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 행어, 멸오치, 멸, 앵매리, 국수멸, 드중다리, 중다리, 사와멸치, 눈퉁이
너도 생선이냐 할 정도로 작고 힘없이 보이는 멸치, 그러나 생선구경 한번 변변히 못하던 산간벽지에서 조차 알아주는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어류가 바로 멸치입니다.
국 끓일 때 멸치국물을 따를게 없고, 멸치젓이 빠지면 김장이 안되고, 마른 멸치는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안주감으로 더 없이 좋고, 갓 잡은 굵은 알배기는 회맛이 일품이고, 소금구이 또한 별미인 그야말로 우리 식탁의 감초입니다.
(세종실록)의 토산물족에는 멸치가 보이지 않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 산물로서 행어(行魚)가 보이는데 이것을 멸치로 보여집니다. 멸치는 예로부터 제주지방에서 행어로 불리던 소형어류(정어리, 곤어리 등)중 가장 크기가 작은 종을 가르킵니다.
멸치란 물고기는 모슬포 연안수역에 떼를 지어 들어와서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제풀에 언덕에까지 뛰어 올라가는 물고기인지라 바다를 잘 헤엄쳐 다닌다는 뜻에서 제주지방에서는 행어라고 불렀다 합니다.
멸치는 제주에서는 행어, 남해안에서는 멸오치, 전남에서는 멸, 강릉에서는 큰 멸치를 앵매리, 포항에서는 중간크기의 멸치를 드중다리, 중다리, 작은 것을 사와멸치, 눈퉁이, 진도에서는 국수멸이라는 방언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산물 검사법에 의하면 건조품 중 전장 77미리 이상을 대멸, 76-46미리를 중멸, 45-31미리를 소멸, 30-16미리를 자(仔)멸, 15미리 이하를 세(細)멸 이라고 부릅니다.
한자로는 멸치(蔑致), 멸어(滅魚), 멸치어(滅致魚)로 불리는데,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멸치란 이름에 얽힌 또 하나의 설은 물에서 나온 물고기 대명사인지라 한자어로는 수어(水魚)라 하며 고유어로는 물의 고어인 '미리'가 '며리', '멸'로 음운 변화하고 물고기를 뜻하는 접미사인 '치'를 합성하여 멸치로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본에서는 아래턱이 위턱에 비하여 몹시 작아 '가다구찌이와시' 즉 정어리류 중 턱이 하나밖에 없는 종이란 뜻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구미 각국에선 '엔초비(anchovy)'라 부릅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조선 동북해 중에서 산출되는 멸어 또는 며어는 일망(一網)으로 배를 가득 차고 어민이 이를 즉시 말리지 않으면 썩으므로 거름으로 삼기도 하는데, 건제품인 마른 멸치는 일용항찬(日用恒饌)으로 삼는다'고 하였고, 또한 '멸치는 회(膾)도 하고 구워 먹거나 말리기도 하고 기름을 짜기도 하는데 일망여산(一網如山)이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慈山魚譜)에는 '멸치(皺魚:추어)는 몸이 작고, 큰놈은 서너치, 빛깔은 청백색이다. 6월초에 연안에 나타나 서리 내릴 때에 물러간다. 성질은 밝은 것을 좋아한다. 밤에 어부들은 불을 밝혀 가지고 멸치를 유인하여 함정에 이르면 손 그물로 떠서 잡는다. 이 물고기로는 국이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도 만든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멸치는 생태계 먹이 사슬 속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속하지만 바다에 서식하는 2만종이 넘는 물고기 중 가장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있는 어종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대부분 육식성 어류의 먹이가 되는 멸치가 어떻게 대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일까?
이는 몸의 소형화, 다산, 빠른 부화, 조기 성숙 등의 적응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육식성 어류의 먹이가 되어야 할 운명인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자라서 많은 새끼를 번식시켜야 하므로 다른 물고기보다 짧은 생식주기를 갖습니다.
멸치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이 머리와 내장까지 통 채로 먹을 수 있는 생선입니다. 따라서 단백질과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하여 성장기의 어린이나 임신부는 물론 여성의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도 적극 권장할 만한 국민 건강 식품입니다.
멸치와 궁합이 잘 맞는 식품으로는 풋고추를 들 수 있습니다. 풋고추는 일반 고추보다 비타민 함량이 휠씬 많고 매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며 멸치의 감칠맛과 잘 어울립니다. 또한 풋고추에는 섬유질, 철분, 비타민A와 C가 풍부합니다. 따라서 멸치 풋고추 볶음은 두 식품 속의 영양을 극대화하고 멸치의 부족한 성분은 보충해 주는 합리적인 음식입니다.
멸치는 단백직(말린 멸치 100그램당 47.4그램)과 칼슘(말린 멸치 100그램당 1,905미리그램) 등 무기질이 풍부해서 특히 발육기의 어린이나 성장기의 청소년, 임신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좋은 생선입니다.
불안하거나 신경질이 나는 것은 체내 칼슘이 부족하기 때문에인데 매일 일정량의 칼슘을 섭치하면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많이 먹어두는 것이좋지, 나이 든 후에 먹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멸치는 지방질이 가장 많은 산란직전의 초봄이 제철이지만 가을철에도 봄에 못지 않은 지방질을 함유하고 있어 많이 먹히고 있습니다.
몇년 전만해도 기장 대변항에는 오염된 바닷물로 많은 악취가 나서 항안에는 고기가 살 수 없는 바다였습니다. 멸치잡이 어선들의 멸치털이로 수십년간 쌓인 멸치비늘과 다른 오염 퇴적물이 원인이었습니다.
30센치미터 쌓인 멸치 비늘등을 제거하는 준설공사로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다대포, 울산 근처에서 잡아오는 멸치잡이 어선들의 모항인 그 대변항에서 4.21-4.23(3일간) 제 10회 기장 멸치 축제를 합니다.
축제에 앞서 요즘 기장 근처 횟집에는 맛있는 멸치회와 구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 씨레기나 우거지를 넣은 멸치 찌개에 상추쌈의 별미도요.
산과 들녘의 봄만 찾지 마시고 바닷가로 내려온 봄을 멸치요리와 함께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