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참패와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이명박의 특권·경쟁 교육에 대한 대중적 반감과 더 나은 교육을 바라는 큰 염원을 드러냈다. 많은 진보 단체들이 결집해 일궈 낸 교육감 선거 승리는 교육운동가들뿐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를 고무했다.
선거 승리는 특히 전교조 교사들을 고무했다. 우파들의 반反전교조 마녀 사냥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치른 선거에서 전교조가 지지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했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 같은 수도권에서 진보 후보가 당선하고 또, 전교조 지부장 출신 후보가 두 명이나 당선하면서 우파의 반전교조 공세는 패배했다. 일제고사 거부 교사 해임, 시국선언 탄압, 진보정당 후원 교사 탄압 등으로 크게 위축됐던 전교조 교사들은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바라는 염원과 진보 교육감에 대한 기대는 많은 교사들과 교육운동가들 사이에서 교육을 바꾸려는 활동을 자극하고 있다. 그중 몇 가지 주요 쟁점을 살펴보자.
학생 인권
수많은 초중고 학생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고 갈등과 좌절을 경험한다. 자살은 10대 사망요인 중 첫째인데, 지난해에는 자살한 초중고 학생 수가 급증했다(2006년 108명, 2007년 142명, 2008년 137명, 2009년 202명).[1] 10대 학생들의 자살은 빈곤, 가정불화, 각종 차별 등 갖가지 사회적 요인들이 맞물려 빚어낸 절망의 산물이다. 특히,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비롯한 스트레스와 매우 통제적인 학교 생활은 일부 학생들을 자살로 내몰 정도로 학생들을 숨막히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권리 침해는 결코 주변적인 문제가 아니며, 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진보 교육감 등장으로 학생 인권 문제가 주요 화두가 돼 있다.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지난 10월 공포됐다. 이 조례는 체벌 금지, 강제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금지, 두발과 복장 개성 존중 및 두발 길이 규제 금지, 학생 동의 아래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소지 부분적 허용, 인권 교육 의무화 및 학생 인권 옹호관 설치 등의 조항을 담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은 각 학교의 학칙과 규정을 개정해 2011년 새학기부터 도내 모든 학교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전면 시행할 방침이다. 서울시 교육청도 학생인권조례를 곧 제정할 예정인데, 교육청 계획과는 별도로 전교조 서울지부와 학부모 단체와 청소년 단체가 주축이 돼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벌이고 있다(이 초안에는 경기도 교육청 조례에서 빠진 집회 개최와 참여의 권리가 포함됐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은 전북과 경남 등지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진보 교육감들의 인권조례 공포와 조례 제정 운동은 학생 인권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토론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전교조가 이 운동을 적극 벌이면서 교사들 사이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토론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은 많은 학생·교사·학부모 들의 지지를 받는다. 전교조 설문 조사 결과, 교사의 88.7퍼센트, 학생의 88.6퍼센트, 학부모의 87.6퍼센트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지지했다.
우파들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한다. 교과부는 교장에게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도록 시행령을 개정해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11월 1일부터 시행한 서울시 교육청의 체벌 전면 금지 조처에 반발하며 ‘교육적 목적의 체벌을 하는’ 교사의 소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교총은 체벌 금지뿐 아니라 무상급식 반대 운동도 벌이는 등 수구적 공세에 앞장서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서울시 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처로 학교가 금방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 ‘혼란’을 우려하는 기사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체벌 금지가 교권을 침해하는 양 묘사하고 학생과 교사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부각한다. 자본주의 교육의 모순에서 비롯한 교사와 학생 간 갈등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보수 언론들은 마치 체벌 금지가 원인인 양 체벌 금지를 ‘곽노현 때리기’의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많은 교사(일부 전교조 교사들을 포함해)와 학부모 들이 체벌을 필요악으로 보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전교조 교사들도 체벌 전면 금지를 비판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2]
