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대 출신으로서 인터넷 벤처 신화를 이룩한 이재웅 대표. -동아일보 자료사진 | 국내 인터넷포털서비스 1위 기업의 대표 이사. 보유 주식 평가 자산 1679억원. 국내 인터넷 산업을 이끄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대표(35)가 그 주인공이다. 오직 인터넷 사업에만 몰두한 지 8년째, 회사는 1등 인터넷 기업이 되었고 또 자신도 국내 벤처부호 1위에 올랐다.
이 대표의 성공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젊은 나이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부끄러운 듯 겸손해하는 그는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성공한 다른 사람들처럼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그를 만나자마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부모가 모두 공대 출신인 탓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은 아니다. 수학과 과학 등 좋아하는 과목은 열심히 했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다른 과목은 당연히 성적도 나빴다. 그는 남들보다 일찍 컴퓨터를 접한 편이었다. 고교시절에 선물받은 컴퓨터에 푹 빠져 밤새는 줄 몰랐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공과대로 진학했다.
그가 인터넷이 등장한 것을 보고 창업을 결심한 것은 프랑스 유학 시절이었다. 언어학자 놈 촘스키의 일대기를 영화로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촘스키는 독립적이고 비영리적인, 그리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를 제시했어요.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죠. 사람들과 역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회사의 비전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하는 인터넷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해 1995년에 인터넷 회사를 만들었지만 당시 국내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기 전이었다. 회사는 서울국제만화 페스티벌을 인터넷으로 보여주면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기획력과 인터넷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데이콤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시절에 전산학을 공부한 것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당시 태동기였던 인터넷 사업은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사업이었죠. 이런 점에서 인터넷 사업은 이공계 출신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일이죠.”
그의 장점은 드러나지 않게 꾸준히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다음은 회사 운영도 수평적이고 체계적인 경영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기로 유명하다. 각종 위원회의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그렇고, 사장실을 따로 두지 않고 필요할 때 회의실을 쓴다. 공대에서 문제를 시스템으로 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배운 그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하느냐가 중요하지 모양내기, 생색내기는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문제를 체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이런 태도는 이공계가 아니면 배우기 어렵죠. 인생을 길게 보고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4년간의 배움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이재웅 사장은▼
1968년 서울 출생. 1991년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 파리6대학에서 인지과학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지내다 귀국해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2000년 ‘아시아위크’가 선정한 아시아 디지털 경제를 이끌 25인의 젊은 리더에 뽑혔고,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미래의 세계 지도자 100인에 뽑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가했다. 2001년에는 아시아인터넷어워즈가 선정한 최고 인터넷 기업가상을 수상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체 게바라 평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