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인송년의 밤’ 후기
지난 7일 개최됐던 ‘2013 한인 송년의 밤’은 역대 행사중 가장 많은 관람객수를 기록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장기자랑 참가자들의 공연 수준은 노력한 흔적을 짐작할수 있을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웠다.
장기자랑 참가팀은 총 8개팀으로 구성됐고 이중에서 개인 참가자는 단 두팀밖에 안될 정도로 모두 삼삼오오 율동와 노래를 꾸준히 연습해 온 단체팀이 주를 이뤘다.
김한결, 류영재 팀은 전자기타를 연주한 류영재 학생때문에 신선한 무대가 연출됐고 KOPIA 팀은 성낙술 소장이 직접 안무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여 호응을 얻었다.
대상을 차지한 ‘놈놈놈’ 팀은 무표정한 댄스를 연출한 참가자의 모습에 관람객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등 노래면에서도 대상 수상을 가늠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인기를 얻었던 팀은 아줌마 댄스팀인 ‘꽃누나’ 팀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행사전 일주일동안 매일 아침 9시에 모여 오후 3시까지 피나는 연습을 했다.
의상은 함께 모여 직접 제작할 정도로 바느질 솜씨는 수준급을 선보였다.
아줌마 팀이다 보니 서로 미루는 일 없이 소품 준비부터 연습 준비까지가 일사불란 했다는 것이 후문이다.
연습 이튿날, 아니나 다를까 무리한 동작에 팀원 모두 안쓰던 부위에 관절통이 요동쳤다.
하지만 이마저고 진통제와 파스로 복구하며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관절염 탓에 연습 3일째부터는 관절에 무리가 가는 동작은 자동적으로 수정에 들어갔다.
안무를 배우는 것이 아닌 동작을 몸에 맞춰가는 방법을 쓴것이다.
‘꽃누나’ 팀의 한 일원은 “삶에 지친 교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자는 것이 참가의 목적이었고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는 성취감이 지루한 생활에서 활력소가 되는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이번 송년의 밤 행사에는 약 950여명의 인파가 몰렸고 장기자랑 예선에도 16개팀이 신청할 정도로 참여도가 높았다.
해마다 역대 ‘최대/최고’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송년의밤 행사는 누가 참가하고 어떻게 연습하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는 신비감때문에 1년을 기대감에 기다리게 되는 행사이다.
(취재 = 한인일보 편집국)
주말한글학교 졸업식 및 종업식 개최
타슈켄트 주말한글학교는 지난 14일 졸업식 및 종업식을 거행했다.
이번 년도 졸업자는 박테레사, 신은혜, 박규미 학생 등 3명이다.
이들은 9학년 전 과정을 이수하고 학년말 고사까지 치른 자로써 졸업자 자격을 얻게 됐다.
이중에서 한국대사상은 박규미 학생이 차지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한인회장상을 수상했다.
이흑연 한인회장은 “먼 이국땅에서 한글학교 운영에 노고가 많다.”고 격려하고 “졸업생들은 한글학교에서 수학한 한국인의 자긍심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졸업식에서는 이임교사 감사장 전달도 함께 이뤄졌다.
(취재 = 한인일보 편집국)
우즈벡 국제결혼과 불법체류자
최근 우즈베키스탄의 국제결혼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소개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 나와 있는 우즈베키스탄 사람과 한국인의 개인적인 연애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생각보다 한국에는 유학, 사업, 취업을 목적으로 입국해있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많이 있다.
5년 전 한국에 일을 하러 왔던 우즈베키스탄 남성 A씨는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그 상태로 계속 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지내면서 한국 여성 B씨를 알게 되었고 가족이 없던 B씨는 A씨와 마음이 잘 맞고 이해해주면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함께 지낸지 4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B씨의 가족들은 A씨가 불법체류 상태를 정리하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길 바랐고 두 사람 역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에 출입국관리소를 찾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혼인신고 절차가 어렵다.
한국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할 경우 우즈베키스탄의 혼인신고가 이루어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결혼비자를 받을 수 없기때문에 이런 상황을 잘 알고 대처하는 것이 좋다.