우파들의 공세에 맞서 곽노현 교육감의 체벌 금지 조처를 분명히 방어해야 한다. 곽노현 교육감이 학생 인권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히 미흡한 점이 있다(그는 지난 7월 교과부 주관 일제고사 시행 당시 학생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체벌 금지는 전혀 ‘시기상조’가 아니다. 사실, 21세기에도 체벌이 허용되는 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다른 측면에서도 곽 교육감의 조처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곽 교육감이 전교조 교사들과 협력적 논의 없이 체벌 교사 징계 방침을 언론에 먼저 발표한 것을 두고 진보적 교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다. 곽 교육감이 교사를 개혁의 동반자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체벌 문화가 단지 개별 교사들의 학생 존중 의식 부족 탓이 아니라 학급당 많은 학생 수, 교사들의 과중한 행정 업무, 치열한 입시경쟁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크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교사들이 서울시 교육청의 일 처리 방식에 불만을 품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게다가 곽 교육감은 체벌 문제를 주로 개별 교사들의 지도 방식 문제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성찰 교실제, 상담 등 ‘수업 분위기 흐리는’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지 하는 방안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학칙 제정에 학생 참여 보장, 학생들의 자치 활동 보장 같은 민주적 요구를 주장하는 것은 아주 올바르고, 진보진영 사람들은 이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왜곡하는 입시경쟁 문제와 교과부·학교장 등의 교사 통제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자사고·특목고 등 특권 학교 증가에 따른 고교 서열화 반대, 학급당 학생 수 감축,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 등의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 교육을 왜곡하는 구조적 요인들에 맞선 집단적 투쟁이 일어나야 교사들이 권위적 학교 문화에 수동적으로 적응(체벌은 그 일부다)하는 것과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환경을 바꾸면서 자신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의 변화를 촉발하려면 진보 교육감은 교사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책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맞선 정치적 도전을 강화해야 한다.
혁신학교와 학교 혁신
새로운 교육을 바라는 갈망은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하는 혁신학교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혁신학교는 2009년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처음 추진한 공교육 혁신 모델로, 남한산초등학교 등 경기도 혁신학교들의 사례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학부모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교육운동에서 혁신학교 실험은 초미의 관심사인데, 일선 학교 교사들도 혁신학교에 관심이 많다. 교육청이나 교육 단체에서 주최하는 혁신학교 연수에 교사 수백 명이 참가하고 지역이나 학교 단위로 혁신학교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경기도에서는 혁신학교가 43곳 운영되고 있는데, 경기도 교육청은 2011년부터 혁신학교를 해마다 50곳씩 늘려 2013년에는 2백 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 강원, 광주, 전남, 전북 교육청도 내년부터 혁신학교 시범 운영을 시작해 해마다 확대할 예정이다. 2011년에는 서울·경기·강원·전남·전북 등 여섯 지역에 혁신학교 1백여 곳이 신설된다.
혁신학교 모델은 농촌의 작은 학교들에서 시작한 학교 혁신 운동에서 나온 것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는 경제 위기에 따른 긴축 정책의 일환으로 농어촌 학교 통폐합을 대거 추진했는데, 한 해에만 무려 9백71곳을 통폐합했다. 이는 많은 주민들의 반발을 샀고, 일부 지역에서는 폐교 대상 학교가 그 학교 교사들과 주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살아났다. 남한산초등학교가 그중 하나다. 이 학교에서 비롯한 작은 학교 운동이 2007년 교장공모제 시범 실시를 계기로 몇 곳으로 확산됐고,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한 뒤 혁신학교 정책으로 이어졌다.
혁신학교는 교육청한테서 해마다 약 1~2억 원씩 4년간 예산을 지원받아 학급당 학생수를 25명 안팎으로 낮추고 행정 업무 전담 인력을 고용해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조처는 학교 개선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 2009년 한국의 평균 학급당 학생수는 초등학교 27.8명, 중학교 34.4명, 일반계 고등학교 35.9명, 전문계 고등학교 29.8명이다. 또, 많은 교사들이 과도한 행정 업무에 시달린다.
이명박 정부가 ‘교원 전문성 신장’을 강조했지만 실질적 지원 없이 교사 간 경쟁을 부추기고 관료적 통제로 행정 업무를 늘렸기 때문에, 진보 교육감들의 혁신학교 사업은 많은 교사들의 관심을 모을 만하다. 혁신학교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점도 교사들의 관심을 끄는 요인이다. 극심한 경쟁 교육에서 비롯한 교사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고 싶은 것이다.
