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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八月)
孀妾怨長夜(상첩원장야)-남겨진 아내는 긴 밤을 원망하고
獨客夢歸家(독객몽귀가)-떠나온 남편은 고향 꿈을 꾸는데
傍檐蟲緝絲(방첨충집사)-처마 밑엔 베짱이 실 잣는 소리
向壁燈垂花(향벽등수화)-벽을 향한 등불은 꽃이 드리운 듯
簾外月光吐(렴외월광토)-주렴 밖에 달빛이 올라오니
簾內樹影斜(렴내수영사)-주렴 안에 나무 그림자 비끼었네.
悠悠飛露姿(유유비로자)-촉촉하게 내리는 이슬들은
點綴池中荷(점철지중하)-못안의 물방울이 연잎 위로 모여드네!
이장길(李長吉)
어제 해질 무렵에 인라인을 갔다가 자전거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눈앞에 무엇이 확 지나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자전거를 세우고 보니 한 떼의 잠자리 였다.
저무는 여름날에 떼 지어 날으는 잠자리 ! 청령군비(蜻蛉群飛) !
자전거 도로 옆으로 흐르는 개울에 눈길을 돌리니 맑은 물밑으로 깨끗한 바닥이 보인다.
영등포구청에서 도림천 정비로 흐르는 맑은 물이 오늘따라 더 시원하고 투명하게 보인다.
자전거에 다리를 걸친채 다시 하늘을 보니 벌써 높게 보이는 창공에 구름이 청량(淸凉)하게 느껴진다.
화중생금(火中生金)! 여름더위 속에서 가을이 움직이고 있다 !
가을이 온다 !
여보,
당신 요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네요.
인라인 너무 심하게 타지 마세요.
왜요?
요새는 열무김치도, 수박도, 좋아하는 상추쌈도, 별로 안 드시는 것을 보니 입맛이 없는가 봐요.
그랬든가 ?
참 계절이 주는 느낌이란 오묘한 것이다.
7월까 지만해도 열 불나게 먹어치우든 열무김치냉면, 상추쌈이 밥상머리에서 나도 모르게 손길이 멀어진 것이 있다.
열무 상추 수박은 여름의 상징 아닌가.
한통에 1만 5천 원 하던 수박도 가을을 앞둔 오늘 8천원에 샀다.
아하, 임신부만 입덧하는것이 아니고 가을 입덧도 있구나.
요새는 양념 얼큰하게 넣은 "갈치 무무조림" 도 괜찮을것 같은데--
갈치가 좀 비싸야지요 한마리에 만원도 넘는데---
처마 밑에 베짱이 실 잣는 소리도 가을을 여는 소리다.
주렴 밖에 달빛도 주렴 안의 나무 그림자도 가을을 전한다.
붉은 고추잠자리 낡개에서도
지붕위의 박꽃에서도
18층 창문에 붙어 우는 매미의 목쉰 소리에서도
8월 언덕에 가을이 오고 있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영광이 빛나는 8월 !
-농월-
신앙인은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한다
何以故?(하이고)-어째서 그러한가?
須菩提!(수보제)-수보리야
若菩薩(약보살)-만약 보살이
有我相(유아상)-나의 존재가 있다는 욕심의 집착인 아상이나
人相(인상)-나라는 자아의 집착인 인상이나
衆生相(중생상)-나를 포함한 모든 살아있는 중생상이나
壽者相(수자상)-살아있는 목숨을 가진 생물인 수자상이 있으면
卽非菩薩(즉비보살)-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 제3분(金剛經 第3分)
위의 글은 선종(禪宗)인 대승불교(大乘佛敎)의 핵심경전이라 할 수 있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제3분(第3分) 내용이다. 대승불교의 혁명적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반야심경의 공(空)의 사상과 함께 본 금강경 제3분 사상은 보살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아我)라고 하는 실체(實體)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나(아我)가 있으면 곧 보살(菩薩)이 아니다. 곧 보살됨의 의미는 내가 없는 무아(無我)의 실천을 의미 하는 것이다. 무아(無我)의 실천이 없이는 선불교(禪佛敎)의 깨달음의 지혜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총무원장 차를 수색?” 성난 불심(佛心)
이 글은 7월 31일 어느 일간지 사회면의 굵직한 헤드라인(headline) 이다. 조계사에는 7월 6일부터 촛불시위 관련 수배자 8명이 천막 농성을 벌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7월 29일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 스님이 외출을 위해 차를 타고 조계사를 나가다가 경찰이 촛불집회 수배자를 검문하기 위해 지관 총무원장 스님의 차량을 검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계사 측은 “총무원장님이 탄 차”라고 알렸지만 경찰은 “총무원장 차량일수록 더욱 검문검색을 해야 한다”며 지관 스님을 비롯해 수행스님 4명을 상대로 신분증 검사와 차량 내부와 트렁크까지 열어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조계사측 스님들은 종로경찰서 앞에서 항의 농성을 벌리고 서울지방 경찰청장과 관련책임자를 문책 파면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법 앞에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든 조계사 총무원장이든--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의 검문에 종교단체의 수장의 지위를 내세워 합법적인 검문을 부당하다는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대한민국 법은 사람 봐가면서 적용하는 법인가?
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 지원 나온 경찰관이 저지른 극히 우발적인 실수”라며 관활 경찰서장이 사과를 하였다고 한다. 아니 정당하게 법에 의하여 검문한 것을 왜 사과를 하는가?
더욱 마음이 착잡한 것은 자칭 속세 사람들을 비판하는 종교인들이 자신이 신앙인임을 망각했는지 아니면 신앙을 배경으로 군림하는지 몰라도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신문기사 내용만으로 볼 때는 “경찰이 사과해야 할 것이 아니라 검문에 불응한 조계사가 사과해야 한다” 정말 경찰이 법을 어겼다면 법에 의뢰하여 법대로 따지면 될 일이다.
왜 법으로 안 따지고 농성을 하고 야단들인가?
종교인이면 “치외법권(治外法權)” 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 나라는 배경쎄고 고함큰 세력큰 사람들만 사는 나라인가?
아무리 데모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아니 인류의 정신적 향도(嚮導) 역할을 해야 하는 신앙인들은 어떠한 명분이라도 데모라는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설령 경찰이 잘못했다 하드라도---
그래서 금강경(金剛經) 제3분(第3分)을 인용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진정 보살(菩薩)은 “나 아상(我相)을 버리라”는 것이다. 나를 버리는 정신이 없고서는 이 사바세계의 윤회를 해결 못한다는 것이다.
나를 버려야 진정한 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상 앞에서만 나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삶에서 나를 버려야 진실한 부처님을 닮고 반야의 지혜를 얻어야 혼탁한 세상에 빛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전등(傳燈)이라고 하였다.
만일 총무원장이 검문에 순응했다면 얼마나 “어른스럽게” 보이고 높게 보이고 “신앙인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칭송을 받지 않았을까?
조계사에서 이경전의 말씀을 모를 리 없는데 자존심(自尊心)앞에서는 경전(經典)의 말씀 따위는 생각이 안 난단 말인가?
나라가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종교인이나 종교지도자들이 정말 대승적(大乘的) 정신으로 국민 앞에 모범을 보이면서 정부가 잘못하면 어른스럽게 훈계해야 한다.
이것이 일반인과 신앙인과의 다른 점이다.
나라 없는 종교가 어디 있는가?
또 성당을 박차고 나와서 데모에 나서는 신부들이나 기독교인들에게 간곡히 권한다. 제발 “정의구현” 이라는 명분으로 데모하지 말라. 당신들만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존경한다면 불충의 행동은 안할 것이다. 성경 곳곳에는 기독교인들의 데모를 야단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마태복음 7장 1-2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정말 기독교인들이 데모를 하면서 정의(正義)를 요구 하는 만큼 당신들은 깨끗한가?
창세기 1장 26~27절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기독교 교리대로 한다면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과 같은 존재다.
여러분들은 진정 하나님을 욕(辱)되게 죄 지은 적이 없는가?
하나님의 형상이면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다윗처럼 생때같은 남의 아내를 빼앗고 남편을 죽이고 나서 하나님에게 용서 받았다고 자기 합리화 시키는 일은 없는가?
마태복음16장 21-25에 기록하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교회를 다닌것으로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자기를 내세우지 말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기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아야 천국에 갈수 있다고 하였다.
마태복음 26장 51-54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예수님을 체포할 때 베드로가 칼을 들고 대항 할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로마 병정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
전쟁 좋아하면 전쟁으로 망하고
여자 좋아하면 여자로 망한다.
도박 좋아하면 도박으로 망하고
데모 좋아하면 데모로 망한다.
이 얼마나 거룩한 말씀인가 !
필자는 종교인이 아니지만 이 성경 구절을 항상 마음에 담고 있다.
나라가 있고 종교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디아스포라(Diaspora) 단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 즉 사방으로 흩어져 산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20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세계 사방에 흩어져 사람대접 못 받고 살아온 단어이다. 남의 말이 아니다. 짧게는 36년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사람대접 못 받고, 조선조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하고 조선 여성을 들을 치욕의 화냥년(환향녀(還鄕女)으로 만든 역사도 모르고 있는가?
지금 이스라엘은 경상남도 보다 작은 땅을 지키기 위해 매일 전쟁을 하고 있다
나라잃은 디아스포라의 설음을 뼈저리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인 되기를 기도하는 바이다.
-농월-
황혼(黃昏) 나그네
千里行裝付一祠(천리행장부일사)
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餘錢七葉尙云多(여전칠엽상운다)
주머니에 남은 돈이라곤 엽전 일곱 닢이 전부이네
囊中戒爾深深在(낭중계이심심재)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野店斜陽見酒何(야점사양견주하)
석양 황혼에 술집 앞에 이르니 어이 그냥 지나치리오!
김병연(金炳淵)
위의 한시는 떠도는 나그네가 황혼(黃昏) 무렵에 찾아든 주막을 앞에 두고 여정(旅情)을 푸는 김삿갓의 운치 있는 모습을 그린 낭만적인 시다.
해질 무렵에 한강지류 도림천을 끼고 자전거 도로를 지나오는 데 다리밑 어두컴컴한 곳에서 색소폰 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온다. 평소에도 악기 연습소리가 종종 들리는 곳이다.
♬황혼이 질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
가슴 깊이 맺힌 슬픔 영원토록 잊을 길은 없는데
별처럼 아름답던 그 추억이 내 마음을 울려주네
목이 메어 불러보는 당신의 그 이름.♬
오늘 들리는 색소폰의 멜로디를 가사로 적어본 이 노래는 1968년 영화 “황혼의 부르스” 주제가로 이미자가 부른 노래다. 해질 무렵에 들리는 가슴을 쥐어짜고 애원하는 듯 한 색소폰의 음율(音律)이 사람의 감정을 처연(凄然)하게 한다.
황혼이 질 때 조용히 서쪽하늘을 보면서 누구를 생각 한 적이 있습니까.?
가슴 깊은 곳에 맺혀 있는 누구에게도 콱 틀어 놓지 못한 잊지 못할 슬픔은 없습니까?
별처럼 아름답던 추억을 회상하며 한숨 지은적은 없습니까?
해 지는 저녁 무렵에 곱게 물드는 서쪽 하늘을 지긋이 바라보면
자연이 주는 노을의 고움에 경탄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루가 시작되는 동쪽의 새벽 여명(黎明)에 비하여 하루를 마감하는 해지는 서쪽의 황혼(黃昏)은 어쩐지 쓸쓸한 감정에 젖게 한다.
황혼에 접어든 내 인생의 쇠퇴(衰退)와 지는 해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보는 기분 탓일까!
이육사의 시 “황혼”에서도 인생의 황혼은 외롭다고 한다.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농월
운산음(雲山吟) 구름과 산
白雲有起滅(백운유기멸)-흰 구름은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靑山無改時(청산무개시)-푸른 산의 모습은 바뀔 때가 없다
變遷非所貴(변천비소귀)-이리저리 변하는 건 좋은 게 아니다
特立斯爲奇(특립사위기)-우뚝한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안정복(安鼎福)
8월달은 가쁜 숨을 쉬며 올라온 고개 마루턱에서 잠시 앉아 호흡을 고르며 무더운 전선(戰線)을 뚫고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게 하는 달입니다.
냉정(冷情)한 가을을 앞두고 인생의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합니다.
인생을 바둑이나 마라톤이라는 말도 있지만 흘러가는 구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흔히 인생이란 한 점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흥망성쇠(興亡盛衰)로 비유되곤 합니다.
구름을 인생에 비유하기는 동서양(東西洋)의 감정(感情)에 차이가 없는 모양입니다.
김삿갓도 구름 같은 인생이라 하였고 독일의 데미안 작가 헤르만헤세도 떠가는 구름을 보면서 삶을 성찰(省察)하였다고 합니다. 그에게 구름은 흐르는 시간이요, 정처 없는 방랑이요, 막힘없는 자유라 하였고 치열한 삶의 인생이라 하였습니다.
멀리 보이는 6.3빌딩을 감고 도는 흰 구름은 코끼리 같기도 하고 금강산 만물상이였다가 부잣집 볏섬가리로 변합니다. 드레스 입은 이영애 같기도 합니다. 삼각산(북한산)에는 버섯구름이 얹혀 있다가 눈 덮인(?) 여름봉우리로 변합니다.
그래서 삼각산 도봉산을 계곡과 어울려 흰 구름이 머문다 하여 백운동(白雲洞)이라 하였습니다.
비온 뒤에 맑게 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무척이나 깨끗하고 가깝게 느껴집니다. 슬픔에 젖은 사람도 마음한쪽이 아파도 괴로운 마음 표현할 길 없는 사람들은 모두가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원망을 보냅니다.
구름 같은 내 인생이라고----
떠도는 구름은 변화무쌍지만 구름이 안고 도는 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은 미련 없이 떠나지만 영겁(永劫)에 깎인 바위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영광과 좌절,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증오등 구름처럼 변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것입니다.
조금은 모자라게 보여도 약삭빠르지 못해도 꾸준하게 지키며 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머리색이 변하고 주름살이 생겨도 아름다웠던 시절 꿈 많던 그 마음만은 간직하고 싶습니다.
