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이 이천에 있다고?
2월말로 퇴임하시는 수학선생님은 명문고 출신답게 각계에 친구들이 많다.
지난해 9월에는 동창친구가 생산하는 막걸리라며 서너 병 챙겨주셨다.
상표가 ‘금정산누룩막걸리’인데 세 단어가 모두 익숙한지라 친근감이 생긴다.
그 유명한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를 론칭하였으니 동일계열이라고 한다.
마셔보니 산미(酸味)가 좀 있지만 누룩 고유의 향도 살아있고 옛날 막걸리 맛이 났다.
내 입맛만 그런가 싶어서 막걸리를 좋아하실 분들께 택배를 넣었더니 모두가 호평한다.
85세에도 여전히 반주를 즐기시는 장인도 시중막걸리와는 격이 다르다고 좋아하신다.
농막에 가서 고추 딸 때나 김장할 때 20병씩 주문하여 마시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지난해 설 선물은 공산품으로 준비했지만 몇 분에게는 금정산누룩막걸리를 보내드렸다.
이런 막걸리도 있었느냐며 극찬하는 이도 있었고, 옛날 생각난다는 분도 계셨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어릴 적 몰래 마시던 밀주(蜜酒)를 이제는 접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3kg 백설탕이 훌륭한 선물이었던 동시대의 누룩 막걸리가 선물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수학선생님이 동창친구와 연락을 취하더니 막걸리공장에 견학 가서 한잔하자고 제안한다.
이리저리 일정을 조정하다가 정월대보름을 길일로 택하여 이천의 신둔도예촌역에 집결했다.
막걸리 공장은 역에서 4km 떨어진 신둔면 용면리라는 곳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데,
도예촌을 끌어안고 멀리 한국관광대학교 캠퍼스를 바라보는, 자식을 품은 어머니 형국이다.
건물 외관을 감상하고 있는데, 문병근 회장님이 직접 나와서 맞아주신다.
한눈에 봐도 일을 잘 하실 것 같고 또 일 벌리기를 좋아하실 것 같은 분이다.
오랜 서울생활로 구수한 경상도사투리가 어설픈 표준말이 되어 공장을 안내한다.
쌀이 들어가서 술로 나와 병에 담기기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화시설이다.
쌀을 씻고 찌고 식히는 첫 번째 공정의 커다란 드럼통은 한번에 800kg까지 담는다.
막걸리를 익히는 숙성통이 24개로 하루에 최대로 2만 5천병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다.
통마다 온도조절 센서가 설치되어 있어 효모활동에 적합한 환경을 유지해준다.
마침 4일째 익고 있는 통이 있었는데 2천 5백병 정도의 양이란다. 술향이 그윽하게 올라왔다.
견학을 간단히 마치고 마을주변 설명을 들으며 2층 전시장에 마련된 식탁에 앉았다.
그 유명한 이천의 한우육회에 꼬치구이, 김치찌개 등 소박한 듯 풍성한 안주가 펼쳐있다.
막걸리를 도수별로 음미하면서 문회장님이 막걸리 사업에 뛰어든 사연을 듣는다.
품평회에서 유청길 명인과 만남이 있었고, 이후 사업협조를 통해 이곳에 공장을 지었단다.
문회장은 자신이 워낙 술을 좋아하다보니 건강이 아니라 음주를 위해서 운동할 정도란다.
동창인 수학선생님이 증명하는 문회장의 폭탄주 전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호텔, 골프장을 운영하는 전문경영인이지 막걸리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단다.
그저 서울시민에게 금정산성 막걸리의 진정한 맛을 보여드리는 것이 여생의 꿈이란다.
옛날 시골에서는 면단위로 술도가가 하나씩 있어 면민들에게 시큼한 밀 막걸리를 제공했다.
그 당시에 면에서 제일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양조장 주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사실이 그랬다. 일꾼은 잠자더라도 주인은 술 익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손을 보태야 한다.
문회장 역시 서울에서 새벽에 내려오거나 3층에서 잠을 청하다가 술독을 살핀다.
막걸리 맛은 물이나 쌀도 중요하지만 누룩이 절반이상을 좌우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가 쓰고 있는 500년 전통이라는 유가네 누룩을 공급받는다.
또한 누룩: 쌀: 물의 비율이 1: 4: 8인 황금비율을 지키고 있다고 옆에서 공장장이 거든다.
젊은이들은 신맛을 싫어해서 산미(酸味)를 잡는다고 최근에 숙성온도를 조금 올렸다고 한다.
문회장은 해외에도 사업장이 여러 개 있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막걸리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숙원으로 꼭 사랑받는 브랜드로 키우겠단다.
대한민국 최고인 이천쌀과 산속의 맑은 공기, 부산 유가네 누룩에 정성을 더해 빚으니,
그 은은한 향기와 고유의 구수한 맛을 여타의 막걸리가 따라올 수 있겠는가?
각각 6도 8도 10도 14도 정도 되는 막걸리를 양껏 마시니 모두가 흡족하게 취했다.
떠나는 길에 막걸리 한 상자씩 안겨주시고 나에게는 유가네 누룩 한 봉지를 더 챙겨주신다.
문회장님이 보시기에는 손수 막걸리를 빚어 마시기 시작했다는 내가 얼마나 기특할까.
부디 이 막걸리 사업이 꼭 성공해서 수도권 사람들에게 널리 공급해 주시기 바란다.
어릴 적 어머니가 빚어주시던 막걸리를 생각하며 이 사업을 시작했다는 문회장,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권주(勸酒)] 끝 두 구절이 문회장의 삶속 술사랑과 어울린다 하겠다.
身後堆金拄北斗(신후퇴금주북두) 죽은 뒤 쌓아둔 황금이 북두칠성을 떠받쳐도
不如生前一樽酒(불여생전일준주) 살아생전 한통의 술만 못하리.
(20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