전교조는 혁신학교 실험을 통해 학교 혁신 운동을 발전시킨다는 구상에서 혁신학교 토론회와 연수와 모임 등을 열심히 조직하고 있다. 여러 교육운동 단체들과 교육운동가들도 대안적 모델 창출을 바라는 열의로 혁신학교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혁신학교의 경험을 보면 긍정적 요소들이 많다. 교사들의 학교 운영 참여, 두발 자유화, 학생 자치활동 보장, 학생들의 배움을 돕기 위한 수업 혁신 시도 등이 있었다. 경쟁 교육에 의식적으로 반대하는 시도들도 있다. 이를테면, 고양 서정초등학교는 ‘상 없는 학교, 대회 없는 학교’로 유명한데, 이는 교사들이 경쟁 교육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시작해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었다.[3]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절실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들도 있다. 경기 양평 조현초등학교는 맞벌이 부부와 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위해 학교 안에 가정집을 짓고 밤 9시까지 돌봐주는 경기도 ‘꿈나무 안심 학교’를 운영 중이다.[4] 시흥 장곡중학교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인 ‘스포츠 클럽’을 무료로 운영한다.[5]
그러나 모든 혁신학교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모범적인 운영으로 교육운동측이 꼽는 곳은 43곳 중 10여 군데 정도다. <경향신문>이 긍정적 사례로 주목한 경기도 한얼초등학교는 입시 교육의 논리에서 별로 떨어진 것 같지 않다. 한얼초는 ‘상시 평가 선도 학교’를 내세우고 “학생들이 보는 온갖 시험 결과와 과제, 생활 습관, 교우 관계 등의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 곧바로 학부모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전국 처음으로 실시했다.[6]
혁신학교가 큰 관심을 끌면서 교육 철학이 진보적이지 않은 교장들도 혁신학교 사업에 대거 공모했는데, 그 결과로 혁신학교 사업이 교장의 업적 쌓기로 전락할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진보적 교사, 학부모 등 주체들이 마련되지 않은 조건에서 혁신학교의 양적 확대에 집착하면 혁신학교가 과거 시행된 연구학교, 시범학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현재까지 전교조, 진보적 학부모 단체, 교육운동가 등은 대체로 혁신학교 사업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혁신학교 실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를 두고는 그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다.
온건 개혁주의자들은 대체로 혁신학교 사업을 학교 혁신의 핵심으로 여긴다. 그리고 혁신학교 실험을 성공시켜 이를 바탕으로 다른 학교에 학교 혁신의 기운을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흔히 선거 중심적 전략을 위해 혁신학교 사업의 성공에 의미를 부여한다. 혁신학교가 진보 교육감의 핵심 정책이니만큼 혁신학교를 성공시켜 이를 4년 뒤 교육감선거에서 진보진영의 당선을 위한 발판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들은 혁신학교 모범 전파하기와 선거를 투쟁 대체 수단으로 여긴다.
다수의 혁신학교 주창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개혁주의적 경향 — 혁신학교 사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투쟁 대체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 — 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투쟁적인 교사들 중에는 초기에는 혁신학교 사업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러나 이내 혁신학교 활동에 개입해 “혁신학교라는 제도권 내 실험이 좌초하지 않도록 하면서 ‘학교 혁신’과 교육 구조 개혁의 방향으로 견인해 나가”자는[7] 의견으로 바뀌었다. 많은 조합원들이 혁신학교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상황과 혁신학교에 대한 대중적 관심에는 진보적 교육을 바라는 열망이 담겨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혁신학교 실험으로 교수법, 평가 방식, 학급·학교운영 등에서 진보적 교육 이념이 담긴 사례를 더 만들면 분명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사기를 끌어올려 교육운동의 발전에 보탬이 될 것이다. 평등, 협력, 민주적 가치가 실현된 사례들은 경쟁 만능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근거로도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치열한 입시경쟁 구조 속에서 혁신학교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혁신학교 전도사’ 성열관 교수조차 혁신학교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걱정하는 듯,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목표만이 아니라 그 한계까지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모범이 된 혁신학교는 주로 농촌이나 도시 근교 낙후 지역의 초등학교들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몇몇 중학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대도시 지역에서 혁신학교가 정착하기는 어려웠다. 일부 초등학교에서 혁신학교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초등 교육이 대학 입시의 규정력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촌이나 낙후 지역에서 학교 혁신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단위로 하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높은 환경에서 학원 위주의 입시경쟁 체제가 아닌 교사들의 헌신적 보살핌에 기초한 배움, 즉 배려의 학습 공동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이 같은 사실은 …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평가 받은 학교 혁신 사례를 대도시의 일반 학교에 적용하는 것은 혁신 사례의 확산 차원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도전임을 말해 준다.[8]
그런데 현행 혁신학교 담론은 대부분 혁신학교 성패의 핵심 요건으로 교사들의 헌신성·전문성과 교장의 리더십을 강조하지, 정작 학교 교육을 짓누르는 구조적 요인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혁신학교에서 모범을 창출하고자 노력하는 교장과 교사들의 헌신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혁신학교의 성패가 단지 교장과 교사들의 노력에 따라서만 좌우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해당 학교가 놓인 지역의 사회적 조건(농촌/도시, 빈부격차 정도)이 다르고, 여러 사회적 요인을 반영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선호도 다르고, 교장과 교사들 간의 관계도 다르다. 혁신학교 연수에서는 교사 전문성을 신장시키고자 수업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수업 혁신은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교과서까지 교과부가 통제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혁신의 폭은 좁다.
