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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분홍 집에 산다는 송이
인수는 부모님과 저녁 외식을 마치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들, 잘 다녀와라 난 널 믿는다. 아멘?”
“아멘.”
인수는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의 물음에 흔쾌히 대답을 했지만 아버지는 영장에 대해 가타부타 말씀이 없어 불안했다.
엄마가 말했다.
“인수야 그렇다고 상의도 없이 지원을 하니? 그건 너무 했다 영장이 열흘 전에 나왔잖아~하하하......”
엄마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억지웃음을 웃으셨다.
아버지는 억지웃음 이라는 것을 알고 편안하고 여유 있는 빙그레 웃음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런 웃음 뒤에는
좋은 이야기든 싫은 이야기든 긴 설교 같은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
“그래, 가족과 상의 없이 했지만 나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한다. 어려서부터 니가 똑똑해서 즉흥적으로 한 말이나 행동도
그리 틀린 일이 별로 없어 엄마가 칭찬을 많이 했지? 그런데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
엄마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여보, 그래서 설마 내 칭찬 교육이 잘 못됐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그럼~”
어머니의 이야기는 항상 아버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필요한 일심동체 추임새였다.
추임새를 듣고 아버지는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자란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생각으로 우월감에 사로 잡혀서 조언이나 지적은 잘하지만 남이 반대의견을 내면
틀렸다 생각하고 듣기 싫어하고 그 사람과 대화도 싫어하며 점점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포용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생길 수도 있다.”
아버지의 말씀은 언뜻 생각하면 계속 엄마의 교육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로 들릴 수 있었지만 엄마는 의외로
생글생글 미소를 띠고 계셨다.
인수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서두가 길까 생각했다.
아버지는 다시 시작했다.
“니 엄마가 항상 말했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준다고. 넓은 마음으로 남을 포용하라는 엄마의 기도 제목이고 인생모토였다.
그래서 내가 너를 신방과로 밀어 붙이고 내 뒤를 이어 기자를 하라고 한 것을 너보다 엄마가 더 많이 반대를 했었다.
한마디로 기자란 덮어준다는 것과 정 반대로 까발리는 직업 이라면서.”
아버지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탁자에 놓으며 엄마에게 눈짓을 보냈다.
다음 말은 엄마에게 하라는 신호였고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말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데....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기자가 천국 가는 것이라서....
당신과 우리 아들이 참 걱정이었어요. 인수가 천문대기 과학과를 간다는데 당신이 신방과를 쓰라고 했을 때 울며 기도를....”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다가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장지손가락이 눈가로 갔다.
아버지는 엄마의 예비 된 눈물을 미리 알고 꺼내 두었던 손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당신은 말을 짧게 해야지 길어지면 항상 기 승전 눈물이야.”
“하나님께서 눈물의 은사를 주셨나 봐요.”
엄마는 말끝에 어색한 안면 근육을 달래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눈가를 손수건으로 찍었다.
엄마의 다음 말을 들으려면 조금 기다려야했기에 그사이에 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니 엄마 같다면 종교를 가진 사람은 기자를 절대로 못한다. 정치경제사회의 비리나 부조리를 파헤쳐야하는데
어떻게 사랑으로 허다한 비리를 덮어 주냐?”
아버지의 눈빛 신호에 엄마가 다시 안정을 찾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니 아버지와 상의를 했다. 니 적성에 맞는 문화부나 천문과학 분야나 니가 좋아하는 다른 전문직 기자를 선택하라고,
그래서 너한테 보현산 천문대도 가보고 나물시장 드라이브 스루도 취재해 보고 머리도 식힐 겸 다녀오라고 했던 것이다.”
인수는 대답대신 눈물이 왈칵 났다.
부모님은 그런 깊은 뜻이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늘 아버지가 강압만 하시는 것 같아 반항으로군 지원을 한 것에 대한
죄송한 눈물이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엄마.”
엄마와 아버지는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같은 목소리를 냈다.
“됐다. 우리 생각만 한 것도 잘못이지.”
그렇게 일단락되고 까까머리 인수는 입대를 했다.
송이는 보현산 천문대와 과학관이 지척에 있었지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행여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두문불출했다.
오로지 엄마의 건강 회복을 위해 정성을 쏟았다.
독서와 가벼운 산책. 드라이브 스루시장에서 사온 산나물을 엄마의 지시에 따라 건강식 만들기를 하며 산야초 공부에도
열중이었다.
