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사회에서 더욱 빛나는, 소통으로서의 문학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리고 다녀야 하는 2020년 인류는 호모 마스크스. 역사상 유래가 없는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임에도 수많은 응모작품이 답지했다. 놀라웠다. 세상이 코로나로 열병을 앓고 있는 중에도, 홀로 문학의 열병을 앓는 이들의 순수로의 회귀는 충분히 아름답다. 심사를 하면서, 높게 쌓인 작품의 높이 만큼이나 깊고 융숭했던 작품의 내면, 그 속살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즐거움과 설렘의 연속이었다.
산문의 영역은 수필과 동화와 소설에서 일기, 독후감에 팩션, 판타지, 호러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확장되는 중이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놀라운 창의력과 빛나는 문장력으로, 악수조차 할 수 없는 비대면 사회에서의 소통을 꿈꾸는 응모자 여러분 모두 수상자들이다.
<일반부>
이동희 님의 <탐라에 부는 바람>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한 팩션(faction)이다. 작가는 800년을 넘나들며 최영에 의해 목호(몽골인 관리자)가 정벌되는 과정과 제주 4.3 사건을 교차하여, 역사학도답게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충실히 복원했지만 단조로운 싸움 위주의 전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되풀이되는 역사를 통한 주제의식은 치열하고 선명하다.
동성애를 다룬 김성호 님의 단편 <에세이 쓰기>는 탁월하다. 수식어가 배제된 건조한 문장은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고 의도적으로 간결하게 처리된 대화는 되뇌일수록 아픔이 전이된다. 작가의 언어는 칼처럼 날카로워 읽는 사람의 마음을 마구 베어버린다. 아프지만 황홀하다. 더욱 과감하게 걸음을 내딛기를.
정석두 님의 <도덕산 바우>는 소박하게 아름답다. 서툰 듯 주춤거리는 문체마저 진솔함으로 짙은 감동을 선사한다. 수필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힐링 작품이었다. 덕분에 매말랐던 눈시울이 잠시 뜨거웠다.
탁현모 님의 단편 <영원한 빛>은 가늠할 수 없는 전개와 매력적인 문체로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내가 그에 대해 뭘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좁은 발코니 바닥에 주저앉아 부루마블을 하자며 조르던 그는 서른이었다.” 소설의 인상적인 서두에 기대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그의 작품에 대해 뭘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현역으로 응모한 이원희 님의 <피탈 방지끈과 격발 방지못>은 읽는 내내 참을 수 없는 웃음과 미소를 선사했다. 사람은 웬만해서는 잘 웃지 않는다. 독서에서는 더욱이나. 세련되고 거침없는 문장에 실린 유쾌상쾌통쾌한 유머는 응모자만 가질 수 있는 놀랍고도 희귀한 재능이리라.
<고등부>
할아버지가 키우던 난이 죽자 새롭게 난을 키우며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안주현의 수필 <빈 화분>을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 낯섦도 새로움도, 뛰어난 문장도 없는 평범한 글인데도 최우수상을 거머쥐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담백한 진솔함’ 때문이다. 그 단아함은 정통 수필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클래식이 존재하는 것처럼 탄탄한 기본기는 깊고 튼실한 뿌리처럼 글을 받쳐주는 것이다.
김수연의 단편 <지난했던 나의 재난에게>는 제목부터 끌림이 강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흉내 내어 반대말 말하기 놀이를 하는 대화는 직설적이면서도 상큼하다. 수식어 하나 없이 대화의 맛을 깊게 하는 실력은 단연 발군이다. 전개와 사유와 문체 모두 재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여정에서 문학의 끈을 놓지 말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김시현의 단편 <가난하다고 해서 고기 맛을 모르겠는가>는 개인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소설이었다. 글을 부릴 줄 아는 재능, 단 한 문장도 어색하지 않은 실력, 게다가 구정과 전개까지 거의 완벽에 가깝다. 게다가 핍절한 삶을 리얼다큐로 찍어서 보여주는 듯한 능력은 놀라웠다. 글을 읽는데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만큼 이미지 형상화에 완벽하게 성공한 작품이다. 구구절절 뼛속까지 남성적인 작품인데 응모자는 심지어 여학생이다. 이처럼 놀라운 타고난 재능을 계속 갈고닦기를 부탁드린다.
고등부 심사의 경우, 모든 작품을 최우수상을 준다고 해도 좋을 작품이어서 심사위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이들이 있으니 한국 문단이 한층 밝아 보인다.