혁신학교 연수에서 크게 주목받는 일본 교육운동가 사토 마나부의 학교 혁신 사례는 학생 중심의 교수법 등의 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대안적 교육 모델을 보여 준다는 생각은 과장이다. 마나부가 10여 년 동안 주창한 ‘배움의 공동체’ 모델은 일본 학교 전체의 10퍼센트에서만 실험되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모델을 택하는 학교가 늘어나는 동안에도 일본 교육 전반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더 나빠졌다.
2006년 국제학업성취도조사PISA에서 일본이 조사대상 57개국 중 52위를 하자 일본 정부는 2002년 도입한 유토리 교육(여유교육)을[9] 폐기하고 학교 간, 학생 간, 교사 간 경쟁을 강화했다. 학교 수업 시간 10퍼센트 확대, 토요일 수업 부활, 교원 면허 갱신제 도입, 낮은 평가 등급 교사 퇴출, 성과급 도입 등이 시행됐다. 일제고사가 부활했고, 지역별·학교별 순위가 공개됐고, 학교 선택제가 실시됐다.
한국처럼 대학 서열화가 심한 일본에서 이런 조처들은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이 지는 부담과 고통을 증가시켰다. 입시경쟁 강화로 일본 초중학생 체험학습은 20년 사이에 20퍼센트나 줄어들었다.[10] 2009년 일어난 학교 폭력은 6만 9백13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초등학교는 2008년보다 9.7퍼센트나 늘었다.[11] 입시경쟁 강화, 성과급, 교원평가 도입 등으로 교사들의 업무와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신분도 불안정해졌다. 한 조사 결과를 보면 2008년 전국 공립 초중학교 교원의 약 60퍼센트가 수업 외의 과중한 업무로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12] 일본의 군국주의화로 교과서 내용도 우경화되고 일장기 경례, 기미가요 부르기 강요 등 교사들에 대한 이데올로기 통제도 강화되고 있다. 사토 마나부의 실험이 확산된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의 결과였지만, 국가의 낮은 공교육 지출과 경쟁 심화의 대안이 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일제고사와 성적 공개와 입시 교육을 강화하는 교육 과정 개편, 과도한 행정 업무, 교원평가제 같은 교사 감시 제도 등을 혁신학교 확대가 저절로 없애지는 못한다. 더욱이 자사고·특목고 확대, 학교 선택제 등으로 갈수록 학교 간 경쟁 압력이 커지고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입시 제도는 특목고와 자사고의 부유층 자녀들에게 더 유리해지고 있다. 교육 여건 개선에 필수적인 교사 증원은 긴축 정책으로 몇 년째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 갈수록 기간제 교사와 인턴 교사를 늘려 교사들의 직업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학교에 돌봄 기능까지 요구하는 추세지만, 교육 예산이 늘지 않아 교사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경제 위기에 따른 실업과 빈곤 확대로 노동계급과 서민·빈곤층 자녀들의 삶이 악화되고, 이는 학습 여건과 의욕을 떨어뜨려, 아이들이 수업을 따라잡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학교에 적응하기가 더 어렵게 된다.
