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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Á VLAST by BEDŘICH SMETANA
스메타나는 여섯 편의 교향시를 불과 5년 만에 작곡했다. 처음에 그는 자기 작품을 4부작으로 완결하려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비셰흐라트’와 ‘블타바’(몰다우)는 1874년 말엽에 완성되었고 ‘샤르카’와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는 1875년 가을에 마무리되었다. 1878년이 되어서야 스메타나는 작업을 재개해 ‘타보르’와 ‘블라니크’를 몇 달 만에 완성했다. 이 두 곡은 후스 파의 성가 선율 속에서 펄럭이는 저항과 승리의 이미지에 기초하고 있다.
‘비셰흐라트’에서 발견되는 동기는 이 곡의 모토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사이클 전체를 통해 되풀이해서 등장하며, ‘블타바’에서 등장하는 대목이 유명하지만 ‘블라니크’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한다.
‘나의 조국’은 1882년 11월 5일에 프라하에서 전곡으로는 최초로 연주되었으며 체코 민족의 상징으로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 공연에 대해 오타카르 호스틴스키가 쓴 글은 다음과 같다. “‘블타바’가 연주된 뒤 흥분의 폭풍이 몰아닥쳤고, …이 연작의 여섯 곡 모두가 똑같이 폭풍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청중은 맨 마지막 화음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열중해서 연주를 경청했고, …‘블라니크’에서 최후의 강렬한 음향이 사라진 뒤 청중은 자기 자리를 벗어나 작곡가 곁으로 몰려들어 떠날 줄 몰랐으며, 스메타나는 자기 작품의 음표 하나도 들을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만족해했다.” 스메타나는 1874년에 ‘블타바’를 완성한 이후 귀가 완전히 멀었으며,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 전곡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다루는 소재에 대한 그의 열의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보헤미아는 빈의 온정적 간섭주의에서 서서히 벗어나 어엿한 국가로 출발하려 하고 있었으며, 스메타나는 체코 동포들에게 조국의 중요한 전설과 아름다운 풍광을 신성화한 음악을 바치고자 했다.
스메타나가 그려내는 음악적 풍경화는 체코 밖의 청자 역시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이 ‘블타바’와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가 이 연작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를 끄는 이유이다. 그러나 나머지 네 개의 교향시는 보헤미아의 역사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난감하게 한다. 블타바 강변에 높이 솟은 가파른 비셰흐라트 암벽 정상에 여러 세기에 걸쳐 남아있는, 강력했던 요새의 폐허는 오늘날에도 프라하라는 도시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한때 번성했으나 합스부르크 일가에게 밀려난 중세 체코 통치자들을 기리는 건물이었다. ‘샤르카’의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는 남자 기사들과 블라스타(Vlasta)가 이끄는 여성 전사들 사이의 무시무시한 전쟁이었던 ‘처녀들의 전쟁’을 둘러싼 무용담에 속한다. 보헤미아 남부에 위치한 타보르라는 도시는 얀 후스의 가르침을 신봉했으며 보헤미아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선구자였던 후스 파의 급진적인 일파에 의해 1420년에 세워졌다. 이들은 스스로 성스러운 투사라고 믿었지만 결국 신성로마제국군과 온건파 보헤미아인들에게 패배했다. 스메타나는 ‘타보르’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으며, 이 곡은 후스 파의 코랄 ‘너희 주님의 전사들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는 같은 악상을 타보르 인근의 산 이름을 딴 ‘블라니크’의 비할 데 없을 만큼 열광적인 피날레에서 다시 한 번 사용했다. 전설에 따르면 블라니크는 패배한 후스 파 기사들이 안식에 든 땅으로, 이들은 조국이 자신들을 필요로 할 때 다시 한 번 말을 타고 달려 나오리라고 한다.
여섯 곡 모두 각각 두 가지 공식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하나는 1879년에 스메타나가 직접 써서 자신의 출판사인 우르바네크에 보낸 것으로 비교적 짧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 것을 인용하고 상술한 것으로 한층 상세하다. 1882년에 바츨라프 젤레니는 이 두 번째의, 시적으로 다듬어진 프로그램을 작곡가의 동의하에 정기 간행물 ‘달리보르’에 수록했다.
