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위트의 수용과 그 창작방법
이유식
Ⅰ. 유머와 위트가 빛을 내주는 수필의 유형
수필의 오미(五味)를 들라면 새타이어, 아이러니, 패러독스, 유머, 위트가 아닐까 싶다. 그것들은 수필의 독특한 맛을 내주는 양념이요, 독자를 이끌어 들이는 고명이다. 꽃으로 말한다면 향기와 같다. 그래서 일찍이 김기림은 1930년대 초반에 「수필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향기 높은 유머와 보석과 같이 빛나는 위트와 대리석 같이 찬 이성과 아름다운 논리와 문명과 인생에 대한 찌르는 듯한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와 그러한 것들이 짜내는 수필의 독특한 맛은 이 시대의 문학의 미지의 처녀지가 아닐까 한다'라 하면서 개척기의 우리 수필문학의 길을 예시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또 비슷한 시기에 김광섭도 그의 「수필문학소고」란 글에서 ‘수필은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의 흥미를 긴장시키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유머가 있어야겠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무의식적 소성(素性)에서 피는 꽃 같은 미소요, 후자는 지혜와 총명의 샘과 같다. 이 천성(天性)스런 유머와 보석 같은 위트는 수필의 본성(本性)같이 인식되어 일대(一大) 수필가 램이나 해즈리트에게서 빛나고 있다’라 적은 바 있는데, 그는 특히 수필에 있어서 유머와 위트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었다.
그렇다면 모든 수필에는 반드시 새타이어나 아이러니, 풍자나, 유머 그리고 위트가 들어가야 한단 말일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반드시 그런 수필만이 좋은 수필의 필수조건이라 말할 수도 없다. 단지 수필이란 장르성의 특수성으로 보아 그런 점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것들이 수필문학의 한 특질이 될 수 있음을 논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새타이어, 아이러니, 패러독스, 유머, 위트가 좋은 수필을 만드는 창작 방법상의 기법에는 크게 공헌할 수도 있고, 나아가 자칫 단조롭고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고, 재미나 흥미를 북돋워 주고, 웃음을 선사하며, 촌철살인과 같은 긴장감과 놀라움을 제공해 준다는 점만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점과 마주친다. 그것은 어떠한 종류의 수필에서건 다섯 가지의 기법을 제 마음대로 이용해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여기에는 관습적인 불문율이 있다. 처방에 있어서도 조제의 원리와 배합의 원리가 있듯이 그 친화성의 원리가 있다. 바꾸어 말해 비상이 들어가야 할 약이 있고 감초가 들어가야 할 약이 있다는 논리이다. 풍자와 아이러니 그리고 패러독스를 비상에 비유해 보고 유머와 위트를 감초에 비유해 본다면, 중수필에는 비상이 들어가야 제격이고, 경수필에는 감초가 들어가야 그 맛과 효능이 배가(倍加)된다. 다시 말해 보편적인 논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표현들을 위주로 하는 지적이고 사색적이며 비평적인 중수필의 경우에는 유머와 위트가 들어가면 격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차라리 풍자나 아이러니 그리고 패러독스가 더 어울린다는 점이다. 그 대신 개인적 감성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주관적 표현을 위주로 하는 신변적이고 개인적인 경수필에는 풍자와 아이러니 그리고 패러독스와 같은 지적 준열성이 들어가면 오히려 그 분위기를 상쇄시킬 우려가 있는 만큼 차라리 유머와 위트가 제격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경수필을 쓸 때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씩 유머와 위트의 도입이 자기 글의 질감을 어느 만큼 높여줄 수 있는 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Ⅱ. 유머와 위트의 도입과 그 실제
ㄱ) 유머의 도입과 그 방법
유머가 우리말의 익살이나 쾌사(快事)에 해당한다면 중국말의 경우는 골계나 해학에 해당된다. 이런 유머는 대개 우스갯말이니 우스운 외양이나 우스운 행동양식에서 나온다. 비근한 예로 우스갯말을 우선 수필 아닌 다른 작품에서 먼저 찾아보기로 하자.
