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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흐름 | 나누기, 활동하기 |
11/1 (토) | 8시 떠나기-과천에서
12시 점심 식사
1시 사북초등학교 시비(태백산 두리봉 어우실) 사북석탄유물보존관 임길택 선생님 사모님 뵙기
7시 저녁식사 8시 잠집으로 이동 9시 시와 책 읽기, 이야기 나누기
| -임길택 선생님 시 낭송 (시집<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할아버지 요강>, <똥 누고 가는 새>, <탄광마을 아이들>, <산골 아이>,<나 혼자 자라겠어요>) -노래 배워 부르기 -저마다 시 쓰기 -임길택 선생님 쓰신 책 읽어온 뒤 느낌 나누기
*새참 준비 *저마다 공책 챙기기 |
11/2 (일) | 8시 아침 식사 9시 되돌아보기와 글쓰기 10시 되돌아오기 2시 과천 닿기 | -임길택 선생님 시 낭송 -노래 배워 부르기 *새참 준비 |
■ 문학 기행
-임길택 선생님
1952년 3월 1일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난 임길택 선생님은 1976년 정선군 임계면에 있는 도전초등학교 군대분교로 발령을 받은 뒤 14년 동안 강원도 탄광 마을과 산골 마을 학교에서, 1990년부터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80년 사북초등학교 아이들과 학급 문집 [나도 광부가 되겠지]를 만들었고,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문집 만드는 것과 글쓰기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준 심성 착한 선생님은 1997년 4월에 폐암 선고를 받고 요양하다 12월 11일 마흔 여섯의 안타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북석탄유물보존관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현장이 있는 자리에 사북석탄유물보존관이 세워졌는데 실제 탄을 캐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석탄유물보존위원회 운영기획팀장인 전주익 씨가 보존관 관람을 도와줬는데 광부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서 일을 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 많았다.
-사북초등학교
선생님은 1979년에 사북초등학교로 부임하여 ‘사북 사태’로 널리 알려진 1980년 4월이 지난 뒤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북 항쟁은 단순한 노동 항쟁이 아니라 사북 전체가 함께한 항쟁이었고 그 격렬함이 탄광 사람들다웠다. 그런 힘들고 가난하고 막막한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지낸 선생님은 비로소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아이들 편이 되어갔단다. 당시 사북초등학교 아이들이 쓴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를 보면 그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다. 오늘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진용철 씨 시 한 편도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예전 학교 건물은 헐어버린 지 오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으며 한쪽에서는 또 공사를 하고 있다.
-임길택 시비
선생님 시비는 겨레아동문학연구회, 한국글쓰기연구회, 어린이도서연구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사람들이 모여 태백산 두리봉 어우실에 세웠다.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빗물에 패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임길택 선생님 사모님 댁
-봉정분교
봉정분교도 폐교가 된 지 오래다. 선생님이 산에 올라 나무를 해 오던 산은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나무를 해서 밑으로 굴려 길이 생긴 곳은 여전히 흔적이 선명하건만 학교 터는 대안교육을 하는 곳으로 바뀔 모양이다. 아이들이 타고 뱅글뱅글 돌 수 있는 놀이기구가 그대로 있다. 우리 일행은 나이도 잊고 놀이기구를 타고 돌며 소리를 질렀다. 특히 조월례 선생님은 어찌나 고음 처리를 잘하시던지 놀이동산에라도 온 기분이었다. 선생님 시에 나오고 이번에 백창우 선생님이 노래로 만든 ‘영미의 손’의 주인공 영미네 집은 분교 바로 옆에 있는데 지금까지 건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란 집 영미네 집.
-선생님이 살던 집 터
선생님이 살고 있던 분교의 관사는 밭이 되어 있다. 그나마 주춧돌이 남아 있지만 조만간 그것마저 없어지게 생겼다. 기역자로 된 집에 세 가구가 살았다는데 마흔 평이나 될까, 시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참 좁은 곳에서 세 가구가 산 셈이다. 사모님은 터만 남은 옛 집에, 그것도 임길택 선생님과 함께 살던 집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자꾸 얘기를 해 주시려고 한다. 사무치는 기억을 말로 메우려 하시는 것일까.
