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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성당 천주교 대구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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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가톨릭 성지 스크랩 - 순례 - [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23]
불로초(나스테파노) 추천 0 조회 15 18.06.20 10: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난의 집_포르티운쿨라

 

1224년 9월 라베르나에서 오상을 받은 프란치스코는 포르티운쿨라(Portiuncula)로 돌아온다. 포르티운쿨라는 ‘작은 몫’이라는 뜻. 여기에는 본래 성모께 봉헌된 성당이 있었는데 성인의 시대에는 버려져 폐허로 남아 있었다.

 

 “가서 나의 무너져 가는 집을 다시 세워라”라는 소명을 받고 프란치스코가 이곳을 수리한 것이 1208년이었고 리보 토르토에 머물다가 형제들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1211년이었다. 그가 포르티운쿨라를 두고 형제들에게 한 말이다.

 

“내 아들들이여, 이곳을 절대 버리지 말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한쪽 문으로 밀려나거든 다른 쪽 문으로 다시 들어오십시오. 이곳은 참으로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어머니께서 거처하시는 곳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몇 사람밖에 없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 수를 늘려 주신 곳도 이곳이고, 당신 지혜로 불쌍한 사람들의 영혼을 비추어 주신 곳도 이곳이며 당신 사랑의 불꽃으로 우리 소망을 불태워 주신 곳도 이곳입니다.

 

마음을 다해 여기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바라는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완덕의 거울’ 83에서)

 

   
                                       ▲ 천사들의 성 마리아 대성전 정면.ⓒ김선명


1226년 10월 3일, 프란치스코가 영원하신 아버지께 돌아간 곳도 이곳 포르티운쿨라다.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성인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알몸으로 땅바닥에 눕혀 달라고 한다.

 

“나는 내가 할 일을 마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이 할 일을 가르쳐 주시기를 빕니다.”

 

   
            ▲ 프란치스코가 세상을 떠난 자리.ⓒ김선명

형제들이 흐느끼는 가운데 원장 형제가 순명으로 옷을 입을 것을 명한다.

 

원장은 그 옷을 임시로 빌려 준 것이므로 소유권이 프란치스코에게 없음을 밝힌다.

 

가난한 작은 형제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이었다. 그는 주님처럼 알몸으로 세상을 떠나고 싶었으나 순명의 이름으로 알몸을 가리게 된 것이다.

 

장대한 천사들의 성 마리아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아주 작은 포르티운쿨라 경당이 눈에 들어온다.

 

폭이 4미터, 길이가 7미터에 불과한 건물. 안팎의 벽들이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어 매우 아름답다.

 

이 작고 아름다운 건물을 단순하면서도 장대한 대성당이 품고 있다. 이는 마치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심장을 연상시킨다.

 

이 성당이 품고 돌보고 있는 것은 프란치스코의 정신. 여기에 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은 대성당이 아니라 이 작은 경당을 보러 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 없이 몸이 있을 수 없고 몸이 없으면 정신 또한 깃들 데가 없다.

 

이미 세상의 거의 모든 것, 살아가는 거의 모든 일이 돈으로 환산되는 21세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람은 병원에서 태어나고 유아원에서 자라고 학교에 가며 부모는 일터에서 돈을 벌고.... 이 모든 일이 돈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우리 삶에서 돈이 개입하지 않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혼자 물어본다. 중세에 가난을 살며 복음을 선포하던 프란치스코가 돈이 모든 것의 원리가 된 지금 여기에 있다면 무어라 말할까. 혼자 생각하자니 왠지 아득해지는 기분.

 

13세기에는 상인들, 사제들, 군인들이 있었다. 20세기에는 상인들만 있을 뿐이다. 사제들이 교회에 있는 것처럼 그들은 자기네 가게에 있다. 군인들이 요새에 있는 것처럼 그들은 자기네 공장에 있다.

 

이미지의 힘 덕분에 상인들은 세상에 퍼진다. 우리는 그 이미지들을 벽 위에서, 극장의 스크린에서, 신문에서 본다.

 

이미지는 그들이 피워 올리는 향 연기이고 이미지는 그들의 칼이다. 13세기는 사람들 마음에 대고 이야기했다. 자신을 알리려고 큰 소리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중세의 노랫소리는 기껏 눈(雪) 위에 쌓이는 눈보다 조금 더 큰 소리를 냈다. 이십 세기는 눈[眼]을 향해 이야기한다.... 20세기는 팔기 위해서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눈을 속여야 한다. 눈을 속이면서 동시에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은 프란치스코의 시대에 비겨 우리 시대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제들은 사람들의 정신을 관장하고 군인들은 힘을 관장한다.

 

 13세기와 달리 우리 시대에는 상인들이 사제들의 역할, 군인들의 역할까지 차지해 버렸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이미지, 우리 눈을 현혹하는 이미지이다.

 

 대중매체들의 기능이 결국 그런 게 아닐지. 사상 유례없는 생산력과 거기에서 생겨난 자본의 힘은 거의 무소불위의 힘으로 사람들의 삶을 관장한다.

 

대성당의 오른편에 난 문을 따라 나가면 장미 경당이 있다. 어느 밤 심한 육적인 유혹에 빠진 성인이 덤불에 몸을 던져 뒹굴었는데 그 덤불이 가시 없는 장미로 변해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가시덤불 속에 뒹구는 성인의 눈이 너무 슬퍼 한참 그 앞에 머물러 있었다. 참된 것을 위한 몸부림, 그것을 찾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우리를 유혹하는 이미지들, 욕심들을 버리는 일이 어찌 쉬운 길이겠는가!

 

21세기 우리 눈을 홀리는 모든 것들 속에서 참된 것을 찾아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쩌면 저 프란치스코의 모습과도 닮았을지 모른다.

 

박물관 바깥에는 성인이 살아 계실 때 노래를 불러 주어 성인을 감탄케 했다는 매미 이야기가 청동상으로 재현되어 있다.

 

   

                        ▲ 장미덩굴에 몸을 던진 프란치스코(왼쪽),프란치스코와 매미.ⓒ김선명

 

하느님의 종 프란치스코는 몸집이 작고 마음은 겸손하였으며 수도 서원에서 작은 형제였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포르티운쿨라(Portiuncula, 작은 몫)를 차지하였으니 세상에서 가진 것 없이는 그리스도께 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떨어진 땅이 예로부터 포르티운쿨라로 불리었으니 이는 하느님의 예언적 섭리라 아니할 수 없다(토마스 첼라노, 제 2생애, 18에서).

 

13세기에 프란치스코가 그러했던 것처럼 21세기에 무너져 가는 세상의 집을 재건할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하느님의 예언적 섭리에 응답하여 프란치스코의 작은 몫을 기쁘게 이어받을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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