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 속에서의 꿈에 대한 생각
탄생이 없고 죽음이 없는
진아가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꿈이었습니까?
세계라는 겉 모습이 꿈이었고,
이 꿈 속에서 그는, 진아는
자신이 개체적 자아가 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자 환(幻)만 증가했습니다.
실재하는 듯한
이 세간적 삶의 겉모습은
'하나의 꿈'입니다.
신이었던 일자(一者, One)가
하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
등과 같은 모든 사람과
전 세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꿈입니다.
세계 안의 모든 존재들이
이 꿈 속에서 흥청대고 있습니다.
그 모든 존재들 가운데
한 명이
아주 멀리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성자에 대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런 구도자는
무아적인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에고로 가득 찬 사람은
개에게 빵 한조각도 던져주지 않겠지요.
무아적인 자비행을 하고 나면
무아,
곧 '순수한 지성'이 일어나는
체험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자들에 대해
존경을 느낀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의 선조들,
곧 먼저 왔던 성자들의
축복의 열매는 대단합니다.
이 꿈의 삶 속에서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한다는 것은
희유한 일입니다.
부(富)는
술과 같은 일종의 도취제입니다.
전생에 지은 공덕 때문에
우리는 스승을 향하고,
그 스승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분별력을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스승을 찾아가고,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비본질인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이해에 도달합니다.
그럴 때만
우리는
세계가 환(幻)임을 깨닫고,
하나의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가르침의 순수한 본질을 체험하여
전 세계가 환(幻)이라는 것과
'지고의 자아가
유일한 진리'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진리ᆞ의식ᆞ지복의 화신'이 되고,
브라만과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이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될 때,
그에 대해 생각할 때,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체험을 얻었고,
이제 깨어났다"고 말할 때,
체험을 얻은
그 '나'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뭔가를 체험했다고 말할 때,
에고인 '내가 있다'가 있습니다.
'나' 또는 '너'라고 말하는
물건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에고 일 뿐입니다.
그것은 환(幻) 속의 미혹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그가 있다', '당신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김 선생'이라고 부르는
예전의 바로 그 사람이
이제는 브라만이 되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전의 김선생은 환(幻)이었을 뿐이고,
그 '비실체'가
지금은 실제가 되었다고 판단한다면,
여러분의 幻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본질적으로
여러분의 존재인 것은
있는 그대로의 실재입니다.
어떤 '나'도,
가장 미세한 형태의 '나'조차도
없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몸을 ㅡ '나'를 ㅡ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한,
'나'는 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전 우주가 여러분 안에 있다는
실제적인 느낌,
그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일체가 그이고, 내가 곧 그다'
하는 이해입니다.
누에는
자기 집인 고치를 짓고 나서
그 안에서 죽습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이
자기 자신을 속박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그 몸이라고 여깁니다.
이것 자체가 속박상태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누에의 고치처럼 된 것입니다.
고치 위에 미지근한 물을 부어
그 벌레가 죽고나면
우리가 명주를 얻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전 우주, 공기
그리고 그것이 들어 있는
허공이
자신의 몸이라는
느낌을 붙들면,
자동적으로 브라만이 됩니다.
오직 브라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두번째가 없는 하나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자신이 브라만입니다.
감각 대상들에 대한
갈망이 사라진 사람,
다른 모든 것과 별개라는
'나'라는 느낌이 사라진 사람,
자부심이 사라진 사람이
참으로
브라만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ㅡ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그대가 그것이다> ㅡ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