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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34장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영광(Glory of God)과 성품이 가장 깊이 있고 압도적으로 계시된 장 중 하나입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인해 깨어진 언약이 어떻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갱신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요청하신 대로 출애굽기 3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원어 해설, 개념 분석, 인물 및 상황, 관련 구절, 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결론의 순서로 상세히 분석해 드립니다.
1. 원어 해설 (Original Language Analysis)
출애굽기 34장의 영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핵심 히브리어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 카보드 (כָּבוֹד, Kabod - 영광): 기본적으로 '무겁다(heavy)', '비중 있다'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가볍거나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가장 '무게감 있고(weighty)' 실재적인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33:18에서 모세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하레니 나 에트 케보데카)"라고 요청했을 때, 하나님은 34장에서 물리적인 빛만이 아닌 당신의 '이름과 성품'을 선포하심으로 이 카보드를 보여주십니다.
• 카란 (קָרַן, Qaran - 빛나다): 출애굽기 34:29에서 모세가 시내산을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할 때 사용된 동사입니다. 이는 '빛을 발하다', '광선이 뻗어 나가다'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뿔(qeren)'이라는 명사와 어근이 같습니다. 이로 인해 4세기 라틴어 번역본인 벌게이트(Vulgate) 역을 번역한 제롬(Jerome)이 이를 "얼굴에 뿔이 났다(cornuta)"로 오역했고, 훗날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상에 뿔이 달리게 된 역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 헤세드와 에메트 (חֶסֶד וֶאֱמֶת, Hesed we-Emet - 인자와 진실): 출애굽기 34:6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영광의 핵심 내용입니다. '헤세드'는 언약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과 자비를 뜻하며, '에메트'는 신실함, 진리, 믿음직스러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빛나는 영광은 곧 그분의 도덕적 성품입니다.
2. 개념 분석: 영광의 이중적 계시
출애굽기 34장의 영광은 두 가지 차원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시각적 현현에서 도덕적 성품으로의 전환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주로 빽빽한 구름, 불, 지진 등 감각적이고 압도적인 현상(Theophany)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4:6-7에서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강림하셔서 시각적인 빛이 아니라 청각적인 말씀으로 자신의 영광을 계시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즉, 하나님의 진정한 영광은 물리적 광채를 넘어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그분의 본성 자체에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둘째, '반사된 영광(Reflected Glory)'과 수건(Veil)의 기능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는 모세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면하여 교제함으로 묻어난 '반사된 영광'입니다. 백성들이 이 광채를 두려워하자 모세는 수건(마스웨, מַסְוֶה)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이 수건은 죄인인 백성들이 거룩한 영광에 압도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은혜의 도구인 동시에, 모세를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잇는 특별한 중보자로 구별하는 상징이 됩니다.
3. 관련된 인물과 상황 (문맥적 배경)
• 금송아지 반역 (출애굽기 32장): 34장의 영광은 이스라엘의 철저한 실패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언약을 깨뜨렸을 때, 공의의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려 하셨습니다. 즉, 34장의 은혜로운 영광의 계시는 철저한 죄악과 심판의 위기 직후에 주어졌기에 그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 중보자 모세 (출애굽기 33장):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생명을 걸고 중보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계속 함께 가시겠다는 보증으로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33:18).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자비를 끌어내는 중보자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며, 이는 훗날 온전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4. 관련 구절 및 신약으로의 확장
출애굽기 34장의 영광 모티프는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재해석됩니다.
• 고린도후서 3:7-18: 사도 바울은 출애굽기 34장을 인용하며 '율법의 직분(모세)'과 '영의 직분(새 언약)'을 대조합니다. 바울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이 율법의 정죄하는 영광이자 '결국 사라질 영광'이었다면,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복음의 영광은 '영원히 길이 있을 영광'이라고 선언합니다. 또한 바울은 모세가 율법의 광채가 사라지는 것을 감추기 위해 수건을 썼다고 해석하며,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수건이 벗겨진다고 말합니다.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은 출애굽기 34:6의 "인자와 진실(헤세드와 에메트)"을 헬라어 "은혜와 진리(카리스와 알레테이아)"로 정확히 번역하며, 시내산에 나타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완벽하게 나타났음을 선포합니다.