A씨는 자신의 나라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하려면 출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한국에 올 수 없을까 큰 걱정을 했다.
대부분의 불법체류자가 출국을 할 때 다시 한국에 들어올 수 없을까봐 걱정을 많이 한다.
출국하지 않고 불법체류자 합법화 정책을 기다리는 이유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은 없고 더 지체하면 불법체류 기간만 길어지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있을 때 전문가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시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A씨는 업무를 진행하면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현지로 먼저 출국해 혼인신고 절차를 진행하고 한국의 혼인신고를 진행하는 순서대로 하기로 했다.
A씨는 출국에 앞서 현지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서류를 준비했다.
현지의 관서마다 담당자가 원하는 서류가 별도로 있기 때문에 확인하고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A씨는 현지로 출국해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불법체류 한 기간이 있기 때문에 자진 출국을 한 A씨지만 입국규제를 피할 수는 없었다.
입국규제를 받은 A씨는 현지 혼인신고를 마치고 한국에서 혼인신고 할 수 있도록 결혼증명서를 한국으로 보내왔다.
자문을 통해 한국에도 혼인신고를 마친 두 사람은 이제 완전히 부부가 되었다.
양 국가의 혼인신고를 마쳤으니 A씨는 F6비자를 통해 합법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다.
그렇게 입국규제 해제 업무가 진행되는 동안 B씨는 남편 A씨를 초청하기 위한 서류를 진행했다.
서류가 간단하지 않고 복잡한 것도 있지만 남편의 불법체류 때문에 서류가 더 까다로워진 부분도 있었다.
F6비자를 발급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A씨는 정상적으로 F6비자를 발급받았다.
어렵게 발급이 되고 한국에 돌아올 기회를 얻어 많이 기쁘다고 했다.
이처럼 우즈베키스탄은 혼인절차나 행정업무가 조금 복잡하다.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정확하게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이다.
(출처 = 출입국관리소)
금감원, 우즈벡 금융협력 강화
조영제 금융감독원 부원장(오른쪽)이 12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 마프로노비치 수석부총재와 만나 정보교환 활성화 등을 논의했다.
금융감독원은 조영제 부원장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을 방문해 현지 은행감독을 총괄하는 수석부총재를 면담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방문은 지난 2012년 9월 한국 금융위원회와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 간에 체결된 금융감독협력 양해각서(MOU)에 따라 양국 금융감독 협력체계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회동에서 조영제 부원장과 마프로노비치 수석부총재는 한국 금감원과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 간에 정보교환과 인적교류 활성화를 위해 노력키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조 부원장은 지난 10일 카자흐스탄 금융감독위원장(Kuat Kozhakhmetov)을 예방하고 금융감독원장 명의의 친서를 전달했다.
또 카자흐스탄과 한국 간에 체결된 금융감독협력 MOU에 따라 감독정보 교환과 인적교류를 확대키로 합의했다.
(출처 = 아주경제)
ADB, 우즈벡에 고속도로 건설 지원
ADB(아시아 개발은행)의 지원으로 우즈베키스탄 고속도로 개선 공사가 이루어지게 됐다.
12일 ADB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추진 중인 고속도로 재공사에 대한 금융지원이 이루어지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총 220㎞ 구간에 대한 것으로 2차선 아스팔트로 구성되어 있는 기존 도로를 4차선 콩크리트 도로로 확장 및 개선하는 것이다.
ADB의 금융지원 결정으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향후 순차적으로 관련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며 우선적으로 Pungan-Namangan 75㎞ 구간에 대한 입찰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입찰일은 내년 1월 21일 마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1억2,000만달러급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업체들에게 자격조건을 부여하고 있다.
(출처 = engdaily)
겨울 트렌드 소재 ‘모피’의 종류
일반적 모피 재료인 양(Lamb)은 생후 5개원이 안되는 새끼 양을 말하고, 가장 대중적인 모피로 종류도 풍부하고 가격대도 다양하다.
보통 모피의 털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부드러운 털은 울(wool), 뻣뻣한 털은 헤어(hair)로 구성된다.
봄이 되면 부드러운 털은 모두 빠지고 뻣뻣한 털만 남아 있다가 추위가 다가오면 뻣뻣한 털 사이로 솜털같이 부드러운 면모가 돋아나서 겨울철에 대비하게 된다.
