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성찰하는 시적 화자와 폭넓게 바라보는 세계
-장윤우 제12시집 《뚜벅이 반추(反芻)》 해설
신 광 호(申廣浩)
우리 현대시 100년 만에 자신을 '소'라는 시적 퍼소나(Persona)로 하여, 소(뚜벅이)의 반추(되새김질) 표제어를 단 시집이 나왔다. 시인은 소를 뚜벅… 자신있고 뜸직하게 걷는 걸음의 뚜렷한 발자국 소리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소'를 바라보면, 그의 피와 땀과 눈물에서 외경의 마음을 간직하게 된다. 죄인에 대한 신의 사랑, 하등은 무대가로 이루어지는 은혜를 말할 수 있다. 성질이 온순하고 참을성이 강하여 가축으로는 가장 오래된 소는 신(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시적 화자는 시인의 내면을 대변한다고 할 때, 자신을 자성하는 화법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세계를 폭넓게 바라보며 함께 하는 활달한 시편들이다.(*시적 퍼소나: 시인의 원래 심정과 객관화되는 말 사이에 조절기의 역할).
장윤우(張潤宇) 시인을 관악산에서 만났다. 한국문인산악회 회장을 역임하고 고문으로 꾸준히 산행에서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차기회장이었던 나에게 ' 봉사하는 자리'라며 신중한 자세로 격려해 주던 일이 내 기억 속의 푸른 사랑의 하나로 간직 되고 있다.
"2002년도 시선집 《(형해(形骸)의 삶》이래 5년만의 출간이 됩니다. '소띠'라서 그런가 일만하고 살아왔습니다. 과연 '늙은 소의 되새김질'이 얼마나 더 갈까, 한국문인협회 임원으로 9년여 동안에 하고 싶고 쓰고 싶은 작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후반기 시 작업은 황폐한 도시일과의 전선에 부딪히며, 헤쳐 나가는 과정의 파편이라 해도 좋습니다."
표제시를 낭독해본다.
오로지 주인을 섬기고자 왔다.
미련하고 느린 뚜벅이로 묵묵히 살다가
먹은 만큼 더 열심히 일하고
또다시 일터로 나간다.
천형(天荊)의 멍에를 지고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누(陋)를 끼친 일은 없을까?
씹고 곰곰이 되씹으며
마지막이 살 한 조각, 뼈 한 줌까지
모두 바치고 떠나련다.
나, 늙은 숫소의 숙명(宿命)이다.
<뚜벅이 반추>(전문)
"1960년, 피난지 여수 오동도 바닷가 사춘기소년의 '꿈'이었던 순수와 신 서정을 추구해왔지만 저도 모르게 형해의 삶이 돼버렸고, 청운의 꿈은 빛바랜지 오래됩니다. 70줄에 들면서 시가 보이고 내가, 자아(自我)가 무언가 조심스러워 집니다. 문단역사에 어찌 남을는지, 현재보다는 후대의 평가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라고 출간 소감을 말하였다.
3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은 1. ‘삶이 너무도 애련(哀憐)하여' <오솔길>, <모두 끝나 가는가>, <초록의 장원(莊園)>, <하늘공원>, <화려한 고독>, <독도(獨島)에 간다>, <망중한(忙中閑)>, 등과 <불멸의 탑으로 영원하리>-양주시청 헌충탑 건립비문-으로 저자가 설계. 작시한 작품도 실려 있다.
Ⅱ.'반추(反芻)' <되새김질>, <<어느 날 회장실의 독백>, <보낸 세월>, <춘색(春色)>-1.2, <사태(沙汰)>1-6, <뚜벅이 산행(山行)>, <한 그루 나무로 살아온 청정한 시인이어라>,
Ⅲ.'시리고 시린 날' <그리운 이가 더 그리워지기 전에>, <남항(南港)>, <조선의 부채-합죽선(合竹扇)>, M에서 M으로>, <소생(蘇生)의 계절>, <비 내리는 장충단(奬忠壇)을 바라며>, <영상(靈山)>, <동강(東江)은> 등 모두 70편의 시로 짜여 있다.
저어 곳에 무언가 보인다.
허깨비 같기도 하고 글쎄,
너에겐 안 보인다고?
"더윌 먹었나."
나만 끝나가고야 마는가.