5. 학자들의 견해 및 관련 문헌
신학자들과 성서학자들은 출애굽기 34장의 영광을 구약 신학의 정점으로 평가합니다.
• 존 더럼 (John I. Durham, Word Biblical Commentary: Exodus): 더럼은 출애굽기를 '하나님의 임재(Presence) 신학'으로 봅니다. 그는 출애굽기 34장의 영광이 단순한 시각적 경이가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분석합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은 하나님의 임재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 브리바드 차일즈 (Brevard S. Childs, The Book of Exodus): 정경적 비평의 대가인 차일즈는 모세의 수건과 광채에 집중합니다. 그는 모세의 빛나는 얼굴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가 선포하는 율법과 말씀이 모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신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해 주는 기능적 권위의 상징이라고 설명합니다.
• 발터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 그는 출애굽기 34:6-7을 이스라엘 신앙의 '크레도(Credo, 신앙고백)'로 명명합니다. 이 구절에 나타난 자비와 긍휼의 영광은 이후 시편(시 86:15, 103:8), 요엘, 요나서 등 구약 전체에서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붙잡고 기도하는 신학적 근거가 됩니다.
◇ 결론
출애굽기 3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단순히 눈을 부시게 하는 물리적 빛의 향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치명적인 반역(금송아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멸하는 대신 용서하시고 언약을 다시 맺어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 인내, 긍휼의 성품(이름)이 영광의 본질입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온 광채는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대면할 때 일어나는 존재론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 시내산의 영광은 궁극적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으며(요 1:14), 오늘날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신자들 역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는(고후 3:18) 신약적 복음으로 귀결됩니다. 즉, 출애굽기 34장의 영광은 심판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절정이자, 성육신의 은혜를 미리 보여주는 거대한 신학적 그림자입니다.
♤ 성경을 관통하는 영광(Glory), 은혜(Grace), 용서(Forgiveness)의 개념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의 도래와 완성이라는 거대한 구속사적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개념이 하나님의 성품에서 시작되어 요한계시록의 우주적 완성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발전하고 확장되는지 원어 분석과 구속사적 여정을 통해 추적할 수 있습니다.
1. 핵심 개념의 원어 분석과 신구약의 연결
구약의 언어는 신약의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그 의미가 기독론적으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확장됩니다.
• 영광 (구약: כָּבוֹד, Kabod / 신약: δόξα, Doxa)
◦ 구약의 카보드는 '무겁다'는 뜻으로, 피조물과 구별되는 창조주 하나님의 압도적인 실재와 무게감을 의미합니다. 신약의 독사는 본래 '의견'이나 '명성'을 뜻했으나, 70인역(LXX)을 거치며 하나님의 찬란한 현현과 빛남을 뜻하는 단어로 격상되었습니다. 즉, 영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이 피조 세계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상태'입니다.
• 은혜 (구약: חֶסֶד, Hesed / 신약: χάρις, Charis)
◦ 구약의 헤세드는 언약에 기초한 흔들리지 않는 사랑, 인애를 뜻합니다. 이는 신약에서 카리스로 발전하며,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라는 구속론적 의미가 강조됩니다. 하나님의 카보드(영광)가 죄인들에게 소멸하는 불이 되지 않고 구원의 빛이 되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이 카리스(은혜)입니다.
• 용서 (구약: נָשָׂא, Nasa / 신약: ἀφίημι, Aphiemi)
◦ 구약의 나사는 '들어 올리다', '치워버리다'는 뜻으로, 죄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치워주심을 의미합니다. 신약의 아피에미는 '멀리 보내다', '빚을 탕감하다'는 뜻입니다. 은혜(카리스)의 가장 구체적인 행동이 바로 용서(아피에미)이며, 이 용서를 통해 인간은 다시 하나님의 영광(독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2. 구속사적 여정: 하나님의 성품에서 계시록의 완성까지
이러한 언어적 기초 위에서, 영광과 은혜 그리고 용서가 하나님 나라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점진적으로 계시되는지 4단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단계 1: 구약 - 하나님의 성품과 성막에 임한 영광
출애굽기 34장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영광은 빽빽한 구름과 번개가 아니라 "인자와 진실(헤세드와 에메트)"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을 진멸하는 대신 그들의 죄를 짊어지시는(Nasa, 용서) 은혜(Hesed)가 곧 하나님의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진영 한가운데 성막을 세우시고 그곳에 당신의 영광(카보드)을 채우십니다(출 40:34). 구약 학자 G.K. 빌(G.K. Beale)은 성막과 성전이 "에덴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는 축소판"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머무는 성전 중심의 제한적 영광으로 나타났습니다.
