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긴 하지만 덕분에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일일 매상-먹방-운동-영화 보기-글쓰기로 날짜 가는 줄 모르고 삽니다. 에예공이 보고 싶어도 안 가고-프리마켓 순찰도 생략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너무 어려워 자칫 방심해서 거지 꼴 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가 관세를 가지고 개 빡치는 짓을 언제까지 할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일(투자) 벌이지 말고 '고맙습니다' 하면서 하던 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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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학자들 말 들어보면 4가지 AI(artificial intelligence)-6G-반도체-양자 컴퓨터(Quantum) 정도의 성장 동력을 시작하라고 하더이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것 같으니 에예공은 참고만 하시라. 구리 왕숙천으로 길을 잡았어요. 집에서 500M 안팎에 감리교가 하나 있었어요. 10시 40분-신호등까지 타이밍을 맞춰주었는데 예배당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지나쳤어요. 성석 교회 정도의 사이즈인데 편의점 만큼도 사람이 없습니다. 감리교에 대한 기억은 '느릿느릿 이야기' 박철과 '칼아 내 갈데로 가라'의 이현주 정도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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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학교 출신 기독교 인사가 주기철-류영모-한경직-조만식-김교신-함석헌 등등이 있습니다. 오산학교는 현재 원효로에 있어요. 왕숙천 실개천에서는 생명이 약동하고 있었고 벚꽃이 철쭉으로 쌔뜩하게 옷을 갈아입었더이다. 자전거를 하나 사서 하이킹을 올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조선의 3대 천재(정인보-이광수-류영모)로 불리기도 했던 류영모(1890-1981)에 대하여 현역 땐 몰랐고 도올의 동양철학 강의 중에 5강의 정도 들었는데 이 양반이 앞서 열거한 민중신학자들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소 놀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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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영모 선생은 오산학교 교장을 지냈답니다.(1921)이후 은퇴하여 농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노자'를 번역한 사상가입니다. 기독교를 한국화 하고 또 유-불-선으로 확장하여 이해했습니다. 그의 신관은 "얼나" 사상입니다. '얼'이란 영 혹은 영적으로 거듭난/ 깨달은 나, "영적인 사람"을 뜻하는 말이며 그와 반대는 "제나" 로, 육적인 사람 즉 탐욕, 분노, 미움, 어리석음, 색정의 죄성 혹은 동물성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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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구원은 제나에서 얼나로 변화되는 것이며 결국 모든 얽매임과 두려움과 질고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영과 육의 사상은 21세기 신학이니 '워치만니'보다 더 앞선 신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성자 느낌도 나고 문익환 같은 민중 신학을 포함한 종교다원주의 성향으로 보입니다. ( 그의 종교사상은 다윈보다 70년이나 앞서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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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 형님이 13명의 형제 중 12명이 다 죽고 혼자서 자랐다고 해요. 그의 사상은 차후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이 양반이 52살 때 '해혼'(졸혼과 구별)을 선언하고 하루 한 끼와 함께 섹스가 없는 결혼 생활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나중에는 실제로 물리적 거세) 류영모가 말하는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은 교회에 나가는 종교 행사의 충실한 참여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삶과 복음을 이웃에 대한 자비, 정직한 노동, 양심적 병역 거부, 악을 선으로 이기는 비 폭력 투쟁 등으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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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38회 차입니다. 공명이 속을 박박 긁자 장고에 들어간 손권은 대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비와 연합을 하기로 합니다. 