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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수복 경기도 개풍군 중면 원문보기 글쓴이: 中面 愛 大龍里 金 鈺煥
♣ 제27차 중면산악회 송년산행 ♣ 검봉산(560m) 문배마을 과 구곡폭포 등반 (2010.12.19.)
경인년(庚寅年)을 갈무리하는 미수복 경기도 개풍군 중면 산악회 송년산행이 2010년도 한해동안 내딛었던 추억의 순간순간을 되돌아보면서 저 마다의 삶 속에 열심히 살아온 날들의 희노애락 이야기 보따리 안고 기나긴 세월이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북한강 줄기를 거슬러 호반의 도시 춘천 남산면에 위치한 강촌으로 떠나본다!
낭만의 열차로 서울서 춘천까지 운행하던 디젤기관차도 12월 21일 경춘선 전철 사업 완공으로 전철이 운행되면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속에 남겨지는...
춘천행 철길의 평행선위에 마지막 기회가 되는 "추억 속의 기차여행"을 12월19일 일요일 아침 8시 40분 청량리발 춘천행 열차에 추억을 가득담은 객차 칸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기차처럼 한해동안 정이 가득한 중면산행으로 만들어 놓은 주옥같은 이야기 보따리 주렁주렁 엮어 칙칙폭폭 기차놀이하듯 중면산악회원 20명도 함께 떠나본다.
청량리역에서 출발 대기하는 플랫홈에 디젤엔진 소리 울리며 무심히 서있는 기차 옆면에 붙어있는 "청량리 - 춘천"이라는 안내표지에 왠지 눈길이 한번더 머문다!
힘찬 기적소리에 떠나가는 기차 차창에는 옛날 무선영화를 보듯 아름다운 풍경이 서울을 벗어나 북한강변을 따라 펼쳐질때마다 잔잔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과거속에서 새삼 느껴진다.
중면산악회원들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열차 속에서 마지막 기차운행과 한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산행이 의미를 더하는 듯 인생에 기관사처럼 마음속의 세월 기차를 운행해본다. 성북역에서 이 덕우 중면민회장님과 합류 마석을 지나 춘천으로 가는 대성리 강가 좌우에 펼쳐진 하얀 눈밭사이로 빼곡이 서있는 나목(裸木)이 추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레일위를 질주하며 스쳐지나가는 기관차를 반기는 풍경을 따라 감상하는 사이 강촌역에 도착하는 안내메세지가 흘러나온다.
강가를 굽어보는 가파른 경사면 협소한 장소에 굴다리를 만들고 외길 선로를 깔아 놓은 강촌역 1층 기차길은 수많은 사연들을 이곳저곳 흔적으로 남겨두고 새로 만든 2층 복선 선로가 새로운 전철 맞이 할 준비를 하고있다.
강촌역에 도착한 중면산악회 일행 멋진 기념 촬영 후 선발대는 강선사와 검봉산 등반길에 산행팀이 앞서서 출발하고 이어서 아홉구비를 돌아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을 탐방한다.
그리 높지 않은 검봉산(530m)은 경관이 좋은 삼악산의 등선봉과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강선봉(484m)을 거느리고 있으며 이 봉우리는 우뚝 솟은 암벽으로 옛적엔 '칼바위'라고 불렸던 것으로 검봉산의 이름이 강선봉과 관련이 있지만 실제 검봉산 정상은 평범한 흙산이며 남쪽으로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을 품은 유명한 봉화산(487m)과 이어져 있다.
춘천에는 조선시대 봉수를 올리는 산이라는 3곳이 있는데 춘천 시가지 가까이에 있는 봉의산, 다른 한곳은 북산면에 위치한 봉화산이고 나머지 한 곳이 바로 이곳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위치 봉화산(487m)이다.
검봉산과 봉화산을 이어주는 능선길 안쪽 2만여평의 분지안에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의 형상이 짐을 싣고 다니는 배를 닮았다는 문배마을은 주변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물이 분지 한 쪽에 고여 생태 연못 이루고 그 물을 벗삼아 성씨가 각기 다른 가구가 하나 둘 모여 200여년전 부터 마을이 형성 되었다고 하는데 6.25 동란때는 전쟁이 난지도 모를 정도로 오지였던 이곳의 맑은 물이 식수로 사용되고 있는 청정지역이다.
이 생태연못에서 넘친 물이 아홉 굽이를 굽이굽이 돌아 50m 높이의 절벽아래로 떨어져 폭포를 이루는데 옛날에 도사가 이곳을 오다 아홉 개의 고개를 넘어 도착한 곳에 폭포가 있었다고 "구곡폭포"라고 불러졌다는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구곡폭포가 옛적에 문폭(文瀑)이라 불렸는데, '문폭'의 '등 뒤'(背·배)에 있다 하여 '문배(文背)'마을이 됐다. 구곡폭포(50m)는 춘천 부근에선 가장 높은 폭포다.
