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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경표를 따라서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율
일본 가고시마의 가라쿠니다케(韓國岳.1700m)와 묘켄 올레.
◈ 일시 : 2018. 9. 7~9일(2박3일).
노팁, 노옵션 65만원.
◈ 동행인 :
산이좋은 사람들 41명.
(오세춘님. 김형식님. 김재윤님. 김창손님. 서대원님부부. 이기충님등
옛 덕유산악회식구와 이경훈 사장님과 아들 제근군)
◈ 날씨 ;
한국악 산행일엔 종일 비가오고 묘켄 올레길엔
안개비
◈ 지도.
한국악.
묘켄올레
◈ 트랙.
◈ 일정정리.
몇 달전 "산이 좋은
사람들"이 시청뒤에서 마곡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목 디스크로 입원했다 퇴원후 외래 진료차 서울에 올라간길에 한번
들렸더니 그동안 이런저런일이 있었으며
몇 개의 기획행사를 한다기에 자세한건 물어도 안보고 무조건 부부가 참석한다 통보하고 다음날 송금을
했다.
갈날이 가까워져 어디를
가는건지 대출 찾아보고 전날에야 겨우겨우 오프라인 지도 만들어 핸드폰에 깔았다.
며칠전부터 날씨를 주시해 보나 계속 낙뢰가 뜨는데 비가
오는건지 않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겨우 이틀이라 별 준비도
안하고 카메라 SD카드만 16기가에서 64기가로 갈아 끼우고 가서
자세한건
집에 와 보기로 하고 무조건 보이는대로 잔뜩 찍었는데 집에와서 저장을 할려고 보니
앗불싸 사진이 한 장도 없다. SD카드가 문제가
있었는걸 한번도 확인을 안했으니...망했다.
카메라로만 찍었지 스마트폰으론 찢지를 안았으니 마눌이 찍은 사진 몇장에 오세춘 선배님이 찍은
사진몇장으로 대체한다.
1일차 .2018.9. 7일(금).
09 ; 40. 천안
출발(14400 * 2) - 인천공항(11: 40 도착).4층에 올라가서 낙지 비빔밥으로 점심.
12 ; 30. 1터미널 E카운터에서
미팅후 출국수속.
15
; 10. 이트타항공으로 인천출발.
16 ; 30. 일본 가고시마 (鹿児島)공항 도착.순 비행시간은 1시간 20분.약간 지연출발
지연도착.
18 : 14. 침찾아 가고시마공항출발.
18 ; 38/19 ; 24. 중간에 저녁.
19 ; 45. 기리시마
로얄호텔 도착. 노천온천에서 목욕하고 취침.
가고시마, 기리시마 한국악 위치.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가고시마공항에서 한국악 들머리인
기리시마 로얄호텔까지는34km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가고시마공항에서 기리시마 로얄호텔가는 도중에 먹은
저녁식사.
우리네 돌솥밥쯤 되나보다. 일본 식사는 개인별로 따로 나오며 나오는대로 다 먹어야 양이 차고 추가되는 반찬은
없다.
2일차. 2018. 9. 8일(토).
06 ; 00. 비가온다.
우산쓰고 호텔근처를 산책하고 목욕.
07
: 00. 호텔 뷔페로 아침식사.
09 : 00. 호텔출발.산길을 올라간다.
09 ; 31/57. 에비노고원. 점심 도시락을 싣고
여기서 한국악길은 일기관계로 막혀있어 대랑지 입구로 이동.
10 : 03/10. 대랑지입구에서 우장비 챙겨입고 산행시작.넓은길따라 오르고
또 올라간다.
10 ; 48. 대랑지. 분화구안의 물이 보여야 할텐데 비는 쏟아지고 보이는건 짙은 구름뿐.
좌측으로 분화구를 돌아 한국악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다시 또 올라간다.
11 : 12. 1141정점인데
조망이 탁 트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보인다.쉼터 탁자가 있다.
11 ; 37. 한국악 대피소.안부다. 좌측으로 에비노 고원으로 가는길이
있고 보수도 않은 나무 계단길로 계속 올라간다.
정상부에선 바람이 일것같이 중간에 도시락으로 점심먹고
12
: 57/04. 가라쿠니다케(한국악.1700m)정상. 환영식이라도 하는 듯 갑자기 세찬바람과 소낙비가
쏟아진다.