비셰흐라트(VYŠEHRAD)
스메타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비셰흐라트에서 일어난 일들을 읊조리는 음유시인들의 노래와 하프 소리가 들려온다. 이들은 위엄과 영광, 마상 시합과 전투를 노래하지만 이 모든 것은 비셰흐라트의 몰락과 그 결과로 남은 폐허로 귀결된다. 이 곡은 음유시인들의 애잔한 노래로 끝을 맺는다.” 이 교향시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교대로 연주하는 두 대의 하프는 위대했던 유서 깊은 성채의 기억을 일깨운다. 두 번째 하프는 전체 연작을 통틀어 되풀이되는 동경에 찬 ‘비셰흐라트 동기’를 제시하며, 첫 번째 하프는 자유로운 카덴차로 여기에 응답한다. 두 하프 모두 전설적인 음유시인인 루미르(Lumír)를 상징한다.
성의 장엄한 인상은 잔물결처럼 일렁이는 첫 번째 하프의 화려한 울림 속에서 등장하는 호른과 바순에 의해 어렴풋하게 형상화된다. 두 하프가 여기에 가세한 다음 비셰흐라트 동기가 천천히 울려퍼지다가 팡파르와 뒤섞여 점차 위풍당당하게 확장되어 화려한 축전과 마상 시합의 추억을 간직한 옛 성채의 영광에 대한 상징으로 변모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급박한 중간부는 반음계로 뒤틀리듯 진행하며 어두운 분위기를 띤 C단조 동기로 시작한다. 젤레니는 이러한 대조를 이렇게 묘사했다. “음유시인은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비셰흐라트의 영광을 그리워하면서 그 몰락을 증언한다. 격렬한 전투 끝에 성채의 높은 탑은 무너지고 교회는 불에 탔으며 옥좌는 부서졌다.” 마지막 대목은 듣는 이를 첫머리로 되돌아가게 하지만 이미 그리움에 찬 추억만이 남았을 따름이다. 젤레니는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루미르가 불렀던 오랜 침묵의 노래의 탄식하는 듯한 메아리는 폐허 속에서 더 이상 되울리지 않는다.”
블타바(VLTAVA)
스메타나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블타바 강의 흐름을 묘사한 것이다. 이 강은 두 개의 작은 연못인 ‘따뜻한 블타바’와 ‘차가운 블타바’에서 발원한다. 악상은 두 개울이 합쳐 하나의 흐름을 이룬 뒤 들판과 숲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블타바 강의 모습을 묘사하며, 잔치가 벌어지는 시골 정경과 물의 요정들이 달빛 속에 춤추는 모습에 뒤이어 성채와 궁성 그리고 옛 시대의 폐허가 우뚝 서 있는 낭떠러지 옆을 스쳐 흐르는 광경을 그려낸다. 그러고 나서 블타바 강은 성 요한의 급류로 소용돌이치며 흘러들어가고, 한층 넓어진 흐름은 비셰흐라트 성채를 지나 프라하로 향한다. 그 뒤 장엄한 모습으로 멀리 사라져가고, 마침내 엘베 강에 합류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블타바’가 거둔 광범위한 성공은 스메타나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음악적으로 선명하게 구현했다는 데 바탕하고 있다. 작곡가가 설명한 모든 사항은 선명하게 귀로 감지할 수 있다. 이 곡은 플루트 두 대가 작은 샘물에서 졸졸거리며 흘러나오는 물결을 흉내내는 것으로 시작하며, 점점 물살이 불어나 유명한 E단조 주제로 표현되는 유장한 흐름을 이룬다. 젤레니는 폴카 에피소드를 ‘명랑한 노래와 지방 고유의 춤이 곁들여진 시골 사람들의’ 결혼식 장면으로 해석했다.
플루트가 연주하는 샘물 동기는 돌연 반짝거리는 달빛으로 바뀌며, 이 달빛이 비추는 물의 요정들은 물결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기 전에 즐거이 춤춘다. 성 요한의 급류를 묘사하는 광포한 에피소드에 대해 빈의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비꼬는 투로 논평했다. “심벌즈와 큰북을 비롯해 전 오케스트라가 엄청나게 소란을 떨어대는 통에, 이 곡을 듣는 사람은 블타바 강이 스스로 제2의 나이애가라 폭포로 돌진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강은 프라하에 도달하기 바로 전에, 마침내 좁다란 골짜기를 벗어나 체코의 수도를 향해 E장조로 흘러간다. 비셰흐라트 동기가 웃음과 흥겨움 속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뒤, 악상이 엘베 강으로 흘러드는 블타바 강의 마지막을 알린다. 이 모든 것이 12분이 채 못 되는 음악 속에 갈무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슬리크마저도 이 교향시가 ‘통일성 있게 짜였으며 자연스럽게 발전해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샤르카(Šárka)
“이 곡은 야생의 풍경이 주는 인상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처녀 전사 샤르카의 전설도 이야기한다. 첫머리는 연인의 배신 때문에 모든 남성에게 복수하겠노라 맹세한 샤르카의 분노를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츠티라트와 그가 이끄는 사람들은 샤르카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츠티라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샤르카를 풀어주고, 그녀는 감사를 표하는 척하면서 츠티라트와 그의 부하들에게 특별히 준비한 꿀술을 대접한다. 남자들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고, 모든 이가 인사불성에 빠지자 샤르카는 뿔나팔을 불어 처녀 전사들을 숨은 곳에서 나오게 한다. 전사들은 남자들을 급습해 차례대로 모두 죽여버린다. 살육의 공포와 잔학한 열광 속에 샤르카의 복수는 성취되며, 이로써 이 교향시는 끝난다.”