산행팀이 강선사를 지나 검봉산으로 오르는 동안에 산책하며 트래킹하는 팀은 구곡폭포주차장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입장료 1600원(65세이상 어르신은 무료)을 지불하고 구곡폭포를 향한다.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입구에 얼음기둥이 우리를 반길때 아홉 굽이 굽이를 돌때마다 아홉개의 단어로 만든 이야깃거리가 쌍기억(ㄲ)자음을 응용하여 우리 삶과 연관된 덕목을 되새기면서 더욱 즐겁고 재밌는 산책길속에 구곡혼을 담아본다.
봉화산 (528m)이 품고있는 생명수(生命水)가 아홉골자기를 휘돌아 내리고 선녀의 날개옷처럼 하늘거리는 아홉줄기의 사뿐한 물내림, 그 조화로운 물소리가 아름답고 단아한 폭포이다.
폭포에 이르는 황토 오솔길대신에 하얀 눈밭 위로 시냇물 벗 삼아 꿈(희망은 생명), 끼(재능은 발견) 꾀(지혜는 쌓음), 깡(용기는 마음) 꾼(전문가는 숙달), 끈(인맥은 연결고기) 꼴(태도는 됨됨이), 깔(맵시와 솜씨는 곱고 산뜻함) 그리고 끝(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의 아홉가지앞에 이르면 구곡폭포는 거대한 빙벽으로 변해 우리 앞에 우뚝 솟아있다.
빙벽을 오르는 산악인을 뒤로하고 내려보는 한 그루의 나무는 모진 세월, 풍파 속에 쓰러져 뿌리를 보이면서도 굳굳이 하늘을 향해 오르는 삶의 의지가 곧은 소나무와 더불어 아름다워 문배마을로 구불구불 휘돌아 가는 깔딱고개 길도 더욱 정겹게 올라설 수 있었다.
좌우로 빽빽한 잣나무, 낙엽송, 소나무가 한여름 울창한 숲을이루면 숲속의 향기도 더욱 진하게 날것 같은 산길을 올라서면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문배마을이 살포시 한눈에 들어온다.
첩첩산골의 시골모습은 현대식 주거형태로 바뀌였지만 각각의 성씨를 간판으로 내세우며 손두부와 산채비빔밥등.. 음식점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보양차가 노란 주전자에서 하얀 김을 내보이는 "신가네"에서 구들을 놓아 불을 때어 따끈한 황토방 아랫목에 앉아 추위를 녹이며 두부전골에 푸짐한 인심을 듬뿍 넣은 점심식사 하며 하늘과 닿은 동네에서 하늘을 노래해 본다.
이곳 문배마을의 유래를 "허준구의 신한시기행"에서 찿아보면 구곡폭포(九曲瀑布)의 이름은 언제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지 모른다. 다만 폭포로 가기 위해서는 구불구불한 골짜기를 많이 지나가야 했기에 많다는 의미로 아홉이란 숫자를 딴 것이라 여겨진다. 문배마을은 구곡폭포 우측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갈 수 있거나, 검봉산을 등산해서 갈 수 있기도 하며 임도를 이용해 차량으로도 갈 수 있다. 이 마을에 도착해 보면 참으로 이런 벼랑 위에 이러한 펑퍼짐한 지형도 있구나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그리고 문배라는 독특한 마을 이름이 사람으로 하여금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이 마을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문배나무가 많아서 붙여졌다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새 문배주를 떠올릴 법하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곳에서 빚은 동동주는 집집마다 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또한 이곳 지형이 전체적으로 거룻배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마을에서는 관정을 설치 않고 구곡폭포로 흘러드는 물을 식수로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구곡폭포의 이름과 문배마을의 이름에 대해서 문헌으로 증명된 적은 없다. 여기에 많은 의문을 지니고 있었는데, 어느날 옛 문헌을 읽다가 실마리가 될만한 내용을 발견하였다. 이 문헌에 근거하여 구곡폭포는 문폭(文瀑)이란 이름으로 불려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문헌은 을미년(1896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춘천 의병의 선봉장이었던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 : 1852~1930)의 습재집(習齋集)이다. 시의 제목에 문폭이란 지명이 보인다. 특히 앞 시에서 문배마을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의 지명유래를 담은 시를 두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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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문폭(文瀑)의 의미는 무엇일까? '문폭'은 마을을 지칭하는 지명이면서 특정 폭포(현 구곡폭포)를 가리키는 지명이기도 하다. 문(文)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글월' '글자' '문사' '덕' '글재주' '문치' '글 짓다' '무늬' '현상' '문물' '법령조문' '아름답다' '화려하다' '꾸미다' 등으로 참으로 많다. '문폭'에서 문(文)은 '자연계와 인간 사회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이란 의미로 썼다고 판단된다. '문폭'에서의 일상사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마을의 풍속이나 일상사, 가정내의 행동거지, 안분지족(安分知足) 등의 내용 등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 사회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말하려 한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자연 현상을 상징하는 폭포(瀑)와 연계시켜, 자연세계와 인간 사회의 조화로운 결합을 추구하였다. '문폭'이란 지명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 문폭'의 뒤편이란 의미에서 나온 '문배(文背:등은 북쪽이라는 의미와 뒤편이란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라는 마을은, 습재 선생이 살고자 했던 이상향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습재 선생은 '문폭유거(文瀑幽居)' 시편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안분지족하며 살다간 대표적 은자(隱者)다. 