『흥부전』을 보면 흥부는 몹시 가난하여 집이라고 하는 게 어찌나 작든지, 방에서 자다가 기지개를 켜면 그의 머리가 봉당으로 나가고, 다리는 울 밖으로 나간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과장표현은 익살스럽다. 그리고 조선 때 사람인 이수광(李粹光)의 『지봉유설(芝蜂類說)』 제16권 해학조를 보면 비대한 사람이 난쟁이를 비웃는 말로써 ‘갓을 쓰니 발이 보이지 않고, 신을 신으면 정수리까지 들어가는구나’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곧 과소표현으로서의 우스개다. 말장난은 『춘향전』에서 그 예를 끌어 올 수 있다. 광한루에서 그네 뛰는 춘향이를 처음 본 이도령이 방자놈을 시켜 그녀를 자기 앞에 대령시키라고 하니, 방자놈이 춘향이 한테 쫓아가 그네 뛰는 춘향이를 능청스럽게 부르니, 이에 깜짝 놀란 춘향이 하는 말이 “아이구 낙상할 뻔하였다”라니까, 짓궂게도 방자놈이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낙태란 웬 말이냐?”고 되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익살기가 넘치는 말장난이다. 우스운 행동은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소경잔치 소문을 듣고 경성으로 가는 길에 몹시 더워서 냇물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보니 옷이 온데 간데 없자 벌거벗은 알몸뚱이로 쩔쩔 매고 있는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배비장전』에서는 기생 애랑이 배비장의 이빨을 빼는 장면과 배비장이 알몸으로 뒤주에서 나와 동헌의 뜰을 바다로 알고 눈을 감은 채 허우적대는 마지막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러면 도대체 수필에서는 유머를 어떻게 도입할 것이며 또 어떤 종류의 수필에서 수필가의 유머감각이 필요한지를 살펴보자.
첫째, 우스개 말일 경우는 수필작품에 부분적으로 끼어 넣어 분위기를 우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작품전체의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꾸미려면 우스운 외양이나 우스운 행동에서 그 소재를 구하면 된다. 주로 이런 것에 걸맞는 소재라면 인물스케치(인물 수필), 자기의 성격상의 결점, 자기의 신체상의 특징 내지 결점, 상대방이나 나의 특이한 버릇, 무지나 오만에서 나온 어처구니없었던 실수담, 음이나 뜻으로 말미암아 이상한 해프닝이 일어난다는 성명수필 등을 들 수 있다. 한마디로 이런 소재들이야말로 유머감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수필다운 맛이 없으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 실제의 구체적 예를 수필작품에서 찾아보면, 김성진(金晟鎭)의 『뚱뚱이의 손득(損得)』, 이희승의 『오척단구(吳尺短軀)』가 신체적 특징 내지 결점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는 글이라면, 어효선의 『어씨지탄(魚氏之嘆)은 자기의 별난 성(姓) 때문에 생겨났던 일을 소개한 유머러스한 글이다. 「그런가 하면 거구라서 용변도 큰 문제라 화장실이 좁은 공간일 경우에는 웅크리고 앉아있기가 부인네 해산하기만치나 힘든다고 하면서 나오려던 대변도 도로 들어가버린다고 하고 있다. 이렇듯 뚱뚱보의 고민을 이야기하다 끝에 가서는 뚱뚱보의 이득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의사인 T박사는 배가 올챙이배처럼 오뚝 솟아 나와 있지만 수술할 때에는 그것이 수술기구를 올려놓을 수 있어 편리한 선반구실을 한다하면서 자기도 더 배가 나와서 수평위(水平位)에 달하면 같은 의사로서 T박사처럼 선반으로 이용해 보고자 한다고 익살을 부리고 있다. 「오척단구」는 단소(短小)한 체구를 타고나서 그것이 자기에게는 희와 비나 희비혼성극이 되는 일도 있다며 그런 점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고 있다. 키가 작다 보니 많은 놀림도 받았고 심지어 ‘대추씨’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고 그 서러움을 소개하면서 구경터 같은 데에 가면 키가 작아 볼 수 없다보니 구경꾼들의 옆구리를 비집고 두더지처럼 쑤시고 들어야 할 판이고, 또 사람과의 교제에서는 깔보임을 당해 그 흔해 빠진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늙은 판이라고 익살스런 자탄을 하고도 있다. 그러다가 반전의 수법을 넣어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이 없다'로 말머리를 돌려 키 작기로 유명한 국내외의 유명한 과거의 인물들을 들먹이면서 끝에 가서는 한 인간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육체적인 면으로서보다는 정신적인 면에서 하여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어씨지탄」은 어(魚)씨라는 자기 성 때문에 술자리에서 ‘물고기’‘금붕어'니 하는 농담도 듣게 되었고, 더 나아가 안주가 떨어지고 취흥이 겨워지면 장난으로 그냥 뜯어먹자고 들이덤비는 일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뜻만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음도 말썽이라 ‘어물어물한다’느니, ‘어처구니없다’느니, ‘어수선하다’느니 하며 종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돌아보면, 반생을 중일전쟁이니, 태평양전쟁이니 또 동란이니, 후퇴니 하는 실로 어수선한 세상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벙벙하게 지내면서 어물어물 나이만 먹었으니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어허! 이 어찌 어리석은 자, 갑오년을 보내는 어씨 나만의 탄식일까?’로 끝맺고 있는데, 실로 ‘어’자로 시작되는 어휘들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익살스런 탄식을 하며 눈물을 감추고 있다.