송이는 학창 시절에 엄마가 해준 것만 먹고 자랐지만 입맛이 까다로웠다.
그래서 제 맛을 찾을 때까지 실패를 거듭하며 응용실험반찬을 만들었지만 송이의 음식 솜씨는 극과 극을 달렸다.
부조화를 조화로 만들려는 딸을 보며 엄마는 엉뚱하다고 해놓고 파안대소를 했다.
송이는 그때가 가장 엄마의 건강상태가 좋아 보였기 때문에 엉뚱한 음식 만들기에도 신이 났다.
(특별한 날 아내와함께 만들어 먹는 무쌈채)
“엄마 이거 먹어봐 내가 만들어낸 작품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다시는 똑같이 만들지도 못하는 요리야 하하하.”
“뭐야 보기는 좋은데 요거하고 요건 요리 궁합이 안 맞아~그래도 우리 송이가 만든 거니까 맛있을 거야.”
엄마의 건강과 기분 상태의 극과 극은 음식 만들기와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며 천문 과학관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곳을 다녀오면 아버지의 생사를 아시는듯 피로와 스트레스로 수면제를 먹은 사람처럼 장시간 잠을 자곤 했다.
그런 엄마의 긴 잠을 깨우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 냄새를 풍기며 생뚱 궁합 요리를 만들었다.
엄마는 어느 날 산나물 시장 드라이브 스루에서 백구 한 마리를 사 오셨다.
그날 이후로 백구는 두 사람의 친구이자 마당 놀이였다.
송이는 백구 눈썹이 마치 웃는 모습처럼 생겨 웃음이 났지만 환희처럼 웃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래서 개 이름을 환희라고 불러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혹시 별 신동 환희를 알고 있다면 왜 환희라고 지었냐고 물을까봐 눈썹이 웃는다고‘눈썹이’라고 지었다.
“눈썹아 웃어봐라 하하하...”
“송이야 무슨 개 이름이 눈썹이야 어울리긴 하지만 좀 그렇다. 하하하.”
“뭘~딱 이고만. 하하하.”
눈썹이라는 이름 속에는 엄마도 동네 사람도 모르는 환희라는 뜻이 들어 있었다.
엄마와 딸은 사이좋게 한줌씩 개 사료를 주었다.
“눈썹아 밥 먹자~”
50사단.
훈련을 마친 인수는 군 생활이 육체적으로는 힘이 들었지만 기자라는 직업의 선택 폭이 넓어져 홀가분 했다.
'정훈 병'으로 명받아 행정반으로 전입절차를 밟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때 방송이 들려왔다.
자대 전입한 신병들은 행정반에서 전입절차를 거치라는 방송이었다.
인수는 언뜻 목소리가 어디서 들은 목소리 같다는 생각했지만 딱히 누구라고 떠오르지는 않았다.
신고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오는 길에야 별 신동 성 환희라는 생각이 나 화색이 돌았다.
"맞아~ 환희 목소리였구나."
내무반 신고를 마치고 몇 번이나 망설임 끝에 직속선임에게 방송을 하는 병사 이름을 물었다.
직속 선임은 성 환희 병장이라고 했다.
“뭐야 아는 사이야?”
“예 그렇습니다.”
“그럼 행정반에 홍보실이 함께 있으니 날마다 만나겠구나.”
“그렇습니까?”
인수는 대답을 하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다음날. 근무지인 행정반으로 일찍 가서 환희를 찾았다. 환희는 마침 당직이라 두 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인수는 환희를 보자마자 거수경례를 했다.
“강철. 신입 김 인수 이병.”
아직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환희는 인수를 불렀다.
“인수 형?”
“이병 김 인수 입니다.”
환희는 반가움에 형이라고 불렀다가 선임병장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바꾸었다.
“어? 김 인수 이병 무슨 일인가.”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매일 행정반에서 형과 이병의 두 얼굴로 만났다.
인수는 그때마다 송이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환희는 인수가 별 볼일 동아리가 보현산에 올 때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또 재수를 하느라고 공부에 열중이라
송이에 대한 소식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묻지도 않았다.
한 달이 흘렀다.
인수는 선임이 곁에 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말문을 열었다.
“병장님 말년 휴가가 언제 이십니까?”
“말년휴가? 한 달 남았다.”
“그렇습니까?”
그렇게라도 말문을 여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일요일. 인수는 단 둘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동안 겨우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털어 놓았다.
“내가 입대 전에 보현산 드라이브 스루 유래 취재를 나갔다가 옥계마을에서 누굴 만났거든?”
