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9 성탄 팔부 축제 내 제5일)
축복과 반대의 표징

세상의 어느 아기든지 태어나면 축복을 받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기뻐하며 그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아무도 갓 태어난 아기를 두고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다릅니다. 시메온 예언자의 말을 빌리자면 아기 예수님과 그의 모친은 축복과 동시에 가슴 아픈 이야기의 예고편을 듣게 됩니다. 반대 받는 표징! 곧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탄생이기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동방 이콘들을 보면 성탄을 놀랍게도 죽음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강포가 아니라 미라처럼 흰 붕대 같은 천으로 휘감겨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죽을 때 입는 수의입니다. 이콘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탄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본 것입니다. 마치 시메온 예언자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죽으러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시자 구세주이신 그분은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황홀한 감정이 아닙니다. 진정 사랑은 ‘나’를 죽이고 ‘너’에게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이다지도 힘들까요? 성탄을 경축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면서 왜 나는 여전히 타인을 헌담, 비난, 저주, 비교, 판단하고 있으며, 여전히 내 뜻대로 상대가 해주기를 바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