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실주의 연극이란 어떤 연극인가?
우선 사실주의 연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의 뜻풀이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주의를 한자로 표기하면 ‘寫實主義’라고 쓴다. 여기서의 ‘寫’는 복사한다는 의미, 즉 모방한다는 뜻이다. ‘實’은 실재나 현실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실주의의 뜻풀이에서 그 개념을 정리하자면, 서실주의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나 실재를 그대로 모방하여 무대 위에 재현하는 연극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주의 연극은 19세기 말부터 생겨난 연극 형식이고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을 사실주의 연극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다. 사실 사실주의 연극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 연극 형식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문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 발생설인 ‘모방본능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모방본능설은 무엇인가? 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모방본능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인 ‘부부놀이’이다.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는 서로가 부부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은 모방하는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그러한 본능에 의해 예술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주의 연극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이나 사회, 그리고 실재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여 무대 위에 재현해 내는 연극을 말하는 것이다. 자유극장을 창시한 연출가 앙트완느는 초연 시 자기 집안의 살림살이를 무대로 옮겨 왔다고 한다. 즉, 집을 꾸미기 위해서는 집에 있는 물건들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사실주의 연극은 무대 미술과 장치에서 확연하게 그 특징이 드러난다. 만약 시대 배경이 1960년대의 한국이고, 공간 배경이 농촌의 초가라면 무대 미술과 장치에 있어서 초가를 실제 모습 그대로 만들어 무대 위에 장치해 놓는다. 왜냐하면 사실주의는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기 때문이다. 배우의 연기도 실재와 똑같다. 우리가 말하는 그대로 말하고 우리가 움직이는 그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밥 먹는 장면을 예로 든다면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밥과 국을 먹고, 심지어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이는 모습 그대로 연기해 보이는 것이다.
사실주의 연극 양식의 무대를 ‘프로시니엄 아치’라고 한다. 액자무대 혹은 상자 무대라고 하는데, 좌우와 후면의 3면이 막혀 있고 관객들이 앉아 있는 객석 쪽만 뚫려 있는 무대를 말한다. 우리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극장 무대는 이러한 프로시니엄 아치이다. 그렇다면 왜 사실주의 연극 양식의 무대가 이렇게 되었을까? 예를 들면 이렇다. 사실주의 연극이란 일상이나 현실,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여 무대 위에 재현하는 연극 양식이다. 그러면 인간의 일상과 현실을 모방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인간의 일상생활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방이다. 그런데 방은 사면이 모두 막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일상을 관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좌우와 후면을 닫혀 있는 그대로 남겨 놓고 전면의 한쪽 면을 뜯어내고 방 안의 일상을 관찰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실주의 연극 양식의 전형적인 무대인 프로시니엄 아치인 것이다. 이런 원리를 ‘제4의 벽 이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주의 연극 양식은 눈에 보이는 것만 묘사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은 묘사할 수가 없다. 즉, 인간의 눈에 보이는 외면만 그릴 수 있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는 그릴 수가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타난 연극 양식이 바로 비사실주의 연극 양식이다. 그 대표적인 연극이 표현주의 연극이다. 표현주의 연극은 인간의 무의식, 분노, 충동과 욕망 같은 내면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생겨난 연극 양식이다. 이러한 표현주의 연극 양식 말고도 서사극, 상징주의 연극, 부조리극, 잔혹극 같은 실험적인 현대연극의 양식을 우리는 보통 비사실주의 연극이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사실주의 연극 양식과 내용이나 기법 등 에 있어서 상반된 연극 양식이 바로 브레히트가 창시한 서사극이다.
3. 비사실주의 연극이란 무엇인가?
비사실주의 연극 양식은 사실주의 연극 양식과 상반된 연극 양식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양식이 표현주의 연극이다. 표현주의 연극은 인간의 내면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실주의 연극 양식의 내용이나 기법을 피한다.
스웨덴의 극작가인 스트린드베리이가 대표적인 표현주의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꿈의 연극>은 과거와 현실, 그리고 환상과 현재가 서로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겹치며, 악몽과 같은 현실이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한 채 표현된 난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무대 미술과 장치도 사실적으로 하지 않고 원색에 가까운 자극적인 색깔에 비사실적인 일그러진 기하학적인 무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배우 역시 마치 꿈속을 거닐고 있는 몽유병자 같이 시적인 대사를 읊조리고, 무의식의 일그러진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의 공간 개념도 모호하게 표현된다. 사실주의 연극 양식은 한 무대 위에서 하나의 장면만 보여주지만, 표현주의 연극은 한 무대 위에서 두 개의 장면이 동시에 표현된다. 그리고 사실주의 연극은 현실 장면에서는 현실만 표현되지만, 표현주의 연극에서는 현실과 과거, 그리고 환상과 현실이 서로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꿈의 장면과 독백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주의 연극 양식은 플롯에 있어서도 사건과 사건, 그리고 장면과 장면이 반드시 논리적인 인과 관계를 통해 발전해 나간다. 그러나 표현주의를 비롯한 비사실주의 연극 양식은 사실주의 플롯과 같은 일직선적인 사건 전개가 아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논리적인 인과의 법칙을 무시하고 뒤섞인 형태로 플롯이 전개되는 형식을 취한다.
이처럼 서실주의 연극 양식은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의한 플롯으로 있을 수 있는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연극 양식이지만, 비사실주의 연극 양식인 표현주의 연극은 비논리적인 플롯 형식으로 인과관계를 무시하며 무대장치 역시 비사실적이다. 그리고 사실주의 연극 양식은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비사실주의 연극 양식인 표현주의 연극은 비논리적이고 혼란스러운 꿈의 세계를 보여주는 연극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