“누구요?”
“송이하고 엄마.”
“왜 송이가 거기에 있어요?”
인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환희는 들으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송이가 절대로 옥계 마을에 산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 병이 호전되면 떠나겠지만 만약에 이 사실을 발설해서 누구라도
찾아오면 어디로 떠나 버린다고 했으니까 만나려면 불시에 급습해 알았지?”
“형 고마워.”
환희는 말년휴가 날짜가 멀기만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 영천 행 버스는 느리기도 했다. 옥계에 다다르자 가슴이 마구 뛰었다.
“베이커밀러핑크 대문이 보인다고 했는데.....아 저기 있다.”
옥계 삼거리에서 내려 다시 오던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왔다.
‘송이가 있을까?’
대문 앞에 당도해서 계단 위로 난 작은 마당과 슬라브집을 살펴보니 모두가 핑크색이었다.
(부산 태종사 수국과 핑크 집)
“맞아 경북이형이 베이커밀러 핑크가 안정감을 준다고 했는데 송이가 엄마를 위해 핑크로 색칠을 했구나.”
분홍 벽과 커다란 수국 꽃 뭉텅이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눈썹이 웃는 백구가 있다고 했지?’
환희는 개가 짖을까봐 조심스레 집안을 살피는데 뒤에서 백구가 언제 계단을 올라왔는지 슬그머니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친근함을 표했다.
“어 정말로 눈썹이 웃는 백구네?”
환희는 백구를 쓰다듬으며 시선은 안쪽을 향했다.
이때 할머니가 문을 열고나오며 물었다.
“누구시오. 누굴 찾소 군인 아자씨.”
“예? 할머님은 누구세요? 이집 주인이세요?”
“아니요 왜 그러시요.”
“예? 여기가....송이네 집 아니에요?”
“송이요? 아~ 갈색머리 아가씨?”
“예. 엄마하고 같이 살잖아요?”
“아니요 그 사람들 이사 갔어요.”
“예?”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으라고 권하며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왔다.
할머니는 심심한데 잘 됐다는 듯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옆집에 살어~ 원래 여기 살던 할머니가 아파서1년 전에 집을 팔고 서울 아들집에 가서 수술을 하러 갔거든~
그 할머니가 이 사람들한테 살림살이까지 몽땅 그대로 둔 채 집을 팔아 버렸는데 그 사람들이 이렇게 집수리를
다 해놓고 살다가 갑자기 어디로 간다며 혹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그때까지 이 집과 저 백구를 돌봐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분홍집이 보기도 좋고 우리 집보다 여기가 더 좋아서 내가 살고 있지. 내가 보니까 딸이 옆에
있는데도 자꾸만 우리 딸이 보고 싶다고 하던데 엄마가 조금 이상했어. 딸은 엄마가 이상한소리를 한다며 병원에
입원을 해야겠다고 하던데 엄마는 자꾸만 대전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더라고 근데 나는 어디로 갔는지는 전혀
모르고 일주일 전에 이사를 갔어.”
“예? 일주일 전에요?”
“그렇다니까~”
환희는 다리에 힘이 다 풀려 버렸다.
‘또 어디에서 찾지?’
환희는 대구로 다시 나가 장희 누나 미장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송이의 소식은 절친 장희마저 깜깜 무소식이었다.
장희가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없는 전화번호라는 멘트만 들려왔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에는 들리지도 않고 과학관으로 갔다.
박 하순 교수님께 물었다.
“교수님~ 별동아리 중에 별 볼일 팀이 왔었나요?”
“어? 안 왔다 전혀. 아참 그렇지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너 휴가 나왔다 간 뒤에 인수가 왔다 갔는데 드라이브 스루 취재를 나왔다더라.”
“예 들었습니다.”
“어디서?”
“한 달 반전에 인수 형이 우리 부대로 와서 같이 행정반에서 같이 근무를 하고 있어요.”
“오~ 그랬구나. 잘됐다~”
송이 소식은 깜깜이로 놔 둔 채 말년 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했다.
환희는 인수를 보자마자 송이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물었다.
“인수 형 혹시 송이가 이니셜별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 맞아 송이가 엄마 머리에 HS 이니셜 머리핀을 채워주었다는 이야기를 안 해 주었다.
"아~ 그랬구나...."
"환희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힘내 아자~”
"감사합니다."
환희는 송이가 이니셜별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제 본격 송이 찾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제대를 했다.
집으로 돌아온 첫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창가로 갔다.