단계 2: 복음서 - 그리스도의 인격과 십자가 사역 (성육신한 영광)
구약의 성막에 머물던 영광은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 안으로 들어옵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장막을 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선언합니다. 예수는 걸어 다니는 성전이자,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 자체였습니다(오토 바우스, 하나님 나라). 이 영광은 십자가 사역에서 역설적인 절정을 맞이합니다. 죄인을 위한 궁극적 용서(Aphiemi)를 위해 그리스도는 죄의 저주를 짊어지셨고, 십자가의 수치는 요한복음에서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는(독사조, δοξάζω) 가장 위대한 대관식으로 묘사됩니다. 십자가는 은혜와 공의가 만나 하나님 나라가 법적으로 완성된 영광의 정점입니다.
단계 3: 서신서 - 성령 시대와 교회의 영광 (내주하는 영광)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영광과 은혜는 성령을 통해 교회와 신자의 내면으로 확장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고 말합니다. 성령 시대의 하나님 나라는 특정 영토나 성전 건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용서받은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곧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성전이 됩니다(고전 3:16). 게르하르두스 보스(Geerhardus Vos)가 지적했듯, 성령은 종말론적 하늘의 영광을 현재 신자들의 삶 속에 미리 끌어와 경험하게 하는 '보증(Earnest)'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은혜로 용서를 경험하며,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성품을 닮아갑니다.
단계 4: 계시록 - 새 예루살렘과 하나님 나라의 최종 완성
이 모든 구속사의 여정은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우주적인 완성에 도달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때, 거기에는 더 이상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Doxa)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3). 구약의 닫힌 성막에 갇혀 있던 영광이, 그리스도의 육신을 거쳐, 교회를 통해 퍼져나가다가, 마침내 온 우주를 성전으로 삼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출애굽기에서 우상숭배로 인해 죽어야 했던 백성들을 향한 자비(헤세드)로 시작된 하나님의 계시는, 십자가의 피로 씻음 받은(용서) 무리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며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하나님 나라의 완성) 자리까지 이어집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은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심으로(용서), 결국 우리를 당신과 똑같은 영광스러운 존재로 빚어내어 함께 영원한 나라를 통치하는 것, 이것이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구속사의 완벽한 궤적입니다.
♧ 성경에서 '영광(Glory)'과 '성전(Temple, 하나님의 처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 곧 성전이며, 성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내고 반사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구속사(Redemptive History)는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물리적 건물'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전한 인격'을 거쳐, 성령을 받은 '성도들(산 돌들)'로 이어지고, 마침내 요한계시록의 '우주적이고 보석 같은 성전(교회)'으로 완성되는 거대한 '성전 건축의 여정'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여정을 단계별로 분석해 드립니다.
1. 그림자와 예표: 에덴에서 솔로몬 성전까지 (물리적 공간에 임한 영광)
• 에덴 동산 (최초의 성전): 성서학자 G.K. 빌(G.K. Beale)은 그의 명저 『성전 신학(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에서 에덴동산을 '최초의 성전'으로 규정합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거니시며(임재) 아담과 하와가 제사장으로서 섬겼던 곳으로,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확장해야 할 사명이 부여된 원형적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인해 인간은 이 영광의 처소에서 추방당합니다.
• 광야 성막과 솔로몬 성전: 잃어버린 에덴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십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의 영광(카보드)이 성막에 충만"(출 40:34)했고,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을 때도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충만"(왕상 8:11)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빽빽한 구름으로 가려진 제한적 영광이었으며, 이스라엘의 타락과 함께 에스겔 10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결국 성전을 떠나버리고 맙니다(이가봇, "영광이 떠났다").
