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박혁남 회장)
“캘리그라피는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는 최고의 예술 장르입니다”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 박혁남 이사장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박혁남(아호: 글빛, 義谷)은 전남 완도 태생으로 일찍이 서예를 접하고 작가와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청년시절(26세)에 첫 개인전을 한 이후에 개인전 9회와 단체전 400 여회를 개최하였으며 1987년 서예연구실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눈을 팔지 않고 창작에만 몰두해온 전업작가이기도 합니다. 2000년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초대작가로 선정된 이후 2차례의 심사위원과 2차례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 또한 이 무렵 시인으로도 등단하여 시, 서, 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기본기를 바탕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한글을 소재로 개성적이고 현대적인 창작을 하고 있습니다.
수원대미술대학원서예전공 겸임교수, 한국미협 이사를 역임하였고, 한국신지식인,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문화지원 공식서예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 이사장직으로 새로운 예술장르로 각광받고 있는 캘리그라피의 발전을 위해 열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간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요. 각종 잡지에 실린 평론이나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글빛 박혁남의 한글서예는 궁체와 판본체를 가리지 않고 탄탄한 기초와 아취로 서단에서 이미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내달릴 기세다. 율곡 선생은 일찍이 약초를 캐러 갔다가 홀연히 길을 잃고 가을 산의 정취에 빠진 자신을 노래한 적이 있다. 길을 잃어야 새 길을 찾는다. 글빛의 작품, 특히 판본류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고졸함으로 가득 차있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조형으로 이른바 '글빛체'들을 보여주고 있다. 유려함과 자연스러움을 갖추고 있으며 시대의 미감까지 갖춘 한글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전에도 몇몇의 작가들이 했지만 글빛의 한글작품처럼 완성도까지 갖춘 예는 드물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작금의 캘리그라피를 하는 작가들이 운필이나 자법을 익히기도 전에 유희적인 것에 그치고 있는 것은 서예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즈음에 그의 작품들이 캘리그라피를 하는 이들에게 경종과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2013, 월간서화지 '묵가' 임종현 편집주간 님의 글)
잎새들이 투욱툭 투욱툭 진다. 바람도 쓸쓸한가 낙엽들도 함께 길을 나선다. 저녁 햇살이 방안으로 들어와 낯선 책장을 쭈욱 훑어보고 간다. 빨간 표지로 된, 글빛에게서 보내온 개인전 도록 『한글의 소풍』을 일람했다. 13쪽 「꿈을 위하여」에서 오랫동안 눈이 멎었다.
중앙에 날개를 활짝 편 채 날아오르는 학. 오른쪽 하단의 낙관 글씨, 왼쪽 하단 아랫부분의 ‘맑고 밝은’ 직사각형 조각보 유인. 왼쪽에는 「당신 축제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
글씨가 모르는 곳에 그림이 있고, 그림이 모르는 곳에 글이 있고, 글이 모르는 곳에 글씨가 있다. 시‧서‧화가 따로 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 선비들은 이렇게 시‧서‧화로 사람들과 소통을 했다. 오늘날에인들 무엇이 다르랴.
어제는 가고 오늘은 당신의 정원에 장미꽃 만발하였습니다. 햇살 들이치는 당신의 정오 씻기 운 하늘처럼 가벼운 날개로 푸른 꿈을 노래하여요. 거침없이 자유롭게 꿈처럼 날아오세요, 당신의 축제에
박혁남의 작품 「꿈을 위하여」
호는 ‘글빛’, 개인전 제목은 ‘한글의 소풍‘이다. ’글빛, 한글의 소풍‘. 말만으로도 작가가 얼마나 한글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한글은 민족의 언어이다. 한글 서예가 한문 서예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한글 창제 이후 정음체, 궁체, 나름체, 개성체, 서간체 등 각종 서체로 500여년을 지나오며 전통 서예 문화로 정착해왔다. 한글 서예가 한문 못지않은 고유한 서예술이 되었다.