-농월-
청추선(聽秋蟬) 매미의 절규(絶叫) 萬木迎秋氣(만목영추기)-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蟬聲亂夕陽(선성난석양)-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沈吟感物性(침음감물성)-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林下獨彷徨(임하독방황)-쓸쓸한 숲 속을 혼자 헤매네. 강정일당(姜靜一堂) 여조과목(如鳥過目)이라는 말이 있다. “눈앞을 날라 지나가는 새와 같다”는 뜻이다. 시간이 흘러 7월이 가고 8월이 오고 여름이 지나감을 알려주는 말이다. 도림천 개천가 꽃길에는 볕살보기 눈부셔 고개 돌린 해바라기 속에는 한 마리 벌이 한낮의 더위를 피해 조용히 낮잠을 취하고 있고 가을 손님을 맞이하는 무궁화가 탐스럽게 피워 있다. 아파트 정원의 녹음 짙은 숲속에서는 매미들의 목청이 한층 자지러지게 들린다. 여름매미의 노래는 사랑을 구애(求愛)하는 세레나데요 목마름의 러브콜(love call)이다. 입추(立秋) 무렵에 매미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생(生)을 마감하는 단말마(斷末魔-숨끊어지는 비명)의 처절한 울부짖음과 몸부림이다. 매미는 여름이 더워서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의 슬픔으로 여름이 더운 것이다. 이 절박한 비명소리를 신호로 한여름이 지나가는 것이다. 지난 7월 31일에 타계하신 이청준 시인의 영전에 바치는 한 시인의 조시(弔詩)에서도 『눈길 걸어 떠난 고향으로 매미 울어대는 숲 속으로 자네는 이제 돌아가는가』라고 하여 선곡(蟬哭)속에 망자(亡者)를 보내고 있다. 매미는 지극히 짧은 2~3주의 삶을 위해, 그의 일생의 6년가까운 세월을 고스란히 땅속에서 애벌레로 산다고 한다. 어떤 성자가 이처럼 숭고(崇高)한 생(生)을 위한 자기 준비를 하였을까? 부처님은 6년 고행(苦行)에 80세에 열반(涅槃)하시고 예수님도 광야(廣野)에서 40일간 금식수련후에 33세에 승천(昇天)하시고도 구세주라 하지 않는가. 매미는 동서양을 통하여 선한 곤충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서진(西晉)의 문장가(文章家) 육운(陸雲)의 한선부(寒蟬賦)에 기록하기를 含氣飮露 則其淸也(함기음로 칙기청야)-기를 머금고 이슬을 마시니 이는 그 맑음이요 加以冠冕 取其君子(가이관면 취기군자)-관면(冠冕)을 썼으니 그 군자다움이요 則其操可以事君(칙기조가이사군)-그 지조는 임금을 섬기고 可以立身(가이입신)-몸을 세워나갈만 하니 豈非至德之蟲哉(개비지덕지충재)-어찌 지극한 덕을 지닌 곤충이 아니랴 라고 묘사 하고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 덕(五德)을 갖춘 곤충으로 칭송하였다. 머리에는 관(官)의 끈이 있어 지식을 갖춘 문덕(文德)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슬만 먹고사는 깨끗한 청덕(淸德) 곡식은 먹지 않는 청렴한 염덕(廉德) 다른 곤충들처럼 거창한 집을 짓지 않고 나무위에서 검소한 생활을 하여 검덕(儉德)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는 신의(信義)와 절도(節度)가 있어 신덕(信德)이라 하였다. 임금님이 정무를 볼 때 쓰는 익선관(翼蟬冠)도 매미의 오덕(五德)인 문청렴검신(文淸濂儉信) 을 항상 염두에 두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리스 최대의 서사시를 쓴 호메르스도 매미를 상찬(賞讚)하기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피도 없고 배설을 하지 않으니 신(神)과 같다고 했다. 매미의 오덕(五德)은 살아서는 인간의 청백(淸白)의 표상(表象)이 되고 죽어서도 청량(淸凉)한 유덕(遺德)이 사람의 건강을 보존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매미 허물을 선태(蟬蛻)라 하여 한약재로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다. 선태(蟬蛻)는 여름더위를 이긴 전사(戰士) 답게 그 성질(性質)이 차(한寒)서 폐(肺)와 간(肝)에 작용하여 열(熱)로 인한 두드러기 아토피성 피부염 홍역등에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한 미물(微物)의 전후생(前後生)이 인간의 금도(金途)가 되거늘 절에서 확성기(擴聲器)로 대중가요처럼 요란스러운 염불(念佛)대신에 매미소리를 녹음하고, 국회의원 뺏지를 매미상(蟬像)으로 바꾸면 어떨까? -농월-
칠석(七夕)날 鵲散烏飛事已休(작산오비사이휴)-까치 흩어지고 까마귀 날면 일은 끝나고 一宵歡會一年愁(일소환회일년수)-하루 저녁 기쁜 자리로 일년 근심 삭이네 淚傾銀漢秋波濶(루경은한추파활)-눈물은 은하수로 흘러 가을 물결 드넓고 腸斷瓊樓夜色幽(장단경누야색유)-유장한 밤, 옥 단장 누대에서는 애간장 끊어지네 錦帳有心邀素月(금장유심요소월)-비단 장막 안에선 은은한 달 빛 바라는데 翠簾無意上金鈞(취렴무의상금균)-주렴에는 무심히 밝은 달빛만 떠오르네 只應萬劫空成怨(지응만겁공성원)-오랜 세월 부질없는 원망만 쌓여 南北迢迢不自由(남북초초부자유)-남과 북으로 멀리 떨어져 서로 애만 태우네 김안국(金安國) 내일 8월 7일은 음력으로 7월7일 칠석(七夕)입니다. 올해는 입추(立秋)와 겹쳐 있습니다. 음력 7월7일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1번 만난다는 전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칠월칠석(七月七夕)에 견우와 직녀가 1년에 1번 만나게 된다는 동양에 널리 알려진 설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기록된 설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양(梁)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409년 축조된 평양 덕흥리(德興里) 고구려 고분벽화에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직녀가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직녀는 옥황상제의 손녀로 목동인 견우와 혼인했는데 이들은 혼인한 뒤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 하여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옥황상제는 그 벌로 두 사람을 떨어져 살게 하고 1년에 1번만 만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은하수가 그들을 가로막아 만날 수 없게 되자, 까마귀와 까치들이 머리를 맞대어 다리를 놓아주었답니다. 그 다리를 까마귀와 까치가 이었다 해서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이날 오는 비, 곧 칠석우(七夕雨)는 견우와 직녀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 한답니다. 이 칠월칠석의 설화(說話)나 전설(傳說)의 대표적인 기록인 풍속기(風俗記)의 내용의 자료가 있어 간단하게 요약하여 소개드립니다. *************** 고전 풍속기(風俗記) 기록 ★七夕 風俗記 織女 七夕當渡河 使鵲爲橋 칠석 풍속기 직녀 칠석당도하 사작위교 위 풍속기(風俗記)의 문장에서는 칠석(七夕)은 직녀(織女)가 칠석 당일에 강을 건너가기 위하여 사신을 데리고 까치가 놓은 다리를 건넜다고 기록하였다. 칠석당도하(七夕當渡河)의 문장은 강물 즉 은하수를 건넌다는 뜻이다. 사작위교(使鵲爲橋)는 사신(使臣)이 놓은 까치 다리거나 아니면 사신(使臣)이 함께 다리를 만들었다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으로서, 사작위교(使鵲爲橋) 문장은 까치가 놓았다는 오작교(烏鵲橋)의 약칭으로 기록한 것이라 생각한다. ★織女 織女星 略語 荊楚歲時記 天河之東有 天帝之子也 직녀 직녀성 약어 형초세시기 천하지동유 천제지자야 직녀(織女)는 직녀성(織女星)의 약어(略語)이며, 고전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의 기록에서는 하느님 딸로서, 동쪽 하늘의 강(江)에서 살았다는 기록이다. 위문장의 천하지동유(天河之東有)의 천하(天河)는 하늘의 江(강)이라는 뜻으로서 천하(天河)는 은하(銀河)를 가리킨다. ★烏鵲橋 白孔六帖 烏鵲塡河 成橋而渡織女 오작교 백공육첩 오작전하 성교이도직녀 오작교(烏鵲橋)는 백공육첩(白孔六帖)의 기록에서,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소개한 이 다리는 직녀(織女)가 건너갈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강을 메워 놓은 다리를 말하는 것이다. 오작전하(烏鵲塡河)의 문장에서 전(塡)자는 메울 전(塡)자로서 전하(塡河)라 하면 까마귀와 까치가 강을 메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교이도직녀(成橋而渡織女)라는 문장은 까마귀와 까치가 강을 메워 직녀가 다리를 건너 갈 수 있도록 완성시킨 사실을 말해준다. ★塡 塞也 博物志 炎帝女溺死 東海化 精衛鳥常取 西山木石以 塡東海 전 새야 박물지 염제녀익사 동해화 정위조상취 서산목석이 전동해 고전 박물지(博物志)의 기록은 불의 신 하느님의 딸 직녀가 익사(溺死)하여 동해바다에서 보호를 받다가 맑은 새 (조鳥)가되어 서산(西山)에 있는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동해 바다를 메운다는 뜻이다. 고대 신농씨를 불의 하느님이시라 기록한 것이 염제(炎帝)이며 하느님의 딸이 물에 빠져 사망한 사실을 염제녀익사(炎帝女溺死)라 소개한 것이다. 하나님의 딸이 물에 빠져 익사(溺死)한 이후에 정위조(精衛鳥)라는 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위조(精衛鳥)가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동해바다를 메워 까마귀와 까치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작교(烏鵲橋)는 다리는 까마귀와 까치가 놓았다는 다리로서, 까마귀 烏(오)는 하늘의 상징이며 까치 (鵲작)의 역할은 땅에 소식을 전해주는 반백(半白)의 새로서, 동방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까치라 보는 것이다. 까마귀 (오烏)자를 하늘을 상징한 의미로 보는 이유는 천자문(千字文)에서 검은 색깔을 하늘로 표시하고 오행(五行)에서 북쪽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牽牛 ‘牽牛星’의 略語 左思 左牽牛而 右織女 似雲漢之無涯 견우 ‘견우성’의 약어 좌사 좌견우이 우직녀 사운한지무애 견우(牽牛)의 뜻은 견우성(牽牛星)의 약칭으로서 牽(牽)자는 당기며 끌고 가는 것을 뜻한다. 견우(牽牛)는 소를 끌고 간다는 뜻이다 고전 좌사(左思)의 기록에서는 좌견우이 우직녀(左牽牛而 右織女)라 소개하여 좌측에는 견우(牽牛)가 우측에는 직녀(織女)가 위치하고 중앙에는 당연히 천우(天牛)인 하느님이 자리한다고 하였다. 운한(雲漢)의 운(雲)자는 구름 운(雲) 혹은 은하수(銀河水) 운(雲)자이다. -농월-
추일기문보(秋日奇文甫) 입추(立秋) 孤枕北簷下(고침북첨하)-북쪽 처마 밑에 베개 돋워 누우니 槐陰畏日斜(괴음외일사)-홰나무 그늘에 비끼는 햇살이 두렵구나! 窓開三畝竹(창개삼무죽)-창문을 서너 겹 대나무숲 쪽으로 열치니 忽己來秋意(홀기래추의)-홀연히 가을 기분이 들어 徒然感歲華(도연감세화)-불현 듯 세월을 느끼게 한다. 蟬聲淸似昨(선성청사작)-매미 소리는 어제처럼 맑은데 隱約野人家(은약야인가)-은근히 그대 집을 기약해 본다. 오원(吳瑗) 오늘이 8월 7일 입추(立秋)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과 겹쳐 있던 입하(立夏)일날 한시(漢詩)와 이팝나무를 소개하고 짧은 인라인 유니폼을 입고 기분을 낸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3개월이 훌쩍 넘어 입추(立秋)를 맞이한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세월극사광(歲月極駟光)이라하여 “세월은 달리는 네 마리 말 다리사이로 보이는 햇빛 같다”라고 하여 세월의 빠름을 한탄했다는데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입추는 절기로는 가을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낮에는 불같은 한여름의 땡볕이 입추(立秋)를 맞이하면 아침 저녁 간간히 유령의 꼬리같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지 자연의 오묘한 순환작용인지 모르겠다. 『아-- 그 덥던 여름도 다 가구나』 하는 가벼운 한숨 속에는 세월의 무정함을 원망함이 새삼 들어 있다. 당(唐) 시인 이익(李益)의 “입추날 거울을 본다”의 시에서도 유장만수설 명일대추풍(唯將滿鬚雪 明日對秋風) 눈처럼 흰 귀밑머리로 내일이면 가을을 마주하리 하는 탄식에서도 가을을 맞이하는 애상(哀傷)한 마음을 엿볼수 있다. 계절의 기분 탓일까? 여름을 맞이하는 들뜬 기분보다는 가을은 착 갈아 앉은 느낌이 든다. 가을이 오면 무엇인지 모르게 감상적(感傷的)으로 변하는 것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 때문일까? 가을 초입(初入)에서 눈에 들어오는 보라매 공원의 숲에서도 신정동 인라인 트랙주변의 안양천물색 에서도 계절의 변하는 빛깔을 느끼게 한다. 추수동장(秋收冬藏) 봄 여름에 키운 곡식을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저장한다는 말속에는 인생도 자신이 살아온 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회고각흔(回顧脚痕)! 살아온 생활속에 기쁨들은 순간적이고 슬픔만 오래 남아 걸어온 발자국에는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인생을 고해(苦海)라 했던가! 가을이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라지만 다른 한편 추억과 회한(悔恨) 쓸쓸함으로 가득한 시절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도시화로 고향(故鄕)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지만 그래도 고국을떠나 해외의 건설 현장 근로자들이나 거리의 노숙자 또는 방랑하는 나그네에게 가을은 그리움에 젖는 계절이다. -농월-
베이징 올림픽에 휘날리는 태극기 1.무제(無題) 薩水湯湯瀯碧虛(살수탕탕영벽허)-청천강은 거침없이 흐르고 푸른 하늘은 빛나는데 隋兵百萬化爲魚(수병백만화위어)-수나라 백만 군사는 물고기가 되었구나. 至今留得漁樵語(지금유득어초어)-이제 여기와 머물러 어부와 나무꾼의 얘기 들으니 不滿征夫一侏餘(부만정부일주여)-불만에 가득찬 수양제를 비웃는 소리만 남았구나. 조준(趙浚) 2.무제(無題) 千秋大膽楊萬春(천추대담양만춘)-세상에 비길 바 없이 대담한 양만춘 장군 箭射糾髥落眸子(箭射糾髥落眸子)-용의 수염 당태종을 한 살에 거꾸러뜨렸네 김창흡(金昌翕) 3.정관음(貞觀吟) 豼貅夜擁鶴野月(비휴야옹학야월)-맹수같이 사나운 군사들은 요동의 달밤에 몰려들고 旌旗曉濕鷄林雨(정기효습계림우)-수많은 깃발은 계림의 새벽 비에 젖었네. 謂是囊中一物耳(위시낭중일물이)-주머니 속에서 물건 하나 꺼내기와 같다고 일렀더니 那知玄花落白羽(나지현화낙백우)-당태종의 눈알이 흰 깃 화살에 맞을 줄 누가 알았으랴 이색(李穡) *************** 2008년 8월 8일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 ! 필자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을 앞두고 위의 조준(趙浚) 김창흡(金昌翕) 이색(李穡)등의 한시(漢詩) 자료를 찾으려고 무척 애를 썼는데 부족하지만 이 정도라도 소개하게 되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위의 한시들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1.조준(趙浚)의 무제(無題) 조선 개국공신 조준(趙浚)은 조선에온 명나라 사신이 대국(大國)에서 왔음을 핑계로 오만방자함을 떨자 사신을 대동강가로 초청하여 이 시를 지어 사신의 기를 죽였다고 한다. 위의 한시는 2006년 SBS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본바와 같이 살수대첩(薩水大捷)의 내용으로 고구려 영양왕23년 (서기612년)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113만의 병력으로 침공한 것을 살수(薩水 청천강)에서 격퇴하고 대승리를 거둔 싸움을 찬양한 것이다. 2.김창흡(金昌翕) 조선 19대 숙종 때 서인 송시열과 남인 허목간의 예송논쟁때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재집권하게 되자 사사(賜死)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둘째 아들이며 문신(文臣)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이 시는 조선의 선비 김창흡(金昌翕)이 중국 연경에 가는 아우 김창업(金昌業)에게 중국인들 앞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며 격려를 위해 보낸 시로서 고구려 보장왕4년(서기645년)에 당태종 이세민은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영류왕(榮留王)을 살해하고 보장왕을 세운 것을 문책한다는 구실로 50만 대군으로 양만춘 장군이 성주로 있는 안시성을 6월에서 9월까지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퇴각한 내용이다. 이때 재미있는 일화로는 패하여 돌아가는 당태종 이세민에게 양만춘 장군이 성 위에 올라 송별의 예(禮)를 표하자 당태종은 적(敵)일지라도 고구려 양만춘 장군의 영웅적인 지휘력에 감동하여 비단 100필을 예물로 보내 고구려 국왕에 대한 그의 충성을 기렸다고 한다. 이 내용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도강록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3.이색(李穡) 정관음(貞觀吟)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등과 고려삼은(三隱)이라 칭송받는 충신이며 학자로서 정관음(貞觀吟)시는 당 태종이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을 공격하면서 호언장담하기를 “안시성 싸움은 주머니 속에서 물건 하나 꺼내기와 같이 쉽다” 하였지만 오히려 고구려 군사의 흰 깃털이 달린 화살에 당태종의 눈알이 빠질 줄 누가 알았으랴 하는 내용이다. 출전(出典)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도강록에 있다. *************** 우리나라와 중국은 고조선이래 약 2000년동안 역사 속에서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 왔다 고구려 연개소문의 당(唐)나라 토벌과 중원(中原) 진출정책 신라의 삼국통일과 당(唐) 연합관계 원(元)나라의 고려에 대한 내정간섭 조선과 명(明) 청(淸)에대한 사대(事大)관계 등 두 나라는 손문(孫文)의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왕조(淸王朝)가 멸망 할 때까지 동반자적 입장보다는 중국의 속국(屬國)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얄타회담-1945년 2월 미국·영국·소련의 수뇌들이 세계 제 2차대전에 소련의 참전을 결정한일로 한국분단의 원인이 되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영국·소련 삼국의 외상 회의에서 제이 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한국에 대한 신탁 통치안이 결정되어 자주독립 통일건국의 기회를 상실하였다. 위와 같이 2차세계대전후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에 역사적으로 한국의 주인 노릇을 해온 중국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무렵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은 1946년 모택동의 중국공산당과 결별하고 내전을 시작하였으나 1949년 완전히 패퇴하여 중국본토를 빼앗기고 타이완으로 정부를 옮겨 미국과의 유대 속에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장황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상국(上國)인 중국은 한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런 도움이 안되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분단을 획책하고 북한의 뒷배를 봐주며 결국에는 백두산까지 중국영토로 만들어 버린 늑대인 것이다. 1400백년전 고구려의 중원(中原)에 대한 야망이래 대한민국의 올림픽 전사(戰士)들이 베이징 천안문에 공식(公式) 입성(入城)을 하였다. 당태종 이세민의 눈알을 명중시킨 양만춘 장군의 얼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의 양궁도 입성하였다. 대한민국의 전사(戰士)들이여! 자금성(紫禁城)에 무궁화를 꽃피우고 동작대(銅雀臺)에서 금메달의 축배를 들기 바란다. -농월-
