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4 지방선거의 개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지난 대선 이후 투표지 분류기 오작동 논란으로 수개표 요구가 불거진 이후 나온 선관위의 이번 조치가 선거 공정성 논란을 얼마나 해소할지 주목된다.
선관위 김주헌 공보과장은 5일 오후 여의도 인근 음식점에서 열린 국회 출입 인터넷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개표 논란에 대한 대책에 대해 질문 받자 “지난 대선 개표에서 개표 사무원의 착오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국민 공모를 통해 개표 사무원을 위촉할 것”이라며 “개표에 의심을 가진 분들, 수개표를 요구했던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또 “오래된 투표지 분류기를 신형으로 교체했고, 심사·집계부를 거친 다음에 검산부를 새로 설치해 개표를 정확하게 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선관위의 계획은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하되, 검표 과정을 보완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그동안 선관위는 아파트 부녀회, 종교단체, 학교 등에 개표 사무원 참여를 요청해 사실상 비공개로 개표 사무원을 뽑아 왔지만, 이번 지방선거부터는 국민 공모 방식으로 투명성을 높인 것이다. 공모는 4월 초·중순께 시작돼 전체 개표사무원의 25% 규모인 2만 명이 뽑힐 예정이다.
투표지 분류기의 경우 종이걸림 현상(jam)이 문제로 지적돼 왔는데 지난 2002~2004년에 도입된 ‘구형’ 분류기를 이번에 교체하기로 한 것이다. 전체 투표지 분류기의 80%(1300대) 정도가 교체될 예정이다. 검산부 설치는 ‘투표지 분류기→심사·집계부→선관위원 확인→선관위원장 도장 날인’ 순으로 진행되는 검표 과정을 보완한 것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 같은 조치가 투표지 분류기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격한 논란을 얼마나 해소할지 여부다. 재작년 대선 직후 시민들과 야당은 투표지 분류기 오작동 문제를 제기하며 수개표를 적극 촉구한 바 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작년 1월10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전자개표기로도 불리는 투표분리기는 개표 당시 더러 오류가 발생했다”며 “1번 후보의 100장 묶음 속에 2번 후보의 표가 섞여 있는 것을 참관인이 우연히 발견하고 시정한 곳이 있다. 선관위도 기계가 민감해서 이런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문제는 대부분의 개표 참관인들이 투표기 분류기계가 완전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계가 분류한 100장 묶음 속에 다른 표가 섞여있는지를 일일이 확인 안 한 참관인이 많은 것”이라며 “재검표 청원에 응답할 때”라고 밝혔다.
진선미 의원도 1월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개표 조작 의혹을 소수의 악의적인 음모론으로만 치부한다면 선관위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고, 정청래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시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대선 재검표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청원서에는 시민 23만여 명의 서명이 담겼다.
급기야 선관위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에서 대선 개표 과정 시연회를 열었지만, 참관하러 온 일부 시민들이 가상 투표용지가 아니라 직접 기표한 용지로 전수 조사를 요구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는 등 논란이 계속됐다.
이후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대선 재검표(수개표)와 관련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소송을 제기할 상황도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라고 입장을 밝히는 등 대선 불복 논란에 잇달아 선을 긋자, 일단 투표지 분류기 논란은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작년 10월29일 <뉴시스>가 재작년 대선 당시 일부 지역구의 개표 과정에서 투표지 분류기 오작동으로 후보자 득표수가 잘못 집계됐고 검표과정에서 수정한 사실이 있었다고 보도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당시 뉴시스 취재결과 목1동·신정2·3·4·6동·신월1·4·5동 등 양천구에서만 14개 투표구(양천구 전체 투표구 107개)에서 투표지분류기 개표결과와 심사·집계부 개표결과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100여 표 이상이 잘못 분류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11월 13일 선관위 개표 오류 논란에 대해 수작업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으로 투표기 분류기의 오작동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투표지 분류기를 그대로 6.4 지방선거에서 사용하고 검표 작업을 보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선관위의 이 같은 보완 조치에 대해 시민사회쪽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선거 공정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는 5일 <폴리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선관위의 조치에 대해 “그동안 검표 인원이 얼마나 독립성이 보장됐는지 알 수 없었는데 국민 공모로 이를 투명하게 하고 검표 절차를 더 마련한 것은 제도적으로 많이 보완되는 것”이라며 “국민 참여로 논란이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개표 과정의 투명성을 위해서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개표에 참여해야 한다”며 “개표 부정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분들이 참여해 전반적인 감시·감독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그럼에도 투표 과정, 선거운동 과정의 부정 시비가 걱정된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해체되지 않았고, 국방부 사이버심리전단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두 눈 부릅뜨고 국가기관의 여론 조작을 보고 지방선거 감시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