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내 봉선사로 가는 길목은 단풍이 사람 몇 쯤 순식간에 태워 버릴 것 같은 불길로 번지고 있었다.
그녀보다 몇 걸음 앞서, 불길 속을 걸어가고 있던 중년의 여인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민수 엄마도 들었지? 어떻게 그런 일이...... .”
“그러게,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나라가 불경기다 보니 절이라고 안 어렵겠어? 그렇다고 스님들이 헛소문까지 퍼트려 놓을리는 없구 말야...... .”
두 여인은 지금, 그녀가 가고 있는 봉선사에서 최근에 있었다는 불가사의한 일에 대한 소문을 가지고 얘기하는 중이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던 지난 말 .
봉선사에서는 신도들도 모르는 사이에 두 가지 의식이 있었다.
그 것은 *등신불* 의식과 *다비식*이었는데 한 날을 택해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진행이 되었으며, 이 두 가지 의식을 하기까지에는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사찰과 관련된 인물들과의 드러낼 수 없는 사연이 숨어 있었다.
그러니까 꼭 17 년 전의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젊은 남자와 여자가 이 사찰에 머물며 수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늦은 밤이면 사찰의 교학부장이나 주지와 두 남녀가 앉아 불가의 가르침이나 업과 공덕, 복운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찰의 무서운 규율이나 상하의 절대적인 모습과 달리 이들 남녀는 단 한 차례도 머리를 숙이는 일이 없었고, 때론 주지와 교학부장을 상대로 파절도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들 남녀가 절의 주지와 교학부장에게 순순히 따를 수 없는 수행상의 차이가 있었는데, 그 중의 가장 큰 차이는 *정업(定業)*이라 해서 고락(苦樂)의 과보(果報)를 받을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업인(業因)으로, 과거세로부터의 선과 악의 행위가 있어 현재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받아야만 하는 과(果 )를 말하는데, 낙과(樂果)를 받는 것을 *선(善)의 정업이라 하고, 고과(苦果)를 받는 것을 악(惡)의 정업이라 하여, 그 과보를 받는 기간에 대해 선, 악, 각각의 3종을 두고 삼시업(三時業)이라 하여 잠집론권 8 등에 설해져 있다는 순현수업(順現受業), 순생수업(順生受業), 순후수업(順後受業)이라 하는 가르침 중에서, 현세에서 행한 업인이 현세에서 과보로 나타난다는 숙업(宿業)인 순현수업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고 있었으나, 그 과보가 현세가 아닌 다음 세와 도는 그보다 더 먼 뒤의 내세에 받게 된다는 순생수업, 순후수업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수행상의 미혹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수행의 공덕(功德)과 관련하여 주지가 강조하는 체험담 부분이었는데, 젊은 남녀의 아견은 한결같았다.
그것은, 중생으로 이 세상에 와서 부처의 가르침을 만나고 수지했다면 그 자체가 이미 공덕인 것을, 화타행으로서의 한 방편을 사용함에 있어 재물의 공덕 등의 결과가 이웃과 함께 나누어 가지는 삶으로서의 체험적 결과가 아닌 이상은 방편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참 공덕의 깨달음은 아니라는 아견이 있었고, 그러한 표면적 모습으로서의 공덕론을 제시한다면 각자의 업의 깊이나 크기를 알지 못하는 중생으로서는 자칫 낙오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주지와 교학부장의 부족한 이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중생들의 부족한 이해에서 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만큼은 쉽게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주지와 교학부장은 이들 남녀를 미워하지 않았고, 자주 자리를 마련하여 갖는 대화의 시간도 수 년 간에 걸쳐 이어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젊은 남자는 파릇한 잎들이 돋는 봄 길을 따라 속세로 떠났고, 여인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사찰을 떠났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고 할까, 화살처럼 날아갔다고 할까.
“저것 좀 봐!”
주지는 교학부장에게 연못을 가리켰다.
“네, 큰 스님! 무슨...... .”
교학부장은 주지의 눈길을 좇아갔지만 작은 연못가에는, 세월이 한 번 갈 때마다 대나무 같은 마디 하나씩이 새로 만들어지고, 그 마디에 옥색의 아주 작은 꽃송이가 나이의 숫자만큼 핀다하여 죽초竹草라 불리우는 희귀초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
“꼭 그 해였어...... , 저 생명이 연못가에 처음 나왔던 때 말야...... .”
“아--, 큰 스님.”
“꼭 열일곱 송이야. 마디는 열일곱 마디를 자랐고.”
“네, 강산이 두 번 변한 세월입니다. 큰스님...... .”
“곧 올 거야.”
큰 스님은 오늘따라 교학부장이 알아듣지 못할 말만 툭툭 던지고 있었다.
“그 두 사람 말야. 벌써 잊은 것은 아니겠지?”
“아! 큰스님!”
