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후덕한 지인(知人)이신, 원로서예가/몽재-이현준 선생님의 필묵운필 작품과 함께 고전한시를 소개합니다.
-[多勿]-
원로 서예가/몽재(夢齋)-이현준 선생님의 운필(運筆)작품.
作詩有感(작시유감)
/정지윤=鄭壽銅(정수동)
最玲瓏處性靈存 (최영롱처성영존) 不下深功不易言 (불하심공불역언) 入妙應經深虎穴 (임묘응경심호혈) 出奇何減鑿龍門 (출기하감착용문) 金塘融日花無質 (금당융일화무질) 玉殿淸霄月有魂 (옥전청소월유혼) 幽徑只堪時獨往 (유경지감시독왕) 勤君莫寄大家藩 (근군막기대가번) 解:
시작 과정(詩作 過程) 가장 영롱한 곳에 영감은 서렸어도 큰 공력 안들이고는 표현해 낼 수 없네 妙에 들려면 범굴을 드듬어 거쳐야 하고 奇로 빼나려면 龍門鑒 뚫는 일에 어찌 덜하랴? 金塘 화창한 날 꽃은 피어 임자 없고 玉樓 맑은 밤에 달은 有情도 하다 그윽한 오솔길을 때로 혼자 거닐지라도 큰 집 울타리에는 가까이 가지 말 일이다 (위의 시 全文을 다 붓질하지 않고 전반 네절만 했다. 문장 전문이 모두 여덟절이지만 길기도 하고 내가 준비한 지면이 작으니 이리 한것이다, 낙관문장 중 정지용作詩有感인것을 詩作有感으로 운필한였으나, 그 뜻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 보고 그냥 두었다. / 夢齋) 註 玲瓏-금옥이 울리는 소리. 광채가 찬란한 모양 性靈-영묘한 성정. 영감으로 얻은 시상 不下深功-큰 공력을 들이지 않고서는 不易言-말로 바꾸어 내지 못함. 표현해 내기 어렵다는 뜻 入妙-신묘한 경지에 이름 應經-응당히 겪음. 당연히 거침 虎穴-범굴 出寄-기묘하고 놀랍게 빼어남 何減-어찌 덜하랴 鑿-깍다. 깨끗하다. 뚫다 龍門-용문석굴을 말함(중국 하남성 무양현 남쪽에 있는 석굴사원-용문감이라고도 함, 後魏에서 당에 걸처 건립, 조성됨, 석벽에 불감을 만들어 그 안에 크고 작은 조갇, 무수한 불상을 새긴 거대한 예술작품들이 있다.) 金塘-아름다운 연못 融日-화창한 날 無質-주인이 없슴 玉殿-화려한 누각. 옥루, 백옥루 幽徑-깊숙한 곳의 좁은 길 只堪-다만~~~할 만함 大家藩-큰 집의 울타리
*鑑賞을 위한 말 詩란 詩的感興(시적감흥)의 接神(접신)에서 受胎(수태), 出産(출산)된 영감의 所生(소생)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것은 아니리라...
詩神의 감흥에 의하여, 거의 自意識(자의식)이 배제된 如光如醉(여광여취)의 상태에서 啓示(계시)를 받아 쓰듯 一氣呵成(일기가성)으로 한편의 시를 써 냈다는 과거의 일부 낭만파 시인들의 神授說(접신설)은 차치 하고라도 知性(지성)이 중시되며, 기교와 彫琢(조탁)에 부심하는 현대시에 있어서도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최초의 點火(점화)는 역시 시적감흥, 곧 영감의 지핌에서부터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해서, 이 영감의 지핌이야 말로 다름아닌 시심에서의 受精(수정)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지핌도 없이 시가 이루어졌다면, 이것은 한낱 無精卵(무정란)에 불과한 낙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性靈(성령)은 바로 이러한 염감을 지칭함일 것이다. 황홀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으로 분간할 수 없는 未分化(미분화) 상태인 영감의 세계를 일컫는 것이라. 3. 4구의 비상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5. 6구와 같은 찬란한 詩境(시경)은 구현될수 없음을 앞구에서 말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범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범의 새끼를 얻을 수 없듯이, 그 영롱한 혼돈의 경지를 몸소 沈潛沒入하지 않고서는 형상화 할수 있겠는가? 오랜세월 무한한 정력, 공력을 쏟아 아로새긴 용문감의 조성에 못지않는 정성, 인내, 끈기가 없이는 이루어 낼 수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하겠다.
태아의 생김생김이 또렷해지기까지 각양의 소통으로 자리하기까지의 진통과 산고의 과정이 필요하듯 조탁과 연마를 거듭하는 詩惱등을 겪고서야 간신히 추상에서 형상화 한 詩境이 열리는 것이리라. 시의 오솔길을 홀로 거닐며 詩情(시정)에 잠기고 표현에 부심하다 보면, 이미 선인들이 먼저 표현한 名句(명구)를 마주치게 될 것인데, 자칫 흉내내기가 된다면 안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리라. 어디까지나 독창적인 자기 발견이며,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임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詩心의 잉태에서 분만까지의 험난하고도 고통스러운 시작과정을 이처럼 간절하고도 극명하게 描破(묘파)한 정지윤의 솜씨는 과연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또한 능히 數千語(수천어)의 詩論(시론)에 필적할 만한 이 한편의 시는 그 자체로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吟風弄月(음풍농월)로 글을 즐기는 일반적인 글과는 달리 인생 심층의 목소리, 영혼의 울부짖음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된다. 작자 정지윤은 해학가, 풍자객으로서의 별호인 鄭壽銅(정수동)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많은 기행각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하니, 사못 흥미가 있다. 공부해 보리라...
함께 상서 출신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소위 譯官四家(역관사가)인 洪世泰(홍세태), 李産瑱(이산진), 李 尙迪(이상적) 등에 대해서도 공부해 볼 일이다. 여기까지 작성하다 보니, 마치 내가 문학을, 더구나 감히 그 형이상학의 문학장르인 詩作에 대한 언급된 글이 되고 말았다. 행여 어줍잖은 글로 주제넘은 글이 된다면 큰 혜량을 바라는 바이다.
/(2011, 03, 07) 夢齋(몽재) |
첫댓글 인생무상, 제행무상
나무는 뿌리로 돌아가기에 이른 뒤에야
꽃과 잎새가 헛된 영화임을 알 수 있고
사람은 관뚜껑을 덮기에 이른 뒤에야
자식과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