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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랑회 여러분!
오늘은 프랑스 파리에 가면 너나 할 것 없이 반드시 한번은 들리는 곳, 몽마르트 언덕과 그 몽마르트 언덕 올라가는 입구의 극장 식당 '물랭 루즈'에 얽힌 얘기들을 짧게 소개하려고 합니다.무 더운 여름날, 쬐끄만 청량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 몽마르트 언덕 ]
* 몽마르트 언덕을 올라가는 길
가난한 화가들이 광장에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자유롭게 예술을 얘기했던 곳. 바로 프랑스 파리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몽마르트 언덕(해발 130m)이다. 몽마르트는 본래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예술가들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몽마르트의 '전형'을 알고자 한다면 언덕 위에 있는 테르트르 광장에 가야한다. 가난한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려주고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테르트르 광장의 화가들은 결코 뜨내기들이 아니다.프랑스 예술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화가들만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그리고 등록되었다고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워낙 신청자가 많아 시청의 허락을 받아도 수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 테르트르 광장의 화가들
테르트르 광장을 포함한 몽마르트 언덕을 거쳐간 화가들은 한둘이 아니었다.피카소,고흐,로트랙,르느와르 등 이름난 화가들 외에도 수많은 무명의 화가들이 여기에 머물렀었다.많은 이름없는 화가들이 이곳에서 땀과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데르트르 광장에서 초상화를 그려봤다면, 그 광장 옆 골목 길을 약간 내려와 있는 또 다른 예술가들의 아지트인 '물랭 드 라 갈레트' 카페를 찾아가 봐야 한다. 이곳은 르누와르, 반 고흐, 피카소 등 유명한 화가들이 예술과 낭만을 이야기하고 유희를 즐겼던 19세기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이곳은 르누와르의 동명 작품인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배경이기도 하다.
* 물랭 드 라 카페 입구
*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
어른거리는 햇빛과 처녀들의 상기된 뺨이 인상적인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르느와르는
1년간이나 카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드나들며 스케치를 거듭했다고 한다.
몽마르트에서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낮에는 풍차이고, 밤에는 화려한 쇼가 열리는 '물랑루즈'다. 1889년부터 지금까지 쇼를 이어온 이 곳은 몽마르트 예술 카페의 대명사다.물랑루즈의 단골이었던 난쟁이 화가 툴루즈 로트랙(아래 소개)의 이야기도 물랭 루즈의 전설이 되었다.
* 고흐가 그렸던 당시(19세기 말엽) 몽마르트 언덕(대부분 포도밭이었다고 한다)
*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의 사크레 퀘르(Sacre Coeur,聖心) 성당
보불전쟁에서 패한 후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파리 시민들이 돈을 모아 지었다.
[ 물랭 루즈의 슬픈 사랑 ]
* 빨간 풍차 모형이 있는 물랭 루즈
몽마르트 언덕의 입구인 지하철 피갈 역에 내리면 너무도 거대해서 위압감마저 주는 빨간 풍차가 눈에 들어온다.말 그대로 '빨간 풍차'라는 이름의 카바레 '물랭 루즈'이다.춤추는 무희가 곧 튀어나올 것 같은 로트랙의 포스터로 더 많이 알려진 이곳은 샹젤리제의 리도(Rido)와 함께 파리를 대표하는 카바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물랭 루즈'하면 로트랙의 포스터나 캉캉,또는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 <물랭 루즈(2001년)>를 떠올린다.그러나 이곳은 프랭크 시나트라나 에디프 피아프 등이 노래했던 역사적인 무대이기도 하다.
샹송의 여왕 에디프 피아프가 이브 몽탕을 처음 만난 곳도 물랭 루즈였다. 1944년 물랭 루즈에서 에디프 피아프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브 몽탕은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노래를 막 시작한 무명가수였다.반면 피아프는 물랭 루즈에서 가장 많은 개런티를 받는 톱스타였다.이브 몽탕을 사랑하게 된 피아프는 그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고 여러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안고 속삭일 때면 세상은 온통 장미빛으로 보이지요."라는 가사의 샹송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도 피아프가 몽탕에게 바친 노래였다. 샹송의 여왕 피아프의 연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브 몽탕은 단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그러나 유명세를 얻은 이브 몽탕은 한참 연상의 피아프의 곁을 미련없이 떠났다.
1946년 이브 몽탕과 헤어진 피아프는 새로운 연인인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을 만나지만 그마저 비행기 사고로 잃고만다.관광객이 들끓는 밤의 천국 물랭 루즈는 이와같은 피아프의 슬픈 사랑을 간직한 무대이기도 하다.
[ 물랭 루즈와 화가 로트랙 ]
* 오른쪽 모자를 쓴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이 로트랙이다
19세기 말 물랭 루즈를 중심으로 한 파리의 환락가를 누비던 난쟁이 화가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툴루즈 로트랙(툴르즈 출신 로트랙이란 뜻)이었다. 그의 부친은 프랑스 서남부 툴르즈의 아델 드 보크스 성을 소유한 명문가였으며 근친혼으로 태어난 로트랙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또한 사고로 부러진 다리는 회복되지 않아 15세 때부터 152cm로 생활하였다 .
그후 귀족이자 난쟁이인 로트랙은 고향 툴르즈를 떠나 파리의 몽마르트에 자리잡았다. 그는 카바레 물랭 루즈에서 술을 마시면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환락가의 단면을 표현한 독특한 캐릭터의 그의 작품은 인기를 얻게된다. 특히 석판화 기법을 발전시켜 대량으로 컬러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몽마르트의 인기 작가로서 명성을 누렸다.
그의 주위에는 친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와 교우하였던 고흐도 로트랙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고흐가 南佛의 아를르로 떠나기 전 몽마르트에서 지냈는데 부유했던 로트랙은 가난한 고흐를 도와주기도 했다. 로트랙은 난쟁이가 되었다는 절망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로트랙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창녀촌에서 주로 밤을 보냈는데 창녀들은 로트랙을 손님이라기 보다는 친구로서 받아들렸다. 로트랙을 받아준 여자들은 그녀들 뿐이었다. 왜소한 몸을 가진 그는 술에 취해 그녀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그녀들을 위로했고 또 위로를 받았다. 술과 여자들은 그의 외로움을 달래는 약이며 생활의 일부였다.
진과 압생트 브랜디와 위스키 등을 혼합하여 마시던 로트랙은 서른 다섯살의 나이에 알콜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으며 퇴원후에도 계속 술을 마셨다. 결국 그는 서른일곱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로트랙이 그렸던 물랭 루즈 포스터
[ 흐르는 곡, 물랭 루즈(Moulin Rouge) ]
달콤하면서도 허스키한 매력의 또 한사람의 샹송의 여왕인 줄리엣 그레코가 부르는 노래이다. 영화와 뮤지컬로도 여러 번 발표된 물랭 루즈는 데이빗 니븐 주연의 옛날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OST로 삽입되기도 하였다.
* 왕년의 샹송 가수 줄리엣 그레코가 부르는 <물랭 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