이렇게 전반적 여건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일부 지역에서 진행되는 제한된 실험들로 노동계급과 민중에게 진정한 희망을 제공하기는 힘들다. 현재의 학교 교육을 현저하게 개선하려면 교사를 대폭 충원해 모든 학교에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행정 업무를 담당할 사무원 수를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에 교육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또, 교육 내용과 방식을 통제하는 국가의 교육 정책(교과과정 개편 등)과 학교 당국의 교사 통제에 맞서면서 교사 자율을 확대해야 한다.
혁신학교에서 진보적 교육 실험이 일부 시도될 수 있지만, 일부 학교를 선별 지원하는 혁신학교 자체가 교육운동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자사고나 특목고가 아닌 일반 학교 중 일부에 지원하는 것을 ‘특혜’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교육 여건이 열악한 농촌이나 도시의 가난한 지역의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경우 특히 그렇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보편적 공교육 제도라는 이상과는 거리가 있다. 특권층 학교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혁신학교 확대만으로는 확대된 교육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 입시경쟁으로 말미암은 폐해를 없애고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려면, 고교 평준화와 대학 평준화와 유아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실시돼야 한다. 혁신학교나 일반 학교에서 진행되는 학교 혁신은 이런 급진적 교육 개혁의 전망과 연결돼야 한다.
진보 교육감과 진보진영
진보 교육감 대거 당선으로 우파들은 이명박의 교육 정책이 뿌리째 흔들릴까 봐 걱정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무상급식 확대, 학생 인권 문제 쟁점화 등 긍정적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보 교육감들은 이명박의 특권·경쟁 교육에 대한 정치적 도전에서는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다.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수도권의 두 교육감은 지나치게 온건한 행보로 적잖은 사람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지난 7월 전국 단위 일제고사 때 곽노현·김상곤 교육감의 태도는 매우 아쉬웠다. 선거 공약인 학생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김상곤 교육감은 교사와 학생에게 징계를 위협했고 나중에는 학교별로 알아서 하라고 내맡겼다. 곽노현 교육감은 교과부와 우파 눈치를 보다 일제고사 전날 오후에야 대체 프로그램 마련 지침을 내렸고, 우파들의 비난이 일자 시험 당일 아침에 전날 지침을 철회하는 씁쓸한 행보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곽 교육감은 바뀐 지침을 듣지 못해 교육청이 선택권을 보장하는 줄 알고 일제고사에 집단으로 참가하지 않은 영등포고등학교 등 몇몇 학교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이고 학교장과 교사들에게 징계 지침을 내렸다. 우파들의 비난이 두려워 해당 학교장과 교사들을 속죄양 삼은 것이다.
반대로 김승환 전북 교육감과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은 교과부와 보수 언론의 거센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고 일선 학교에 대체 프로그램 마련을 지시해 교사들과 진보진영을 고무했다. 특히 김승환 전북 교육감은 수도권 두 교육감이 실망을 자아내는 상황에서 많은 쟁점에서 진보적인 면모를 분명히 보여 줬다. 김승환 교육감은 현행 교원평가제 폐지 방침을 밝혔고, 법정 재단 전입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두 학교(중앙고, 남성고)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했다. 그는 7월 9일 전교조 전북지부가 주최한 집회에 참가해 전교조 교사들의 자신감을 북돋기도 했다.
김 전북 교육감의 자사고 지정 취소 조처는 우파들의 격렬한 공격을 불렀다. 교과부는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 시정 명령’을 내렸고, 해당 재단들(남성·광동 학원)은 행정 소송을 제기해 최근 1심 판결에서 승소했다. 전북 지역 우파들은 서울과 전북에서 김승환 교육감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생활 문제까지 거론하며 온갖 악선동을 일삼고 있다.