강동의 '주유'는 조조에게 투항하고자 했으나 공명이 말하길 조조가 새로운 성을 가지게 되면 성안에서 제일가는 미녀도 갖게 되는데 그러면 결국 대교(손책의 처)와 소교(주유의 처)도 조조에게 바치게 될 것이라는 말에 펄쩍 뜁니다. 특이하게 조조가 유부녀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자 '주유'가 입에 거품을 물며 반드시 조조를 멸하겠다고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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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교가 중국에서 먹히는 이유가 '소교-대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삼국지의 회차가 갈수록 조조는 넘사벽 나의 로망입니다. 비주얼 포스부터 언변-배짱까지 싹 다 벤치마킹하고 싶어집니다. 이어 손 권은 모든 대신들을 설득하여 조조와의 전면전을 선포합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이 이루어지자 '주유'는 걱정이 산 넘어 산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유비와 주공인 손권 사이가 어떨지 걱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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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두려운 존재 공명을 죽이자고 하지만 노숙이 절대 반대해서 죽이지는 않고 우리 편에 만들어 보자고 합니다. 하지만 노숙은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38회 에서는 손권의 작은 아버지 격인' 주유'의 등장이 중요합니다. 강동의 '손권'은 손오의 창업군주. 손견의 차남이며 손책의 동생입니다. 200년에 손책이 죽고 남동생인 손권이 그 뒤를 이었고 주유(손책의 절친)와 '장소'(문인)는 국정을 주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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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전'에 따르면 손권의 직위가 아직 장군일 때, 손권 휘하의 장수들과 손님들은 손권을 대하는 예절이 간단했습니다. 그러나 주유만이 일찍부터 손권에게 존경을 다하여 신하로서의 예절을 지켰다고 합니다. 친구 동생에게 이렇듯 깍듯이 대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202년, 세력을 키운 조조가 손권에게 아들을 인질로 보내라고 했을 때 장소, 진송 등은 결단을 하지 못했지만 주유가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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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황후도 공근(주유)의 말이 옳다며 "공근은 백부(손책)와 같은 나이로 한 달이 적을 뿐이다. 나는 그를 아들과 같이 볼 터이니 너는 그를 형으로 섬겨라"며 손권으로 하여금 주유를 형의 예로 받들도록 합니다. 206년에 '주유'는 손유 등을 통솔하여 마둔과 보둔을 쳐 그 우두머리를 효수하고 포로 1만여 명을 잡아왔으며, 황조가 등룡을 보내 시상현을 공격하자 이를 쳐 등룡을 사로잡아 오로 압송합니다. 208년, 손권이 강하의 황조를 토벌하고, 주유를 전부대독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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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의 손권은 황건적의 난이 벌어지기 직전인 182년에 태어나서 천하 통일이 임박한 252 년에 사망했는데 삼국지에서 벌어진 거의 대부분의 사건이 일어날 때 생존 해 있던 인물로 손 권이 죽은 지 불과 11년 후 촉한이, 13년 후 진나라 조위가 멸망했어요. 더군다나 '관도대전' 와중인 200년 5월부터 오나라의 지배자가 되었으니 자그마치 반세기 가량을 지도자로 군림한 셈입니다. 덕분에 가장 삼국지의 주인공에 부합하는 인물이지만 말년에 여러 실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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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손권'을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비중이 가장 낮고 인기는 더욱 마이너 해졌습니다. 여러 창작물서도, 독자들의 인식으로도 유비, 조조와는 다르게 서브 주인공 포지션을 차지합니다. 전체적인 팬덤 여론에서는 취급이 박한 편이나 그래도 삼국지 한 곳의 군주 인만큼 그 인기 자체는 상당했어요. 다만 위에서 언급한 행적들과 비중 문제로 조조나 그 이상으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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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재위 시절에 안후이와 후난을 비롯한 각 지방의 산월 소수 민족과 그 밖의 이민족을 토벌하고, 타이완과 하이난 섬 방면에도 원정군을 보냈으며, 요동의 공손 씨와도 접촉을 시도하는 등 국 내외 경영에 노력한 군주였다고 해요. 또한 손권은 후반에 촉나라와 동맹을 맺되 위나라와 촉나라와의 싸움에서는 웬만하면 참가하지 않으려 했고, 덕분에 오나라는 그의 재위 시절 삼국 중에서는 가장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했습니다.
2025.4.28.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