한글 서예는 한글의 꽃이다. 한글 서예로 한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 몸에 한복을 입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 사람이 한복을 입는 것은 당연하고 글도 한글 서예로 쓰는 것은 당연하다. 메시지를 한문으로 쓴다면 누가 이를 해석하며 읽겠는가.
서예는 조형 예술이며 언어 예술이다. 조형 이전에 언어이고 언어 이전에 조형이다. 이렇게 한글 서예는 조형과 언어가 함께일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갖고 있다. (중략)
가을 물빛 같다. 지상의 모든 것을 맑고 깨끗하게 비쳐주는 명경지수. 도화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여백에 그림자까지 비치지 않는가. 누군가를 기다릴 것만 같은 불빛. 애틋한 그리움이 반짝 반짝 글빛 행간에서 빛나고 있다.
한글은 자체만으로도 지상 최고의 고급 예술이다. 천지인을 본떠 만든 모음, 우리의 발성기관을 본떠 만든 자음. 비록 자형이 단순하지만 단순 속에서 천지의 조화와 천지의 기운을 말할 수 있는 것이 한글이다.
한글이 소풍 나온 날에 빛난 박혁남의 글빛체.
꽃 피고 지는 일이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꽃잎 속에서 아침이 오듯 그대에게서 사랑이 온다는 글빛의 말은 글빛의 글씨와 함께 흔들릴 듯 흔들리지 않는 불빛으로 남아 길이길이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서예문화 11월호, 글빛 박혁남의 '한글 소풍' 석야 신웅순/ 시조시인, 평론가, 서예가, 중부대 교수)
-사단법인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인공지능의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 디지털의 시대 속에서도 캘리그라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트렌드로 부상되고 있습니다. 캘리그라피는 메말라가는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는 새로운 부문으로써 본 협회에서는 캘리그라피 연구와 학술발표, 전시, 교육을 통하여 회원들의 창작능력을 향상시키고, 신진작가를 양성하여 캘리그라피를 발전시켜나감은 물론 전통서예를 바탕으로 캘리그라피 부문을 순수예술장르로 정착시켜 시대성에 부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본부는 인천 연수구에 있으며 서울, 제주, 전북, 경남, 경북, 전남 등 20개의 지회, 지부가 설립되었고, 200여명의 회원들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제3회 대한민국캘리그라피창작대전, 캘리그라피축제, 캘리그라피생활소품컬렉션전, 회원전, 제2회 캘리그라피학술발표회, 제1회 대한민국손글씨편지쓰기 공모, 인천광역시 교직원캘리그라피직무연수, 자격증 검정 등의 활동을 개최하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 회원이 되려면?
우선 서예나 캘리그라피에 대한 활동경력이 5년 이상인 자로 최초 전시일자 확인 가능한 도록 사본이나 기타 자료를 가입원서와 같이 제출하면 됩니다. 지회, 지부장의 추천을 받아 공모전 입상경력, 작품포트폴리오로 승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회원이 되면 협회에서 주최하는 국내 외 전시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학술발표, 심사 등에 우선 초대되며 협회의 모든 출판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많은 창작 활동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예술은 목선을 타고 구름 헤치며, 저 향기로운 풍난의 향기를 찾아 가는 길이리라.’ 다짐을 지키며 지나온 40 년입니다.
자신의 모습만 황홀하게 바라보던 수선화의 꽃말처럼, 아직도 젊은 날의 의욕과 열정만 남은 것이 아닌지, 보여지지 않는 세계를 말갛게 보이게 하는 것, 그 평생의 과업 속에서 넘 지친 것은 아닌지, 돌아다보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 발자취 속에 숨겨진 나만의 향기로 나를 견인해 갈 샛길이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캘리그라피는 이 시대가 낳은 새로운 예술장르이며 마음의 색깔과 맛을 글씨로 전하는 감성예술입니다. 또한 유창한 한글과의 조합으로 한국적인 예술장르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사유와 철학이 작가의 개성과 만나, 그동안 발견해내지 못했던 영역의 아름다운 꽃길을 여는 것이 캘리그라피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사랑하는 사람 앞에 놓여진 향기로운 꽃 한 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뷰티라이프> 202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