삼복(三伏) 더위 欲逐庚炎闢四窓(욕축경염벽사창)-복더위를 쫓으려고 사방의 창문을 열었지만, 今年苦熱正無雙(금년고열정무쌍)-올해의 더위는 실로 비교할 데가 없다오. 日輝熾盛凉微動(일휘치성양미동)-해는 불같이 타오르고 서늘한 기운은 미동도 하지 않고, 金氣伏藏暑不降(김기복장서부항)-가을 기운이 숨어있겠지만 더위는 아직 항복하지 않네. 濯足騷人尋爽海(탁족소인심상해)-발을 씻는 시인은 시원한 바다를 찾고, 練身墨客步淸江(연신묵객보청강)-몸을 수련하는 묵객은 맑은 강가를 거니네. 凶豊自古斯時定(흉풍자고사시정)-흉년 풍년은 예로부터 이때에 결정되는데, 祈願順風對酒缸(기원순풍대주항)-순풍이 불기만 기원하며 술항아리를 마주하네. 박용규(朴容圭)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가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이 겹친 말복이라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중국이 전통적으로 짝수를 좋아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8자를 선택 했다고 생각 한다. 8월 8일이 하지(夏至)로부터 3번째 경(庚)자가 드는 날이고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경자가 드는 말복(末伏)이다. 입추 말복이 하루 간격으로 들어 계절적으로는 더위를 청산(淸算)하는 셈이지만 어제만 해도 서울이 35도가 넘는 폭서로 굴복하지 않는 더위의 근성을 보여 주고 있다. 오늘 하루에 보신탕집이나 삼계탕 집에는 호황을 맞이하겠다. 불경기로 장사가 안 된다고 하는데 말복경기(末伏景氣)덕이라도 보아 모처럼 금고(金庫)에 돈이 쌓였으면 좋겠다. 복(伏)날이 오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보신탕이나 삼계탕이다. 복날에는 개고기를 먹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람 인(人)변에 개가 엎드려 있는 엎드릴 복(伏)자를 두고 개고기 먹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옥편(玉篇)에서 복(伏)자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복(伏)-전야(跧也) 구부린다 언복(偃伏) 쓰러져 엎드린다. 복모(伏慕) 엎드려 공경함을 표시 한다 슬행포복(膝行蒲伏) 무릎 밑으로 숨는다(사기史記) 조기자복야(鳥起者伏也) 숨어서 적군을 기습한다(손자병법) 등 이외도 몇 가지 설명이 있지만 더워서 개를 먹는다는 기록은 없다. 삼복(三伏)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에 이르기를 진덕공(秦德公) 2년(약 2700년젼)에 처음으로 삼복제사를 지냈는데, 성 4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해충(害蟲)을 방지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이로보아 삼복은 중국에서 유래된 풍속으로 추측된다. 또 어떤 기록에는 견전(犬殿)이라 하여 대문(大門)에 개를 매어두어 더위를 막았다고 한다.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액순환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기(陽氣)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는 기록이 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복날에 개장국은 양기를 도와준다”는 기록이 있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개장국을 먹고 땀을 내어 더위를 물리쳐 기가 허(虛)한 것을 보(補)해준다고 하였다. 또 다른 기록에는 삼복(三伏)에는 마누라 배(복腹)위에 올라가지 말고 여행도 하지 말고 심한 노동도 삼가고 개장국을 먹으면서 대야에 찬물을 채워 발을 담그고 샘물에 담가둔 수박을 먹는 것이 좋은 피서라고 권하고 있다. 아무튼 삼복에 개를 먹는 풍속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사실이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 허약한 몸을 단백질로 보(補)하기 위해서는 농사짓는 소나 값비싼 돼지를 잡아먹을 수는 없고 만만한 개를 선택했다고 본다. 강아지는 이웃끼리 나누어 갖일 정도로 인심을 쓰는 부담적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먹는 것이 너무 풍부한 세상이다. 5대영양소가 넘쳐나고 있다. 지금은 너무 풍부하게 먹어서 국민건강을 해치고 있다. 지금은 너무 잘 먹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 적기 때문에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고지혈증 신부전증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TV 화면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보신탕이나 기타 기름진 고기를 입안 가득히 넣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건강에 최고 좋아” 하는 것을 보면 애처롭고 가련한 생각이 든다. 이제는 입이 터질 정도로 먹어서 아랫배가 임신부처럼 나와서는 안 되고 잘 가려서 지혜롭게 먹어야 한다. 우리도 음식문화를 고쳐가야 한다. 개고기도 좋은 풍속 정도로 유지해야지 건강에 좋다고 일삼아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지면을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은 건강에 좋고 정력에 좋다고 『뱀 개구리 노루피 곰쓸개 동물의생간 육회(肉膾) 뱀술 애저 옻닭』등 혐오 동물은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사람의 품격마저 안 좋게 보이므로 절대로 먹지 말기를 간곡히 권한다. 얼마나 좋은 음식 많은데-- -농월-
제이적화견(題李迪畵犬) 이적이 그린 개 猧兒偏吠客(와아편폐객)-나그네만 보고 짖어대다가 花下臥晴莎(화하와청사)-꽃그늘 맑은 잔디에 누워 있는 강아지야 莫出東原獵(막출동원렵)-동녘 들판 수렵에는 나가지 마라 春來兎乳多(춘래토유다)-봄철이라 젖 먹는 토끼가 많으니 고계(高啓) 위의 당시(唐詩)를 보면 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사람에게 타이르는 것 같고 미록 한갓 미물들의 생명도 귀하고 숭고함을 일깨워 갓 난 동물의 새끼들을 해치지 말라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合一)을 시인은 일깨우고 있다. 개와 인간관계는 고대 유적 발굴의 기록으로 보아 180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개와 사람생활과의 관계는 매우 오래 되고 개에 대한 여러 가지 전설 미담 등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개를 가축으로 사육하면서 사냥목적도 컸지만 번견(番犬)으로도 큰 목을 했다. 번견(番犬)이란 도둑을 지키고 망(望)을 보는 개를 말한다. 특히 부녀자가 거처하는 규방(閨房)에 경계용으로 많이 사육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보아 요즘 부녀자들이 특히 애견들을 사랑하는 점을 이해 할 수 있다. 개에 관한 미담 중에 기억나는 것이 여기에 소개 한다. 전남 광주시 양림동 오거리에서 광주사직공원 쪽으로 약 50m 가면 광주정씨 양촌 정엄의 정려문(旌閭門-충신 효자문)앞에 개의 석상(石像)이 있다. 이곳 주민들은 이 석상을 개비라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에 양촌은 조정에 보내는 각종 문서나 상소문 등을 보자기에 싸서 개목에 걸고 한양 천리길을 심부름을 시켰는데 사람 이상으로 잘 해냈다는 것이다. 양촌은 개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별도로 전대에 엽전을 넣어서 목에 걸어주며 한양까지 가고 오는 길에 밥을 사먹도록 했는데 이 개는 주막주인이 주는 밥을 먹은 후 밥값으로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면 떠나지 않는 등 대단히 영특했다는 것이다. 이때 통신수단은 역마나 비둘기 발목에 쪽지를 매달아 보내던 시절이다. 서울 조정을 드나들며 주인의 심부름을 충실이 해오던 이 개는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전주 부근의 강변 다리 밑에서 새끼 9마리를 낳고 한 마리씩 집으로 날으다가 9번째 마지막 새끼를 물고 오다 그만 지쳐 길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양촌은 애견의 해산(解産)달을 모르고 심부름을 보냈다가 개가 죽자 개의 석상(石像)을 세우고 충견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 넋을 위로 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28년 전 광주에 있을 때 정려(旌閭)문도 훼손되고 개 석상주변도 정화가 안되었는데 지금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다. 또 전북 임실군 오수(獒樹)읍의 의견비(義犬碑)는 고려시대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에 기록된 내용으로 오수 마을에 김개인이라는 노인은 자신이 기르는 충실한 개 한 마리가 있어 항상 다리고 다녔는데 하루는 시장에 갔다 오면서 술이 취해 산길에서 잠이 들었는데 마침 산불이 나서 번져오는 불길에 주인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느낀 개가 가까운 개울에 가서 온 몸을 물로 적신 뒤 주인의 주변을 여러 차례 뒹굴어서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 개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죽고 말았다. 자기의 생명을 바쳐 주인의 목숨을 살린 개를 갸륵하게 여긴 김개인 노인은 양지바른 곳에 그 개를 잘 묻어주고, 무덤 위에 자신의 지팡이를 꽂아주었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자라서 훌륭한 나무가 되었고 사람들이 이 나무를 개나무 즉 오수(獒樹)라 불러 마을 이름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개는 살아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치는 동물이다. 이런 개를 사람 도리 못하는 자들을 욕할 때 항상 “개자식” 이라고 비하(卑下)한다. 그런데 황해도 강령지방에 전승되어오는 가면극(假面劇)인 “강령탈춤”은 개의 덕목(德目)을 빌려 겉 다르고 속다른 인간 양반을 비꼬고 있으니, 복(伏)날을 무사히 넘긴 개님들은 한숨 돌리며 위안을 삼기를 바라며, 개만도 못한 인간들은 자성(自省)의 거울로 삼기를 충고한다. 탈춤 “양반과장”에서 진한 탈이 취발 탈에게 이르는 말이다. 개에게도 오륜이 있으니, 모색상사(毛色相似)-털색이 서로 비슷하니, 부자유친(父子有親)이요, 지주불폐(知主不吠)-주인을 알아보고는 짖지 않으니 군신유의(君臣有義)요, 일폐중폐(一吠衆吠)-개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 개가 모두 짖어대니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잉후원부(孕後遠夫)-새끼를 배면 다른 수캐를 가까이 하지 않으니 부부유별(夫婦有別)이요, 소불대적(小不大敵)-작은 놈이 큰 놈에게 덤비지 않으니 장유유서(長幼有序)라. 위의 탈춤 대사는 오늘의 세태를 풍자하는 바 적지 않다. 출세를 위해 배반을 예사로 하며, 각종 투기(본인은 투자라고 주장)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성실성 인간적 가치보다는 싸워서 이기는 법에 익숙하고, 제 자식 챙기려 위장전입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우대받는 세상이니 말이다. 욕도 깊이 생각해야지 함부로 하면 무식(無識)하다는 말 듣는다. “개같은놈” “개자식”은 욕이 아니고 덕망(德望)높은 견공(犬公)에 비유하는 말이다. 굳이 개를 인용하려면 “개 청지기”도 못할 놈 이라 하는 게 옳다. -농월-
베이징 두루마리에 펼쳐진 중국의 자신감 子曰(자왈)-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배워 때에 맞추어 익히니 不亦說乎(불역설호)-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 주니 不亦樂乎(불역락호)-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慍(인불지이불온)-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이 역시 군자답지 않겠는가. 논어 학이편(論語 學而篇) 제1장 필자는 지난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여 개인적인 소감을 피력하고자 한다. 올림픽 100년을 꿈꾸고 10년 동안을 준비하여 온 중국이 그 찬란한 고대문명의 역사와 광활한 영토 13억 인구 첨단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는 경제능력과 중국의 위상을 미국과 세계의 지도자 자리를 다투는 위치를 감안 할 때 올림픽 개막식장의 화려함은 예상되는 바이였다. 중국 고대 역사의 상징인 종이 두루마리로 시작되는 배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수천 명의 일사불란한 행동과 인쇄술의 발달과정 종이위에 펼쳐지는 기발한 전위예술(前衛藝術)과 퍼포먼스(performance) 등은 세계인들의 눈을 황홀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중에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두루마리 종이위에 나타나는 논어의 학이편 첫구절인 “학이시습지 불역설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를 시작으로 공자의 논어 내용을 계속 소리내어 소개하는 장면이다. 중국은 우주(宇宙)기술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여 미국 러시아와 각축(角逐)을 벌릴 수 있는 수준이다. 충분히 그동안 성장해온 우주산업의 자랑을 개막식에 선보일만하다. 그런데도 2500년전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곰팡이 냄새나는 공자의 논어구절을 개막식 벽두에 3000명 공자제자들에게 크게 외치게 한 것은 깊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중국 고전(古典)은 첫 장 첫 구절이 그 책 전체 내용을 요약하고 대표하는 의미가 있다. 참고로 고전(古典) 몇 가지의 첫 장을 소개한다. ★논어 학이편(論語 學而篇) 제1장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설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워 때에마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 주니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군자답지 않겠는가. ★주역(周易) 64괘중 제1괘 건위천(乾爲天) 건위천괘는 주역의 64괘의 아버지라 볼 수 있다. 하늘과 땅사이의 자연의 사계절과 그 중간에 인간과의 조화를 이루는 내용에서 하늘과 땅이 중심이 되고 있다. ★중용(中庸) 제1장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이 명(命)하는 것이 성(性)이라 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에 의하여 정(定)한것이므 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용의 도(道)라하였다. ★大學經 제1절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경 제1절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대학의 도(道)란 밝고 바르고 곧은 마음을 밝히는데 있고 (大學之道 在明明德) 백성을 감화 시키는 데 있으며 (在親民) 지극히 순수하고 착함에 머무르는데 있다.(在止於至善) ★老子 1장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 노자 1장 도가도비상도명가명비상명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도를 도라고 하면 진짜 도가 아니다. 노자는 “항상 그러함” 만을 말하지 불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란 항상 변하기 때문에 실체를 고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 논어의 전편(全篇)의 내용은 인(仁)을 중심으로 열심히 배우라는 것이다. 