세상을 삼켜 버릴 것만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둠과 함께 시작된 비라서인지 사찰마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속세에서 달려 온 벼락이 한 번 치고 나면 귀를 찢는 천둥이 답례를 하듯 속세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축시를 넘어서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잠잠해져 있었다.
“그래, 보살님께서는 여행 잘 하셨는가?”
주지가 남자에게 찻잔을 내밀며 물었다.
“예! 역시 좋은 곳이더군요. 마치 꿈속 같은....... .”
남자는 눈가에 웃음을 띠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입술만 축이듯 하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남자의 눈빛이 주지의 동공에 부드러운 선을 긋는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졌고, 두 손으로 찻잔을 천천히 회전시키며 주지가 입을 열었다.
“우리 보살님, 지금쯤은 소원성취 하시고 유명한 검사, 판사님이라도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째 머리는 한 번도 안 감으신 것 같고, 이제야 생명론을 깨달으셨나 이가 집을 짓겠네 그려.”
지그시 눈을 감으며 주지가 말했다.
“예! 놀이시설이 어찌나 잘 되어 있던 지요. 가던 길 멈추고 이 것 저 것 다 타보았습니다.”
“저런...... , 그래 어떤?”
“그 날 사찰을 나가 서울로 갔는데 어찌나 볼 것이 많던 지요. 나중에는 배가 고파 더는 못 보겠더군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서있는데도 동서남북 변두리에 있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냄새까지 온 몸을 파고들더군요. 시장기나 채우려 다시 걸음을 옮겼는데 별천지 같은 음식집이 보이기에 들어갔지요. 삼천리강산 비구니를 다 봐도 그만한 여자 없을 겁니다. 제 앞에 메뉴판을 내미는 손 하며...... .”
“저런! 시험을 당한 게야. 마도 아주 큰 마를 만났네 그려.”
“불알만 빼고 다 시켰지요. 새우 알. 상어 알. 거북 알..... .”
“저런! 너무 많은 생명을 살해한 게야. 대 업이지, 대 업.”
주지의 대꾸에 남자는 하던 말을 멈추고는 실실 쪼개며 말했다.
“새장 속에 들어가 공짜로 주는 밥만 여러 날을 먹고 나왔지요. 울 속에 갇힌 새...... .”
“음---, 인과응보야. 그런 거 말고 좋은 일은 없었나?”
“노처녀 하나 구해주려고 맞선이라는 걸 보았지요.”
“선업을 쌓았군. 복운을 쌓는 일이지...... .”
“처음 만난 그 여자가 그러더군요. 자신은 S 대 출신에 박사 출신을 원했는데 어쩌다 나이 서른을 넘고 보니 손해 보는듯하게 살아야겠다고.”
“보살님도 일류대 아닌가.”
남자에게서 헛웃음이 흘렀다.
“네 번째 만난 여자, 직업을 묻더군요. 무소속이라 했더니...... . 여섯 번째 만난 여자, 중국 교포였지요. 인물도 반반하고 어찌나 예의가 밝던 지요. 철석같이 믿었는데...... , 하마터면 신랑의 칼에 죽을 뻔 했지요.”
“대단한 업이네 그려. 전생부터 쌓아 놓은...... .”
“기찻길 옆 개구리 삼 년이면 기적소리 낸다고, 문득문득 불경이 떠오르더군요. 특히나 불경보살의 이야기가...... ,그리 노력을 했지요. 한데, 나더러 그만 살라 하네요. 그래, 유언 하나 남기려고 다시 왔지요.”
“다 부질없음이야. 하나 어쩌겠는가? 님의 뜻인 걸.”
“등신불에 대해 아시지요?”
“허허 , 등신불이라...... , 그래 어떤 등신불을 말하시는가?”
“제가 죽거든 몸을 독에 넣어 주세요. 그리고는 7년이 지나고 불길이 번지는 시월 마지막 날에 독의 뚜껑을 열고 이 몸을 꺼내 주세요. 제가 옳게 살았다면...... .”
“그 몸이 섞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또 하나의 부처가 될 거란 말이지? 보살님은 그 무모한 일을 내가 해줄 것이라 믿는가?”
사내는 말이 없는 대신, 환한 낯빛을 주지에게 보내고 있었다. 주지의 눈빛이 남자에게서 떠나 여자에게로 닿고 있었다.
“우리 보살님도 살자고 온 건 아닌 게야.”
“네, 스님. 꽃잎 거두기 전에 알고자 해서 왔습니다. 부탁도 있구요.”
주지를 바라보며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깊이 빨아들였던 연기를 한꺼번에 뺕어냈다.
“저런, 우리 보살님보다 독가스에 내가 먼저 죽겠네 그려. 내 살아 있을 때 얘기나 들어보세. ”
“궁금합니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고 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런, 사는 게 다 미혹일 텐데 뭣이 그리 궁금하신가...... .”