커튼에 꽃아 둔 이 세상에 단 두개뿐인 적색 이니셜별을 바라보았다.
그별을 보며 슬픈 독백을 했다.
“핼리가 길고 가느다란 타원형 궤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도는 것처럼 내 마음은 송이 주위를 돌았어.
이제 만나지 못하면 76년 후에나 만나는 혜성처럼 2062년 만날지도 몰라. 그때 나는 이 세상에 있을지도 몰라.
지금 내 심장이 빅뱅으로 터져 버릴 것 같아.”
이니셜 별을 주며 고백 했던 날 송이가 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송이가 했던 말을 뇌까려 보았다.
“난 떠돌이별처럼 살 거야. 난 자유로운 영혼의 별이야. 붙박이별이 싫어 일등별도 싫어.”
환희는 자신이 저장해둔 기억력이 두렵기까지 했다.
엉뚱하게 피터팬 증후군 환자의 증상이라는 생각이 무섭게 들었다.
군 제대를 하고도 송이 때문에 마음이 소년에 머물러 있다는 공포.
송이가 남긴 마지막말은 전혀 짐작도 되지 않는 말이었다.
모두가 궁금할 뿐이었다.
“송이엄마가 다시 어느 병원에 입원했을까?”
“송이가 별을 좋아 하니까 엄마와 함께 ‘별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닐까?”
“서로 위로가 되려고 대전 이모네 집 근처로 이사를 갔을까?”
“송이 엄마가 장희를 만나지 못하게 한 까닭이 무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도대체 어디 가서 송이를 찾는단 말인가.’
1초1분 한 시간.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안이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환희의 외로움과 허전함은 사랑의 크기였다.
허전함이 크면 클수록 송이를 더욱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글썽이는 눈물은 사랑한다는 결정체였다.
흐려진 시야에 송이가 보였다.
황갈색 긴 머리의 송이가‘HS’적색 이니셜별을 머리에 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영천의 명산들 위로 보고 싶은 송이 얼굴이 초승달로 떠올랐다.
기륭산. 채악산. 오봉산. 팔공산위로 축지법을 하듯 송이 얼굴이 건너뛰었다.
송이를 찾는 방법은 물음표만 남기고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온 세상이 캄캄하여 태양과 지구 사이에 들어간 가버린 합삭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태양이 빛을 잃어 따듯해질 기미가 전혀 없는 겨울한파 같은 마음이었다.
“초승달이 나오길 기다려야 하나? 찾아가야 하나?”
“내가 송이를 직접 찾아 나서지 않고 여기에서 안일하게 기다렸다가는 만나지도 못 할 텐데.”
“만약에 송이가 보현산을 찾아온다면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제대를 하고 두문불출 이틀이 지났다.
아버지가 다려놓은 옷을 입고 마당으로 나오자 반기는 백구 노송이와 보송이를 보자 송이 생각이 났다.
“한 송이 두 송이 집 잘 보고 있어라 다녀올게~”
“어서 가서 송이 소식을 알아 봐야지. 그동안 ‘별 볼일’동아리 회원들도 다녀갔는지 물어 보아야겠다.”
두 송이하고 헤어져 집 밖으로 나섰다.
제대하고 처음 산길을 따라 오르니 참 상쾌했다.
“아~이제야 내 집에 온 것 같다.산도 보고 나무도보고 익숙한 길도 만나고.....”
천문 과학관에 도착하자 제일먼저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
“아 아들 왔구나, 밥은 먹었지? 빨리 교수님하고 천문대 대장님한테 인사드리러 가야지? 오늘 아침에 내가 제대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셨어요? 그럼 가 볼게요.”
별 해설사 박 하순 교수는 한 획을 긋는 업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발견한 13개 별 중에서 12개를 발견한곳은 바로 영천 보현산 천문대로 박 한별 천문대장과 전용철 연구원
그리고 박하순교수의 끈질긴 노력으로 만들어낸 성과였다.
환희도 별을 발견하면 어머니 이름을 따서 ‘여왕별꽃님’ 자리라고 부르고 싶었다.
자기별은 ‘환희’그 곁에는 ‘송이별’이라고 미리 지어 놓았다.
박 교수님의 사무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문을 열자 서서 차를 마시고 계시던 교수님은 깜짝 놀라며 바라보았다.
반가움에 거수경례를 했다.
“강철.”
“강철. 환희야 드디어 제대를 했구나. 어디 한번 안아보자 와우~”
교수님은 찻잔을 내려놓고 환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환희와 초등학교 때부터 했던 익숙한 포옹이었다.