인(仁)은 곧 사람이며 인간의 본질을 인(仁)이라하며 인(仁)은 곧 타인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인(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끝없이 배우라는 것이 논어의 사상이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 찬란한 문화를 배경으로 열심히 배우겠다는 의지를 공자의 논어를 통해서 전 세계에 공표(公表) 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자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인류역사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인물들은 예수 석가 소크라테스 칭기즈칸 무함마드 등과 더불어 공자도 반드시 거론되고 있다. 유교가 다른 고등종교처럼 투철한 내세관(來世觀)이 강한 것이 아닌데도 유교문화를 낳은 중국이 영토나 인구면에 워낙 방대한 원인도 있겠지만 유교문화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사상임임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현재의 동아시아문화를 논할 때 긍정이든 부정이든 유교문화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따라서 유교의 시조(始祖)로 숭상되어온 공자도 이 문제의 핵심에서 자리해 왔다. 공자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제자백가(諸者百家)의 한 학파(學派)로서 유가(儒家)의 태두(泰斗)임에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유교는 중국역대를 통해 중국의 지식계층에 의해 끊임없는 변화와 재해석을 거듭해 왔다. 중국유학은 2500년전 공자가 노나라 역사인 춘추(春秋)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간주하며 공자때 와서 비로소 집대성(集大成)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후 공자의 유학(儒學)은 시대의 변함에 따라 한(漢)대의 훈고학(訓詁學), 송(宋)대 주자학(朱子學성리학), 명(明)대 양명학(陽明學), 청(淸)대 고증학(考證學)을 거치면서 유교에 대한 극단적인 숭상(崇尙)이든 극단의 비판(批判)이든 그 책임은 항상 공자에게 전가(傳家) 되어 왔으며 중국역사상 공자만큼 그 평가의 부침(浮沈)이 극단(極端)을 이루면서 영광과 좌절을 반복되었든 경우는 드물었다. 가장 치명적인 비판은 근대 개화기(開化期) 서구(西歐) 근대화를 가로막는 원인을 온전히 유교와 공자에게 씌워졌으며 가깝게는 전통과 문화의 파괴시대였든 모택동의 사회주의 중국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기간 동안 공자와 유교문화는 이제 인민혁명(人民革命)의 반동으로 낙인찍혀 무자비하게 파괴되기도 하여 공자묘까지 파헤쳐 졌다. 심지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한 세기가 가기도 전에 이제 공자와 유교는 다시 부상(浮上)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현대화의 발전 중심에는 공자가 있다는 증거를 보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역사에 불안정한 변혁이 있을 때는 공자의 위상(位相)은 낮아지고 안정과 발전이 있을 때는 공자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중국은 안정된 변화를 추구하면서 세계의 주인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 3만불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어디에다 가치관을 두고 있는가? 건국이념을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두고 출발한 고조선이래. 호국불교(護國佛敎)에서 인본주의(人本主義)인 성리학(性理學)으로 변화되고 조선왕조를 마감하고 36년간 일본의 강점기를 지나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6.25를 거쳐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다시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캐캐묵은 좌(左) 우(右)의 이념논쟁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正體性) 정신적 좌표는 어디에 두고 걸어가야 하는가. -농월-
환목어(還目魚) 도로묵 有魚名曰目(유어명왈목)-목어라 부르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海族題品卑(해족제품비)-해산물 가운데서 등급이 낮은 거라 膏腴不自潤(고유부자윤)-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데다 形質本非奇(형질본비기)-그 모양새도 볼품이 없었다네. 終然風味淡(종연풍미담)-그래도 씹어보면 그 맛이 담박하여 亦足佐冬釃(역족좌동시)-겨울철 술안주론 그런 대로 괜찮았지. 國君昔播越(국군석파월)-전에 임금님이 난리 피해 오시어서 艱荒此海陲(간황차해수)-이 해변에서 고초를 겪으실 때 目也適登盤(목야적등반)-목어가 마침 수라상에 올라와서 頓頓療晩飢(돈돈료만기)-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 드렸지. 勅賜銀魚號(칙사은어호)-그러자 은어라 이름을 하사하고 永充壤奠儀(영충양전의)-길이 특산물로 바치게 하셨다네. 金輿旣旋反(김여기선반)-난리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 玉饌競珍脂(옥찬경진지)-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낼 적에 嗟汝厠其間(차여측기간)-불쌍한 이 고기도 그 사이에 끼었는데 詎敢當一匙(거감당일시)-맛보시는 은총을 한 번도 못 받았네. 削號還爲目(삭호환위목)-이름이 삭탈되어 도로 목어로 떨어져서 斯須忽如遺(사수홀여유)-순식간에 버린 물건 푸대접을 당했다네. 賢愚不在己(현우부재기)-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貴賤各乘時(귀천각승시)-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名稱是外飾(명칭시외식)-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委棄非汝疵(위기비여자)-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이 아니라네. 洋洋碧海底(양양벽해저)-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 自適乃其宜(자적내기의)-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 이식(李植) 환목어(還目魚)는 동해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도루묵”을 말하는데 목어(木魚) 혹은 환맥어(還麥魚)라고도 한다. 위의 한시를 쓴 이식(李植)은 여기에서 목어(目魚)라는 표현을 쓰면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이 시를 쓴 택당(澤堂) 이식(李植)은 조선 인조 때 한문4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 대단한 학자인데 청나라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귀양 간 자기의 신세를 도로묵에 비유한 시가 아닌가 추측된다. 어제 새벽 5시경에 노량진 수산시장을 갔었다. 우리 부부는 간간이 이곳을 찾는 편이다. 수산시장에는 아침 5시경 일찍 가야 구경거리가 많다. 빨간 모자 경매사의 외치는 소리와 중매인들의 중얼거리듯 빠른 음성과 수화(手話)같은 손놀림은 정말 재미있는 풍경이다. 연방 낙찰된 생선상자를 나르는 사람, 소매상들의 호객, 얼음실은 손수레, 펄떡펄떡 뛰는 생선, 수족관을 유영하는 활어, 몸빼바지에 두른 전대(纏帶)에서 연신 돈이 들락거리고 “한마리 더 달라”는 손님과 실랭이 하는 주인등 정말 살아있는 삶의 현장이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끼는 곳이다. 뭐 수산시장에 간다고 해서 비싼생선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집사람은 내 밥상에 올리려고 조기나 가자미를 디적거리지만 필자는 고등어 빨간생선 도로묵등 값이 싼 쪽에 눈길을 보낸다. 도로묵은 가격도 싸고 맛도 제법이다. 도로묵하면 남자들은 옛날 군생활시절 식당을 회상할 것이다. 추억의 생선이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겠지만 소금을 발라 구워도 좋고 무우나 당근 생강에 가진양념을 넣고 물기적게 조려도 먹을만 하다. 뼈가 연하여 통째로 씹어도 별 부담이 없다. 어떤때 재수 좋은날는 한 2만원으로 빨간생선 도로묵을 한보따리 들고 올때도 있다. 그런날 아침은 괜이 마음이 흐뭇하고 횡재라도 만난 기분이다. 찬바람과 함께 도로묵철이 가까워지고 있다. 과우병이다 뭐다하는 비싼 소고기 타령말고 콜레스테롤 염려도 없고 칼슘도 많은 도로묵으로 밥상의 행복을 만들자. 괜이 비싼 소고기 먹고 체중늘어 고민하지 말고 값싼 도로묵 먹고 근육을 늘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건강생활이다. 어깨 힘주고 자존심 세우고 잘난척 해 보았자 요새는 아무도 안알아 준다. 도로묵처럼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 -농월-
십일조(什一租) 戴盈之曰(대영지왈)-대영지가 말하였다. 什一租(십일조)-십일조를 실시하는 것과 去關市之征(거관시지정)-관문과 시장에서 징세를 폐지하는 것은 今玆末能(금자말능)-지금 실시 할 수가 없습니다 請輕之(청경지)-그러니 징세를 경감 해 가면서 以待來年然後(이대내년연후)-내년까지 기다린후에 已何如(이하여)-폐지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맹자 등문공편(孟子 藤文公篇) 위의 글은 맹자 등문공편(孟子 藤文公篇)에 나오는 글로서 송나라의 대영지가 십일조(什一租)의 조세법(租稅法)을 새로 실시 하고 대신 성문(城門)과 시장(市場)에서 받든 세금을 폐지하는 것을 지금 당장 실시 할 수 없으나 세액을 경감해 가면서 내년까지 기다렸다가 십일조(什一租)를 실시하고 기존 세금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어떻느냐을 맹자에게 자문(諮問)을 구하는 대목이다. 현 시대에 십일조(什一條)라는 말은 교회에서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맹자에서는 십일조(什一租)로 되어 있고 성경에는 십일조(什一條)라 되어 있다. 조(租)의 뜻은 세금을 의미한다. 조(條)의 뜻은 나뭇가지, 몫을 조목 법규정등을 뜻한다. 십일조(什一租) 말이 처음 등장 한 것이 약 2800년전인 중국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송(宋)나라에서 세금을 받는 조세(租稅)의 이름이다. 즉 10%의 세금인 것이다. 기독교의 한글 성경에서 십일조(什一條)라는 말은 여러곳에서 나온다. 에스겔 45장11~14, 창세기14장 20, 아모스4장 4, 말라기3장8~10, 역대하31장 5~6~12, 느혜미야10장 38. 12장 44. 13장 사무엘상8장 15~17, 신명기 14장 22, 등이 있고 이중에서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의 부분에 중심적인 근거를 두는 것 같다. 유대교의 경전인 모세오경(토라)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등으로 5경이 약 2400년 전에 최초의 경전으로 나오고 나머지 구약성경 36권이 이후에 나왔다. 그러면 춘추시대의 송나라 보다 약 400년이 뒤진 것이다. 맹자의 십일조(什一租)란 말은 모세5경이 나오기 400년전에 나온 말로 볼수 있다. 성경의 중국어 번역이 선교사 마르시만에 의하여 1822년 구약성서·신약성서가 합동으로 간행되었고 최초의 한국어 성경 번역은 조선말로 1882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한문권의 조선이 한글 번역을 할 때 먼저 번역한 한문으로 번역된 중국성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수 있다. 한글 성경으로 번역할 때 십일조(什一租)를 십일조(什一條)로 인용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해 보는 것이다. 또 십일조를 영어로는 tithes(什一租)로 되어 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의미에서 연구를 해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성경(聖經)이라고 한자를 쓰지 말고 그냥 바이불(Bible)이라고 쓰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성(聖)은 성인(聖人)을 의미하며 속(俗)과 비교 되는 말이다. 경(經)은 불교의 산스크리트 수트라(sū tra)의 역어(譯語)로 계경(戒經)이라는 의미가 있고 또 성인(聖人)이 쓴 글을 의미한다. 기독교가 주장하는 하나님은 “초월적(超越的) 존재(存在)” 이므로 성인(聖人)수준에 머물고 있는 성(聖)이나 경(經)을 사용하면 성경(聖經)은 불경(佛經), 시경(詩經), 황제내경(黃帝內經) 도덕경(道德經)등과 하등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 서적을 읽는 과정에서 의문을 해소하기란 매우 어렵다. 랙티온 디비나(laction dvina)처럼 그저 조용히 읽고 사색할 다름이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변하여 정보챈널이 다양해지면서 “무조건 믿기만” 하는 시대에서 “알고 믿으라”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농월-
향일화(向日花) 해바라기 可賞庭前向日花(가상정전향일화)-해만을 바라보는 앞뜰의 향일화는 偏隨朝暮影相斜(편수조모영상사)-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림자를 따라 기운다 東君去後無人弔(동군거후무인조)-동쪽의 봄신이 떠난 후 눈물짓는 이 없는데 一片丹衷爾自嗟(일편단충이자차)-한 조각 붉은 마음으로 한숨 짓는 건 너뿐이구나 문창규(文昌圭) 해바라기 씨가 여물고 참새들이 떼 지어 날라 다니면 가을이 더욱 가까이 온 것이다. 해바라기 이름은 중국 이름인 향일규(向日葵)를 번역한 것으로 향일화(向日花) 조일화(朝日花)라고도 한다. 문일평이 쓴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가는 특성이 있으므로 한자이름으로 향일화(向日花)이며 예로부터 일편단심(一片丹心)을 가진 충신(忠臣)에게 비하였으니 꽃을 기록한 화편(花編) 첫머리에 『모란은 꽃중의 왕(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忠臣)이로다』라고 하였다.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므로 간사한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충절(忠節)과 그리움을 상징하는 꽃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해바라기에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전설 하나가 있다. 옛날 젊은 과부(寡婦)가 있었는데 너무나 죽은 남편이 그리워서 하루는 무녀(巫女)에게 어떻게 하면 죽은 남편을 한번만 볼 수 있겠는가 하고 아주 간절히 청하자 무녀는 죽은 남편을 보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알려 주었다. 『해바라기 씨로 기름을 짜서 불을 켜고 베개에다 망건과 갓을 씌우고 옷을 입혀서 남편처럼 만들어 놓고 밤새도록 앞에 놓고 앉아 있으면 반드시 남편이 보일 터이니 그리 하라고 하였다.』 과부는 집에 돌아가서 무녀의 말대로 해바라기기름으로 불을 켜고 베개에 의관(衣冠)을 씌워서 남편 모양으로 하여 놓고 밤마다 자지 아니하고 베개와 대해 앉아 눈이 뚫어지도록 보기를 사흘 밤에 이르자 마지막 날 밤에는 의관을 한 베개가 벌떡 일어나서 어정어정 걸어오므로 대경기절(大驚氣絶)하여 그 후부터 죽은 남편을 다시는 생각하지 아니 하였다 한다. 열대아로 잠을 설치는 여름밤의 헛것이다. 『쟈넹에게 작약(芍藥)이 있고 코스트에게 접시꽃 그림이 있다면 나에게는 해바라기가 있다』 이말은 10년 동안 짧은 작가 생활동안 수많은 해바라기 그림을 그린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대표작 중 “열네 송이의 해바라기”라는 작품이 있는데 정작 그림에는 열 다섯 송이가 그려져있다. 해바라기가 넓적하고 순박하게 생겼는데 짙은 황색 속에는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몽혼약(夢魂藥)이 있는 것은 아닐까--- -농월-