-구미정
선조 숙종 때 공조참의를 지냈던 이자가 당쟁에 회의를 느끼고 이곳 임계면 봉산리로 내려와 은거하며 지은 아름다운 정자. 정자 주변의 반서(하천의 바위섬), 평암(평평한 바위), 취벽(푸른 절벽), 층대(층층이 쌓인 대), 석지(돌 연못) 등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하여 구미정이랑 이름을 붙였단다.
그리운 길택이 형!
이주영(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우리 교실 창가엔 말라가는 국화꽃잎이 한 웅큼 있습니다.
꽃이 져서 꽃그릇을 온실로 옮기던 날,
꽃잎이 아까워 따둔 것들입니다.
햇볕을 쬐러 창가에 설 때면
나는 꽃잎을 조금 들고 냄새를 맡곤 합니다.
(《할아버지 요강》머릿글)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이 아까워 한 움큼 받아서 교실 창가에 두고 살아가는 한 초등학교 교사, 이 시집의 저자인 임길택 선생님의 자연에 대한 마음이 느껴진다. 나아가 이런 교사와 함께 가을 햇살 넘어드는 교실 창가에서 국화꽃 내음을 맡는 아이들 모습도 보인다. 이처럼 이 동시집에는 참교육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교사가 바라고 느낀 아이들과 자연이 소박하게 담겨있다.
말도 못 하는 산
도망도 못 가는 산
그 산을 이길 수 있느냐고
누가 물었어요.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어요.
대신에 우리는
그 산의
친구가 되겠다고 했어요.
(〈산〉전문,《할아버지 요강》중에서)
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친구로 보자고 한다. 아니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교사가 아이들 마음을 읽고, 대신 말해주고 있다. 아이들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먹고
버리고
서너 군데씩 학원에 가고
무엇엔가 늘 쫒기면서
이 아이들 언제 하늘 한 번 쳐다보나
-가운데 줄임-
하늘 높이 떠 세상 지키고 있는 별들
가만가만 속삭이는 소리
언제 귀기울여 들어 보겠나.
(〈아이들은 언제 하늘을 보나〉일부, 《할아버지 요강》)
어른보다 더 바쁘다는 요즘 초등학교 어린이들 하루 생활, 학원에 가 공부하고 학교에 와
논다는 아이들이다. 어디라도 하늘 없는 곳이 없건만 그 하늘 한 번 마음 깊이 느낄 여유가
없는 아이들을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우리 하늘 보고, 별과 이야기 하면서 살자'고 속삭인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보는 시'라는 부제처럼 이 시집은 4,5,6학년 어린이들과 교사, 학부모한테 권하고 싶다. 시 한 편 한 편이 부모와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읽고 그 시에 담긴 생각과 시에 대한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하기에 좋다. '산'을 읽고 진정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은 언제 하늘을 보나'를 읽고, 운동장에 나가 누워서 하늘을 보고 들어와 시 쓰기를 할 수도 있다. 올 가을에는 이 땅에 사는 아이들이 단 한 시간이라도 마음껏 하늘을 보고, 시 한편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쓰기 모임을 처음하던 때가 생각난다. 사북 아이들 학급 문집을 소개하면서 '우리 동네 애들은 물을 까맣게 그려. 까만 물만 봐서'했다. 길택이 형은 까만 물을 그리는 사북 탄광촌 아이들 삶을 올곧게 보기 시작하면서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길택이 형은 교실에 와서 재잘거리는 그 아이들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담았다. 형은 그 아이들과 봄바람 살랑이는 들판에 나가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냉이를 캤다. 가끔 들꽃 이름이 뭐냐고 물어가면서. 그러다 가끔은 허리펴고 일어서 그 아이들과 손잡고 저 푸르고 맑은 하늘을 한껏 쳐다보며 살았다. 그렇게 살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갔지.
점심 시간에 창 밖으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운동장 한 가득 아이들이 뛰어놀고, 뛰어노는 해맑은 웃음소리가 하늘로 날아 오른다. 그 소리를 따라 하늘올라가다 하늘을 봤다. 하늘을 봤다. 옥색처럼 연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얇게 퍼져 있다. 그 하늘 속 저 편에서 길택이 형이 웃으며 뛰어 놀고 있다. 하늘로 날아오른 우리 아이들 손잡고 겅중겅중 뛰놀고 있다.
형 알고 있지?