양모의 경우는 몇백년을 두고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나머지 울만 남고 헤어는 모두 쇠퇴해 버린 특수한 경우다.
특징은 사육지역이나 품종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다양한 이름이 있다.
세계 각지에서 사육되고, 털의 길이에 따라 길게, 중간 길이, 짧께 살린 것과 털이 곱슬하게 컬이 들어간 것, 혹은 러시안 브로드테일·아스트라칸·스와카라와 같이 털이 짧고 독특한 물결무늬를 가진 것 등이 있다.
아프카니스탄, 러시아산은 검정색, 브라운색, 회색으로 털이 짧고 파상이 있다.
남아메리카산은 백색이며, 아프리카와 중국, 인도산은 흑색, 회색, 백색으로 털이 많고 광택이 있다.
몽고산은 백색 계통인데, 털이 길고 비단 같으며 수북이 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산은 백색, 검정색, 브라운색, 회색으로 털이 짧고 광택이 있으며, 털이 꼬불꼬불 말려 있다.
주로 코트, 재킷, 스톨, 트리밍 등에 사용한다.
아스트라칸(Astrakhan)은 러시아 아스트라한 지방에서 많이 나는 카라쿨 종류인 새끼양의 모피를 가리킨다.
현재 카라쿨 종류의 양은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 지방, 남아프리카 연방, 이란, 이라크, 인도 등에서 사육되고 있다. 카라쿨은 ‘검은 호수’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까맣고 곱슬거리며 윤기와 광택이 풍부하다.
털의 색상은 거의 검정색이지만 10~15%는 회색이다.
코트에 많이 쓰인다. 털이 굵고 질기며 둥근 고리 모양이다. 모피는 값이 매우 비싸므로, 흔히 외관만 흉내 낸 모직물이 대용된다.
(출처 = inews365)
[기획 연재] 고려인 이주생활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3부)
(하단 기사는 조옥주(사할린한인 2세)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것입니다.)
1980년쯤이었던 것 같다. 코르사코프시에 사는 큰언니 집으로 타슈켄트에서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나는 우편국에서 근무하고 남편은 고추 농사를 짓는데, 그곳으로 고춧가루를 보내주면 좀 팔아줄 수 있습니까’라고. 타슈켄트에 사는 큰땅배기(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지칭하는 말) ‘김 따냐’라는 여성이 보낸 것이었다.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후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약 10년간 고춧가루를 보내고 팔아주고 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사할린에는 고춧가루, 찹쌀, 깨, 콩 이런 것들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큰땅배기들이 고향에서 가져가 팔았었다. 타슈켄트에서 1년에 10kg짜리 소포 20~30개 이상이 온다. 그럼 내가 코르사코프로 실어가고 어머니는 알뜰하게 주위사람들에게 팔아서 그 돈을 고스란히 모았다가 우편으로 부쳐준다. 우리가 이문을 남기지 않는 대신 우리 식구들이 먹을 것을 챙겨줬다.
고춧가루와 함께 오는 편지 속에는 늘 ‘한번 놀러오라’고 써 있었다. ‘어머니 모시고 한번 가야지, 가야지’하다가 그만 갑자기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다음해 딸을 데리고 친구 춘희와 함께 갔다. 한 달 동안을 그 집에서 묵으면서 얼마나 대접을 잘 받았는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따냐 부부는 “당신들 덕분에 우리가 아이 4명을 다 대학공부시킬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라면서 수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돌아온 후 곧 우즈베키스탄이 시끄러워졌다. 소련이 무너진 후 그녀도 우체국에서 쫓겨났고, 고련이 농장도 없어져서 농사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젊은 자식들은 살길을 찾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92년부터는 고춧가루도 편지도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다. 지금 따냐는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
1983년 4월, 어머니에게 집을 맡기고 나는 ‘라트비아’로 향했다. 5천 루블을 뱃속에 감추고 모스크바를 거쳐 ‘리가’로 장미 모종을 사러 나선 것이다. 그 당시 5천 루블이면 ‘지구리’나 ‘모스크비치’(러시아산 자가용차)를 살 만한 큰 돈이다. 이만한 돈을 들고 젊은 여자 혼자서 생판 모르는 곳을 찾아간다는 건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다.
