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세계인 ‘교황 프란치스코’ |
[올해의 세계인]
9개월 동안 활발한 현실 참여
고삐 풀린 자본주의 등 비판
2014년 첫 ‘평화 메시지’ 공개
“너의 형제는 어디에 있느냐”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성서> 창세기 4장9절)
해마다 새해 첫날을 가톨릭교회에선 ‘세계 평화의 날’로 기린다. 지난 12일 바티칸은 ‘2014년 평화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내놓은 첫 ‘평화의 메시지’다. 9쪽 분량으로 17개의 각주까지 달려 있는 메시지에서, 교황이 <성서>의 가르침에 기대어 강조한 것은 다름 아닌 ‘우애’다.
구약의 첫권은 ‘창세기’다. 천지만물을 창조한 신이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빚었다. 그 첫 인간의 후예가 카인과 아벨이다. 형 카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해, 들판으로 데려가 죽였다. 그때 신이 묻는다.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고. 창세기의 가르침은 오늘도 여전하다. 교황은 ‘평화의 메시지’에서 “당신의 형제자매는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카인과 아벨의 사연은 우리에게 ‘우애’의 의무를 일깨워줍니다. 또한 그 의무를 저버렸을 때 만나게 될 비극도 보여줍니다. … 우리의 이기적 행동이 저 많은 전쟁과 숱한 불의의 뿌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서> 신약의 첫권, 마태오복음서 23장8절은 “너희는 모두 형제”라고 가르친다. 신 앞에서, 인류는 모두 형제자매라는 말이다. 교황은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극심한 경제위기도 결국 신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멀어져 탐욕스럽게 물질만 추구한 결과”라며 “평화의 근본도,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도 ‘우애’를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 한해 자주 들어온 ‘교황 프란치스코식’ 발언의 전형이다.
지난 3월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이래, 교황 프란치스코는 숱한 어록을 남겼다. 9개월 남짓한 재임 기간에 세계가 그의 말에 귀를 세웠다. 그는 부와 빈곤의 문제에 집중했고, 불평등한 경제체제를 비판했다. 공정함과 정의를 강조했고, 탐욕과 권력의 유혹을 경계했다. 어느 정치·경제학자보다 강력하게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 11월27일 발표한 244쪽 분량의 ‘교황 권고문’은 그 백미다.
“극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절대다수와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불균형은, 시장과 금융투기의 완벽한 자율성을 강조한 이데올로기의 결과다. 이에 따라 독재체제가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자기식 법과 규칙을 부과하는 독재 말이다.” “남의 고통에 귀를 열라” 가장 낮은곳부터 품은 ‘따뜻한 위로’
‘복음의 기쁨’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당시 권고문에서 교황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새로운 형태의 독재’로 규정했다. “하느님의 왕국을 우리 세상에서 실현하는 것이 곧 복음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문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먹을 것을 주라’고 가르치셨다”며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행동이 없는 말은 공허하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몸으로 말에 무게를 더했다. <슈피겔>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그는 매일 아침 7시께 첫 미사를 집전한다. 호화로운 관저를 마다하고 바티칸 한켠의 산타마리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그는 바티칸 직원 80~90명이 참석하는 아침 미사에서 라틴어 대신 이탈리아어를 사용한단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 모습이다.
교황이 즉위 이후 가장 먼저 아침 미사에 초대한 이들은 바티칸의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었다. 이어 경비원과 정원사 등이 차례로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미사에 초대를 받았다. 점심 식사 시간에도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교황청에 딸린 식당을 이용한다. <슈피겔>은 지난 7월 교황청 관계자의 말을 따 “교황이 차례를 기다려 커피를 뽑고, 음식을 담아 자리로 오는 모습을 처음엔 모두들 지켜만 봤다”며 “언젠가부터 너나없이 교황과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즉위 이후 처음 맞은 부활절에는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겼다. 유전적 피부질환으로 흉해진 얼굴을 한 신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했고, 얼굴이 반 넘게 함몰된 신도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는 교회를 ‘야전병원’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다친 이들을 치료하는 게 첫번째 사명이라는 얘기다.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한테 콜레스테롤 수치 따위를 묻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도 말했다.
그는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특히 강조한다. 부와 권세를 좇으며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는 교회를 비판한다. 사제관을 나와 빈민촌으로 옮아간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사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역시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오랜 기간 빈민 사목에 열정을 쏟았다. 인터넷 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지난 2일 교황청을 경비하는 스위스 근위대 관계자의 말을 따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끔 밤에 평사제복으로 갈아입고 외출할 때가 있다. 로마 시내의 노숙인들을 만나기 위해서다”라고 전했다.
지난 7월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즉위 이후 첫 외부 방문지로 지중해의 작은 섬 람페두사를 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탈리아 최남단인 람페두사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113㎞ 떨어져 있다. 이탈리아의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가 람페두사에서 176㎞ 북쪽에 있다. 람페두사는 아프리카가 끝나고 유럽이 시작되는 땅이지만, 유럽보다 아프리카에 가깝다.
2000년대 들어 람페두사는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 됐다. 한해 수만명의 아프리카 난민들이 그곳 바다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향하고 있다. 빈곤의 땅을 탈출하려는 이들에 맞서, 풍요로운 이들은 거대한 장벽을 둘러쳤다. 교황은 람페두사에 도착한 직후 “난민들의 사연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다”고 말했다.