광복절(光復節) 光陰六十迎光復(광음육십영광복)-60년 세월이 흘러 맞이하는 광복절 山河到處槿花開(산하도처근화개)-강산의 곳곳에는 무궁화가 만발하다 北京五輪太極派(북경오륜태극파)-북경올림픽에는 태극기가 물결치고 勝利喊聲震天安(승리함성진천안)-승리의 함성은 천안문을 진동한다. 歲歲復來慶祝日(세세복래경축일)-해마다 경축일은 다시 찾아오건 만은 浿江春光何時來(패강춘광하시래)-북녘의 대동강 봄빛은 언제 찾아오려나 西豺東狼防侵策(서시동낭방침책)-西중국 늑대 東일본 이리를 막는 대책은 富國强兵唯一答(부국강병유일답)-경제대국 강한 국방이 유일한 해답이다 농월(弄月) 광복 60년 ! 냉정하게 생각하면 설 추석 보다 더 기념해야 될 날이다. 광복절(光復節)은 글자대로 “빛을 다시 찾은 날”이다. 모든 생명체는 빛 없이는 제대로 살수가 없다. 우리 국민과 강산은 일본에 빼앗겼던 빛을 다시 찾은 날이다. 빛을 다시 찾은 것은 생명선을 다시 찾은 것과 같다.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안타가운 것은 광복의 세대는 차츰 사라지고 36년의 쓰라린 유훈(遺訓)은 점차 퇴색(退色)하고 있다. 이날을 그냥 놀기 좋은 법정공휴일로만 알고 있다. 아파트 상가 사회단체에도 태극기 다는 관심도 없다. 어렵게 책을 펼쳐보고 이스라엘이 20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흩어진 곡식 낱알처럼 살던 디아스포라(Diaspora)의 슬픔을 모르더라도 눈만 뜨면 신문기사에 중국에 침략당한 티벧의 불행을 보지 못하는가? 그리고 올림픽 개막일에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2000명이 죽은 그루지아의 불행은 전부 약소국가의 슬픔이다. 지금 우리가 이 정도 사는 것은 부처님 덕도, 예수님 은혜도, 독립투쟁의 결과도 아닌 미국의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탄 덕택이다. 어떻게 되찾은 광복이든 간에 우리는 목숨을 걸고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이번 북경 올림픽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은 논어(論語)의 구절을 읊으면서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중국 대륙의 굴기(崛起)를 과시한 웃음이다. 굴기(崛起)란 중국 대륙이 “떨치고 일어난다”는 뜻이다. 후진타오를 비롯한 전 중국민 경기진행을 안내하는 도우미들까지도 자신 만만한 모습니다. 이 개막식을 보고 외국 신문을 인용한 한 일간지는 이런 기사를 썼다.“등소평이 1970년대 경제정책을 시작할 때부터 유지해온 중국의 숨죽이고 조용히 내실 쌓기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책은 이제 끝났다” 이제는 소리 내는 중국이 되었다. 도광양회(韜光養晦)란 나관중이 쓴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던 계책이다.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약자가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힘을 갈고 닦을 때 많이 인용된다. 중국이 올림픽에서만 소리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땅 “이어도”를 중국 령이라고 하였다가 슬거머니 삭제하는 몸동작을 하고 있다. 이것이 중국이 세계를 향하여 내는 소리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니 지금도 중국 곳곳을 여행 다니며 중국 “팁 값” 단위를 올려놓고 명품시장과 매춘관광으로 빈 깡통 소리를 내고 우쭐대던 한국인을 보고속으로 얼마나 가짠케 여겼을까 ! 우리의 이런 자화상(自畵像)이 부끄럽다. 종전에 우리 경제는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가 걸린다고 하였다. 이제는 중국에 황사(黃砂)가 일어나면 눈병은 우리가 먼저 생기게 되었다. 일본도 우리가 잡지 못할 정도로 멀리 달아나고 있다. 일본의 60년대 노동운동인 춘투(春鬪)는 이제 일본에서는 없다. 우리나라는 눈만 뜨면 노동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 몇 가지 일본에 앞선다고 우쭐 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반도체 자동차 유대전화 같은 수출주력 상품의 설비와 부품은 일본제를 안 쓰면 수출을 못 늘린다. 수출증대는 결국 대일(對日) 무역적자로 돌아간다. 우리나라는 광복 건국이후 집안 사움으로 세월을 보내 왔다. 다행이 하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독재자라고 돌팔매질 당하는 박정희 영웅 덕택으로 그나마 밥을 먹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조선조 말에 집안싸움으로 나라를 잃었으면 정신 차릴 만도 한데 지금도 노예의식과 식민지 의식을 못 버리고 소고기 핑계로 싸움거리를 만들고 있다. 18세기 후반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명치유신을 성공시켜 발빠르게 세계무대에 등장하여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고 오늘날 세계강대국 반열에 서 있는데 조선은 갑신정변(甲申政變) 갑오개혁(甲午改革)이 전부 집안싸움으로 국가개혁에 실패하고 종국에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그 후유증으로 국토는 두토막이 나고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아오는 신세가 아닌가?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해도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는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광복 60년은 이제 우리에게 철이 들게 할만한 세월이다. 미국 중국 일본이 우리의 목덜미를 꽉 쥐고 있는데 그것을 벗어 나려면 이제 우리끼리 싸움은 끝내야 한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다. 냄비에 깨볶는 자세를 버리고 숨을 죽이고 내실을 다져 3만불을 넘어 서야 한다. 그런 비장한 마음으로 광복절 아침에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 -농월-
法聖浦西峯雜詠 법성포 조기 西北鰲波浸日車(서북오파침일거) 서북쪽 큰 물결 속에 넘어가는 해가 잠겼는데 雲帆直欲簸靑徐(운범직욕파청서) 구름같은 돛대는 중국의 청주와 서주를 흔드는 구나. 春花如錦須重到(춘화여금수중도) 봄날 꽃이 솜처럼 피어나거든 要見蒙山石首魚(요견몽산석수어) 꼭 다시 와서 몽산포의 조기(助氣)를 보고 싶어라. 김시습(金時習) 망각(忘却)이란 조물주가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의 선물중 하나라고 한다. 일생을 사는 동안 일어나는 그 수많은 일들을 머릿속에 다 보관한다는 것은 메모리 용량도 문제지만 정신적인 포화 상태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조물주는 세월이 흐르면 뇌세포가 쥐고 있던 기억의 끈들을 놓아버리도록 설계를 하였다. 끊어진 기억의 끈은 때로 인생의 가슴속 상처들을 치유하는 한 처방의 형식이 되기도 한다. 그 수많은 일들을 잊혀짐으로 해서 고요한 평화와 안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망각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꼭 기억 해야 될 끈은 꼭 허리에 매고 끌고 다니며 살아야 할 일들이 있다. 구전(口傳) 중에 신산 허부자(許富者) 이야기가 있다. 한집에 네 명의 딸이 있었는데 전부 출가를 하였다. 그중에 셋째 딸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친정 어머니마저 못사는 딸을 없시여기고 안중에 두지 않았다. 어느 겨울날 친정어머니 생신날이 되어 셋째 딸은 일곱 살 다섯 살 된 아들 둘을 다리고 친정집에 가게 되었다. 잔칫날이라 형제들도 다 모이고 친척들도 많이 와서 축하를 하였다. 형제들이지만 잘사는 언니 동생들은 좋은 옷을 입고 따뜻한 안방에서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가난한 셋째 딸은 부엌에서 다른 일꾼들과 음식도 장만하고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같은 외손자들이지만 잘사는 딸들의 외손자는 외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재롱도 피우고 맛있는 과자를 먹고 있었지만 가난한 셋째 딸 아들 둘은 안방에서 같이 놀지를 못하고 추운 부엌에서 엄마 치마꼬리를 붙들고 다니면서 울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따뜻한 방에서 큰상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 같이 먹는데 셋째 딸과 아이들에게는 친정어머니가 어제 먹다가 남은 찬밥에다가 맛이간 나물 한가지와 몇일되어 딱딱하게 굳어진 “조기” 한 마리를 개다리소반에 받혀 부엌에서 먹게 하였다. 셋째 딸은 어머니의 이런 차별에 북받치는 눈물로 목이 멜 지경이었다. 그러나 철모르는 다섯 살 난 아들은 배고픈 김에 얼런 찬밥을 뜨고 조기를 집으려고 하였다. 그때 큰놈이 동생이 집은 조기를 빼앗아 쥐고 울면서 어머니를 붙들고 집으로 가자며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다. 마음이 상한 셋째 딸도 아이들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큰애는 갖고 온 조기를 천정에 높게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억척같이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밥을 먹을 때마다 또 힘들고 괴로울 때는 천정에 매달아 놓은 조기를 쳐다보고 이를 악물었다.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은 장성하였고 재산도 많이 모아 부자가 되었다. 다시 외할머니 생일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셋째 딸이 친정어머니 생일을 자기 집에서 모시겠다고 하였다. 친정어머니는 기쁘게 허락하였다. 생일날 친정어머니의 생일상은 거창하게 차려졌다. 그리고 상 가운데 약간 높은 그릇에 천정에 매달아 놓았던 조기를 놓았다. 조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파리가 똥을 누고 거미가 줄을 치고 먼지가 앉아서 이상한 색깔을 보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식사를 하면서 이상하게 생긴 생선을 젓가락으로 집으려고 하였지만 잘 집히지 않아 손으로 들고 먹으려고 하였지만 너무 딱딱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싱갱이를 하는 할머니를 보고 외손자가 말하였다. “할머니 그 생선은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왜 먹지 못할 음식을 상에 차렸느냐” “그 생선은 수년전 겨울 외할머니 생일때 부엌에서 저희들에게 먹으라고 할머니가 주신 조기 입니다” “-------” 유대인들은 2차대전 전쟁당사국이 아니면서 6백만명 생명의 희생을 당한 과거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 통곡의 벽 부근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글귀를 새겨두고 후세의 교훈을 삼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전쟁희생 박물관 “야드 바셈”은 전 세계 유대인들의 필수방문코스가 되고 있으며 눈물을 닦아낼 손수건 지참은 필수가 되고 있다고 한다. 말이 필요 없이 그 희생의 생생한 기록과 현장 보존된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과거 나라 잃은 아픔을 확인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해마다 학생들을 상대로 고난훈련을 한다. 그들이 고난체험을 하는 곳에는 이스라엘의 치욕스러운 역사의 흔적들(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까지)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다고 한다. 여느 다른 나라의 철부지 학생들과 다름없이 낄낄거리며 체험 장소에 들어가던 학생들은 체험을 마치고 나오는 날엔 비통함과 눈물에 젖어 입구에 쓰여진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문구를 평생 가슴에 새긴다고 한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광복절 삼일절 6.25를 어떻게 교육 시키고 있는가? 일본이 독도를 자기 섬이라 하면 그때마다 한번씩 마치 냄비에 깨볶으듯 촛불 시위나 한번 하고 곧 잊어버리는 현실은 아닌가? 우리는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1910년 8월 29일 을사조약(乙巳條約) 국치일(國恥日)을 망각한지 오래다. 과거에 억매이지 말자고 망각(忘却)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망각(忘却)의 뒤에는 화각(火脚)으로 내려 올수도 있다. 용서는 하되 염통에 소금을 저리고 천정에 매달은 석수어(石首魚조기)를 바라보는 기억은 살려야 한다. 그것이 을사조약(乙巳條約)과 6.25다 -농월-
우후지상(雨後池上) 비 개인 뒤 一雨池塘水面平(일우지당수면평)-비 한 차례 지나간 뒤 연못 잔잔하여 淡磨明鏡照簷楹(담마명경조첨영)-잘 닦아놓은 거울 같아 처마 서까래를 비추네 東風忽起垂楊舞(동풍홀기수양무)-동쪽 바람 문득 일어 수양버들 하늘거리더니 更作荷心萬点聲(갱작하심만점성)-다시 연잎 위에 후드득 소리를 내네 유반(劉攽) 위의 시는 비가 한 차례 오고 갠 뒤에 상큼한 연못가 풍경을 고요함(靜정)과 움직임(動동)을 번갈아 묘사하고 있다. 버드나무 가지에 남아 있던 빗물방울이 문득 불어온 동풍에 날려 연잎 위에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는 마치 다시 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활짝 갠 날씨에 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유발한 것이 이 시의 멋스러운 맺음이다. 지난 8월 13일 신정동에서 인라인을 타는데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다. 이글거리던 운동장은 비를 맞아 더운 기운을 훅훅 내고 안양천 수면은 마치 콩튀듯이 춤을 춘다. 강가 길게 자란 풀들은 하늘이 내린 생명수에 감사하는지 전부 허리를 굽혀 절을 하는 듯 숙이고 있다. 쏟아지는 빗소리에 주위는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하듯이 말문을 닫고 멍하니 비 내리는 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나를 잊고 비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무아동우(無我同雨) ! 순간 미당 서정주가 변산 격포 해수욕장에서 소나기를 만나 쓴 시(詩) 격포우중(格浦雨中)이 생각난다. “여름 해수욕이면 쏘내기 퍼붓는 해 어스름 떠돌이 창녀시인(娼女詩人)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같은 변산 격포로 한번 와 보게------” -야 저기 무지개가 있어요 !! 무지개가 두 개가 있네요! 쌍무지개- 옆에 있던 사람이 침묵을 깨는 소리다. 비가 그친 하늘에 고척동 방향에서 양평동 방향으로 아주 길고 둥근 아취를 그린 아름다운 홍교(虹橋무지개)가 쌍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쌍무지개를 보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 『참 자연의 힘은 위대하고 경이롭지요. 이렇게 더운 날씨를 한차례 비로 세상을 시원하게 하니, 그리고 무지개 까지--』 『그렇군요 사람이 아무리 땜을 막고 만리장성을 바벨탑을 쌓아도 자연의 기침한번에 전부 쓰러지니까요. 자연앞에 항상 겸손해야지요.』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따고 쌍무지개도 뜨니 좋은 징조 같습니다.』 『그럼요 이제 데모도 그만하고 서로의 갈등도 자제 해야지요 데모도 습관이니까요』 -농월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말아야 口舌者禍患之門(구설자화환지문)-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요, 滅身之斧也(멸신지부야)-몸을 망치는 도끼이다. 利人之言煖如綿絮(이인지언난여면서)-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 솜과 같고, 傷人之語利如荊棘(상인지어이여형극)-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아서, 一言利人重値千金(일언이인중치천금)-한 마디 말이 사람을 이롭게 함은 천금이요 一語傷人痛如刀割(일어상인통여도할)-한 마디 말이 사람을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다. 口是傷人斧(구시상인부)-입은 바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言是割舌刀(언시할설도)-말은 바로 혀를 베는 칼이니,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身處處牢(안신처처뢰)-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는 곳마다 확고할 것이다. 逢人且說三分(봉인차설삼분)-사람을 만나거든 우선 말을 3할만 하되 未可全抛一片心(미가전포일편심)-자기가 지니고 있는 마음을 다 털어 버리지 말지니, 不怕虎生三個口(불파호생삼개구)-호랑이가 세 번 입을 벌리는 것은 두렵지 않고, 只恐人情兩樣心(지공인정양양심)-단지 사람의 두 마음이 두렵다. 酒逢知己千鍾少(주봉지기천종소)-술은 나를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면 천 잔도 적고, 話不投機一句多(화불투기일구다)-말은 기회를 맞추지 않으면 한 마디도 많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사람은 말을 할 수 있는 위대한 동물이면서, 반면에 잔인한 독성(毒聲)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말은 한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은 천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한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갑기도 하지만, 한마디 말로 사람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잘못된 말 한마디가 이간질이 되고, 한마디의 잘못된 말이 일생동안 키워온 우정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리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입이 무거운 사람을 점잖은 사람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입이 무겁다는 것은 무거운 것은 쉽게 들수없는것처럼 말을 가볍게 안한다는 뜻이다. 입이 싸다 말이 싸다는 것은 값싼 물건은 쉽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입이 싼말은 쉽게 들을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입이 무거운 사람일까? 필자는 개인 생각으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란 하루 종일 입을 열어 놓고 있어도 남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안하는 사람”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입이 가벼운 사람이란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하다가 남 앞에서 한마디 하는 말이“해서는 안 될 말을 하는 사람”은 입이 가벼운 사람이다. 특히 상대방의 취약한 부분이나 상처난곳을 지적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상처 난 곳을 부드럽게 감싸도 아픈데 그곳을 바늘로 찌르면 어찌 되겠는가? 여름날 그늘진 나무아래서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쉬고 있다. 발아래 조그만 개미집을 아무 생각 없이 발로 뭉개었다. 그리고 기어오르는 개미 한 마리를 무심코 두 손 가락으로 만지작 그리면서 하늘에 뜬 구름을 바라본다. 그러나 발밑에는 개미집이 지진을 만나 천지가 뒤집히고 장난삼아 만지는 손가락 사이 개미는 묵이 부러지고 허리가 동강나고 있다. 별생각 없이 불쑥하는 말이 상대방에게는 일생의 상처를 줄수 있다 말은 다분히 교양(敎養)훈련이라고 본다. 말끝마다 욕(辱)을 붙여서 하는 사람이 있다. 말끝마다 저속한 말을 붙여서 하는 사람이 있다. 말끝마다 남의 약점을 들추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말을 교양(敎養)있게 하는 훈련이 안된 사람이다. 사람이란 때로는 진한 농담도 할 때가 있다 농담(弄談)이란 상당한 언어 교양과 지식을 갖추고 상대방의 분위기 수준의 리듬에 잘 맞춰해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농담이란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다. 왜 말을 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말을 해야 한다. 말은 하느님이 주신 인간 최고의 축복이요 장기(長技)이다. 옛날하고 달라서 요즘은 자기 의사전달을 위해서 많은 말을 한다. “사랑한다” “감사하다” 상대방에게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칭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농월-
