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8회 산행기)
용봉산을 품고 오른 문수산
이 담 하
커피 때문에 온 밤을 꼬박 새우고 난 새벽, 가까스로 졸음을 털어 내고 집결지인 예술회관 역으로 갔다. 오늘 산행은 충남 홍성에 있는 용봉산이다. 수덕사와 덕숭산은 이미 가 본적 있지만 용봉산은 산행안내문을 통해 처음 알았다. 오신 분들은 부회장 이병록 선생님, 언제나 일찍 오시는 김재덕 선생님, 임노순 회장님, 산행을 위해 제일 많이 애쓰시는 양승근 산행부장님, 몇 달만에 뵙는 곽연화 시인, 제일 젊고 이쁜 임동숙 님과 저, 이렇게 일곱 명이다. 그런데 이병록 부회장님의 복장이 이상하다. 양복과 구두차림이라 놀랐지만 아무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다른 볼일이 생겼다며 회비만 내시고 가시는 바람에 여섯 명만 남았다.
모두가 허탈한 기분이 들을 때 회장님께서 참가 인원도 적고, 어제 어린이날(토요일)이라 교통체증 우려가 있으니 가까운 김포 문수산으로 가자고 제의하여 서운하지만 그렇게 따르기로 했다. 김포 양곡방면으로 가다가 잘 다니지 않던 시장 길로 들어섰다. 길을 잘못 잡은 줄 알았는데, 회장님은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볼거리 제공 차원에서 우리 일행을 위해 배려를 하신 것이다. 좀 이른 시간이라 꿈틀거리고 있을 뿐 제대로 장이 열리지는 않았다. 대신 서둘러 시장에 나온 고추, 호박, 가지 등 모종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인이 되어달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곽연화 시인이 모종 구경 좀 하자고 해도 회장님은 모른척하고 시장 길을 그냥 지나치신다. 아마도 산행이 목적이니 산을 먼저 만나려는 의도이리라. 통진이 가까워지자 해병대 부대건물이 자주 보인다. 왕년에 해병이셨던 회장님의 빨강 바탕에 샛노란 거짓말을 듣고싶었는데 입담도 나이가 드는 모양인지 묵묵부답이시다. 바로 앞에 강화대교를 두고 좁은 우측 길로 들어서니 문수산 이정표가 보인다. 그렇게 좁은 길을 한참 들어가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차가 멈췄다. 아무리 둘러봐도 등산로는 보이지 않고 굳게 닫힌 해병 유격부대 철문과 훈련용 타워만 보인다. 그러나 회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정문 옆 옹벽을 뛰어 올라 우리를 안내하신다. 철조망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좁은 등산로가 있었다.
회장님께서 가방 무게를 덜어야한다고 주시는 오이 두개 씩 배급받고 산행을 시작한다. 조팝꽃 한 무더기 피어 있다. 옆에는 그 쌀냄새가 키운 어린 찔레 순이 유년시절 아련한 향수를 불러온다. 먹거리가 귀하던 그때 봄날. 들길, 산길을 헤매며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한 움큼씩 어린순을 꺾어 먹었었다. 그 가시가 오늘도 내 손가락을 살짝 찌르며 아는 체를 한다. 그 뿐 아니라 노란 꽃을 이고 선 애기똥풀, 산무릇, 원추리, 산나리, 매발톱꽃 등 야생초들이 모여 키재기를 하며 살고 있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지 않아서 그런지 휴일인데도 등산객들이 적다. 이 코스는 해병대 유격훈련장이 있는 협곡이라서 등산객이 별로 이용하지 않고 절을 찾는 신도들이 주로 다닌다고 한다. 물이 흐른 흔적이 있는 마른 계곡 길을 가다 넓은 바위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쉬다 보니 이 산의 돌들이 신기하다. 흙덩이 같은 바위에 작은 조약돌이 켜켜이 박힌 게 눈길을 끈다. 그렇게 높은 산도 아닌데 힘이 들어 꼴찌로 올라가다 눈을 들어보니 수풀 사이로 문수사 기와 지붕이 보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절 마당에 들어섰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석간수로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절을 둘러본다. 절이라기보다 작은 규모의 암자 같다. 작은 건물이지만 비로전은 아름다운데, 종무소나 요사체는 영락없는 변두리 달동네 판잣집 수준이다.
문수사 창건이 통일신라시대라고 전해지는데, 절 옆에 서 있는 석탑과 부도가 그나마 세월의 흔적을 전해준다. 8각의 하대석 위에 종대석, 그 위에 8각 상대석을 놓았다. 상대석 위에 원형의 탑신을 설치하고 8각 옥개석을 얹었으며 그 옥개석 위에 보주석을 놓은 이 부도는 고려시대의 형태를 계승하고 있는 조선시대 부도라고 한다.
