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입구에 샘 치과가 있다 치통이 그렇듯 부고는 느닷없이 온다 리본을 단 국화의 향기는 학습되는 법이지
유리문에 비치는 흰 가운들의 중얼거림 의사는 입속을 뒤적이며 썩은 뿌리를 찾는다
산 자들만 이가 썩는 것은 아니야
크게 입을 벌리는 참회의 순간 걸어온 곳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찌꺼기들이 곪는다 독하게 뱉어낸 말들이 썩느라 어금니가 아프다
소화되어 버린 것들이 말과 말 사이에 치석처럼 쌓여간다
치석을 제거하는 사이 유리문 밖으로 한 구의 주검이 빠져나가고,
이가 뽑혀 나간 자리 치료가 끝난 치통들이 하나 둘 샘 치과 계단을 내려간다
흰 국화와 등을 맞대고 선 자리 나는 떠나간 자들의 마지막 출구에서 치통의 이력을 곱씹으며 이를 꽉 다문 시간들을 빼낼 수 없다
▲정지윤 (본명 정미경)
1964년 경기도 용인 출생. 현재 안양 거주. 2009년 《시에》신인상, 2014년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당선, 2015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심사평]
두 개의 문학상 심사 중 먼저 기성 신인과 미등단의 신인을 구별하지 않고 공모한 ‘신석정 촛불문학상’부터 심사에 들어갔다. 모두 250여 명의 응모작 가운데서 「시래기 꽃피다」외, 「중력엔 그물이 없다」외, 「이명」외, 「폐차」외, 「연애시」외, 「과수원 2」외, 「냉장고 속의 풀밭」외, 「적벽」외의 작품을 보내준 8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이 중에서 오랜 단련의 솜씨가 두드러져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개성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채플린처럼’ 연작을 응모한 「냉장고 속의 풀밭」이 단연 두각을 보였다. 하지만 세련되지 못하고 단지 거칠기만 한 육성이 신인의 미덕일 수도 있지만 가볍지 않은 단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촛불문학상’의 수상작은 한 사람의 개성 있는 신인의 몇 편을 뽑는 게 아니라 응모된 전체 작품 중에서 자기 수준을 유지하는 응모작들 중 최우수작 1편을 뽑는다는 관점에서 「시래기 꽃피다」, 「중력엔 그물이 없다」, 「이명」등이 마지막 논의에 올랐다.
일상적 생활의 체험이 육화된 「이명」은 겉보기엔 그럴싸했으나 응모자의 다음 작품에서 너무나 상투적인 풍경 묘사가 힘을 잃었고, 「시래기 꽃피다」는 수수하고 담백한 시적 진술이 눈을 끌었으나 역시 다음 작품에서 보여준 ‘때’와 ‘떼'의 혼동, 여기저기 미숙한 띄어쓰기 등이 문학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결함으로 지적되어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찌르레기 소리를 볶다」는 선배 시인의 어떤 작품을 연상케 하여 치명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중력엔 그물이 없다」등의 작품이 남았는데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 노동에 의미를 부여한 표제작의 인위적 발성보다는 오히려 그 다음 작품 「샘 치과」의 욕심 없고 조촐한 사유에 선자들의 점수가 높았다. 또한 같이 응모한 그 외의 작품들도 그만그만한 키가 어울려 보기에 좋았다. 응모작 중 최선의 한 편을 뽑는다는 규정에 의하여 비록 소품이긴 하지만 선자들은 「샘 치과」가 ’촛불문학상‘의 영예를 안기에 충분하다고 흔쾌히 합의하였다. 당선작을 결정한 다음 응모자의 인적사항을 알아보니 그는 안양에 사는 정지윤이라는 여성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