70년대 후반부터 사할린 한인들 중에 장미나 튤립을 재배해서 시장에 내다파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당시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여덟 집, 코르사코프에 두 집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게 돈을 끄는 장사라고 했다. 물론 돈 욕심이 많은 내가 탐을 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가 어디서 모종을 사고 어떻게 키우는지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모두가 쉬쉬해서 말이다. 우체국에서 일을 하니 장미모종이 라트비아에서 소포로 부쳐져 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알아내야한다고 생각하다가 하루는 궁리 끝에 소포의 주소를 몰래 훔쳐 적었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류다씨, 나는 사할린에 사는 따치야나라는 사람입니다. 당신에게서 장미 모종을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그랬더니 자기집에서 숙식이 가능하니 오라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나는 ‘리가’로 향했던 것이다.
공항에 내리니 붉은 장미 다발을 들고 내게로 다가오는 남녀가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나를 차로 모셔 집으로 데리고 가서는 먹이고 재우면서 재배법을 가르쳐주었다.
큰 장미 모종이 한 개 3루블이었는데 천개를 샀다. 일주일 예정으로 가긴 했는데, 이틀 만에 숙제를 다 마치고 나니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구경이나 하며 지내라는데 빨리 심어보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다. 표를 바꿔서 3일 만에 그 집을 나섰다. 박스 두 개에 500개씩 모종을 나눠들고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에 내렸다. 내 집으로 갈까 하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그 길로 코르사코프 어머니댁으로 달렸다. 내가 내 준 숙제를 하러 모여 있던 형제들이 나를 보고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직도 시간이 있다며 쉬엄쉬엄 모종 심을 땅을 다 일구고 있는데 내가 들이닥친 것이다.
차를 한잔 마시며 숨을 고르고는 형제들을 끌고 당장에 마당으로 나갔다. 3일 동안 쉬지 않고 땅을 일구어 모종 천개를 다 심었다. 그리고 딱 1주일이 되는 날 우리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빈손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모종은 어떡하고 빈손이냐?”하면서 놀라셨다. “마마, 벌써 코르사코프에 가서 모종 천개 다 심어놓고 오는 길이라우.” 하니 어머니는 “차~암, 내 딸이지만 정말 자랑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더 바빠졌다. 하루는 우체국에서 일하고 하루는 코르사코프에서 꽃장사를 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집을 아침 7시에 나와 저녁 8시가 되면 우편국에서 일을 마치고, 우체국 바로 옆 역광장에서 8시 5분 코르사코프행 막차를 탄다. 코르사코프에 도착하면 저녁을 한 술 뜨고는 곧 어머니, 언니와 둘러앉아 장미 잎을 따고 가시를 쳐내는 일을 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종일 거리에 서서 꽃을 팔고 어머니댁에서 자고 그 다음날 우체국으로 곧장 출근한다. 한겨울을 빼고는 대부분 이렇게 살았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꽃을 키우고 언니와 나는 손질해서 팔고. 물론 직장일을 하면서다.
장미는 키우기가 참 힘든 품종이니만큼 값도 비쌌다. 빵 한 덩어리에 26카페이카인데, 장미꽃 한 송이 값이 5루블이었다. 장미꽃 한다발이면 교사 한 달 월급이다. 벌이는 소문대로 정말 좋았다. 어머니는 “내 평생 이런 돈을 만지는 날이 올 줄은 꿈도 못 꿔봤다!”며 감격해 하셨다. 우리 자매들은 동네에서 제일 먼저 비싼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살 수 있었고 남동생은 차를 샀다.
돈 버는 재미에 고단한 줄도 모르고 우체국과 코르사코프로 뛰어다녔다. 물론 바느질일도 쉬지 않았다. 우리 부부 월급도 상당한 액수였는데 꽃장사에 바느질에... 돈은 차곡차곡 쌓여갔고 나는 남부러울 것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제는 평생 돈 걱정 않고 살겠다’며 미소짓곤 했다. -끝.
(출처 =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