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6일, 일요일 오전 독서 중에 책 속의 한 구절을 읽고 문득 느끼는 바가 있어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백년 전 선비라면 이럴 때 한시를 한 수 지어 읊었겠지만, 이 후손은 운자도 모르는 둥 무식해서 언문 글로 느낌을 나타낼 뿐이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벨라루스 출신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마지막 목격자"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소련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엮은 책이다.
그 책 속에서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준 구절로 소개하고픈 것은 두 명의 증언이다
먼저 당시 열 네 살이었던 골드베르크의 증언이다.
"난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흥분하면 안 되거든요.--- 전쟁 기간에 어린애였던 사람이 전선에서 싸운 자기 아버지보다 더 빨리 죽는답니다.--- 난 이미 많은 친구를 묻었지요."
다음은 당시 여덟 살이었던 유라 카르포비치의 증언이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아군 전쟁포로들이 밤에 머물던 자리에 가보면 나무에 껍질을 갉아먹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먹을 것 대신 썩은 말이 던져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말을 갈기갈기 찢었죠.---철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아침에 전부 레일 위에 눞히고 그 위로 기관차가 달리는 모습을 봤습니다.---독일군이 총검으로 어머니들 품에서 아이들을 낚아채어 불에 던지는 것을 봤습니다.---난 이런 기억들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었습니다. 침울하고 의심많은 어른이 되었죠.---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 다 아내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날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지금 나는 묻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봤을까? 만약 보셨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들의 증언에 더 할 나위없는 공감과 슬픔을 느끼면서 줄줄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을 대강 메모한다.
어린 시절 1년의 생활은 성인시절의 몇 곱의 가치를 가지고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1948년 가을에 태어나 1950-53년의 육이오 사변을 무사히 지내고 , 인지능력이 생긴 1953년부터 햇수로 4년 간 인천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부친은 관리(인천시 부시장)였고, 대지주였던 조부의 토지개혁 보상금도 받고 해서 생활은 궁핍하지 않았던 것 같다.
종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당시 의식주에 풍족함이 어디 있었겠는가? 다만 자유공원에 인접한 조그만 관사에서 부모와 다섯 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춥지도 배 고프지도 않고 산 그 때가 내가 가장 행복에 근접했던 시절인 듯 싶다. 의식주가 해결되었고, 생로병사에 무심했던 시절이니까.
그 때의 안온했던 생활이 내 심성에 키워준 그 무엇이, 그 후의 우울했던 청소년기, 괴로왔던 청년기를 거쳐 지금의 노년기까지 나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남들이 보기에 사악한 인간이 아니라면 그것은 유소년 시절의 짧았던 행복에 많이 신세진 것이리라.
이어진 생각.
위의 명제에서 어린이에 대한 학대와 범죄, 특히 성폭행은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망가뜨리는 비극을 초래한다는 주장이 타당하게 도출된다. 그러므로 아동에 대한 범죄는 엄중하게 처벌함은 당연하다.
물건너 미국에서는 아동 성범죄자는 교도소 안에서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 정도로 동료 죄수들로부터 모진 대우를 받는다고 하며, 내 정의감은 이를 바람직하다고 긍정한다.
이에 비추어 조두순 사건에서 그의 극악한 범행, 여아를 강간하고 증거를 없앤다고 저지른 행위에 비추어 12년의 징역형은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이었고 심히 부당한 양형으로서 오판이라고 하겠다.
요즈음 출소한 조두순을 처벌하기 위해 어떤 청년이 조의 집에 침입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 관대한 처분이 내려져야 하지 않을까?
다음 생각.
지금 러시아는 침략자로서 예전의 형제, 우크라이나 인민들을 죽이고 있다.
유아기에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이 소설에서 증언했던 사람들 중 몇 몇 노인은 우크라이나에서 아직 생존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러시아 침략군의 무차별 포화 아래에서 일찍 죽지 못했음을 비탄해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도 북녁에 푸틴 못지 않은 호전적 독재자가 수령으로 있는만큼 안보에 조금의 빈 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하리라. 육이오 사변을 겪은 세대가 다시 전쟁의 참화를 겪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어서 생각.
"마지막 목격자들"에서 증언한 아이들 중 가족이 온전한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가족이 죽어 버려 고아가 되기도 한다.
반면, 육이오 사변을 겪으면서 가족과 친가친족 중 한 명도 죽거나 불구가 되지 않은 우리 박씨 집안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군인으로 참전한 두 분(막내 숙부와 사촌 형)은 무사히 귀환하였고, 아버지 대, 다섯 집안 가족이 피난하는 길에서 폭격을 맞거나 인민군에게 잡혀 변을 당하지도 않았다.
더우기 조부가 삼천석지기 지주였고 부친은 상공부 공무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인 공주에서 그 누구도 부친이나 백숙부들을 고발하여 인민재판에 부치지 않았음은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할까, 조상의 음덕이라고 할까?
듣기로는 증조부와 조부가 소작인들에게 관대하게 대하여 인심을 잃지 않았던 덕분이라고들 한다.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고나 할까?
그런데 의문은 우리 대, 후손 중에 아무도 크게 출세한 자가 없어 경사(慶事)를 치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풀이하기를 소원 티켓 내지 조커가 한 장 있었는데 육이오 사변에 전원 무사로 그 티켓 내지 조커를 써버렸기 때문이라는 설과 경사란 무탈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지, 크게 출세한 다음 죽거나 감방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끝)
첫댓글 早春 볕 내려쪼이는 朴翁 書齋 情景이 좌악 펴지는 글입니다.
時差가 조금 있는 것은 엊저녁때 벌어졌던 寸 소동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오슬오슬 추위가 느껴지고 콧물과 재채기를 동반한 약간의 볼썽없는 모습을 보인 까닭으로 소위 자가진단 키트를 급작스레 사오고 코를 후벼 진단을 하라는 嚴妻님 성화를 조근조근 이겨낸 scene을 연출하다.) 무사히 진정되었습니다만, 아뭏든 아침에 찬찬히 글을 읽으니 절로 배시시 웃음이 흐릅니다. 다음 週 木曜日 저녁무렵에 왁자한 웃음 가득히 채우고 코로나19를 극복하는 '擴大 初木' 모임이 연출되었으면 좋겠다.... 기대해 봅니다. 우리 회장님의 결단을 바라고 있습니다. 朴翁께서도 오랜 蟄居를 풀어주시도록 간곡히 당부합니다.
손주가 코로나에 걸렸다가 나았는데 이어서 개 아빠가 걸려 목하 치료중이랍니다. 가족의 일원이 걸리면 남은 가족도 다 걸린다고 보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식당에 가서 강하지도 않은 내가 만약 걸리면 기저질환이 있어 심하게 앓을 지도 모르고 또 집사람도 걸리게 될터인데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전염력이 좀 수그러들 때까지 결석을 관대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문제) 위 글에서 글쓴이의 의도는 무엇인가? (답) 어린이는 인간의 새 싹이므로 잘 보호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음. 그러면서 글쓴이는 이에 편승하여 자신이 사악하지 않다는 공인을 받기를 기도하고 있고, 특별하지도 않은 일화로써 조상을 자랑하고 후대인 자기들의 무능을 변호하려고 하고 있음. (논술선생의 채점) 참 잘했어요!
이런 걸 두고 북치고 장고치고 피리까지 분다고 하던가요. ㅎㅎㅎ
중국 순자(筍子)의 글에 복막장어무화(福莫長於無禍) 화가 없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다 라는 글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