비록 스메타나가 여기서 프란츠 리스트 풍의 서사적 교향시의 세계로 깊숙이 뛰어들기는 했지만, ‘샤르카’는 결코 ‘블타바’에 뒤처지는 작품이 아니다. 첫머리의 격렬한 A단조 악구는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3도 음정으로 솟구치는 트레몰로 위로 펼쳐지는 광포한 관현악의 레치타티보는 샤르카의 피에 굶주린 복수심을 묘사한다. 질주하는 셋잇단음표가 당당하게 행군하는 기사들의 도착을 알린다. 심벌즈와 트라이앵글은 이들의 당당함과 자부심, 더 간단히 말하자면 린다 마리아 콜다우가 설명했듯이 ‘남성 특유의 허영심’을 상징한다.
갑작스런 불협화음이 이들이 행군을 가로막을 때 샤르카의 탄식이 숲 저편에서 들려온다. 주저하는 듯한 첼로의 기악 레치타티보는 나무에 묶여 있는 여인을 목격한 츠티라트의 당황을 묘사한다. 열광적인 중간부는 이 여인을 향해 빠르게 커져가는 그의 사랑을 밝은 색채로 그려낸다. 남자들이 술을 퍼마시는 주연의 흥겨움과 명랑함은 시골풍의 춤곡 리듬 속에 펼쳐지다가 다들 코를 골며 곪아 떨어짐으로써 끝난다. 샤르카는 어렴풋한 호른 소리로 부하들을 소환하지만,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슬픔에 젖어 자기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하며, 이것은 클라리넷 독주(‘doloroso recitando, quasi piangendo’, 즉 ‘괴롭게 읊조리며, 우는 것처럼’이라 지정된)로 표현된다. 그러나 참사를 막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여성 전사들은 방심한 남자들을 공격해 무자비하게 살육한다. 이들의 공격은 스메타나가 ‘살육의 공포와 잔학한 열광’이라고 묘사한 처음 주제가 재등장하는 것으로 상징된다.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Z ČESKÝCH LUHŮ A HÁJŮ)
스메타나는 이 곡을 보헤미아의 풍광을 바라봄으로써 일깨워진 감흥에 대한 아낌없는 묘사라고 기술했다.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를 듣는 이는 익살스러운 만큼이나 구슬프면서 진심어린 노래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것을 듣게 된다. 호른 독주가 숲에 생명을 부여한다. 라베 강변 저지대와 그 너머의 유쾌하고 풍요로운 지역들도 노래로 불려 생명을 얻는다. 감상자는 이 곡에서 자기에게 가장 와 닿는 것을 가려낼 수 있으며, 악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세부적인 것들을 이용해 각자 마음에 드는 그림을 빈 캔버스에 그러낼 수 있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전원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이 네 번째 교향시는 드보르자크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운찬 슬라브 춤과 같은 분위기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G단조로 덮어씌우듯 강력하게 확장하는 악상으로 시작하는 첫머리는 어딘지 불안정해 보인다. 이 대목은 젤레니가 단순하게 ‘시골 풍경을 접했을 때 받게 되는 강렬한 인상’이라고 주장했던 것 이상을 묘사하고 있다. 단조로 된 구슬픈 악구가 곡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게 등장하며, 칙칙하고도 신비로운 음조는 스메타나가 숲의 어둠침침한 황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보헤미아의 전설도 염두에 두고 그렸음직하다. 두 번째 파트는 섬뜩한 D단조의 푸가로 시작하며, 세 번째 파트에서 농부들의 축제를 묘사하는 즐거운 폴카는 마치 전원의 삶을 그려낸 이 완벽한 정경 뒤에 비극이 감춰져 있기라도 한 양 갑자기 단조 악구로 기묘하게 이어진다. 눈에 띄게 독일적인 이 숲의 노래가 폴카에 의해 퉁명스럽게 가로막히는 모습은 두 민족의 공존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마지막 대목은 떠들썩하고 방탕하지만, 여기에도 음울한 단조 악상이 섞여 있다.
