렸는데
비둘기 쪽이 더 무거워 약간 기울어졌다.
다시 다른 쪽 살을 베어내어 달아도 저울은 여전히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졌다.
부처님의 살이 비둘기보다 훨씬 많고 무거워 보이는데도 자꾸 저울이 비둘기 쪽으로 기울자
부처님은 아예 자신의 몸 전부를 그 저울 위에 얹었다. 그러자 저울이 수평을 이루었다.
이 저울은 고기의 근수를 재는 저울이 아니라 생명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었던 것이다.
하찮은 비둘기의 생명이라도 그 무게는 부처님 생명의 무게와 똑같기에
비둘기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선 부처님의 생명과 맞바꾸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한다.
바리사이들의 눈에 죄인들은 잘해 줄 가치가 없는 하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은전,
아들의 비유를 들어 그 하찮은 존재들의 무게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한 마리 양의 무게와 아흔아홉 마리 양의 무게는 똑같은 생명의 무게를 지니며,
착한 아들이나 말썽꾸러기 아들이나 그 생명의 무게는 같다는 것이다. 반쯤 산 생명도 반쯤 죽은 생명도 없다.
죽거나 살거나, 주검이거나 생명이거나 한 것이지 그 중간이란 없다.
죄인과 의인의 생명 무게도 똑같다. 그래서 우리는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이라크인의 생명 무게와 미국인의 생명 무게도 똑같다.
GNP도 문화수준도 종교도 생명의 무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도 없고 정신연령도 낮은 장애인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이유도
우리 모두가 같은 무게를 지닌 생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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