문수사 비로전을 끼고 돌아나가 고승 풍담대사 사리가 봉안된 묘탑을 둘러보고 정상을 향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더 나빠 나만 몇 번이나 미끄럼을 탔다. 등줄기가 땀으로 좀 젖는다 싶은데 정상이다. 서쪽을 보니 놀고 있는 헌 다리 옆에 강화대교가 보이고, 우리 일행이 들어섰던 협곡 아래 해병대 유격 훈련장이 한눈에 보인다. 저 건너편에 아직은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나라 북한 땅도 보인다. 귀기울이면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이 가까운 거리인 듯 싶은데, 그 사이에 놓인 건 바다가 아니라 체제라는 것이 아쉬웠다
산 정상에서 잠시 휴식하는 동안 산행부장님이 갖고 오신 매실주를 권한다. 이 감칠맛 나는 술이 고작 한 잔씩이라니, 너무 아쉽다. 그래도 오이와 토마토 등으로 안주를 하고 잠깐 산성을 둘러본다.
문수산성은 서해에서 한강으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또 한편으로는 강화도를 옹호하고 지켜주는 역할을 한 곳이라고 한다. 전체 길이 6km 가운데 해안쪽 성벽과 문루는 모두 유실되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4km 정도의 성곽이 본래의 것으로 남아있다. 산성의 명칭은 문수사(文殊寺)에서 유래하였으며,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하여 1694년(숙종20)에 축성되었다고 전한다. 1812년(순조12)에 대대적으로 중수하였고, 1866년(고종3)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과의 일대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서구 열강들이 조선을 넘보던 1866년, 흥선대원군이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 신자 수천 명을 학살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로즈(Roze, P. G.) 제독은 프랑스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를 침입하였다. 1866년 9월 7일 프랑스군의 로즈 제독이 규리르호를 기함(旗艦)으로 하여 포함과 해방함 및 통보함 등 7척으로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하여 이튿날 강화성을 점령하고, 18일에는 이곳 문수산성으로 침입하였다. 이때 문수산성에는 한성근(韓聖根)이라는 자가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광주의 별파군(別破軍) 50명을 이끌고 수비하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작은 배가 성의 남문밖에 다다라 정박하였는데, 한성근이 이끄는 우리 수비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성근은 후퇴하였는데, 포수 4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하였으며 1명이 포로로 잡혔다. 프랑스군은 2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자 성안의 민가 29호를 불살라 버렸다. 이 격전으로 해안가의 성벽과 문루 등의 시설이 파괴되고 성안이 유린되었다.'라는 내용의 기록이 실려 있다.
하산 할 때도 미끄럼을 탔지만 일행보다 빨리 내려와 자유숙(自由淑)-일행과 떨어져 자유롭게 혼자 가는 여자라는 뜻의 별명-이란 말을 들은 이유는 송화를 따기 위해서인 걸 다른 분들이 아실까. 열심히 송화를 따다보니 봉투에 쌓이는 무게감의 재미도 있었다. 오가는 이가 없어 약간 무서움도 있었지만 얼마쯤 지나 일행의 목소리가 들려 안심했다. 산에서 내려오다 더덕이라고 믿어 올라 갈 때 찜 해놓은 것을 캐보니 그냥 풀뿌리라서 실망도 하고, 옆에서 거들어주시던 양 부장님께는 민망했다. 하산해서 주차장에 도착하니 한여름 날씨다. 일행들은 다소 지치고 허기져 보였다. 산행 후에 맛집을 찾는 것은 인산의 전통이라 점심은 수도권에서는 이름이 제법 알려진 '김포 한탄강'이라는 식당에서 메기 매운탕을 먹기로 했다. 흔히 대,중,소로 나눠지는 양의 구분이 이곳에는 없다. 매운탕 둘을 시켰는데 한 냄비에네댓 명이 먹어야 될 엄청난 양이었다. 이 식당의 매운탕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건더기를 먼저 먹고 수제비를 넣어 즐기다가 마무리로 라면 사리를 익혀 먹는 것이라고 한다. 일행을 위해 팔을 걷고 수제비를 떠 넣는 회장님과 산행부장님 그림은 영락없는 애처가로 보였다. 모두 맛있게 먹는데 곽연화 시인만 민물고기를 못 먹는다고 야채와 수제비만 겨우 드시는 걸 보니 우리 생각만 했구나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는 동안 마당가 소나무에 만개한 송화가 보여 또 혼자 따 담았다. 인천으로 오는 도중에 김재덕 선생님의 제안으로 열두 켤레에 만 원하는 양말을 사서 두 켤레씩 나누기도 했다. 온 밤을 꼬박 새운 탓인지 송화에 정신을 판 탓인지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내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잠, 달아나지 잠은 양푼 비빔밥 보다 맛있는데, 어느새 차는 예술회관 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용봉산은 마음에 묻고 말았다.
첫댓글 산행기 너무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감칠맛 나는 산행기 쓰려고 그동안 그렇게 꽁무니를 빼셨는가 보네요? 아주 감성 넘친 묘사와 꼼꼼한 자료 조사가 특히 돋보입니다. 글구 감질나게 했던 매실주, 다음 연인산 갈 때 남은 것 좀더 가지고 갈께요. 또한 용봉산은 가을 쯤 다시 기회를 잡아 볼까 하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암튼 수고하셔습니다.
글로 나마 산행을 대신합니다. 꼼꼼하게 써주셔서 마치 본 듯한 문수산행기 구우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