옥죄여오는 무더위
이글거리고, 찐득하고, 짜증만이 늘어나는
한 낮에, 호올로
반라(半裸)의 노객(老客)은 누웠다 앉았다
등골을 타고 내리는 비지땀
"제기랄"
바이러스 먹었는가
더위에 지쳤는가
PC앞에 붙어 앉아서
모니터만 멀거니 들여다본다.
폭염을 피하는 사이버와의 실랑이
애당초, 이렇게 끝나가는 인생인가.
그러자니 아아!
무언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 허상虛像들이
나를 손짓하는 실체實體로 건들거리며 온다.
요란스런 매암, 쓰르라미 소리에 묻혀
나의 철조각 분신들이
일제히 기웃거린다.
검으틱틱한 쇠붙이더미가
마당에 기우뚱 서서 내게 손짓을 하고 있다.
주인노릇도 못하는 주제에 비웃는다.
스스로를 '낭패한 술꾼'으로 자조하며
허탈한 웃음만 흘린다.
"서글픈 피에로."
"비굴한 낙오자."
"거세去勢된 고물딱지."
그래도 어느 시절에는 고독한 성주(城主)로
시대의 구도자(求道者)로 자처하지 않았던가.
나무는 열대야(熱帶夜)에도
호올로 눈뜨고 지킨다.
지나던 바람들에게 잎을 흔들며
먼 길에 평안平安하라는 인사를 던진다.
입추立秋는 어디쯤에 오고 있느냐고
주인을 버린 금속나무들은
더위에 지친 새들에게
잠자리를 주고
때로는 멀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과객들의 지표指標가 되어준다.
외롭고 찌그러지고 아파도
말할 곳조차 없는 나무들은
작고 작은 풀잎 한 겹에도
피곤하나 잔잔한 미소를 던진다.
-<모두 끝나 가는가!>(전문)
이 시를 읽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벌써 10여년 전 일이다.
「장윤우 금속전」-잘린 나무와 환경-이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렸다.(1997.11.14-19 ) *'성신여대 학술연구조성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팜플렛에 적혀 있다. 제자들이 회갑(回甲)기념전시로 기획한 일이다, 넓은 전시장 안에는 작품으로 큼지막한 나무들이 100여 수가 넘게 늘어서서 바람이라도 불면 가지들이 흔들릴듯 검푸른 새깔로 그러나, 윗부분이 잘린 채로 거룩하게(?) 줄지어 늘어서서 위압감마저 주고 있어 아니! 어떻게 이걸 다… 하며, 소리 지를 뻔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무엇보다 규모가 큰데 놀라웠다. <금속과 시의 공존가능성을 실증(實證)>이란 제하에 김남수/미술평론가는 "잘린 나무와 환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테마 연작전을 갖는 금속공예가 장윤우는 올해로 회갑을 맞는 미술계의 중진이다. 또 다른 천재라는 말이 실감이 날 만큼 그는 전공인 금속공예 외에도 한국문단에 큰 족적을 남긴 시인이다."는 서두로 날로 파괴되어가는 자연환경에 대한 보호와 현실고발이라는 명제를 설정해놓고 예술작품을 통하여 참여한다는 극명한 의미가 담긴 이번 작품전은 우리의 자각을 촉구하는 무브먼트의 성격을 곁들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 말하고, 종래 "잃어버린 고향"을 주제로 설정하여 가진 작품전이 이번에 갖는 훼손된 나무의 생명력을 복원하려는 모티브에서 같은 맥락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한편 안내책자에는 컬러화보와 장윤우 금속전에 대해 '금속조형에 담긴 詩情'(챨스 보만 , California State University 교수)과 '금속조형으로 살려낸 환경'(최만린/국립현대미술관장), '자연파괴의 현실고발' '장윤우의 세계'(이재운/한국미술연감 발행인), '끝간데 없는 감성의 지표'(柳石雨/미술시대 주간.시인), '사람과 예술의 미적 뉘앙스'( 원영동/ 한맥 주간)등의 글들과 작가의 프로필이 나와 있었다.
<모두 끝나 가는가!>의 시적 화자는 그동안 전시했던 많은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염려와 당부마저 하고 있는게 아닐까.