“야~정말 반갑다 오늘은 예약이 없는데 차나 한 잔 하면서 그동안 이야기나 해볼까?”
“예.”
이젠 제대도 했으니 언제부터 출근할래? 아 그렇지 대학에 다니다 갔으니 복학해야겠구나?”
“예. 그런데 복학하고 싶지 않아요.”
“왜?”
박교수는 동그란 눈을 뜨고 환희가 답했다.
“여러 형편상 그만 둘까 해요.”
“왜? 경제적인 문제야? 그런 거라면 천문대장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야.”
“예? 아니에요. 저는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 것보다 여기에서 훌륭하신 교수님들과 박사님들에게 직접 듣는 것이 더 흥미롭고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여기서 오랫동안 길들여져서 그런가 봐요.”
“그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방학 때마다 특강을 들을 때 니 눈이 다른 사람들보다 초롱초롱 했다. 조경철 박사님 강의 때는
아마 숨도 쉬지 않았을 걸? 하하하하.”
“아이고 숨은 쉬었어요. 별 말씀을.”
또다시 녹차를 따르는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에 박 교수는 환희가 군에 있었던 기간에 생각해 두었던 말을 꺼냈다.
“환희야 나는 너 때문에 기쁘고 웃어서 이렇게 건강을 되찾은 것 같다. 그래서 조기은퇴를 하고 다시 외국에 나가 좀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떠돌이별처럼 자유로운 별 여행도 하고 싶은데 그날이 언제쯤 될까?”
“예? 그럼 여긴 어떡하고요.”
환희의 동그란 눈에 박교수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에게 여기를 특별 선물로 맡기고 갈 거야. 그러니까 대학은 마쳐라.”
“예? 결국 대학 가라는 소리였네요 하하하하.”
“아니야~ 너 군에 있는 동안에 관장님과 상의를 했다. 내가 은퇴하면 널 여기에 앉히기로. 사실 너 만한 인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예? 말도 안돼요~ 교수님께서 오래 계셔야죠~ 전 교수님 밑에서 더 많은걸 배우고 싶어요.”
“뭐야 그럼 나는 은퇴도 하지 말어?”
“아 아뇨 그건 아니지만.”
“환희야 니가 꼬마 때부터 내가 가진 것을 몽땅 너에게 털렸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주냐? 20년 데칼 꼬마니가 된 너에게 하하하...”
박교수는 환희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했다.
“환희야 네가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왔을 때 직육면체1.8미터 광학 망원경을 보여 주었다.
실물의 백만 배 이상 관측되는 망원경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었더니 내가 해준 이야기를 다음날 앵무새처럼 조잘 거리는데
너무나 똑같이 말해서 나 놀래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랬어요? 하하하.”
“됐고~그때 내가 너의 뛰어난 기억의 천재성을 보았다. 넌 별에 관해서도 어려서부터 천재였다. 그래서 ‘넌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하고 가끔 물어 보았잖아.”
“맞아요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진짜 어느 별에서 온줄 착각했어요.”
“뭐야 농담이야 진짜야.”
“하하하 진담이에요. 저는 판도라 상자가 열렸을 때 탈출한 줄 알았다니까요?”
두 사람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시시콜콜하고 별별스러운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만큼 그리웠고 보고 싶고 옆에 두고 싶은 특별한 애정의 산물이었다.
해도 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교수님, 저는 1등별이고 삼태성이신 교수님과 천문대장님 그리고 전 연구원님을 일평생 모시고 별 바라기로 살고 싶어요.”
“삼태성? 하하하 칭찬한번 별스럽다 하하하.”
“또. 세 분이 근적외선 카메라로 거대질량의 블랙홀과 별을 삼키는 순간을 포착하신 것처럼 저도 신성을 찾아서 제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요.”
“그래? 좋지 그럼 니가 찾은 별은 ‘환희 별’이라고 해야겠다. 정말 다른 별하고 달리 환희 빛나겠다. 그치? 하하하....”
“예. 또 하나를 찾으면 엄마 이름을 따서 ‘여왕별꽃님’이라고 짓고 또.”
환희는 말을 거두었다. 송이별은 말하지 못했다.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둘은 긴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
환희는 곧바로 천문대 박한별 대장님을 찾아가 거수경례를 했다.
“강철. 제대 보고 합니다.”
“오 환희야 박 교수한테 들었다. 어우 더 멋져지고 아버님을 점점 닮아 가는데?”