ㄴ) 위트의 도입과 그 방법
위트(wit)는 우리말로 ‘기지(機智)’로 번역되어 있는데 우리말 사전의 뜻으로는 ‘그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재치 있게 변통하는 슬기’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문학적 용어로는 ‘짧고 교묘하여 놀라움을 일으키도록 계획적으로 고안된 일종의 언어적 표현’이라 되어 있다. 그렇지만 꼭 언어적 표현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 기발한 판단이나 어떤 사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나 의미를 도출해 내는 능력도 기지의 소산이라고 볼 때 판단이나 해석적 능력의 기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는 기지에서 나온 판단의 두 예만을 참고적으로 들어보기로 하겠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포샤의 판결은 가히 기지로서 최상급이다. 안토니오가 친구 밧사니오(포샤의 애인)의 결혼비용을 샤이록에게 빌렸다가 제 날짜에 갚지 못하여 증서에 적힌 약속대로 살 1파운드를 잘리게 될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샤가 증서의 내용대로 샤이록에게 살 1파운를 잘라도 좋지만 그 증서에 쓰여있지 않은 한 방울의 피라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려 샤일록의 기를 죽이고 안토니오의 승리로 돌아가게 한 그 판결이야말로 다소 궤변적인 요소가 가미된 기지의 결정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다음, 구약에 나오는 솔로몬의 지혜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친자확인소송의 판결과정에서 보여준 사건처리 역시 놀랄만한 기지의 소산이다.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옥신각신 다투는 것을 보고 솔로몬은 신하에게 칼로써 아이를 두 쪽으로 잘라서 나누어주라고 명령했다. 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지혜가 숨어 있는 그 판결에는 일차적으로 기지의 복선이 있었다. 가장 기겁을 하고 놀란 것은 그 아이의 진짜 어머니였다. 그 여자는 모정에서 오히려 그 애를 베지 말고 상대방 여자에게 주라고 간청한데 반해서 상대방 여자는 냉정하게도 둘로 잘라서 나누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왕은 과연 누가 친모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를 둘로 자르지 말라고 한 여인에게 아이를 돌려주라고 한 그 최종 판결이야말로 기지의 소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과연 수필창작에 있어서 이런 위트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첫째, 위트 넘치는 표현 개발로 글의 맛을 더해 줄 수도 있다. 가령 경구(警句)나 금언, 속담, 한자 숙어 또는 관용적 표현을 이용해 그 문맥에 알맞은 새로운 표현을 개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둘째, 우리가 평소에 쉽게 듣고 넘기거나 또는 보고 넘기는 조그만 일에서 깜짝 놀랄만한 어떤 이치나 의미를 발견해 내어 기지를 시험할 수도 있다. 그런 구체적인 예를 직접 수필작품에서 찾아보기로 하겠다. 설의식 선생의 수필인데, 그 제목은 지금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내 나라를 밖으로 생각하여 ‘일본으로 들어갔다’‘미국으로 들어갔다’‘중국으로 들어갔다’라고 하는 표현의 예를 통해 이는 안과 밖을 혼동한 주체성 상실이라면서 이런 말버릇은 내 나라에 대한 안방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과연 위트가 넘치는 글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 나라가 ‘안’이라면 남의 나라는 분명 ‘밖’이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들어갔다’가 아니라 ‘미국으로 나갔다’가 돼야 하겠고, ‘언제 한국으로 나왔느냐’가 아니라 ‘언제 한국으로 들어 왔느냐’가 마땅하다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