조망은 고사하고 사진도 제대로 못찍고 하산.올라온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13 : 50/14 ;
11.다시 내려온 한국악 대피소. 대피소안에서 후미 기다려 식사하는걸 보고 출발.
15 ; 27/45. 대랑지 입구.후미도착하여 출발.
기리시마신궁은 옷이 훔뻑젖어 포기하고 바로 호텔로 가다.
16 : 10. 몇 명은 캐슬호텔에 떨궈놓고 로얄호텔 도착하여 목욕하고 호텔부페로
저녁먹고 젖은 옷 빨래하고 말린다.
기리시마 로얄호텔에서 한국악 가는 경로.
대랑지입구까지는 약 12.5km.에비노고원까지는 17km거리다.
대랑지입구에서 가라쿠니다케( 韓國岳.1700m)는 왕복 10.1km에 5시간 22분.
가라쿠니다케( 韓國岳.1700m)를
칸코쿠다케로 부르지 않고 가라쿠니다케로 부르는것은
일본 건국의
설화에도 나오는모양인데 아마도 가야국의 후예들이 이곳에 올라
고국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데서 연유하지 않았을까?
이곳이 일본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곳인데 韓國岳이란 이름에 불만이 있는 일본인들이 요즘 지명변경을 하자는 애기가 나온단다.
기리시마 로얄호텔.
기리시마 로얄호텔정원.
모양은 교회인데 예배당이라기 보다는
예식장이다.
여기서 결혼식하고 멀리서 온 하객들은 호텔에서 식사와 숙박하고.
일본을 근대화 시키는데 1등공신으로 일본역사에서 가장
추앙받는 사람중에 한사람인 사카모도 료마다.
이분이 신혼여행을 와서 산책하던길이 바로 내일갈 묘켄 올레코스다.
기리시마 로얄호텔 대중탕.
여자탕은 빨간천, 남자탕은
검은천.
대중탕 바깥에 노천탕.
기로시마는 안개가 많은지 霧島라 쓴다.
호텔안에서는 이옷만 입고 식당도 가고 욕탕도 간다.
여자는 끈을 뒤로 묶고 남자는 앞이나 우측으로 묶는단다.좌측엔 칼을 찾으니...
09 ; 31/57. 에비노고원 주차장. 한국악으로 오르는길은 통제돼 점심
도시락을 싣고 대랑지입구로 이동해 올랐다.
앞에 보이는산이 한국악이고 사잔 좌측밑에 하얀 연기는 유황온천 연기다.
기리시마선
개인집에도 온천공이 있어 여기저기서 연기가 올라오는걸 볼수있다.
앞에 보이는 안내판 사진도 잘 찍엇는데 날라갔으니...
주차요금은
대형차가 2만원.
대랑지입구로다.
한국악까지 왕복 10.1km에 5시간 22여분 걸렸다.
10 ; 48. 대랑지. 분화구안의 물이 보여야 할텐데 비는 쏟아지고 보이는건 짙은 구름뿐.
좌측으로 분화구를 돌아 한국악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다시 또 올라간다.
아래 사진은 오세춘님이 하산할때 대랑지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직진해 올라 잠시 알바하면서 본 대랑지분화구 모습이다.
11 ; 37. 한국악 대피소.안부다. 좌측으로 에비노 고원으로 가는길이 있고 보수도 않은 나무
계단길로 계속 올라간다.
정상부에선 바람이
일것같이 중간에 도시락으로 점심먹고
한국악 정상부가 가까워지면 온통
엉겅퀴자생지다.
백두산에선 들쭉이 자생하듯.
한국악가는길은 명색이
일본 국립공원1호인데 전혀 관리가 안되고 있다.
여기만 이렇게 좀 낫지만
기타는 좁은 계단에 팽기고 발판도 썩어 떨어져 나가고 이정표도 드물어서 조심해야한다.
일본은 우리같이 등산인구가 많지 않은
탓일거다.그 큰 나라에서 등산장비점도 몽벨
하나뿐이란다.
12 : 57/04. 가라쿠니다케(한국악.1700m)정상. 환영식이라도 하는 듯 갑자기 세찬바람과
소낙비가 쏟아져 눈도 제대로 못떳다.
조망은
고사하고 사진도 제대로 못찍고 하산.올라온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사진을 보내주신 오세춘님.
올해 83세인데 10년 아래인 나 보다도 훨씬 잘 다니신다.
20년이상을 같이 산에다닌 달인클럽 초장기 멤버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와 옥룡설산을 같이
다녀왔다.