“여러분의 꿈과 기도를 예수님께 전해드릴게요.” 교황 프란치스코가 21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의 유서 깊은 ‘밤비노 제수 어린이 병원’을 찾아 환한 표정으로 어린이 환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어린이들은 “주사를 더는 안 맞게 해주세요”라거나 “병에 안 걸리게 해주세요” 따위의 소원을 적은 크리스마스카드를 교황에게 건넸다. 이탈리아어로 ‘아기 예수’를 뜻하는 이 병원은 1869년 문을 열었다. 1958년 교황 요한 23세가 크리스마스에 처음 다녀간 뒤 역대 모든 교황이 이맘때면 이 병원을 방문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로마/AFP 연합뉴스 |
공정함·정의 강조하며 탐욕 경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촉구
변화위해 ‘행동하는 교회’ 일깨워
난민·동성애자 등 약자에 손길
탈권위·탈격식으로 소외된곳 돌봐
람페두사에서 교황은 바다로 나아갔다. 현지 주민들이 어선 120척에 나눠 타고 뒤를 따랐다. 교황은 유럽 땅에 닿으려 바닷길을 건너다 목숨을 잃은 이들의 넋을 기리며 물 위에 헌화했다. 이어 난파한 난민선 잔해가 즐비한 해변에서 미사를 집전한 그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하는 강론을 했다. <로이터> 통신이 전한 강론 내용은 이렇다.
“난민들의 고통은 누구 탓인가?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동정심을 잃었는가? 함께 울어주는 능력을 잃었는가? 남의 고통에 익숙해졌다. 그들의 고통이 우리한테 아무런 감흥이 없어졌다. 우리의 관심 밖이다. 우리의 일이 아니다. … 그러니 기도하자. 가슴의 소리에 귀 막고, 자기만족에 겨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교황이 다녀간 뒤에도 람페두사의 비극은 이어졌다. 지난 10월3일 소말리아·에리트레아 출신 법외 이주자(이른바 ‘불법 이민자’)를 가득 싣고 유럽 땅으로 향하던 밀항선이 람페두사 앞바다에서 불에 휩싸인 채 침몰했다. 적어도 130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실종됐다. 사고 소식을 접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트위터 메시지 등을 통해 “비인간적 지구촌 경제위기와 인간 경시 풍조가 낳은 부끄러운 비극”이라며 “람페두사의 희생자들을 위해 모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자”고 호소했다.
“여기서 고통이 느껴진다. 그 고통이 여러분을 약하게 만들고, 희망을 앗아간다. 격한 어조를 사용하는 걸 이해해달라. 일자리가 없다면, 존엄도 없다.” 지난 9월22일 교황은 이탈리아 남부 사르디니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르디니아는 이탈리아 국내에서도 경제위기의 타격이 극심한 곳으로 꼽힌다. 영국 <가디언>은 당시 “사르디니아의 평균 실업률은 20% 남짓, 청년 실업률이 50%를 웃돈다”고 전했다.
교황의 방문 소식에 실직한 노동자들은 안전모를 쓰고 달려 나왔다. 그는 미리 준비한 원고를 버리고 “지금 여기서 여러분을 보며 가슴에 떠오른 생각을 말한다”며 즉석 강론에 나섰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 출신인 교황의 부친은 1930년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나, 철도 노동자로 평생을 일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은 모든 것을 잃으셨다. 일자리도 없었다. 그때 난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때의 고통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잘 안다. 내 설교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말하고 싶다. ‘용기’를 내시라고.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가 솟아날 수 있도록, 사목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 우리 모두 함께 연대해, 머리를 맞대고 이 역사적 도전에 맞서야 한다.”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들은 이날 교황이 강론을 이런 기도로 맺었다고 전했다. “주여,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십시오. 우리에게 일자리를 위해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렇다고 교황 프란치스코가 기존의 교리에서 멀찌감치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교회의 가르침은 분명하며, 나는 교회의 자식”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는 “교회의 원칙을 언제나 입에 올릴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교리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서도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셈이다.
이를테면, 가톨릭교회에선 이혼한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교황은 “성찬은 완벽한 이들에게 내리는 상이 아니라, 약한 이들에게 주는 강력한 치료제이자 자양분”이라고 지적한다. 낙태와 관련해선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했거나, 가난 때문에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겪었을 극심한 고통에 어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되묻는다. 동성애와 관련해선 “그들이 선한 뜻으로 신을 따른다면, 내가 어떻게 그들을 정죄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그를 두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인민의 교황’이라는 표현과 함께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미국 최대 성소수자 매체인 <애드버킷>도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꼽았다.
교황의 거침없는 행보에 대한 비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극우파의 ‘입’으로 통하는 방송인 러시 림보는 최근 자본주의에 대한 교황의 날선 비판을 두고 “마르크스주의자와 똑같은 주장”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극우 성향의 <폭스뉴스>도 교황을 ‘좌파’로 지목하며, “바티칸의 오바마”라고 비꼰 바 있다. 그럼에도 <워싱턴 포스트>와 <에이비시>(ABC) 방송이 지난 11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 미국 가톨릭 신자의 92%가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인구의 25%에 가까운 7820만여명이 가톨릭 신자인 미국은 브라질·멕시코·필리핀에 이어 세계 4위의 가톨릭 국가다.
열두 사도의 맏형인 성 베드로의 후예인 교황은 로마의 대주교다. 12억 신도를 자랑하는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자, 바티칸 시국의 수반이다. 그럼에도 그는 권위를 탈탈 털어냈다. 언 발 동동거리며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문밖으로 나와 함께 떨었다. 올 한해 지구촌이 ‘프란치스코 효과’로 따뜻한 위로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지난 10일 한국의 대학생 주현우(27)씨는 학교에 붙인 대자보에서 이렇게 물었다. 그가 지핀 ‘안녕들 하십니까’란 물음은 삽시간에 들불로 번지고 있다. “네 형제는 어디에 있느냐”는 교황의 물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제 주변을 둘러보고 되물을 때다. ‘외면하는 시민’이 ‘잔인한 사회’의 버팀목은 아닌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