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박석정
아득한 옛일도 생각 되누나
나랏 일 옳은 일 아심인지
철없이 작란 같은 일
구지 말리시지 못하시던 어머니
서뿔리 감옥에 가친 가친 몸 되자
새벽 하늘 어둠속에서 목욕하시고
하나님만 찾으시던 어머니
뼈아픈 슬픔에 입술 깨물 줄 아시면서
오직 자식 안타까워 못 견디시는 어머니
붉은 태양 그 아래 태극기 뵙옵시고
이젠 죽어도 한이 없어시다며
너펄 너펄 춤을 추시던 어머니
내마음 어두울 때 초생달 되시고
내 마음 사나울 때 봄바람 되옵시기
나이가 사십을 바라 보아도
어머님 품에 울고 싶을 때도 있거니
오오 애닯은 어머니!
둘도 없는 그 이름 생각하여도
참다운 새 조선의 일꾼이 되고 말리
얼마나 절실한 시인가?
산으로 들로-박석정
천년 만년 말없는 이 강산에
슬픔과 기쁨도 호소하자
우리네 살길도 물어 보자
산은 헐어진 채
들은 추수 때도 늦었는데
길거리 담장에 붙은 삐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왔다 갔다 하면서
서을 좁은 여관방에 무슨 꿈을 꾸려느냐
끝없는 하늘밑에 사나니
심호흡도 해가며
산에도 올라보고
들에도 나가보자
한 주먹의 흙도 거록하지 않느냐
한 포기의 풀도 새롭지 않느냐
위 시들은 1946년 <횃불>이란 시집에 들어 있는 박석정의 시이다.
그는 누구인가?
朴亥釗(박해쇠).
겅상남도 밀양출신이다.
일찍 동경으로 건너가 노동운동에 관계했다.
만쇠(晩釗)는 아명이다.
박정쇠(朴丁釗)이고 필명은 박석정(朴石丁),
조금 희안한 이름이다.
해쇠.
돼지처럼 힘쓰라는 뜻이다.
만쇠는 늦게 힘쓰라. 즉 대기만성하라는 뜻이다.
정쇠는 고무래처럼 힘쓰라는 뜻이다.
석정은 돌같은 고무래라는 뜻인가 보다.
丁자가 보통 고무래라고 하여, 하잖은 도구 같지만,
丁자에는 '성하다(왕성하다)'는 의미도 있다.
丁자는 '완성(成), 신중(?)'을 상징하기도 한다.
고무래는 농기구의 하나로 논밭의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린 후에 밭의 흙을 덮으며,
곡식이나 재 따위를 긁어모으거나 펴서 너는 데 쓰인다.
긴 네모꼴의 널조각에 긴 자루를 박아 ‘T’ 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부모님이 얼마나 귀하게 되라는 뜻으로 지어 주었을까?
그는 동요시인으로 일제 때 조선의 어린이를 위하여 좋은 동요를 많이 지었고
『샛별』 잡지를 했다.
때문에 일제의 탄압을 받아 숫한 고난을 겪었다.
해방 후 일찍이 월북하여 이북의 예술가동맹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부인인 김정애(金貞愛) 역시 여성 운동가로 ‘건준’에서 여성부를 맡아
일한 후 나중에 밀양의 여성동맹의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군정 경찰에 잡혀가기도
하며 숫한 고난을 겪었다. 그런 고난이 겹쳐 병이 되었고 결핵으로 돌아갔다.
그의 어머니는 어떠했는가?
그의 어머니는 고향 밀양에 있을 동안 늘 대문을 열어놓고 사셨다고 했다.
그 이유는 여성운동가이신 며느리 김정애 선생과 아들 친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당시 해방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들이 위급할 때 어머니 집으로
올는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언제든지 자기 집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어머니의 이와 같은 배려로 기적 같은 도움을 받았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그리고 그 아내였다.
그런 그가 월북했다.
그의 시를 보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간다.
기대했던 남한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어지간히 한심했나 보다.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하나님을 믿던 어머니.
여성운동가인 아내의 죽음.
그의 월북.
동생들은 모두 일본으로 도피했고.
그렇게 해서 북한으로 간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과연 북한은 노동자들의 세계였을까?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해서 찾은 나라인가?
나라를 위하여 무언가 큰 일을 해보겠다는 그였다.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지하에서 통곡하지나 않았을까?
선조들의 숫한 고난을 겪으면서 찾은 나라이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그 사람같은 분들의 희생에서 온 것이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북한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꿈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
무언가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