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속여 돈 타는 가짜 발명가 속출
'무한 동력' 꿈꾸는 발명가 속출…
이승만 대통령 속여 돈 타내기도
1970년대엔 툭하면 다방에서 인질극 사건이 터졌다. 탈영병에서 가출 청소년까지, 불만으로 가득 찬 범인들은 애꿎은 시민을 흉기로 위협하며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고래고래 뱉어냈다. 1974년 4월 19일 낮, 서울 서대문구 어느 다방에서 벌어진 인질극은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2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 소동을 벌인 두 범인의 요구 사항이란 "우리가 발명한 무한 동력 기계에 특허를 내달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1년 전, 에너지 공급 없이도 영구적으로 작동한다는 무한 동력 장치를 고안해 서울시 등에 제출하고 생산 자금 100만원(오늘의 약 3000만원)을 요구했으나 소식이 없자 극단적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신문은 '하찮은 인질범의 엉터리 인질극' 때문에 12명이 공포에 떨고 무장 경관 130명이 출동했으니 웃지 못할 소동이었다고 했다(1974년 4월 20일자). 다른 한편으로 이 황당한 사건은 당시 '무한 동력'이란 헛된 꿈에 빠진 발명가들의 집착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보여줬다.
공짜 에너지를 꿈꾼 무한 동력기는 황금을 인공적으로 제조하려던 연금술과 함께 중세 이래 세계 과학계 몽상가들을 유혹한 2대 신기루였다. 그러나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일찌감치 무한 동력기, 즉 영구 기관이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리학의 열역학 제1 법칙과 제2 법칙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상에 공짜 없다'는 상식 하나만 있다면 영구 기관 따위는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일확천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아마추어 발명가들의 허망한 도전은 광복 이전부터 그치지 않았다. 1930년대에도 이 발명에 매달리다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서울대 교수를 지낸 고 권녕대 박사는 '자유당 시대에 무한 동력기를 발명하였다며 이승만 대통령을 속이고 돈을 받아냈던 자'가 있었다고 생전에 털어놓기도 했다.
무한 동력기를 개발했다며 특허 출원하는 일도 지난 90여 년의 신문 지면에 줄줄이 기록돼 있다. 1925년 52건, 1926년 51건 등 1920년대부터 한 해 30~50건씩 출원된 것을 시작으로 1999년까지도 40건 안팎씩 출원됐다. 모터로 물을 퍼 올리고, 그 물을 떨어뜨려 발전해 모터에 공급한다는 식의 기계였지만 작동할 리 만무했다.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해도 집착을 놓지 않는 발명가가 1980년대 초반엔 전국에 1000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어떤 외고집 발명가 팀은 1971년부터 7년간 무한 동력기의 특허를 끈질기게 신청했다가 거절당하자 특허청장실을 찾아가 "위대한 발명을 몰라주는 무식한 특허청 직원들"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1993년엔 영구 기관 발명을 심사해 주지 않은 전·현직 특허청장 등 7명을 검찰에 고소한 발명가도 있었다.
무한 동력 소동의 시대는 흘러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연료 없이 오토바이를 달리게 하는 전동 장치를 개발했다고 투자자들을 속여 300억원을 가로챈 사람들이 지난 22일 경찰에 적발됐다. 옛 영구 기관 연구자 중에 그 실현 가능성을 믿은 '자기도취형'이 많았다면, 이번 '영구 동력 장치' 사건의 관련자들은 한탕 하려던 사기꾼 냄새가 진하다.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영구 동력 장치 따위에 돈을 투자한 사람이 2700여 명이나 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