형 딸이 교대 다니는 거. 그 때 아람유치원에서 형 만나겠다고 모였을 때 같이 밥 먹었거든. 수능시험 보고 어디갈까 망설인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 뒤를 이으라고 했어. 좋은 선생 한 명 더 만나고 싶어서. 형 닮은 선생 한 명 더 보고 싶어서. 그런데 정말 교대를 가줘서 너무 반갑고 고마워.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대. 우리 애도 교대 가겠다고 나하고 약속했었는데, 수능성적이 낮게 나와서 원서도 못 넣었어. 그래서 사회복지과에 갔는데 학교 생활이 재미있다고 요즘은 집에 잘 오지도 않아. 참, 유승룡 선생님이 형 딸한테 초원대학생봉사장학금을 보내주고 계셔. 형이 초원을 위해 한 일을 생각하면 너무 부족하지 뭐. 올해는 내가 초원대학봉사장학생을 만들기로 했어. 그러면 아마 일년에 몇 번은 볼 수 있을 거야. 형 딸이 교단에서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져.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형 너무 빨리 돌아갔어. 조금만 더 놀다 가지......젠장, 눈물이 나서 더 못 쓰겠어. 안녕.
앞뒤를 잴 줄 몰랐던 사람
주중식
일에서 돌아와 씻을 적마다
석탄 가래 내뱉으시며
일 년만 견디면 되신다더니
논밭 사서 일구시자더니
이제는 그 힘든 일
하지 않으셔도 돼요
힘들어도 힘들단 말 한 마디 없으시더니
일에 눌리는 일 없으시더니
그 일 년이 짧아졌어요
이제 아버지는
무엇으로 돌아오시나요
꽃이 되어 해 앞에 서시나요
새가 되어 하늘을 나시나요
그럼 우리는 어디서 기다려야 하나요
문 걸으면
터벅터벅 걸어오실 것 같고
열어 두면
그만 걸고 자거라 하시는 것만 같은
죽었어도 죽지 않으신 아버지는
지금 어딜 떠도시나요
그럼 우리는
어디서 기다려야 하나요
(〈아버지2〉전문, 《탄광마을 아이들》에서)
한 해 전, 강원도 사북 성당에서 임길택 선생을 마지막 보내는 영결미사 때 제가 읽은 시입니다. 임 선생은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미리 써 놓고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시를 읽으면서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리고 목이 메였습니다. 임 선생이 남긴 여러 시 가운데서 제가 어째 이 시를 골라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
들에 놀던 동무 간 곳 없으니
이 세상에 낙원은 어디이뇨
불랙 죠 널 부르는 소리 그리워
나 홀로 머리를 숙이고서 가노니
블랙 죠 널 부르는 소리 그리워
늘 함께 지내던 동무 임길택 선생을 묻고 돌아오던 그 날 제 마음 속에서는 난데없이 중학교 때 배운 이 노래가 또 울려 나왔습니다. 스티븐 포스터가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죠를 그리워하며 지은 노래라고 배웠던 것까지 생각났습니다.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
함께 지낸 동무 간 곳 없으니
이 세상에 널 부르는 소리 그리워
나 홀로 머리를 숙이고서 가노니
길택이 널 부르는 소리 그리워
이렇게 노랫말을 바꾸어 맘속으로 가만히 불러 보며 함께 지낸 날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지내던 벗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고 나니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의 그 마음도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임길택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3년 경기도 어느 수녀원 강당에서 한국글쓰기연구회 창립 모임을 가질 때였습니다. 그 때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그 모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잠깐 만났기 때문에 임 선생에 대한 뚜렷한 인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뒤로 방학 때 글쓰기 연수회가 열리면 한 번씩 만나고 학급 문집을 내면 서로 주고 받는 정도로 지냈을 뿐 그리 가까이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 저는 임 선생이 아이들한테 시를 참 잘 가르치시는구나 하는 느낌만 가졌지 시를 쓰는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마을에
눈이 내리면
끝없이 끝없이
눈이 내리면
까만 길 까만 지붕
눈에 묻히고
아버지 탄 캐는 소리
눈에 묻히고
하얗게 하얗게
눈이 내리면
우리 마을 하늘에
눈이 내리면
이 세상 슬픈 일들
눈에 묻히고
봄소식 씨앗 되어
고이 잠들고
(〈눈이 내리면〉전문,《탄광마을 아이들》)
이 시가 시인 고은 선생의 추천으로 《실천문학》지에 실린 걸 보고서야 임길택 선생이 빼어난 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처음 만난 지 대여섯 해가 지나면서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우리는 서로 말도 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1989년 여름 임 선생이 강원도 사북을 떠나 거창으로 옮긴 뒤로는 둘도 없는 벗으로 늘 가까이 지냈습니다.