청정(淸淨)과 고절(孤節), 세상의 더러운 기운을 씻어낸 자연 그대로인 문배에서 도연명처럼 귀거래사를 읊조리며 거닐어보는 행복을 누렸던 150여 년 전의 습재 선생의 숨결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도연명 (365-427)의 귀거래사는 중국을 대표하는 自然主義 전원詩의 대가fh 곧 사임하고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시달리며 한직에 머물다가 41세에 당시 팽택현(彭澤縣) 현령 관부에서 감사가 있었는데 파견된 관리를 정중히 맞아야 한다는 관속의 말에 그 유명한 “ 어찌 다섯 말 곡식을 위해 허리를 숙이겠는가”
즉 얼마되지도 않는 하급 관리의 녹봉에 연연하여 속세의 영달을 위해 머리를 숙이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81일만에 관직을 그만두고 만다
그 역시 두보와 마찬가지로 만년의 은퇴생활은 궁핍하고 곤궁하여 62세에 죽을 때 까지 궁핍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에 늘 그리던 전원생활로 돌아가 일생을 스스로 괭이 들고 농사지으며 힘들고 고된 나날 중에도 시작(詩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생활 속에 우러나는 진솔한 시를 지어 역대 중국을 대표하는 자연주의 전원시의 일 대가로 그의 실천적 삶 속에서 많은것을 느끼게 한다.
歸去來辭(귀거래사) 中 歸去來鞋(귀거래혜)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탓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중략)
도연명의 귀거래사 시에서 느낄수있는 것처럼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버리고 안분지족 [安分知足] 하였다면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 선생은 '문폭유거(文瀑幽居)' 시편에서는 자연세계와 인간 사회의 조화로운 결합의 이상향을 우리사회에 메세지를 전하는 듯하다.
강원도 춘천시에서는 습재 이소응(習齋 李昭應·1852~1930년) 선생의 서거 80주년을 맞아 1852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태생으로 화서학파의 학문과 사상을 집대성하고 구한말 춘천 최초의 의병장으로 활동한 대학자의선생의 얼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나라의 위태로움을 슬퍼하노라'라는 내용의 `세화도극 이시곡(世禍到極 以詩哭)' 한시, 습재 선생 약전 등을 담아 선생의 사상과 학문세계를 널리 알리려고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구곡폭포 주차장에 2011년에 건립예정이다.
문배마을 신가네에서 두부전골로 식사를 하는 동안 회사업무로 1시간 늦게 출발한 오병관님께서 합류하여 일상의 생활을 잠시 잊고 문폭유거하듯 선인들의 과거속에 잠시 머문다 .
하산길에 등반팀은 가벼운 막걸리 한잔에 산행의 피로를 달래고 산책팀과 강촌역에서 합류하여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덕우 면민회장님의 강촌역 부역장 시절 살아왔던 강촌역 추억 이야기는 유구히 흐르며 강촌역을 지켜보는 북한강의 세월 속에 잔잔히 젖어든다.
강바람에 서울가는 기차 기적 소리가 울려오니 스물스물 들어오는 기관차는 함께하는 세상 이야기를 열차에 담고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중면산악회 일행 앞에 잠시 멈추더니 새로운 미래를 위해 바람을 가르며 서서히 움직인다.
경춘선의 마지막 기차여행이라는 여운이 감도는 서울행 기차안에서 구곡폭포와 문배마을 산행 이야기 하는동안 청량리에 도착하였고 근처 음식점에서 중면산악회 송년회 자리를 만들어 무탈산행과 중면산악회 발전을 위한 축배를 높이 들어본다.
청량리 도착시간에 마중 나오신 이강득님의 따듯한 마음이 더해져 알차고 보람된 2010년도 한해의 마무리가 더욱 빛나는 하루다~
2010년 한해동안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아주신 중면민과 산악회의 따듯한 마음 가슴에 깊이간직하면서 힘찬 2011년 새해를 맞이합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고맙습니다.
미수복 경기도 개풍군 중면 면민회 미수복 경기도 개풍군 중면 산악회
행복한 행운~ 김 옥환
회계결산 일반회비 21만원 (이강래.송영일님 5만원외 각1만원) 찬조금: 서봉식님 부친 10만원 (팔순연 감사의마음으로 찬조하셨어요) 수입 합계 : 총 31만원
기차 편도 8만4천 왕복 : 16만 8천원 문배마을 식대 :(이강래 외 4명) : 4만5천원 산행팀 하산 식대 : 5만 1천원 입장료(김옥환 외 1명) 1천6백원 : 3천2백원 회식비(산악회 송년 청량리) : 19만 7천원 지출 합계 : 4십6만4천 2백원
잔액 : - 1십 5만 4천 2백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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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수복 경기도 개풍군 중면 원문보기 글쓴이: 中面 愛 大龍里 金 鈺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