장윤익(문학평론가․경주대 전총장)에 따르면 장윤우 시인의 시를 "시인의식과 장인의식의 미학"(장윤익의 해설, 참고)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예술적 기질이 ‘어느 분야를 기반으로 해서 예술의 미학을 전개할 것인가 하는 시와 그림의 갈림길에서 조형의 세계를 선택했다. 어떻게 보면 화가의 길을 택한 것은 시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장윤우는 미술을 전공함으로써 시 예술의 폭을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어떤 예술이든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은 동일하다. 장윤우 시인은 시를 통한 동양적 정서와 조형, 생활과 허무의 만남이 예술적 아름다움을 최대로 고양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라며, 장윤우의 시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그는 동양적 정서와 조형, 전쟁과 일상, 허무와 가족, 산과 풀잎, 술과 여행 등을 시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중과 접근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는 시인이다. 고 평하고 있다.
장윤우(張潤宇 Yoon-Woo Chang) 시인은 1937. 12. 1. 서울생.
1956년 서울 중 고등학교 졸,
196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 대학원 졸.
1986년 미국 Califonia 주립대 (CAL State LA)연수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인 <겨울동양호> 이래
제1시집<겨울 동양화>, <續. 겨울동양화>, <오자인생>, <시인과 기계., <그 겨울 전차(戰車)의 포신(砲身)이 느린 그림자>, <그림자들의 무도회>, <이름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두개의 풍경과 리삼월>, <형해(形骸)의 삶>, <뚜벅이의 반추> 등 12권의 시집을 내었다.
<장윤우 예술시평집>, <화실주변(수필집)>, 대학저서와 중학교 미술교과서(중1, 중2, 중3) 3권이 있다.
현재 성신여대미술대 명예교수로서 산업미술연구소장, 박물관장을 역임하였으며, 서울시문화상, 현대시학공로상, 현대시인상, 동포문학본상, 순수문학대상, 서포문학대상, 한맥문학대상, 한국예총문화예술대상,(문학), 시와 시론상, 2006년도 시문예상(미네르바), 국제문화(미술)대상 등을 수상하고, 국민훈장 황조근정훈장(2003.3 서훈)을 수여받았다.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시분과회장, 수석부이사장겸 월간문학발행인 6년역임. 재단법인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자문위원장(이사장(2000-2005)역임. 양천문화원 부원장, 국제로타리클럽 3640지구 총재보와 양천로타리클럽회장 역임하였으며, (사)한국종이접기협회 회장/ 종이문화원 원장을 겸임(2000-현재)한다.
장윤우 시인은 시집 머리말에서 "…수록된 70여 편은 반드시 내 뜻이라기 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청탁에 의해서 혹은 쫓기는 심경으로 남겨진 산물(産物)이다. 12권이라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그 외 산문집과 연구집, 교과서까지 합치면 수적으로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또 다른 분야(미술, 조형)에서의 업적은 제외하였다.
나이가 이쯤이면 자신의 이름에, 처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언제 불려 갈는지도 모른다.
청탁에 의해 쫓기듯이 써서 보낸 경우와 비문(碑文)에 새겨 넣은 시편들이어서 마음에 그다지 내키지 않는 시편도 있음을 밝혀둔다. 기억도 쇠잔(衰殘)해가고 주위 문단동료들도 멀리 떨어져 간다.
우여곡절,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넘어오고 뒤돌아보는 인생행로를 뚜벅이 걸음으로 되새김질하면서 거짓 없이 열심히 쓰고 기도하는 경건(敬虔)함으로 여생(餘生)을 살아가련다. (하략)
20여년의 산행을 가지는 한국문인산악회에서는 신간이 나오면 산행에 참가한 회원들이 낭송을 한다. 필자도 이날 한편 낭송하며 축하드렸다.
<시> 그리운 이가 더 그리워지기 전에
장윤우
넘치는 강줄기처럼
그리운 이가 그리워지기 전에
나는 흐르네
흘러야 하네
흐르는 것이 어디 눈물뿐인가
까칠한 낙엽으로 메말라가는 심성心性으로
이 해가 저물면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
병든 잎새처럼
이 마음도 시들어가고
그리운 이여
두고 온 고향도 없지만
괜스레 그려보다 마는 뒷산과
긴 들판과 맞닿은 공활空豁한 그곳
흩어지고 마는 바람으로 가리.
올해 한국 현대문학 10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 문인들은 참된 자세로 독자들 앞에 작품으로 의연히 서야겠다.
(시인, 한국문협 대외협력위 간사, 문예비젼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