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시와시학》 상반기 신인상 당선작/ 김윤아
와이프아웃 외 2펀
김윤아
오귀스트 로댕의 ‘시인’이
지옥문 앞에 앉았다
바위에 엉치를 걸치고
턱을 오른팔에 괴고 왼쪽 다리에 팔꿈치를
꾹, 얹고서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다
격렬하게, 치열하게, 때론 심각하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지
일상에서 일상적이지 않게
나락으로 빠지는 인간의 심부에 가 닿는 순간,
검은 그림자에서
날아오른 나비를 발견하고 멀리까지 좇아간다
새하얗고 눈부신 세계 앞,
눈 한 번 떴다 감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와이프아웃 되는 용오름,
어둡고 무거운 힘이 떠받친 지옥문
상카시아
방방 마다 감타래 널린
곶감 덕장처럼
여기서도 몸에 배는 냄새가 있습니다
꿰어진 병상에는
되감기는 시계들
감농사 한 세월 지낸 상주댁과 그이는
마지막 장대를 흔들다
잎과 잎 함께 떨어져 여기 왔다고 합니다
개미 발보다 짧은 날이 서산 넘는
가을 끝자락, 멍진 속 허파는 짜그라들고
마른 뼈 곶감 씨처럼 툭툭 불거져
몸 거죽 얼었다 녹았다 반복합니다,
닿는 곳마다 가라앉은 무게에
서리 희뿌옇게 내립니다
시계 속 단풍 든 감잎들
바람에 째깍일 때마다
까치밥은 먹었을랑가
둥시는 잘 마르고 있을랑가
분침 한참을 머무르는데,
유효기간 느린 이곳,
욕창으로 검붉게 지핀 아궁이,
날마다 되감기는
고장 난 시계들
* 상카시아 : 인간과 하늘 세계를 잇는 상징적 장소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
메이팅콜
단독주택 이 층에 세든 신혼의 여자
샐러리맨 신랑은 귀가 늦고
푸른 침실에서 듣는
아이 울음소리
업둥이는 없고
갓난애는 울고
2
그래서,
인어는 어떻게 사랑을 할까
다시 인어가 되었으니
무엇으로 사랑을 할까
신이여,
나에겐 부디 무관심한 부모를 내려주소서
성의 정체성을 결정 짓지 않는
내 사랑을
구속하지 않는
인자하지 않은 엄마를 만나게 해주소서
3
세일렌처럼, 푸른 침실로 데려가 뜻대로
동침할 수 있는 자유를 주소서
갓난애로 운다 떼지어 운다
* 김윤아 시인
-부산 출생
-부산가톨릭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 박사 수료
-동원과학기술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사단법인 시읽는문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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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문학상/신춘 당선작
2024년 《시와시학》 상반기 신인상 당선작/ 김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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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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