우측 시시코다케(사자호악)와 좌측 후도이케(부동지), 뒤로 한국악 대피소까지는 1시간거리로 비숫한거리다.
아래사진들은 인터넷에서 퍼온 한국악트레킹 사진들인데 이런 풍경을 보지 못해서 아쉽다
.
부동지쪽에서 본 한국악인듯.
한국악에서 본 대랑지(우)와 사자호악 -기리시마산-신연악-중악인듯,
한국악에서 대랑지인듯.
한국악에서 대랑지인듯.
한국악에서 대랑지인듯.
한국악에서 대랑지인듯.
3일차. 2018. 9. 9일(일).
06 ; 00. 비가
걷히는 듯 싶더니 한바탕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많이 와서 노천탕은 문을 닫는다.
08 ; 32. 호텔출발.
09 ; 11. 차로
지나가며 묘켄올레길 하산지점을 확인하고
09 ; 21. 묘켄 온천지구에서 우장구를 챙겨입고妙見大橋 다리를 건너가며
묘켄올레시작.
09 : 29/35. 작은 하천 다리를 건너가서 좌측 산기슭으로 올라간다.
09 ; 53. 회기탕표지판. 작은
물막이 탕.산길로 오른다.
10 ; 03. 이누카이(犬飼滝) 폭포.다시 돌아나가 갈림길에서 우측 계단으로 올라간다.위성수신이 잘 안되는지
트랙이 어지럽다.
10 ; 20. 한오름 올라가니 2차선 도로가 나오고 폭포 전망대가 있다. 길을건너 계단을 올라간다.
10 ;
28. 화기(와케)신사.멧돼지 수문장에 대형 멧돼지 그림 .
10 ; 39. 울창한 삼나무밭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우측 산길로 든다.료마의
산책길이다.
11
; 05. 임도에서 좌측 삼나무숲쪽으로 건너간다.
11 ; 27. 넓은 공터에 농시짓는 신을 모신 신사를 지난다.
11 ; 33.
마을 길을 건너가 동문을 지나 급경사를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11 : 42. 시오히타시 온천 료마공원.족탕에서 발씻고.료마상이 있는 공원.
다리 건너가서 올레를 마치고
11 : 58. 차량이동.
12 ; 06. 가고시마공항앞을 지나고
13 ; 14/53. 가고시마
시내 식당에서 옷갈아 입고 점심.
14 : 23/43. 면세점 들려
16 ; 00. 가고시마공항 도착.
17
; 30. 가고시마공항출발.
19 ; 10. 인천도착.4층에서 저녁먹고
20 ; 50. 인천공항출발.
22 ; 40.
천안도착(14400* 2).
호텔-묘켄올레-가고시마 -공항 궤적
1.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호텔-묘켄올레-가고시마 -공항 궤적 2.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사쿠라지마는 활화산으로 가고시마 어디서나 보이는데 산으로 가고시마을 대표하는
유명산이다.
가고시마공항에도 대형 사진이 걸려있다.
묘켄올레.
구글지도가 기리시마시는 이렇게 뿌옇게 나온다.
기리시마 로얄호텔 식사.
09 ; 21. 묘켄 온천지구에서 우장구를 챙겨입고 妙見大橋 다리를 건너가며
묘켄올레시작.
제주올레와 협약을 맺어 모든 표지가 낯이 익어 제주도 올레를 다시 걷는 기분이다.
묘켄 온천지구.
10 ; 03. 이누카이(犬飼滝) 폭포.
다시 돌아나가 갈림길에서 우측 계단으로 올라간다.위성수신이 잘 안되는지 트랙이
어지럽다.
이누카이(犬飼滝) 폭포 안내판.<빌려온사진이다>.
10 ; 20. 한오름
올라가니 2차선 도로가 나오고 폭포 전망대가 있다.<빌려온 사진이다>
길을건너 계단을 올라간다.
10 ; 28.
화기(와케)신사.멧돼지 수문장에 대형 멧돼지 그림 .
10 ; 39. 울창한 삼나무밭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우측 산길로 든다.료마의 산책길이다.
11 ; 27. 넓은
공터에 농시짓는 신을 모신 신사를 지난다.
11 ; 33. 마을 길을 건너가 동문을 지나 급경사를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11 :
42. 시오히타시 온천 료마공원.족탕에서 발씻고.료마상이 있는 공원. 다리 건너가서 올레를 마치고
료마와 부인 나라사키
료의 상 저앞에 보인다.