춘향전(春香傳) 암행어사 출도 金樽美酒千人血(김준미주천인혈)-금 술병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효만성고)-옥소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燭淚落時民淚落(촉루낙시민루락)-촛물방울 떨어질 때는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노랫소리 높은 곳에는 백성의 원망 소리도 높다 작자미상(作者未詳) 위의 한시는 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변사도 생일잔치연회에 거지꼴로 변장하여 술울 얻어먹고 암행어사 출도 직전에 탐관오리를 질책하며 지은 글이다. 세인(世人)에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한시이므로 외어 둘만 하다. 춘향전은 지은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정절을 지키는 여인의 이야기인 “열녀 설화”를 바탕으로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소설 판소리로 불리어 전하여 지고 있다. 전라도 남원에 사는 퇴기(退妓)월매는 성 참판과의 사이에서 춘향(春香)을 낳는다. 춘향은 용모가 아름답고 시와 그림에 능하였는데, 어느 봄날 방자를 데리고 봄경치를 즐기러 나온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李夢龍)과 사랑이 싹트고 백년 가약(百年佳約) 맺는다. 얼마 후 부친의 전근으로 이몽룡은 춘향과 후일을 약속하고 한양으로 떠난다. 한편, 남원에 새로 부임한 사또인 변학도는 정사는 돌보지도 않은 채 기생 챙기기에 정신이 없다. 춘향의 용모를 알고 수청을 들라 강요한다. 그러나 춘향은 이몽룡에 대한 정절을 바꿀 수 없다고 하며 거절하고 이에 변 사또는 춘향을 옥에 가둔다. 이몽룡은 한양으로 간 뒤,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전라도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오게 된다. 옥에 갇힌 춘향을 만난 다음 날 아침, 변 사또의 생일잔치가 시작된다. 인근 고을읍 수령들이 모여든 자리에 본관사또의 호화로운 잔치가 시작된다. 이때 암행어사 이몽룡이 걸인 차림으로 연회장에 나타나 “여봐라, 사령들아. 너의 사또께 여쭈어라. 나그네 걸인이 좋은 잔치에 술과 안주 좀 얻어먹자고 여쭈어라.” 사령놈 하는 말이 “어느 양반인지 모르나 우리 사도님 잔치에는 걸인은 금하오니 그런 말은 내지도 마오.” 하며 등을 떠 밀어 낸다. 이때 운봉 현감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 변사또에게 청하는 말이 “저 걸인의 의관은 남루하나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말석(末席)에 앉히고 술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변사도 하는 말이 "운봉현감의 소견대로 하오 마는......." 하면서도 변사도의 기분은 개운치 않다. 운봉이 분부하여 “저 양반 듭시래라.” 생일잔치에 끼어 든 어사또 이몽룡은 단정히 앉아서 좌우를 살펴보니, 당상(堂上)의 모든 수령들이 산해진미를 앞에 놓고 진양조를 읊조리는 것을 보니 분통터져 속이 뒤집힌다. 개다리소반에 담은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놓은 상을 발길로 걷어 차 던지며 운봉현감의 상앞으로 가서 몸을 거죽거리며 “쇠고기 갈비 한 대 먹고 지고.” “다라도 잡수시오.” 하고 운봉이 말하면서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시 한수씩 지어 보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옳다.” 하니 운봉이 운(韻)자를 높을 고(高)자, 기름 고(膏)자 두 자를 내어놓았다. 이때 어사또 이몽룡이 하는 말이 걸인도 어려서 추구권(抽句卷)이나 읽었더니, 좋은 잔치 집에 술과 안주를 포식하고 그저 가기가 염치없으니 시 한수 올리겠사이다. 운봉이 반겨 듣고 붓과 묵 종이를 내어주니 어사또가 휘갈겨 쓰는데 글귀는 이태백이요 글씨는 왕희지라 백성의 사정을 생각하고 변사도의 정체를 생각하여 지은 것이 위의 한시다. 이몽룡이 이렇듯 지은 시를 변사 또는 몰라보고 운봉이 눈치를 채고 아뿔싸, 큰일이 났다.! 재빨리 변사도 하직하는 눈치가 참새 방앗간 찾기 보다 더 눈치 빠르다. “여보. 운봉은 어디를 다니시오?” “소피(所避-오줌)하고 들어오오.” 변사도 눈치 못 채고 분부하되, “춘향을 급히 올리라.” 하며 주광(酒狂-술주정)을 부린다. 이때에 어사또 마패로 군호(軍號-군대 신호)를 보내니 “암행어사 출도(出道)야! 외치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초목금수(草木禽獸)들도 무서워서 벌벌 떤다. 남문에서 “출도야!” 북문에서 “출도야!” 이 시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데는 이견이 많다. “계서연보”라는 책에는 성이성(成以性)이라는 사람이 전라도 암행어사가 되어 벼슬아치를 징계하면서 지었다고 되어 있고, “청야만록”이라는 책에는 명나라의 도사(都司)가 서울에 와서 광해군 시절의 정치가 어지러움을 빗대어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은 벼슬아치들은 백성들 생각보다는 개인의 사리사욕에 눈이 어둡고 높은 세금으로 백성들의 허리는 휘어지고 고위층이 먹는 고급술은 백성들의 피요 좋은 안주는 백성들의 기름이고 촛물처럼 흐르는 백성들의 눈물과 한숨으로 터지는 원성 은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알고 듣고도 모르는 체 한다. -농월-
문실솔(聞蟋蟀) 귀뚜라미 소리 通宵喞喞有何情(통소즐즐유하정)-어떤 마음으로 밤새도록 귀뚤귀뚤 울고 있는지 喜得淸秋自發聲(희득청추자발성)-맑은 가을이 즐거워서 스스로 내는 소리인가 微物亦能隨候動(미물역능수후동)-하찮은 벌레도 능히 계절을 따라 움직이는데 愚儂還眛待時鳴(우농환매대시명)-미련하게도 때 기다릴 줄 모르고 울고 있구나! 정온(鄭蘊) 지난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30도를 넘나드는 작열(灼熱)하는 태양아래 찌는 듯 한 무더위가 아스팔트를 녹이고 남자들의 생식기는 오뉴월에 개 엿 늘어지듯 축 쳐지는 지독한 열기 속에서도 우리는 쉬지 않고 쉬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면서 보낸 시간입니다. 감도 밤도 은행알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성숙한 열매로 자란 시간입니다. 견디기 힘든 무더위 속에는 강도들로부터 독도와 이어도를 지키려는 거룩한 분노로 눈을 부릅떴으며 촛불 시위로 갈등과 깊은 상처도 남긴 여름이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영광의 함성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든 여름을 이렇게 잘 참아 왔습니다. 그리고 잘 참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고 싶은 말도 많이 하고 하고 싶은 몸짓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이제는 여름내 목청껏 노래하던 매미소리를 조용한 귀뚜라미 소리로 바꾸어야 할 가을입니다. 매미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요란하게 소리를 내기에 정작 본인은 자기 목소리에 취해서 무슨 소리를 내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남들이 싫어하는지 좋아 하는지를 모릅니다.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려면 자기 귀를 기우려야 들을 수 있습니다. 귀뚜라미는 스스로가 무슨 소리를 내는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밝은 달아래 내는 소리와 이슬을 맞으며 우는 소리가 다릅니다. 지난번에 오랜만에 인사동을 지나다가 붓과 화선지를 샀습니다. 그동안 컴퓨터를 손에 익힌다고 타자 연습만 하고 글씨를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새 붓으로 처음 쓴 글자로 “묵(默)”자를 썼습니다. 이 글자는 글자의 생긴 대로(黑+犬) 처음에는 개가 짖지 않고 사람을 졸졸 따라 간다는 뜻이었다가 후에 사람의 경우로 확대 적용되어 “입을 다물다” 잠잠하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과묵(寡黙)하다 침묵(沈黙)한다의 뜻입니다. 2300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순자(荀子)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言而當知也(언이당지야)-말을 함이 옳은 것도 지혜이고 默而當亦知也(묵이당역지야)-말을 안 함이 옳은 것도 지혜이다. 귀뚜라미 소리 뒤에 오는 소리는 침묵(沈黙)입니다. 침묵(沈黙)은 가장 크고 무겁고 준엄(俊嚴)한 훈계 입니다. 가을 귀뚜라미 소리는 그동안 여러 가지 어지러웠던 소리들을 정리 정돈하라는 조용한 타이름입니다. -농월-
원숭이에게 강간당한 태극기 老猿失其群(노원실기군)-늙은 원숭이 무리를 잃고 落日孤楂上(낙일고사상)-석양에 외로이 뗏목 위에서 兀坐首不回(올좌수불회)-오뚝이 앉아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想聽千峰響(상청천봉향)-온 봉우리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네 나식(羅湜) 아래 글은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이라는 글입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위의 원숭이 시와 같이 소개드립니다. 마침 베이징 올림픽 폐막일이 가까이 오니 더욱 감회가 있습니다. 약간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 보십시오. 이 이야기는 어느 독일인이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인데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표현했다는 문제로 일본 유학생 중 한명이 일본의 어느 게시판에 올렸답니다. 그 후 그 독일인의 사이트는 해킹당하고 작성자의 개인 정보가 유출당해 일본의 우익(右翼)단체 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국인 유학생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한국어로 그 사이트의 문제가 된 글을 번역해서 올린 것입니다. ◆◆◆◆ 아래의 글은 <그 어느 독일인의 글입니다.>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세계 지도(地圖)를 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이 알고 있을 중국(中國)과 일본(日本) 사이에 한반도(韓半島)가 있고 그곳에 한국(韓國)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중심에 있다.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무력(武力)에 의존하는 나라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년간 한 번도 자주성(自主性)을 잃어본 적이 없는 기적(奇蹟)에 가까운 나라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이 한국인들은 나라 대신에 “민족(民族)”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굉장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1936년 히틀러 통치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두 일본인이 마라톤 경기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하였다. 2위는 독일인(獨逸人)이었다. 헌데 시상대에 올라간 이 두 일본인(日本人?) 승리자(勝利者)자들의 표정(表情)............ 이것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사진.... 무엇이 이 두 승리자들을 이런 슬픈 모습으로 시상대(施賞臺)에 서게 했는가... 과거도, 그리고 현재도 가장 인간적인 유교(儒敎)라는 종교(宗敎)가 지배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은 이웃한 일본인(日本人-죽음을 찬미하고 성(性)에 탐닉하는)에 대해 “영리한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가치관(價値觀)을 가지고 있으며 불행히도 이 인간적인 품위를 중시하는 자부심(自負心) 강한 민족(民族)이 원숭이들에게 “강간(强姦)”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침략(侵略), 즉 36년간 식민지(植民地)로 떨어지고 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개인의 이상을 희생하고 말았고, “손기정(孫基禎)” 과 “남승룡(南昇龍)” 이라고 하는 두 청년들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두 청년들은 달림으로써 아마도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청년들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조국(祖國) 한국의 태극기(太極旗) 대신에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日章旗)가 있었고, 스탠드에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한국의 태극기 특징은 대부분의 나라가 혁명이라든가 투쟁이라든가 승리 또는 위대한 황제(皇帝)를 찬양하는 문양인데 비해 우주(宇宙)와 인간과 세상 모든 것의 질서(秩序)와 조화(調和)를 의미한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인 채 .... 한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을 받는 한국 신문 eastasia(동아일보를 지칭하는 듯)는 이 사진 속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만다. 이 유니크한 저항(抵抗)의 방법,,, 과연 높은 정신적인 유교 나라의 민족답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폐간(廢刊)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탄압(彈壓)의 방법으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해방(解放)되고 강요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서운 또 한 번의 전쟁(6.25)을 치른 후, 한강(漢江)의 기적 을 통해 스페인보다도 포르투갈보다도 더 강력한 경제적 부(富)를 이루고 만다. (한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유일한 민족이다) 그리고는 1988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른다. 불과 50년...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개막식(開幕式), 성화(聖火)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웠던 승리자, “손기정(孫基禎)”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연출가(演出家)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본왕의 소식....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인간, 심지어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예를 나타내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보이지 않는 신(神)이 인류 역사상 (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韓國人)들은 놀라운 정신력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金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폭력(暴力)과 같은 단순함이 아닌)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黃永祚)”이라고 하는 “손기정(孫基禎)” 노인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과 독일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축제(祝祭)의 월계관(月桂冠)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태극기(太極旗)가 올라가자 이 “황영조(黃永祚)” 는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 “손기정(孫基禎)”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영조(黃永祚)”를 가슴에 포옹한 “손기정(孫基禎)” 은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인간에 대한 신뢰(信賴)에 한없이 자랑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인간이란, 이 한국인 아니 이 한국 민족처럼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서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비극적(悲劇的)인 눈물로 시작된 역사(歷史)일지라도 환희(歡喜)와 고귀(高貴)한 기쁨의 눈물로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과 국가와 민족의 존엄(尊嚴)을 이 한국인 아니 한국민족( 韓國民族)이 보여주지 않는가.