“큰스님은 입산하시어 이제껏 승복을 입으셨고, 머리를 기르지 않으시며 행적 또한 별난 큰 스님으로 세상 중생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내가? 저런...... , 그런데?”
“하지만 저는 비구니의 길을 접고 내려간 뒤 놀이동산에 어울리며 살았지만 불경을 수지했고 님의 심부름을 하며 살았습니다.”
“......음!”
“대저, 참 불자를 구분하여 가림에, 희로애락을 버리고자 속세를 떠났고 승복을 걸쳐 깨달음을 구하는 이 땅의 스님들과, 놀이동산을 즐기며 승복을 단 한 번도 입지 않고 머리를 기르고 살며 님의 심부름을 해온 저와의 승속의 구분은 어느 쪽이 분명한지요.”
여자의 말에 주지의 눈이 다시 지긋이 감겼다. 그리고는 웃음을 담아 뜬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음--, 시험이야. 모든 부처는 도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마의 시험을 이겨냈지. 그렇다면 내게 있어 이보다 더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여장 보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다니...... . 이건 도에 이르는 분명한 서광이야...... . 그래, 어떤 내기를 하고 싶으신가? 기쁨으로 하겠네.”
여자는 주지의 눈을 직선으로 쳐다보며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모 사찰의 큰스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입멸하실 거라 알고 있습니다. 그 날짜와 시간까지도 다 공개가 되어 신통하기가 이를 데 없고, 살아 계시는 진짜 부처님으로 알려져 있는 것두요.”
“그래, 그 분은 부처 중에 부처지. 암, 그렇구 말구....... .”
주지는 어느 한 방향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그런 모습만 보아도 대단한 인물의 소문인 것만은 확실했다.
“송구하지만, 저도 그 시기에 떠나라는 도장을 받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래, 생도 멸도 없는 건 오직 부처뿐이지. 하지만 모든 목숨에는 한이 있는 거야...... .”
“그 스님의 다비를 치루면 사리가 한 백 여 개 나올까요? 하지만 저는 돌아만 다녔으니 관절 마디마디에 사리가 자리 잡을 시간도 없었겠죠? ”
“그건 도의 깊이와 크기, 넓이, 그리고 수행의 참됨과 거짓을 한 단면적인 증거로 할 수 있는 중요한 거지. 님의 심부름을 어찌 했는가를 결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그 이상 확실한 게 없어.”
“그렇다면 큰스님, 그 스님이 열반하시는 날 제 몸도 태워 주세요.”
“태워라?”
“네, 그 분의 껍질은 다 타고 사리가 남겠지만, 저에게서는 사리 대신 세 치 혀만은 그대로 남을 거예요. 살아있는 동안 제가, 님의 가르침대로 바르게 살았다면 말이지요.”
보살이란, 산스크리트語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준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는 일반 사람을 일컬어 하는 말인데, 주로 여성을 일러 보살이라 하고 남자에게는 거사 또는, 처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남자에게 보살이라고 하여 어떤 다른 의미가
첫댓글 습작 또는 메모라고 표기해야 하는데 고쳐지지가 않네요~~^^* 그래 염치없게 소설이라고 해놓앗습니다. 민사모의 진짜 소설가님들께서 헤아려 주세요~~^^*
와~ 드디어 모나리자님 소설을 보게 되나요. 재미있게 읽겠습니다.
저두 와~~~^^* 시인 독자님을 확보하다^^* 빨리 언론사에 알려야지^^* 고맙습니당^^* 감사합니당^^* 은하영님^^*
와 이제야 모나리자님께서 전공을 살리시려나 봅니다. 아침은 무지 바쁘고 오후에 봅시다 ^^
음...불가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이야기군요, 특이한 스토리라 기대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숨을 곳이...... ~~~ 민사모 진짜 소설가님들께 죄송!!! 용서를 구합니다.~~ 이쁘게 이쁘게 봐주세요~~^^*
모나리지님 ,저 삐졌습니다, 왜 여기는 안오시는지요? 누가 섭하게 하셨는지요 ^^ 기다랍니다, 길손님도 안오시고...
보살이란, 산스크리트語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준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는 일반 사람을 일컬어 하는 말인데, 주로 여성을 일러 보살이라 하고 남자에게는 거사 또는, 처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남자에게 보살이라고 하여 어떤 다른 의미가
주어졌는지 궁금하여 토를 올려 보았습니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아,리버님 그렇군요 남자에게 처사 .또는 거사 군요 .또 한가지 배웠습니다.
나도 늦었지만..와아~~~~~~~~~! ^^* 드디어 소설 기질의 보따리 푸신 모나리자님 반가워요^^* 화이팅!!입니다^^*
님에 소설 잘 읽었습니다.
무운리버 님~~불가에서의 정확한 보살의 의미는 성문,연각,보살,불계,라는 사성의 의미로서 남녀 구분 없이 자신도 구도하고 이웃에게도 전해 함께 공유하고 알아간다는 것을 뜻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