사카모토 료마가 부인 료와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와서 묵었던곳이란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허니문여행이라고
선전하며 그가 묵으며 산책하던 길을 기리시마 올레길로 만들었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누구인가?
사카모토 료마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로 더욱 유명해졌으며, 막부시대 말기 일본이 일왕중심의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로 변화하는데 기여했다.
소년시절 무예훈련에 열중하여 에도의 도장에서 수련을 쌓았다. 그곳에서 서구와의 조약체결과 쇼군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끊임없는 정쟁을
목격하고, 오랑캐를 물리치고자 하는 양이론자가 되었다. 그 후 도사 출신 하급무사들이 천황을 지키고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고자 하는 모임인
도사근왕당에 참여했다. 1864년 가쓰 가이슈가 창립한 해군조련소에 부관으로 입소하여, 가쓰를 통해 새로운 정치형태에 대한 구상을 듣는 등
식견을 넓혔다. 1866년 교토에서 사이고 다카모리, 기도 다카요시와 함께 삿초 동맹을 맺어 막부 타도운동의 적극적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부상했다. 그 후 왕정복고를 위한 활동을 계속했으나 막부 타도 전에 암살당했다.
소년시절 무예훈련(특히 검술)에 열중하여 1853~54, 1856~58년에 에도의 지바 슈사쿠[千葉周作] 도장에서 수련을 쌓았다. 그곳에서 서구와의 조약체결과 쇼군[將軍] 계사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끊임없는 정쟁을 목격하고, 오랑캐를 물리치고자 하는 양이론자(攘夷論者)가 되어 도사로 돌아와 도사근왕당[土佐勤王黨]에 참여했다.
1862년 다시 에도로 가서 개국론의 옹호자로 알려진 가쓰 가이슈
그러나 같은 해 가쓰가 파면되자, 사쓰마 한[薩摩藩]으로 탈주하여 부관시절에 알게 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등의 도움을 얻어 직접적인 개인행동에 나섰다.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나가사키[長崎]에서 나가사키와 사쓰마, 조슈[長州] 간에 서양식 총포를 거래하기 위한 조직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도사의 전 한슈[藩主] 야마노우치 도요시게[山內豊信]의 탄압을 피해 근왕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愼太郞:1838~67]와 재회하여 함께 활동했다. 1866년 교토에서 사이고,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1833~77]와 함께 삿초 동맹[薩長同盟]을 맺어 바쿠후 타도운동의 적극적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부상했다.
동맹 성립 직후 바쿠후의 포위망을 벗어나, 삿초 동맹의 성립 등에 자극을 받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던 도사 한으로 돌아가 거주허가를 받았다(1867. 4). 이후 도사 한의 원조를 받아 해운과 무역을 담당하는 해운회사를 가이엔타이[海援隊]로 개칭하고 이를 크게 성장시켰으며 7월에 나카오카는 이와 병행하는 리쿠엔타이[陸援隊]의 창립 허가를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도사 한은 과거 한을 탈출한 로닌[浪人]의 도움을 얻어 사쓰마 한과 협력해 왕정복고를 위한 활동을 개시했다.
나아가 사카모토는 가쓰에게 의탁하고 있던 시기에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권을 조정에게 반환'하고 '공의에 기초하여 의정국(議政局)이 정무를 결정'한다는 구상을 포함한 선중8책(船中八策)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야마노우치가 1867년 10월 3일 로주[老中] 이타쿠라 가쓰키요[板倉勝靜]를 통해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에게 제출한 대정봉환에 대한 건백서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사카모토는 요시노부가 조정에 대정봉환을 상주(14일)하고 삿초 양 한이 바쿠후 타도에 성공하기 전에 나카오카와 함께 교토에서 바쿠후 지지파에게 암살당했다.<다음백과에서>
일본 근대사의 한 획을 그으며 현재 일본인들이 가장 추앙하는 역사인물중 한사람으로
1962년부터 4년간 산케이 신문에 시바 료다로가 연재한 "료마가 간다"라는 장편소설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NHK에서 료마전으로 45부 드라마로 방영됐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일본의 무사 겸 사업가이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암살당했다.
첫댓글 2박3일에 걸친 한국악 등 좋은 추억을 남기셨군요.
소중한 흔적의 사진이 남겨지질 않아 많이 아쉬웠겠군요.
일본은 분화구 나라답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짖궂은 날씨로 조망은 아쉬웠지만 멋진 추억길을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