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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8:26
복음은 새로운 관계로의 초대입니다. 그것의 핵심은 사랑이고 사랑은 상호 적이어야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큰 사랑이 동기이지만 인간 편의 간절함과 진정성 역시 중요한 요건입니다. 그 관계가 깊어가는 데 있어서 우리의 역할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간다게를 통해서 알아봅시다. The gospel is an invitation to a new relationship. The core of it is love, and love must be mutual. Of course, God's great love is the motive, but human convenience desperation and authenticity are also important requirements. Let's find out how much our role affects the relationship in dee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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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이 어지간히 돌아다닌 모양입니다. 앞서 마술 하는 시몬을 만나더니 이번엔 주의 사자가 일어나 가라고 해서 만난 사람이 에디오피아 내시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내시는 왕의 최 측근 인지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내시도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많아 큰 권세가 있다고 했고 병거를 타고 예루살렘 까지 왔다 갈 정도의 신분이면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장급입니다.
Philip seems to have wandered around a lot. Earlier, he met Simon who was doing magic, and this time he was told by the Lord's Lion to stand up, so the person he met was an Ethiopian eunuch. In ancient society, eunuchs were the closest aides of the king, so he was able to wield enormous power. The eunuch in the text also said that there was a great power in the queen's coffers, and if he was in a position where he traveled to and from Jerusalem on a private car, he is now the chief of staff to the pre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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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자는 에디오피아 사람 간다게에게 영적인 필요가 있는지를 잘 아셨을 것입니다. 나는 성도가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일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보시고 먼저 가 계시고 먼저 일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복음의 증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단순한 순종과 기동성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향해 늘 귀를 열고 있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갈급하고 곤궁하여 복음이 필요한 세상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적재적소에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The Lord's Lion must have been well aware of the spiritual need of Gandage the Ethiopian. I believe that before the saints tell you where they want to go and what they want to do, God sees first, goes first, and works first. So what the witnesses of the gospel need may be simple obedience and mobility. You should believe that you can be used in the right place when you are not only always open your ears to the voice of God, but also hold a pride in the world where the gospel i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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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게는 이방인이면서 유월절과 오순절을 지키러 예루살렘 순례 길에 오를 만큼‘열심’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할 만큼 진리를 향한‘열정’도 있었습니다. 빌립에게 들은 복음을 즉시 수용하고 세례를 요청할 만큼 결단력 역시 있었습니다. 지나 놓고 보니 내가 열심과 열정 하나는 누구 못지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윤 00, 박 00, 이 00, 김 세윤 같은 세계적인 신학자 급 바이블 티처들을 측근에 붙여 주었고 심지어 존스토트-데니스레인-RT프란스-빌레그레함의 현장 강의를 들었습니다.
Gandage was a stranger and had the 'hard work' to go on the pilgrimage route to Jerusalem to observe Passover and Pentecostal. He was so passionate about the truth that he acknowledged his ignorance and asked for help. He was also decisive that he immediately accepted the gospel he had heard from Philip and asked for baptism. In hindsight, I found that my passion and enthusiasm were no less than those of anyone. God attached world-class bible teachers such as Yoon 00, Park 00, Lee 00, and Kim Se-yoon to his aides and even took field lectures by Johnstott-Denislane-RTfrance-Villegre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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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의 강의를 수 십 번씩 읽고 쓰고 벤치마킹했어요.. 리차드 개핀의 ‘부활과 구속‘을 북 스터디 할 때는 아마도 새벽 5시에 모여 쉐어링을 하고 출근을 했고, 늘 예습 복습을 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습니다. 자다가 임들의 꿈을 다 꾸었고 심지어 잠꼬대를 할 정도도 미쳐서 살았습니다. 술, 담배, 친구, 모든 불의한 것들을 한 방에 아웃, 어느 날은 아내의 고가 치과 머신을 내다버렸으며 딸들의 이름은 물론, 직계 가족의 미풍양속을 기독교식으로 다 바꾸었습니다.
I read, wrote, and benchmarked their lectures dozens of times. When I was studying books on Richard Gaffin's Resurrection and Constraint, I gathered around 5 a.m. to share and go to work, and I always pre-study and review,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I had dreams of my children in my sleep and was crazy enough to even talk in my sleep. Alcohol, cigarettes, friends, everything injustices were thrown out in one shot, and one day my wife threw out her expensive dental machine, changing the names of my daughters and the customs of my immediate family into Christian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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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요시아가 다시 살아서 나와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과 열정을 품고 20년을 살았습니다. 갈증과 의문을 달고 살았으니 간다게의 마음이 공감이 됩니다. 빌립은 간다게의 영적 갈증을 간파하고 그가 고난 받는 종에 관한 이사야의 말씀(사53:7-8)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알고 그 본문에서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복음을 전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으로 예수를 설명할 준비가 다 된 복음의 증인입니다.
Indeed, I lived for 20 years with hard work and passion that would not lag even if Josiah came out alive again. Since I lived with thirst and questions, I can relate to Gandage's heart. Philip saw through Gandage's spiritual thirst and knew that he did not understand Isaiah's Word of Suffering Species (Sa53:7-8), and started from the text and delivered the gospel about Jesus. He is a witness of the gospel who is ready to explain Jesus with words at any time and in any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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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드디어 때가 되매 빌립과 특정한 방식으로 조우하게 되고 성령의 스파크가 일어나 복음의 불로 활활 타오르게 만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기독교 역사적으로도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독일에서부터 시작된 성경비평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고도로 성행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이 지은 저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Then, when the time came, he encountered Philip in a certain way, and the spark of the Holy Spirit occurred, causing him to burn with the fire of the gospel. Today's text has a very special meaning in Christian history. Biblical criticism, which began in Germany, was highly prevalent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In short, it is merely a human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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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는 이사야서 53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했기에 틀림없이 그 부분은 (40-66장까지 메시아 예언 부분을 통 털어서) 이미 모든 경과를 알게 된 후대 사람들이 첨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비평이 절정에 이를 즈음인 1940년 대에 사해사본이 우연히 발견되어 예수님 이전에 현재와 똑 같은 이사야서가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사해사본 자체의 연대가 의심스럽다 해도, 본문 또한 그 사실을 확증하고 있지 않는가?