<중등부>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하루를 <평범한 하루>라는 제목의 소설로 그려낸 박송연은 타고난 스토리 텔러다. 권선징악에 머무는, 중학생다운 결말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잘 버무리는 재능은 길이 살만하다.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전개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발군의 실력을 뽐낸다. 문학의 다양한 장르에서 가장 맞는 길을 찾기를 권한다.
유승희의 단편 <어인魚人, 진주>는 많이 망설이게 한 작품이다. ‘희는 눈이 보이덜 안하였다’, ‘용궁에덜랑 가고 싶다’라는 문장은 비문 오문 이전에 이 작품이 중학생이 쓴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노을이 질 적의 바다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이름이었다’ 이 문장 역시 세상을 다 산 노인의 사유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어르신의 구술을 받아쓴 느낌만 아니라면 처연하고 아름다운 소설의 말미만으로도 최고의 점수를 주었을 것이다. 대단히 미학적인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빠져들게 하는 재능을 계속 지켜가기를.
홍승진의 수필 <관심은 적당히>는 1학년 다운 유년스러움이 오히려 글에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소박한 아름다움. 그것이야말로 수필의 정수가 아니던가.
최정원의 수필 <나를 사랑하는 나>는 나의 내면을 샅샅이 들여다본 탐구일기다. 대부분 선호하는, 일상의 에피소드 쓰기와 달리 생각을 깊게 하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는 글로 수필 한 편을 채우기는 쉽지 않다. 단단하고 뼈대 있는 글은 1학년 답지 않게 성숙되어 있다. 앞으로도 글쓰기에 마음을 두고 계속 정진을 부탁드리고 싶다.
높이 쌓아놓은 작품을 읽으며 하나씩 내려놓다 보니 어느새 텅 빈 책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텅 빈 책상에는 두꺼운 프린트물 대신 수상자 명단 한 장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글을 쓰느라 많은 시간 책상 앞에서 보낸 응모자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우리 또한 당신들의 첫 독자가 되어서 심사하는 시간 내내 즐거웠다.
수상자 명단에 있든 없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대면 사회에서 글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일인가!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문학에의 향유를 충분히 누렸다.
심사 : 김효경. 박정숙. 김마리. 김네나. 양효숙. 구서휘. 윤정. 전영. 이숙경.
심사평 : 이숙경 (한국문인협회 의정부지부 산문분과위원장)
수상자 명단
<일반부>
최우수상 : 이동희 (인천광역시 연수구) ‘탐라에 부는 바람’
우수상 : 김성호 (세종특별자치시 대평1길) ‘에세이 쓰기’
장려상 : 정석두 (경북 포항시) ‘도덕산 바우’
장려상 : 탁현모 (서울시 영등포구) ‘영원한 빛’
장려상 : 이원희(경기도 양주시) ‘피탈 방지끈과 격발 방지못’
장려상 : 김동희(강릉시 강변로) ‘고요한 물’
장려상 : 윤갑영(경기도 의정부시) ‘파란 파도의 꿈’
<고등부>
최우수상 : 안주현(청평고등학교 3학년) ‘빈 화분’
우수상 : 김수연(솔터고등학교 2학년) ‘지난했던 나의 재난에게’
장려상 : 김시현(혜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가난하다고 해서 고기 맛을 모르겠는가’
장려상 : 김지은(고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풍수기(氣)리’
장려상 : 방성은(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주사위’
장려상 : 장가은(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낯선 사람 되기’
장려상 : 이예원(고양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하고 싶은 말’
<중등부>
최우수상 : 박송연(운양중학교 3학년) ‘평범한 하루’
우수상 : 유승희(양지중학교 3학년) ‘어인魚人. 진주’
장려상 : 김호연(산남중학교 2학년) ‘문학소녀로서 특별하게 떠난 길’
장려상 : 윤혜영(경민여자중학교 1학년) ‘마지막 편지’
장려상 : 홍승진(신광여자중학교 1학년) ‘관심은 적당히’
장려상 : 박소연(화홍중학교 3학년) ‘나도 나무처럼 살고 싶다’
첫댓글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에 제22회 의정부전국문학공모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비대면으로 심사하시고 심사평 쓰시느라 산문분과 선생님들과 산문분과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22회 의정부전국문학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드리고 수상하신 분들 축하드립니다.
<제22회 의정부전국문학공모전 수상자 상장발송 안내>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수상자들에게 상장과 함께 수상자 명단과 운문부문 본상 작품이 실린 '의정부문학29집'이 출간되는대로 일반은 주소지, 학생은 학교로 발송 예정입니다. 별도의 시상식은 없습니다.
의정부문학29집에 수상자 명단과 함께 공모전 대상 작품(시)과 운문부문 최우수상을 게재했습니다. 지면 사정상 산문부문 최우수작은 싣지 못했음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