임 선생은 거창으로 와서 먼저 신원 중유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예 학교 안에서 자취를 하며 그 아이들을 보살폈습니다.
임길택이 지금은 경남 거창군 신원 골짜기에서 손수 밥을 해 먹으며 지내고 있다. 언제는 읍내에 있는 제 식구들을 이끌고 가서 일손 모자라는 학부형 집 모내기를 한다더니, 현충일에는 나까지 불러내는 게 아닌가.
그 날 찾아간 집은 일손이 얼마나 귀했던지 여든여덟 되신 할머니가 꼬부라진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온종일 모판에서 모를 쪄서 대어 주시는가 하면, 국민학교 3학년짜리 아이까지도 모를 심어야 하는 그런 집이었다.
그런데 임길택은 아침부터 제 발로 찾아 들어간 그 집의 큰 머슴이었다. 남이야 무엇을 쫓아가건 거기에 한눈 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드러내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임길택의 참모습을 보고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내 꼴이 민망하였다.
다들 도시로 도시로 빠져나가야 살 길이 열린다는데, 아직도 촌을 벗어나지 못하고 촌구석에 남아서 탄이나 캐고, 농사 짓고, 고기잡이 나가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가장 못난이이자 바보 등신이라고 세상은 이들을 얕본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 하루 먹고 살아가는 것은 이들 몇 안 되는 등신의 덕택인 줄 알아야 한다. 등신이 우리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등신이란 말을 신과 같다는 뜻으로 풀이해서, 바보 등신 즉, 하느님이 우리를 살리고 있다고 해야 맞다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을 읽고, 주중식, 1990)
모내기철에는 쉬는 날도 없이 그 골짜기에 묻혀 지내고, 읍내에서 사는 저를 불러들이기까지 하며 일손 모자라는 집 논에서 모를 심었습니다. 모를 한 포기라도 꽂아 보아야 밥 먹고 살아갈 자격이 있지 않겠느냐고 웃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학부형도 아닌 갓집 아저씨가
창 쪽에 둔 아이들 의자에 앉아
안경 너머로 학교 역사를 읽는다.
1964년 분교로 문을 열어
1992년 2월을 끝으로 문을 닫는 학교 이야기
그 옆에 글 못 읽는 성희 할머니
나눠 준 종이 손에 든 채
운동장 터 내주었던 할아버지 생각하며
말없이 앉아 있다.
모처럼 차려 입은 한복 위로
봄 길목 햇살이 내린다.
첫 졸업생 성균이 아버지
산에서 파다 심은 나무 이야기를 하고
순진이 아저씨는
학교 터 닦을 때 나온 뱀 이야기를 하며
섭섭함을 달랜다.
이 모든 이야기들
이젠 어딘가로 떠나 보낼 때 되었다는 듯
연통 가득 뿜어져 나가는 연기들도
(〈마지막 졸업식〉전문, 임길택 두 번째 시집 《할아버지 요강》에서)
졸업식 마치고 그 학교가 문을 닫던 날 시 한 편 남기고 읍내 거창초등학교로 들어올 때까지 중유 산골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저도 산에 오를 때나 어디 나들이를 갈 때면 임 선생을 불러냈습니다. 거창 가북 덕도, 상감월 같은 산마을에도 가고, 합천 해인사로, 남원 실상사로, 구례 화엄사로 발길 닿는 대로 우리는 함께 다녔습니다.
함께 다니면서 가만히 보면 임 선생은 어디서 누구를 만나서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서 알아내고야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학문, 묻는 것이 곧 배움이라는 것을 제 앞에서 언제나 꾸준히 보여 준 분입니다. 그게 진짜 학문하는 태도라는 것쯤은 알겠는데 저는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올 봄 새학기에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펴내어 경남 도내 초등학교 모든 아이들한테 한 권씩 나누어 준 책이 하나 있습니다. 《착한 마음 바른 생활》이라는 인성 교육 자료입니다. 이 책 뒷표지에 '임길택(거창 위천 초등학교 교사)'이라는 이름이 박혀있습니다. 이 책은 임선생님 병으로 몸져 누워 있는 동안 병원 침대에 기댄 채로 여러 묶음 원고 뭉치를 붙들고 씨름해서 나온 것이라, 임 선생이 살아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힘을 쏟아 넣은 기념물로 남았습니다.