2. 학개의 예언과 예수 그리스도: 인격 안에 구현된 참된 영광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지은 스룹바벨 성전(제2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백성들이 절망할 때,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놀라운 예언을 주십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 2:9)
• 그리스도의 성육신: 학개의 예언은 헤롯이 건물을 더 화려하게 증축한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4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원어: 에스케노센, '성막을 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찢어질 성전의 휘장(육체)이셨으며(히 10:20),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선언하심으로, 건물에 머물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그리스도의 인격과 몸' 안으로 완벽하게 이동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다는 것은, 돌로 지은 집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본체의 영광(히 1:3)'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3. 오순절과 교회: 신자들의 심령에 임한 영광과 '산 돌(Living Stones)'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영광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혁명적인 확장을 맞이합니다.
• 내주하시는 영광: 오순절에 불의 혀처럼 임한 성령은, 과거 솔로몬 성전 지성소에 임했던 불과 구름의 영광이 이제 신자 개개인의 심령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라고 선언합니다.
• 산 돌들의 연합과 머리 되신 그리스도: 베드로전서 2:4-5은 이 신학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Living Stone)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성전)으로 세워지고..." 죽은 벽돌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산 돌(신자들)'들이 모여 우주적인 성전을 이루어 갑니다. 에베소서 2:20-22의 말씀처럼, 모퉁잇돌이시자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몸' 된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는" 과정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교회 시대, 곧 성령 시대의 영광입니다.
4. 요한계시록의 완성: 보석 같은 신부이자 성전인 새 예루살렘
이 모든 성전 역사의 종착지가 바로 요한계시록 21-22장입니다. 요한이 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물리적인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 건물 성전의 부재: 요한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머리 되신 하나님과 어린 양, 그리고 몸 된 교회가 완벽하게 연합되었기에 더 이상 매개체로서의 건물 성전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 보석으로 단장된 영광스러운 형상: 계시록 21장에서 새 예루살렘 성(교회)은 벽옥,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 12가지 찬란한 보석으로 묘사됩니다(계 21:18-20). 이 보석들은 단순히 천국의 사치스러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출애굽기 28장을 보면, 대제사장의 흉패에 박힌 12보석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즉 하나님의 백성 자체를 상징했습니다. 즉, 계시록의 보석 성곽은 수많은 고난과 연단을 통과하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반사할 수 있게 된 '성화되고 영화롭게 된 성도들 전체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흠집 많던 돌멩이들이 성령의 세공을 거쳐 하나님의 영광의 빛(계 21:23)을 온 우주에 투명하게 반사하는 영롱한 보석으로 완성된 것,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의 최종 형상입니다.
5. 학자들의 견해 및 신학적 결론
•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 네덜란드의 위대한 개혁신학자 바빙크는 종말론을 다루면서,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회복시키며 완성한다(Grace restores and perfects nature)"고 했습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내는 보석(영화로운 몸)으로 완성되는 계시록의 그림은 구속사의 위대한 승리라고 보았습니다.
• 리처드 보컴 (Richard Bauckham, 『요한계시록 신학』): 보컴은 새 예루살렘이 도시인 동시에 신부(인격)로 묘사되는 역설에 주목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영광스러운 임재로 완전히 관통되어 그 자체가 하나님의 거처가 된 '백성들의 공동체'라고 해석합니다.
• G.K. 빌 (G.K. Beale): 앞서 언급한 빌은 에덴에서 시작된 성전이 마침내 요한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 전체를 덮는 우주적 지성소(정육면체의 새 예루살렘)로 확장되었다고 결론 내립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은 에덴이라는 동산에서, 광야의 천막으로, 예루살렘의 돌 성전으로 이동해 오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 안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그 영광은 수천수만의 파편이 되어 우리들(성도들)의 심령 속에 내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듬어지는 '산 돌'들로서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자라나고 있으며, 이 역사의 끝(계시록)에서 우리는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하게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를 반사하는 '보석들로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몸(교회)'으로 나타나 온 우주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기에서 시작되어 계시록에서 완성되는, 영광과 성전을 관통하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구속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