타보르(Tábor)
이 곡의 핵심적인 악상은 코랄 ‘너희 주님의 전사들아’이다. 스메타나의 말에 따르면 “이 코랄은 이 곡 전체를 구축하는 토대이다. 이 코랄은 분명 후스 파의 가장 중요한 기지였던 타보르에서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가장 힘차게 노래되었을 것이다. 이 곡은 그들의 철통같은 의지와 전투에서의 승리, 불굴의 정신, 인내심과 완강함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곡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후스 파의 영광과 영예를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그저 후스 파가 위세를 떨쳤던 시대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묘사한 것인지는 썩 분명하지 않다.”
이 다섯 번째 교향시는 후스 파 성가의 세 행에 거의 전적으로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이 연작의 다른 교향시들보다 한층 파악하기에 까다롭다. 스메타나는 이렇게 썼다. “나는 교향시 ‘타보르’를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한 위대한 투쟁으로 상상했다. 이 곡이 너무 음울하고 단조롭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이다.” 성가 첫 행의 단호한 리듬은 곡 첫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신비스럽고 느릿한 이 서주는 성스러운 전사들의 불굴의 정신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100마디 이상 진행된 다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알레그로 섹션은 광신적인 종교적 열광에서 비롯된 첫 전투의 승리를 노래한다. 발전부에서 등장하는 세 번째 동기는 역시 성가에서 따온 것이지만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탁월하게 조명된다. 결국 희망에 차 있던 전투는 감 7도 화음으로 이어지고 패배를 상징하는 거친 음괴(音塊)가 울린다. 서주에서 처음 등장했던 렌토 악구가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연주되는데, 이번에는 체념과 전멸, 파괴를 겪은 자들의 심경을 전달한다. 이 용감한 전사들의 운명은 마지막 교향시에서 완결되게 된다.
블라니크(BLANÍK)
“‘블라니크’는 ‘타보르’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후스 파 전사들은 패배한 뒤 블라니크 산중에 피신한다. 그들은 잠이 든 채로 나라를 위해 다시금 말을 몰고 달려 나갈 그날을 기다린다. 이런 연유로 ‘타보르’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주제가 ‘블라니크’의 바탕을 이룬다. 체코의 영광과 부활, 미래의 행복은 이 선율에 기초해 발전해 나갈 것이다. 행진곡과도 비슷한 이 찬가는 이 교향시뿐만 아니라 ‘나의 조국’ 연작 전체의 끝을 나타낸다. 간결한 간주곡이 블라니크를 둘러싼 목가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양치기 소년이 숌(오보에의 조상에 해당하는 중세 악기 - 옮긴이)을 연주하고 메아리가 그에게 응답한다.”
이 여섯 번째 교향시는 흥분에 차 있고 호전적인 분위기를 띤 후스 파의 성가 선율과 더불어 다섯 번째가 끝난 지점에서 시작한다. 성가의 첫 행에 해당하는 선율과 그 특징적인 리듬에 기초하고 있는 섬뜩한 D단조 행진곡은 후스 파가 패배한 뒤 블라니크 산으로 철수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맨 마지막 기사가 산 속으로 사라진 뒤, 전원적인 목가가 블라니크 산중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오보에가 숌을 연주하는 양치기를 그려내며 새의 지저귐을 비롯한 여러 자연의 소리가 여기에 응답한다. 알레그로 섹션에서 성가 첫 행의 도전적인 리듬이 단조로 된 음침한 화성과 더불어 다시 나타난다. 쉼 없이 흔들리는 음조가 억압받는 체코 민족의 고통을 일깨우면서 기사들을 산중에서 소환한다. 산 속에 숨은 기사들의 깨어남을 강조하는 성가의 세 번째 행을 연주하는 호른은 이들이 되돌아오는 순간을 예비하는 역할을 한다. 기사들의 위풍당당한 행군은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점차 빨라지며, 비셰흐라트 동기가 다시 한 반 등장하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끝난다. 관현악 총주로 강력하게 제시되는 이 동기는 후스 파 성가 선율과 혼합된 형태로 연주되며, 이 성가는 보헤미아가 적들에 거둔 승리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조국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작곡가의 정치적 비전도 반영하고 있다.
글|Josef Beheimb
번역|황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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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작에 대해 이처럼 잘 설명해놓은 글도 드물 겁니다... 많은 분들께 참고가 되리라는 생각에 올려 봅니다.
첫댓글 도리안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늘 퇴근 후엔 이 레퍼터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