“감사합니다.”
천문대장은 환희를 얼싸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수고했다 환희야, 나하고 녹차 한잔 해야지?”
“예 제가 내릴게요.”
“그래? 좋지 오랜만에 환희가 내려주는 녹차 맛은 어떨까?”
“예, 제가 내리는 녹차 솜씨는 녹슬지 않았겠지요?”
“하하하 아재 개그도 여전하네 하하하.”
(보성 천문대 친구 아내로부터 받은 차 받침)
환희는 전과 달라진 차 받침이 예뻐 물었다.
“어? 이건 보성천문대에 있다가 ‘몽골 바양하드’에 가서 별 해설사로 있는 친구 아내가 수제품이라며 주고 간 것인데 참 예쁘지?”
“예. 솜씨가 아주 좋은 것 같아요. 근데 저도 바양하드에 가고 싶습니다. 하하하.”
“그래? 꿈꿔봐 꿈은 이루어진다고.”
“이모님도 잘 계시지요?”
“그럼~ 서울보다 여기가 더 편하고 좋다고 날마다 행복지수 만점이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어제 박 해설사와 나누었던 이야기도 나왔다.
“환희야. 우리 천문대에서 우주 천문과학 발전과 인재육성을 위해서 매년기금마련 행사를 하는데 이번에 1회를 했다.
모금된 돈으로 천문 과학 분야 전공자에게 학비와 유학비를 마련해 주는데 네가 첫 수혜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복학해서 전공을
살려보도록 해라.”
“어우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 하셨어요?”
“그러니까 복학 전까지 머리도 식힐 겸 여행도하고 잘 생각해봐라. 별 신동을 평범한 둔재로 만들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환희는 마치 자신을 위해 행사를 만든 것 같았다.
“대학은 인생의 한 과정이야 물론 기억니은 가나다라 abc 안배우고도 글은 쓰지만 과정을 생략하면 부딪치는 그 힘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거야.
자격증. 졸업장. 수료증이 뭐냐 그것은 일을 하기위해 힘을 받는 발판이야. 육상 선수가 디딤판 구름판 도움닫기 없이 신기록을
세울 수가 없는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는 넓고 할일은 많다 하하하...”
환희는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피를 나눈 아버지지만 인생의 좋은 만남으로 큰사랑을 받는다는 생각에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움이 펌프질을 해댔다.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더 깊이생각해 보겠습니다.”
환희는 송이가 없는 대학엘 가기 싫은 것이지 대학 공부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송이가 없다는 생각이 환희의 복학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환희는 학기 시작 전까지 정식 채용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별 해설사 보조와 과학관 행사 도우미를 다시 시작했다.
하루 종일 5D돔 영상관, 우주선 보현호를 타고 태양계 일주 우주여행을 하는 체험관, 우주 정거장 도킹 체험 등등을 관리하고
돌보아 주는 일이 무척 바쁘게 돌아갔다.
며칠 후 휴일
박 하순 해설사는 쉬는 날을 맞이하여 연차를 내어 아내 유성이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나며 환희에게 당부를 했다.
“화요일 2시부터 행사진행이 있고 11시에 만날 사람이 있으니까 그 전에 오겠다. 그때까지만 수고 좀 해주라.”
“예. 편안히 다녀오세요. 여기 걱정은 말고요.”
영동 쎄브란스 병원에서 경북대학병원으로 옮긴지10년. 아이 소식은 없고 취미도 마땅히 없이 병원업무에 쫓기는 아내와 따로
즐길만한 것이 없어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 떠나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었다.
환희는 해설사님 출근 전에 사무실에 도착해 청소를 했다.
여행의 피로가 덜 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출근 때에 맞춰 차를 타 드리려고 준비도 했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잘 마시지도 않았던 커피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 할까?”
커피를 내리려고 물을 붓고 여과지에 2스푼의 커피를 넣었다.
그때 한통의 전화가 왔는데 교수님 도착 전화 일거라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건너편에서 들려온 소리는 다른 사람이었다.
“박 하순 교수님?”
“예? 교수님은 아직 출근 전인데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예~ 오늘 취재를 요청한 여행 잡지사 기자인데 지금 가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약속을 하면 항상 시간보다 일찍 오시는 교수님께서 오늘따라 늦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비행기를 못 타셨나? 그럼 전화를 할 것이고, 대구 집에 들렀다 오시려면 늦을 수도 있겠는데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_다음편을 기대 하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