Many argued that this part was added by later people after they had already learned the full course of the Messiah prophecy because Isaiah 53 described the events of Jesus' cross so realistically. However, at the height of such criticism in the 1940s, a copy of the Dead Sea was accidentally discovered and proved that there was the same Isaiah before Jesus. Even if the date of the Dead Sea copy itself is in doubt, doesn't the text also confirm the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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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이사야서 53장을 읽은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수님의 직접 제자가 아닌 자가 예루살렘 성전을 경배하러 왔다가 퇴자를 맞고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였지 않는가? 골고다 십자가 사건을 전혀 모르는 예수님 당대의 이방인 유대교인이 현재와 동일한 이사야서를 읽고 믿고 있었다면 이 이상 성경이 인간 저작이라는 비평을 잠재울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 않는가? 이사야는 주전 약 700년경 사람이었고, 또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라고 예언한(시22:18) 다윗은 주전 약 천 년 경 인물입니다.
Didn't the Ethiopian eunuch who read the 53rd chapter of Isaiah in question come to worship the Jerusalem temple and receive the exorcism rather than accept the gospel? If Jesus, who had no idea of the Golgotha cross, was reading and believing in the same Isaiah book as today, isn't there any solid evidence to quell the criticism that the Bible is a human work anymore? Isaiah was a man around 700 years before the war, and David, who predicted that he would draw and share Jesus' clothes (Psalms 22:18), was a man of about a thousand years before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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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세밀한 예언이자 완벽한 성취이지 않는가? 아니 본문의 에디오피아 내시 사건을 찬찬히 다시 따져 보시라. 얼마나 놀랍고도 오묘한 섭리인가? 오히려 성경이 인간의 저작이고 예수는 인간 랍비에 불과했다는 것이 더 안 믿어지는 주장 아닌가?
진리를 향한 열린 마인드가 내게 남아있는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에 우리는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가?
Isn't it too detailed a prophecy and a perfect achievement? No, reconsider the case of the Ethiopian eunuch in the text. How surprising and subtle is this? Rather, isn't it a more disbelieving argument that the Bible was the work of man and Jesus was nothing more than a human rabbi? Do I have an open mind for truth? How much do we seem to influence the sovereign history of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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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디오피아 내시가 왜 이사야서의 내용을 풀지 못 했을까?
-1세기 유대 인들은 고난 받는 메시아를 생각하지 못 함
-이사야서 53장을 자신의 죽음에 비추어서 적용하신 분은 예수님이 처음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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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구해서 세례를 수행하는 것과 선 세례 후에 제자를 삼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
-세례를 율법행위 차원으로 격하시켜서 세례를 통해 신앙의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할례제도의 부활(마28장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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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26-40)
a.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간 빌립이 내시를 만남:26-30a
b.이사야의 글을 읽던 내시의 초청:30b-34
c.빌립의 가르침과 내시의 세례: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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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자가(26a)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26b)
일어나서(26c)
남쪽으로 향하여(26d)
예루살렘에서(26e)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26f)
그 길은 광야라(2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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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가서 보니(27a)
에디오피아 사람(27b)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27c)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27d)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2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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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데(28a)
수레를 타고(28b)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2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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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29a)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2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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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이 달려가서(30a)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30b)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3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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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31a)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31b)
빌립을 청하여 (31c)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3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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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32a)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32b)
양과 같이 끌려갔고(32c)
털 깎는 자 앞에 있는(32d)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32e)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3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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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33a)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33b)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33c)
그의 생명이(33d)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3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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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34a)
청컨대 내가 묻노니(34b)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34c)
자기를 가리킴이냐(34d)
타인을 가리킴이냐(3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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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이 입을 열어(35a)
이 글에서 시작하여(35b)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3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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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36a)
그 내시가 말하되(36b)
보라 물이 있으니(36c)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3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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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37)
이에 명하여(38a)
수레를 멈추고(38b)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38c)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3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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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물에서 올라올새(39a)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39b)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39c)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3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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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은(40a)
아소도에 나타나(40b)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40c)
복음을 전하고(40d)
가이사랴에 이르니라(4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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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게의 영적 필요_ Spiritual needs of Gandage
간다게의 열심_ Gandage's zeal
간다게의 영적 갈등_ Spiritual Conflict with Gand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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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기점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퍼져가게 하신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약속대로 땅 끝을 향해 힘차게 뻗어 갈 복음이 예비 되었으니 제가 그 증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특별히 간다게의 영적 필요를 채워준 준비된 복음 전도자 빌집사처럼 겸손이 배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I praise the Holy Spirit for spreading the gospel to Judea and Samaria starting from Jerusalem. Now that the gospel is ready to stretch vigorously toward the end of the earth as promised, let me live the life of the witness. Let humility be a learner, like a ready evangelist, Bill Butcher, who filled the spiritual needs of Gandage.
2024.5.18.sat.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