임 선생은 자신의 건강조차 돌보지 않고 맡은 일에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살다가 갔습니다. 조금만 앞뒤를 재는 사람이었더라면 그렇게 총총걸음으로 떠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암만 생각해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글은 《어린이문학》98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주중식 선생님은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감선생님입니다.)
백창우 아저씨가 맘대로 만든 아이들 노래와 토막글
우리 마을 하늘에 / 눈이 내리면
끝없이 끝없이 / 눈이 내리면
, 까만 길 까만 지붕 / 눈에 묻히고
아버지 탄 캐는 소리 / 눈에 묻히고
하얗게 하얗게 / 눈이 내리면
우리 마을 하늘에 / 눈이 내리면
이 세상 슬픈 일들 / 눈에 묻히고
봄소식 씨앗되어 / 고이 잠들고
임길택 시 〈눈이 내리면〉,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에서
····시인 임길택····그가 있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웠는데····그의 시가 있어 세상은 그만큼 환했는데····예닐곱해전, 나이를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착한 눈빛의 시인을 만나고 돌아와 이 노래를 만들어 혼자 흥얼거리곤 했는데···
·빗물에 패인 자국 따라/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이란 시에 노래를 붙이며 가슴 찡해지던 때도 그 즈음이었는데····그가 다음 세상으로 떠난지 두 해가 가까워오는데····몇 해 전에 나온 시집《할아버지 요강》하고 마지막 시집《똥 누고 가는 새》를 뒤적거리다 보니 어느새 창이 부옇게 밝아온다····참, 아침 차로 전주엘 가야 하는데····‘개나리꽃 속에 숨어도 안 보일 만치 아주 작은’시인의 시집 속엔 정말 작은 것들 투성이다. 냉이꽃·수수꽃다리·봉숭아·맨드라미·엉겅퀴·쑥부쟁이·접시꽃·술패랭이·할미꽃·아기 배나무·고추벌레·풍뎅이·개똥벌레·무당벌레·밀잠자리·깃동잠자리·지렁이·새앙쥐····몸을 낮춰 아주 조그마한 것까지 눈 여겨 보던 사람, 싸우는 새들을 말리고, 여름 밤 잠 못드는 소를 데리고 함께 산길을 걸으며 소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들려주던 사람,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라면 아이 어른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시로 쓰고 싶어하던 사람, 아아 그대 글 읽으니 내 몸 꽃 내 난다. 그대 글 읽으니 내 노래 가야할 길 보인다.
나무들이 / 조용히 하늘 우러르는
아침 숲을 보세요
온 동네 아직 잠들어 있고
그 위로 햇살만 빛날 때
나무, 저희끼리 손을 잡고 / 나무 저희끼리 몸 부비며
그 햇살 아래 달려나온 / 아침 숲을 보세요
가만히 훔쳐만 보세요 / 바람과 만나는 숲
하늘과 만나는 숲 / 혼자서만 몰래 만나 보세요
임길택 시〈아침 숲〉, 시집《할아버지 요강》에서
····슬렁슬렁 마음 안에서 노래가 일렁이는데 이런 망할, 전화벨 소리····날이 샜구나····언제 아침 숲을 찾아가볼까····창우 ▣
( 이 글은 《어린이문학》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백창우님은 어린이도서연구회 연구위원이십니다.)
첫댓글 이오덕 선생님 책 속에 '나도 광부가 되겠지' 라는 아이의 글을 읽으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임길택 선생님은 그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사시다 사십 중반에 돌아가신 분이시군요..저도 이제 딱 사십 중반인데...너무 일찍 가셨네요.
2004년 태백산의 나무들 이름을 외우기 위해서 태백산에 대여섯차례 올랐었던 적이 있어 태백이 낯설지가 않아요.
가시는 분들 잘 다녀 오셔요.
비소식이 있습니다.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