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농월-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푸른 파도에 한바탕 웃는다. 滔滔兩岸潮(도도량안조)-도도한 파도는 해안에 물결을 만들고 浮沈隨浪記今朝(부침수랑기금조)-물결 따라 떴다 잠기며 아침을 맞네. 滄天笑(창천소)-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紛紛世上滔(분분세상도)-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잊는다. 誰負誰剩出(수부수잉출)-이긴자는 누구이며 진자는 누구인지 天知曉(천지효)-새벽하늘은 알까 江山笑煙雨遙(강산소연우요)-강산에 웃음으로 물안개를 맞는다. 濤浪濤盡紅塵(도랑도진홍진)-파도와 풍랑이 다하고 인생은 늙어가니 俗事知多少(속사지다소)-세상사를 알려고 하질 않네! 淸風笑竟惹寂寥(청풍소경야적요)-맑은 바람에 속세의 먼지를 모두 털어 버리니 豪情還剩了一襟晩照(호정환잉료일금만조)-호걸의 마음에 지는 노을이 머문다. 蒼生笑不再寂寥(창생소불재적요)-만물은 웃기를 좋아하고 속세의 영예를 싫어하니 豪情仍在癡癡笑笑(호정잉재치치소소)-사나이도 그렇게 어리석어 껄껄 웃는다. 영화 소오강호(笑傲江湖) 주제가(主題歌) 영화 소오강호(笑傲江湖)은 호금전 감독 허관걸 주연 중국 무협영화다. 줄거리는 명나라 황궁에 자객이 침입하여 최고의 무공이 수록된 무공비록(武功秘錄) 규화보전(葵花寶典)이 도난당한다. 이 책을 찾기 위하여 강호 무림의 고수들이 등장하여 서로의 무술을 겨루면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고 마지막에 이영화의 주인공 영호충(허관걸 분)이 강호의 무림을 은퇴하면서 떠나가는 배위에서 소오강호(笑傲江湖)를 연주하며 한바탕 크게 웃고 노래하면서 영화를 끝내는 장면이다. 인생이란 푸른 창파에서 한바탕 그게 웃는 웃음이다.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 인생은 한 여름밤의 꿈이다. 남가일몽(南柯一夢) !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 세상에 뛰어들어 팔을 걷어 부치고 눈알을 부라리며 호랑이라도 잡을 듯이 설치던 젊음이 어제 같은데 눈 한번 깜빡 한 사이에 벌써 70을 바라보는 황혼의 언덕에 서 있다. 80을 바라보는 망팔(望八)의 친구도 있다. 제 설음에 지쳐 뒷다리 빠지는 것도 모르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턱을 고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미시령 고개 같은 구비구비 살아온지난날의 일들이 파노라마져 간다. 반복되어온 좌절과 환희 뒤에 찾아온 침묵의 지금까지--- 삼국지를 한편의 인생이라고 서시(序詩)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해 주고 있다. 滾滾長江東斷水(곤곤장강동단수)-세차게 동쪽으로 흐르는 양자강의 물위에 浪花淘盡英雄(랑화도진영웅)-물보라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영웅들의 모습 是非成敗轉頭空(시비성패전두공)-인생의 옳고 그름도 고개 돌리니 허공이구나! 靑山依舊在(청산의구재)-청산은 옛 모습 그대로 있는데, 幾度夕陽紅(기도석양홍)-세월은 흘러서 석양은 몇 번이나 붉게 물들었으랴? 『여보, 꿈 깨세요 ! 웬 가을 낮잠을 길게 주무세요? 인라인을 너무 심하게 타셨나 봐요. 주무시면서 잠꼬대까지 하시면서 무슨 웃음을 그리 크게 웃으세요?』 -어, 잠깐 자면서 꿈까지 꾸었네. 아이고 꿈에 내가 머리가 하얗고 60먹은 노인이 되었어. 깜작 놀랐지 사람 늙게 만드는 가을 낮잠 다신 안자야 겠어- 『 ? ? ? 』 한가하면 낮잠 자게 마련이고 잠자면 꿈꾼다. 이것저것 잡념 안 생기게 매일 매일 돈버는 일 아니라도 바쁘게 살아야 겠다. 노인허무병(老人虛無病)에는 동분서주탕(東奔西走湯)이 최고의 처방이다. 껄 껄 껄 껄---- -농월-
처서(處暑) 蒸熱猛威中(증열맹위중)-아직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放吹處暑風(방취처서풍)-처서(處暑) 바람이 불어오네. 鱗雲天外起(린운천외기)-비늘구름 하늘밖에 일어나고 砂鳥水中蒙(사조수중몽)-갈매기도 물속에서 헤엄질 하네 秋色時時近(추색시시근)-가을빛은 점점 가까워오고 豊光處處同(풍광처처동)-풍년 빛깔 곳곳마다 같은 색이네 蟬聲何嫋嫋(선성하뇨뇨)-매미 소리도 점점 가냘퍼하니 餞夏興無窮(전하흥무궁)-보내는 여름 흥겨움이 끝이 없네! 김천두(金千斗) 《인간과 초인》을 써서 세계적인 극작가로 불리고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태생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어영 구영하다가 내 이리 될 줄 알았지- 오늘이 절기(節氣)상으로나 실제 날씨로나 여름이 정리되고 가을이 시작되는 처서(處暑)이다. 정말 더위와는 안면을 싹 바꿀 작정인지 새벽부터 비가 내려 아침기온이 18도로 썰렁하다. 정말 어영 구영하다 보니 금방 가을이 온것이다. 신정동 인라인 트랙옆 도림천 하천부지에 칸나가 붉게 피어 있었다. 여름 화단(花壇)의 여왕이라고 불리 정도로 정열적인 꽃이다. 간혹 휴식을 위해 다리밑 그늘아래서 물끄러미 붉은빛 칸나를 보면서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그 옛날 한적한 간이역(簡易驛) 뜰에 핀 칸나가 뇌리에 떠오른다. 누군들 칸나와 같은 뜨거운 열정의 시절이 없었으련마는 이 순간에도 처서의 언저리에서 잠깐 지나온 내 생애를 되돌아본다. 사실 필자는 지난여름을 어영 구영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안 되는 폭염(暴炎)이였지만 나는 이 폭염을 피하기를 원치 않았고 정면에 서서 맛짱을 떴다. 트랙에서 힘찬 푸쉬를 하고 하루에 4리터의 물을 먹었다. 덕분에 내 피부는 잘 익은 밤색으로 변했다. 돈 버는 일도 아니면서 무슨 일을 했다고 뚜렷이 내 세울 것은 없지만 아무튼 올여름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라면서 밥도 열심히 먹고 인라인도 열심히 탔고 책도 열심히 읽었다. 이처럼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미처 생각지도 않은 처서(處暑) 통지서를 이렇게 빨리 받을 줄은 몰랐다. 생각 없이 세월이 흘러 금세 큰 자식놈의 군입대(軍入隊) 영장(令狀)을 받은 기분이다. 아무리 귀한 새끼라도 국가의 부름은 따라야 한다. 자연의 근엄한 소명(召命)을 거역할 수 없어 여름을 보내야 하는 것도 불가항력(不可抗力)이다. 여름아 잘 가거라! 어깨를 활짝 펴고 떠나가거라. 1년이 지나면 첫휴가란다. 내년 5월 5일 입하(立夏)에 이곳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아 듀 ! -농월-
응향각(凝香閣)에서 가을 빗소리를 들으며 凝香閣裏夜悠悠(응향각리야유유)-누각에 향기 엉기고, 밤은 점점 깊어가고 人倚欄干十二頭(인의난간십이두)-열 두 난간 끝 쪽에, 나는 몸을 기댄다 凉意滿簾無夢寐(량의만렴무몽매)-서늘한 심사 주렴에 가득하고, 잠은 오지 않는데 一池荷葉雨聲秋(일지하엽우성추)-연못 연잎에, 빗소리는 가을을 재촉한다. 이득원(李得元) 여름 안녕~ 해가 눈에 띄게 짧아진 늦여름의 나무위로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우산을 적신다. 제 울음소리에 정신이 팔려 뒷다리 빠지는 줄도 모르는 귀뚜라미 소리도, 철거 촌에 수도 전기 끊긴 모진 집에 버티던 세입자의 마지막 절규처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매미소리도 목이 메고, 모기마저 입이 삐뚤어져 앵~ 소리도 못내게 되면 가을은 한혜숙처럼 하얀 미소를 머금고 우리 곁에 다가온다. 마치 박경리의 “가을에 온 여인”처럼-- 가을 추(秋)자는 상형문자(象形文字)에서 메뚜기를 닮은 글자이다. 추(秋)는 벼화(禾)변 에 불화(火)가 붙어 불에 나락을 말린다는 글자로 이루어진 문자이다. 즉 가을은 곡식(穀食)을 베어서 말리는 풍요의 계절(季節)이다. 가을은 풍요와 외로움이 같이 찾아온다. 가을의 풍성한 수확 뒤에는 추공(秋蛩)이라 일컫는 죽음을 앞둔 모든 벌레들이 슬피 우는 장송곡(葬送曲)이 있다. 가을은 늙어서 젊음의 아름다움이 없어지고 주름만 남아 초라해진 여인의 모습인 추낭추안(秋娘秋顔)의 계절이다. 가을비는 할아버지 턱수염 밑에서도 피한다는 대수롭지 않은 젖먹이 오줌같은 비지만 이 비가 한번 올때마다 소매긴 옷을 찾게 되고 표정은 피그말리온의 대리석 여인보다 더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도종환의 시 “가을비” 에서도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최현의 “가을비 우산처럼”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디가고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농월-
광해군의 제주 가을 빛 北風吹雨過城頭(북풍취우과성두)-북풍에 날리는 비는 성벽 위를 지나니 瀆氣昏凝百尺樓(독기혼응백척루)-습하고 더운 독기 백척누각 덮었구나. 滄海怒聲來薄暮(창해노성래박모)-창파에 노한 물결에 날은 점차 어둑하고 碧山秋色冷淸秋(벽산추색랭청추)-푸른산 슬픈 기색 싸늘한 가을빛 띠었구나. 歸心每結王孫草(귀심매결왕손초)-돌아오는 마음으로 실컷 왕손초 보려하나 客夢遙連帝子州(객몽요연제자주)-나그네 꿈속의 제주는 번번이 잠을 깨우네 故國興亡無處問(고국흥망무처문)-고국의 존망 소식 끊어진지 오래되니 却來江上泛孤舟(각래강상범고주)-안개 자욱한 강위에 외로운 배만 누워 있네! 광해군(光海君) 우리 역사를 읽노라면 가슴 아픈 임금을 한분을 만나게 된다. 곧 광해군(光海君)이다. 그는 명(明)과 청(淸) 사이에서 탁월한 양면외교(兩面外交)를 펼쳤고,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을 간행하고 사고(史庫)도 설치등 많은 업적을 이룩한 임금이다. 그러나 결국 파당정치에 휘말리어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쫓겨나 제주도에서 마지막 생을 마치었다. 위의 시는 강화에서 제주도로 귀양지를 옮기면서 지은 시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으므로 가을 초입에서 이 시를 소개한다. 이시는 광해군이 강화도 교동(喬桐)에서 제주도로 옮겨 갈 때 의 비통함을 읊은 시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달리 67세까지 목숨을 부지 했으나 유배지에서의 아들과 며느리의 자결 부인의 폭사를 지켜봐야 했고 두 번째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조선 제14대 선조왕의 왕비 의인왕후(懿仁王后)는 후사가 없었다. 후궁 공빈 김씨는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고 25살의 나이로 죽자 의인왕후가 친아들처럼 키운다. 의인왕후(懿仁王后)가 죽자 인목왕후(仁穆王后)를 계비로 맞아 영창대군을 낳는다. 한편 선조는 적자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생각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은 대북파 이이첨 정인홍등의 지지로 왕위에 오른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후 대북파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강화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이듬해 살해하고 영창대군 어머니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킨다. 이러한 정치 행위로 서인(西人)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서인 주도의 인조반정(反正)에 의해 폐위 당하였다. 인조(仁祖)는 광해군과 폐비 유씨를 강화에 귀양 보내고 폐세자와 폐세자빈 박씨는 성 담밑에 구멍을 뚫어 밖으로 탈출 하다가 잡히자 자살을 하고 그 화병으로 광해군 폐비 유씨가 죽는다. 광해군은 강화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태안으로 옮겼다가 다시 강화로 돌아온다. 청나라가 광해군의 원수를 갚겠다고 쳐들어오자 다시 제주로 귀양되어 제주에 온지 19년만인 인조19년 7월 1일 67세로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광해군은 죽으면서 어머니 공빈 김씨의 무덤 발치에 묻어 달라 했던 마지막 소원대로 부인 유씨와 나란히 쓸쓸하고 초라한 무덤에 묻혀 있다.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영락교회묘지 옆에 “광해군묘지”라는 조그마한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들 모자의 무덤은 가을빛이 깃드는 조용한 산속에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사무치는 회한의 눈물을 삼키고 있다. 광해군이 죽자 사관은 광해군의 슬픈 시를 사초에 남기었는데 실록은 “이 시를 듣는 자마다 비감에 젖었다”고 적었다. 35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를 읽는 필자도 비감한 마음이 든다. 가을 탓일까. -농월-
황진이 잠못이루는 가을 밤에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야사하사)-달 밝은 밤에 그대는 무슨 생각 하오신지 寢宵轉輾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뒤척이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問君有時錄忘言(문군유시녹망언)-임이여 때로는 제가 드린 말도 적어 보시는지요!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량)-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을 지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멀리계신 임 생각 끝없어도 모자란 듯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하루하루 이 몸을 그리워는 하는지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바쁠 때 생각해도 제 생각이 즐겁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참새처럼 떠들어도 제게 향한 정은 여전 하온지요 황진이(黃眞伊) 위의 한시는 한양에 있는 소세양에게 전하게 했다는 황진이의 7언율시다. 몸부림치며 그리워해도 돌아오지 않는 양곡 소세양을 못 잊어 황진이가 사무치는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담아 보낸 시이다. 때로는 한밤중에 잠이 깨면은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쉽게 눈을 못붙이는 밤이 있다. 그냥 이 생각 저 생각만 떠오르면서 잠이 쉽게 안든다. 황진이야 그리운 임이라도 생각나서 잠 못 이루지만 그리운 임도 없는 사람은 왜 잠이 안 올까. 가을 탓일까. 세상이 많이 달라져 부모 마음대로 못하는 시집 장가 못보낸 자식들 생각, 어느듯 번데기 처럼 쪼그라진 팔꿈치를 쓰다듬어 보며 나약해진 자신을 내려 보기도 한다. 장독대 밑에 맥주병 소주병을 땅에 박아 만든 조그마한 화단에 철늦게까지 핀 맨드라미와 여러가지 소박한 꽃들, 초가 지붕위에 무겁게 눌린 박, 돌담위 시들은 호박넝쿨사이에 누렁호박, 그 밑에 조금 일찍 캔 고구마 소쿠리, 명멸하여가는 옛 고향의 영상들이 잠을 더 멀리 쫓고 있다. 사랑과 증오의 한마음(애증일심愛憎一心)으로 짧은 삶을 살다간 황진이는 다정다감(多情多感)하고 재색(才色)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명기로 전한다. 일본말에 “후도꾸 미찌가꾸(太くて短く)”라는 말이 있다. 굵고 짧게 산다는 말이다. 남자에만 적용되는 말 같지만 황진이야 말로 그런 여성이다. 약 460년전의 조선조 11대 임금 중종 때 당시 전국으로 약 3만명의 기생이 있었다고 알려진 송도(松都) 출신 최고의 기생이다. 사대부 생활에서는 생각 할 수 없던 과감하고 적나라한 애정표현으로 왕족인 벽계수(碧溪守)를 벽계수(碧溪水)에 견주어 유혹 하는 등 재치 있는 황진이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시를 쓴 그시대의 개방적인 여류명사 였다. 속세를 멀리하고 성거산 서화담에 집 짓고 도통하는 서경덕을 유혹하려 했다가 실패하여 일생동안 선생님으로 흠모 하여 가르침을 받으며 송도삼절로 박연폭포(절승) 서경덕(절윤) 황진이(절색)을 자칭하였던 황진이는 화장을 안 하고 머리만 빗을 따름이었으나 광채가 나 다른 기생들을 압도했다고 한다. 송공대부인(宋公大夫人) 회갑연에 참석해 노래를 불러 모든 이의 칭송을 들어 다른 기생들과 송공 소실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으며 외국 사신들로부터 천하절색이라는 감탄을 받았다고 전한다. 가을은 황진이만 잠못이루는 밤이 아니다. -농월-
운(雲) 변하는 구름 聚山虛空去復還(취산허공거부환)-허공에 모였다가 흩어지고 갔다간 또 오는데 野人閑處倚空看(야인한처의공간)-한가로운 사람 지팡이 짚고 텅 빈곳을 바라보네! 不知身是無根物(부지신시무근물)-스스로 뿌리 없는 신세인 것을 모르고 蔽月遮星作萬端(폐월차성작만단)-달 가리고 별 막으며 별짓을 다하는구나. 곽진(郭震) 구름을 가만히 보면 참 변화무쌍하다. 호랑이처럼 보이다가 새처럼 보이고 날아가는 기러긴가 하면 어느새 돌부처가 되어 있다. 젊은 시절에는 상대방을 설득하여 안 되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생존경쟁의 필연적인 방편(方便)이었을 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여 가장(家長)이 된 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이 가장 중심이 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버지의 생각과 의견에 전부 따랐다. 아이들이 결혼하고 며느리가 들어오고 손자도 생기고 아내도 늙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상대방만 변(變)하여 나에게 맞추기를 바라며 살아왔다. 냉정히 생각하면 나는 변(變)하여 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지금도 말한다. 『당신이, 아버지가 우리가정에 딱 중심이 되어야 우리 집이 편안하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변해야 될 차례다. 곶감 같이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나는 변해야 한다. 변(變)한다고 해서 여름 숙주(叔舟)나물처럼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내 앞에서 자식 앞에서 며느리 앞에서 친구 앞에서 그리고 복잡한 서울 거리에서 내가 그들을 맞추며 살기 위해 변해야 겠다. 늦게나마 한쪽눈이라도 떠서 이것이 내게 주어지는 마지막 남은 인생의 행복이라 생각 할 기회다. -농월-
정성을 다한 믿음 若人靜坐一須臾(약인정좌일수유)-누구나 잠깐 동안 고요히 앉아 보면 勝造恒沙七寶塔(승조항사칠보탑)-모래같이 많은 칠보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 寶塔畢境碎微塵(보탐필경쇄미진)-보배탑(寶塔)은 끝내 무너져 티끌이 되거니와 一念淨心成正覺(일념정심성정각)-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부처를 이루는 도다. 문수보살(文殊菩薩) 게송(偈頌) 신앙(信仰)이란 어떤 대상을 믿고 받드는 믿음 행위이다. 믿음 행위에 최우선되는 것은 정성(精誠)이라 생각 한다. 추운겨울날 얼음을 깬 찬물에 세수를 하고 옹달샘에서 제일 처음 물을 하얀 대접에 떠 장독대 위에 놓고 정정을 다하여 합장하는 모습,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생일날 아침에 밥과 미역국과 볏짚 세 개를 북쪽 창에 진열하고 정성을 다하여 손을 모은 모습, 서낭당에서 비는 모습, 절에서 부처님께 비는 모습,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등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대상에게 정성을 다하여 기원(祈願) 것이 신앙이다. 신앙에 진실(眞實)한 정성(精誠)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끽다거(喫茶去)글을 쓴 동곡(東谷) 일타(一陀1923-1999)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원로 큰 스님으로 해인사에서 일평생 중생교화에 몰두하다 열반하신 큰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끽다거(喫茶去)란 “차 한 잔 하고 가게”란 말로 벽암록에 나오는 당(唐) 선승(禪僧)인 조주(趙州)스님이 깨우침을 묻는 말에 “차 한 잔 하고 가게”로 유명한 공안(公案) 화두(話頭)이다. 일타(一陀) 스님 집안은 부처님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한다. 집안에서 40명의 출가(出家)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타스님 아버님의 불공(佛供) 정성(精誠)에 대하여 전하는 일화(逸話)가 있다. 일타(一陀) 부친께서는 공양(供養)에 사용할 벼는 별도로 키우는데 이 벼에는 거름도 가장 깨끗하고 좋은 풀로 퇴비를 만들고 볍씨도 특별히 깨끗한 종자를 별도로 선택하였다고 한다. 다 익어 거둘 때는 낫으로 벼를 베지 않고 손으로 흝어서 거두었다고 한다. 언젠가는 공양(供養)드릴 쌀을 지고 80리가 넘는 절로 걸어갔다. 80리를 짐을 지고 산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절 앞에 다 와서 그만 자기도 모르게 방귀를 뀌고 말았다. 아버님 생각에는 부처님께 드릴 깨끗한 공양미(供養米)에 방귀냄새가 풍겼으니 마음이 께름직히여 바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 와서 새 쌀을 지고 다시80리길을 걸어서 쌀 공양을 바쳤다고 한다. ※참고 게송(偈頌)이란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탄(讚嘆)하는 노래로서 시(詩)처럼 되어 있는 문장이다. 외우기 쉽게 시로 지었다. -농월-
경술국치(庚戌國恥) ! 大人輔國正持身(대인보국정지신)-대인이 나라 위해 일함에 몸가짐을 바로 하고 磨洗塵天運氣新(마세진천운기신)-선천의 낡고 묵은 기운 씻어 내니 기운이 새롭구나. 遺恨警深終聖意(유한경심종성의)-남긴 한(恨)은 성상(聖上)의 뜻을 못 다함이라 一刀分在萬方心(일도분재만방심)-한 칼로 몸을 가름에 천하 사람의 마음이 있노라. 민영환(閔泳煥)의 만장(挽章) 오늘이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치욕인 경술국치(庚戌國恥)의 98주년이 되는 날인 것을 아십니까? 위의 글은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이 한일합방 조약 소식을 듣고 『嗚呼(오호)-오호라, 國恥民辱乃至於此(국치민욕내지어차)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바로 여기에 이르렀으니-----』 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상여(喪輿)의 만장(挽章)입니다. 1910년 8월 29일에 일본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 등이 비밀리에 공작을 서둘러 형식적인 어전(御前) 회의를 거쳐 조약을 공포함으로써 조선(朝鮮)은 나라를 세운지 519년만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입니다. 천추(千秋)에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나 개인이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대로 약한 자는 항상 강한자의 밥이 되어 왔습니다. 정치도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 마키아벨리즘의 논리대로 약자가 아무리 정의로워도 강한 자에 의하여 제거 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경술국치(庚戌國恥)는 침략자인 일본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내나 라를 지키지 못한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통감해야 합니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어부지로 얻은 광복이 두 동강난 강토가 되었는데도 그것도 광복 세대가 살아있고 속된말로 국권회복의 먹물도 아직 마르지 않은 60년 밖에 안되었는데 경술국치(庚戌國恥)는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2000년간 나라 잃은 설음을 잊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고 각인(刻印)하면서 이스라엘판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결속을 다지는 이스라엘, 제2차 세계대전에 편승하여 진주만과 동남아를 침공한 전쟁 원흉 일본이 미국의 원자탄에 항복한 후 초토화된 일본 열도에서 반성은커녕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외친 구호가 일본인 개개인의 가슴속에 새긴 “20년 후에 다시보자” 였습니다. 과연 일본은 20년 후 세계의 강국으로서 미국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경술국치와 6.25의 아픔을 어떤 결심으로 마음속에 다지고 있습니까? 옛날에는 6.25 노랫말에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노래도 잊은 지 오랩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대한민국에 종교의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일본 역사에 “후미에(踏繪)”라는 얘기를 알아야 합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내 기독교 영내에서 수청을 거부한 이유로 전도(傳道)가 금지되고 외국인 선교사는 추방되고 후미에(踏繪)라는 십자가상과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상을 동판(銅版)으로 만들어 성문(城門)바닥에 깔고 그 동판을 밟지 않은 사람은 기독교인으로 간주하여 처형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일본에서 기독교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처절했습니다. 불교는 중국에서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法難)으로 불교의 암흑기(暗黑期)가 있었습니다. 삼무일종(三武一宗)이란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당(唐)의 무종(武宗), 후주(後周)의 세종(世宗)에 의하여 진행된 불교에 대한 잔혹한 말살 탄압을 말합니다. 그중에서 회창대법난(會昌大法難)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불교의 참상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 기독교 불교는 온실에서 고이 자란 격입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성이 외국문물을 잘 받아드리는 역사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타종교와 기독교를 믿지 않은 사람은 미워하고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으뜸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팽개치고 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해야 진정한 기독교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불교는 무소유(無所有)와 하심(下心)을 강조한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법당에서 불경만 줄줄 외우지 행동은 일반 중생의 욕심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겠다는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헤게모니 쟁탈에 눈이 어두워 국가와 민족의 상처는 생각에도 없습니다. 나라가 있고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한 것을 모든 종교인들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이 없는 다른 나라의 국권아래서 지금처럼 서로 싸울 수 있겠습니까? 너무 편하고 행복에 겨워서 하는 짓들입니다. 모두 욕심을 버리고 신앙인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오늘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부끄러워하는 기도를 하세요. -농월-
도봉산(道峯山) 峰勢嵯牙如劒鋩(봉세차아여검망)-산봉우리들 높고 울툭불툭하여 칼끝 같은데 瘦藤老栢凌風霜(수등노백능풍상)-마른 등나무와 늙은 잣나무 서리를 견디네. 幡幢杳藹列梵刹(번당묘애열범찰)-깃발 펄럭이는 곳마다 절들이 서 있고 雷電閃爍摩靑蒼(뇌전섬삭마청창)-번개 불 번쩍이며 푸른 하늘로 솟네. 湛湛霜楓惱客眼(담담상풍뇌객안)-단풍은 나그네의 눈을 괴롭게 만들고 霏霏巖溜漱人腸(비비암류수인장)-바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창자를 깨끗이 하네! 望中不盡眉宇塞(망중부진미우색)-바라보니 세상 명리를 막아주는 것 같아 木落天高回雁行(목락천고회안행)-나뭇잎 지고 하늘은 높은데 기러기는 돌아가네. 김시습(金時習) 가을 초입(初入)에 흰 구름이 계곡에 그림자를 드리운 도봉산을 올랐다. 서울 근교의 산을 찾을 때마다 새삼 떠오르는 역사의 인물은 삼봉(三峰) 정도전과 무학대사다. 이들은 조선 개국과 동시에 한양천도(漢陽遷都)의 주역(主役)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양(漢陽)의 외사산(外四山)인 삼각산(三角山) 관악산(冠岳山) 용마산(龍馬山) 덕양산(德陽山)을 오를 때마다, 한강(漢江)을 중심으로 조선의 수도(首都)를 서울에 정(定)한 이 두인물의 미래 역사를 예지(叡智)하는 높은 이상(理想)에 찬탄(讚嘆)을 금할 수 없다. 600년전 국가 수도의 설계가 서울 인구 1천만이 넘고 국가인구 4천만이 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세계사 적으로 한 왕조가 500년을 넘는 것은 흔한 것이 아니다. 어그제 베이징 올림픽을 치른 중국도 4천년의 역사 속에 많은 나라들이 세워지고 망하여 졌지만 300년을 지속한 나라가 없다. 서양사에도 로마 천년을 제외하고는 오백년 역사는 극히 드물다. 한 자료에 의하면 1428년(세종10)에 서울 호수(戶數)가 1700호에 인구 103,000명이라는 것을 보면 정도전은 500년 후의 미래를 보는 천년대계(千年大計)의 안목과 포부를 갖인 넓고 큰 대인(大人)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글을 쓰면서 아쉬운 것은 왜 이 시대에는 삼봉(三峰)같은 큰 인물을 보기 어려운가 하는 안타까움이다. 크고 흰 바위가 산 전체를 이루고 있어 길(道)와 봉우리(峰)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 산은 일설에는 조선왕조의 건국의 길을 닦고 국가 발전이 도봉산(道峯山)의 정기(精氣) 때문이라 전하는 말이 있다. 도봉산의 주봉(主峰)은 자운봉(紫雲峰)이다. 자운(紫雲)이란 뜻은 자줏빛 구름을 말하며 불가(佛家)에서는 부처님이 이 자운(紫雲)을 타고 나타난다고 하여 매우 상서(祥瑞)로운 징조로 여기는 구름이다. 조선 건국이 비록 유교의 국체(國體)로 출발하였지만 전체 조선인과 사회의 정서의 내면에는 불교의 분위기가 짙게 배여 있었으므로 조선 개국의 길을 열었다는 도봉산(道峯山) 최고봉에 상서로운 이름인 자운(紫雲)을 붙인 것을 보면 국운(國運) 흥업(興業)의 염원(念願)을 짐작할 수 있다. 세종 때의 대문장가이며,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특별시장)을 두 번이나 지낸 서거정은 천축사(天竺寺)의 뒷봉우리 만장봉(萬丈峰) 아래에서 도봉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아래와의 시를 읊었다고 한다. “높은 다락에서 술잔 들고 한 번 웃어 보는데 수많은 푸른 봉우리 뾰족뾰족 무더기를 이루었고 십 년 세월 하는 일 없이 귀거래시만 지었는데 백발이 다정하여 자꾸만 재촉하누나.” 마치 어제 초가을에 도봉산을 오르는 우리들을 두고 노래 한 것 같다. 도봉산 밑 방학동 골짜기에는 조선 제10대 임금인 연산군의 묘역도 있다. 연산군 묘는 중종반정으로 왕위를 박탈당했기에 능(陵)이 아니라 묘(墓)라고 하며 광해군 묘와 같이 아직까지 문화재 청에서 개방을 안 하고 있다. 복권(復權)이 안 된 탓일까 ! 우연이라 할까 지금 필자는 도올 김용옥이 쓴 “삼봉 정도전의 건국 철학”을 읽고 있는 중에 도봉산 바위를 등반 하니 또 다른 의미를 생각게 한다. -농월
가을 메뚜기 階砌亂蛩鳴(계체란공명)-섬돌 계단에는 메뚜기 소리 어지러운데 庭柯煙露清(정가연로청)-정원의 가지에는 이슬 안개 맑구나. 月中鄰樂響(월중린악향)-달 가운데는 음악 소리 가깝고 樓上遠山明(루상원산명)-누각 위에는 먼 산이 밝다 珍簟涼風著(진점량풍저)-귀한 자리에는 찬바람이 이는데 瑤琴寄恨生(요금기한생)-고운 거문고는 삶을 한탄하누나. 嵇君懶書札(혜군라서찰)-그대는 편지를 게을리 쓰는데 底物慰秋情(저물위추정)-어떤 것이 가을 정을 위로할까나 작자미상(作者未詳) 가을 메뚜기라 하면 누런 벼이삭 사이에 노르스름한 몸체에 약간 녹색의 다리와 보석을 붙인 듯 한 두 눈과 마치 이끼낀 바위 밑에 자리한 과묵한 돌부처처럼 축 처진 얼굴을 한 메뚜기를 연상하는데 위의 한시에서는 “섬돌 계단에는 메뚜기”라고 하였다. 아마 조그마한 정자가 딸린 이집은 벼가 익은 논이 가까운데 위치한 모양이다. 도시에서는 농촌의 가을철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지금쯤은 벼가 가장 잘 익는 기간이다. 특히 올해는 비가 적고 일조량이 많아서 과일 맛도 달고 벼알도 잘 여물 것 같다. 노랗게 잘 익은 벼이삭을 보면 정말 흐뭇한 마음이 든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벼 잎 메뚜기가 뒷다리를 탁탁 차면서 비집고 다니는 소리가 마치 숲속에 이슬비 내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대나무밭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때로는 녹두(綠豆)를 got볕에 말리면 타다닥 튀면서 까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 손으로 탁 덮쳐서 한 마리 잡으면 손아귀에서 발버둥치는 촉감에 손바닥속이 간질간질하다. 옆에 있는 피(직稷)를 뽑아 가는 줄기를 만들어 메뚜기 등을 뀐다. 한 마리 두 마리-- 간혹 소금을 약간 넣고 볶아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냥 버리거나 닭 먹이로 주기도 한다. 충만하고 흐뭇한 가을 들녘에 그려지는 초동(草童)들의 서정적(抒情的)인 장난에 메뚜기는 목숨을 바치는 순교적 희생양(犧牲羊)이 되고 있다. 황금빛 들녘의 가을 메뚜기는 김제 만경벌을 제외하고는 큰 평야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을 풍년의 전령사 같고 수확기에 빠질 수 없는 친구 같은 곤충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메뚜기는 매우 골치 아픈 해충으로 소개된다. 일반적으로 메뚜기를 한자로 사종(斯螽)이라 쓰는데 조선시대나 중국에서는 메뚜기 떼가 앉는 곳엔 순식간에 땅위의 풀 하나도 남아나지 않게 피해를 주어 황충(蝗蟲)이라고 했다. 또 펄벅의 소설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 떼의 피해는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다. 특이 조선왕조실록 중에 세종 때를 보면 무려 15년 동안 조선8도에 메뚜기 피해가 크다는 기록이 나온다. 구약 성경에도 출애굽기10장에 모세가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는 장면에서 메뚜기 떼가 나온다. 신명기28에도 메뚜기가 모든 소산물을 먹어치워 저주의 비교 가된 기록이 있다. 미당 서정주의 ≪논 가의 가을≫ 을 소개 한다. 가을 논에서 노랗게 여문 볏모개들이 “좀 무겁다”고 머릴 숙이면, “좋지 뭘 그러세요?”하고 메뚜기들은 툭 툭 튕기며 날고, 그 메뚜기들의 튀어나는 힘의 등쌀에 논 고랑의 새끼붕어들은 헤엄쳐 다니고, 그게 저게 좋아서 논 바닥의 참게들이 고욤나무 논둑길까지 엉금 엉금 기어나가며,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다!”고 농군아저씨들은 어느 사인지 열 두발 상무를 단 패랭이를 쓰고서 그 기인 열 두발의 상무를 마구잡이로 하늘에다 내젓고 있었네. 마치 고향의 가을 들논에 서 있는 기분이다. 이나저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신문방송에 농촌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하니 그나마 가을 메뚜기에게 느끼는 향수(鄕愁)마저 잃을지 모른다. 메뚜기 없는 농촌의 가을 추(秋)자가 무슨 의미기 있으랴-- -농월-
첫댓글 대한민국 모든 신앙인이 농월님의 위 글을 보시고 실천하고 반성 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올것 입니다, 말씀 넘 감사하고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