이런 공격에 맞서 진보 교육감들은 마땅히 한목소리로 김승환 교육감을 방어했어야 했다. 그러나 곽노현 교육감은 “법 테두리 안에서 천천히 개혁한다”며 김승환 교육감과 선을 그었고, 김상곤 교육감은 침묵했다. 기대했던 진보 교육감들의 공조가 구축되지 않자 진보진영에는 걱정과 불안감이 자라났고, 우파들은 안도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자 우파들의 진보 교육감 흔들기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보수 언론의 비난뿐 아니라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10월 전국 시·도지사들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한나라당 소속 시·도지사뿐 아니라 민주당 소속 이광재 강원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무소속인 김두관 경남지사 등도 동참했다(이는 민주대연합 노선이 민주주의 후퇴에 맞설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국가 탄압도 계속되고 있다. 검찰은 선거자금 수사를 이유로 곽노현 교육감에게 소환장을 날렸고, 최근 수원지검은 장학금 지원을 빌미삼아 다시 한 번 김상곤 교육감을 기소하고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런 공격에서 진보 교육감들을 방어해야 한다. 교과부의 ‘권한 이양’으로 시·도교육감의 권한이 전보다 커지긴 했어도 여전히 핵심 권한은 교과부가 틀어쥐고 있고, 국가는 시·도교육감을 압박할 다양한 수단을 지니고 있다. 교육감 당선을 ‘교육 권력 장악’으로 여길 수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여전히 중앙 정부의 정책에 맞서는 진보진영의 독립적 행동이 중요하고, 상당수 진보 교육감들이 실망스런 행적을 보이더라도 정부와 우파의 공격에서는 무조건 진보 교육감들을 방어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 공격은 단지 교육감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교육감을 배출한 진보진영과 진보 교육감에 투표한 지지자 모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은 조건부가 아니라는 뜻일 뿐 ‘무비판적으로’라는 뜻이 아니다. 진보 교육감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 공개적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된다. 개혁주의자들 중에는 “진보 교육감이 곧 진보진영으로 보인다”며 진보 교육감을 비판하면 우파가 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일제고사 시행 당시 전교조 서울지부와 여러 교육운동 단체들과 좌파 단체들은 곽노현·김상곤 교육감의 행동을 비판했지만, 진보진영의 다수는 침묵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진보 교육감들의 잘못에 계속 침묵한다면 오히려 대중은 진보 교육감들뿐 아니라 진보진영 자체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득을 볼 세력은 바로 우파다.
지난 4개월은 진보진영이 배출한 진보 교육감들 다수가 국가와 보수 언론 등 체제가 가하는 순응 압력을 거스를 만큼 확고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줬다. 이 점은 사람들 사이에 실망을 자아내고 종종 운동의 혼란을 초래할 테지만, 이후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진보 교육감들의 구실은 중요하지만, 그들의 행보가 교육운동이나 진보진영의 향배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운동의 발전(규모와 이데올로기 면에서)은 전교조 활동가들과 교육운동 활동가들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고, 다른 정치·사회운동과 조직 노동자 투쟁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 위기가 심화되고 있고 반신자유주의 정서가 강력한 지금 상황은 교육운동 발전에서 유리한 조건이다.
여기서 진보 교육감들이 모순된 구실을 할 수 있다. 장만채 전남 교육감이 이 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듯하다. 장만채 교육감은 지난 7월 일제고사에서 학생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다른 진보 교육감들과 달리 일제고사 필요성 자체를 인정한다. 또, 이명박 정부의 교원평가제에 반대하지 않고 교원평가제 법제화도 지지한다.[13] 장만채 교육감은 민교협 회원인 동시에 교총 회원이었는데(당선 뒤 교총 탈퇴), 그래서 장만채 교육감을 ‘진보 교육감’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장 교육감 자신도 “진보가 아니”라 “실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장만채 교육감은 교육감들 중 최초로 예산이 90억 원 드는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안과 노조 인정 방침을 발표해 전남 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삽시간에 건설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장만채 교육감은 전남 학교 비정규직 노조 결성식에도 참석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조 결성을 축하하고 격려했다. 곽노현, 김상곤 교육감은 좀체 하지 않던 행동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지지 기반의 성격상 체제의 순응 압력에 맞서 한결같이 진보운동의 대의를 옹호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 교육감의 행보야 어떻든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비정치적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진보 교육감들이 대중 의식과 운동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고, 그런 태도로는 ‘진보 교육감은 행정가이지 진보운동의 대변자가 아니다’ 하고 면죄부를 주는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생’을 강조하며 진보 교육감들을 진보진영의 비판에서 자유롭게 놓아줘서는 안 된다. 선거 공약을 지키도록 촉구해야 하고, 무엇보다 활동가들은 진보 교육감 당선이 열어놓은 기회를 활용해 대중 투쟁과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시·도 교육청이 교사와 학교 비정규직과 단체협상을 맺는 사용자 위치에 있으므로 독립적 투쟁과 활동은 교육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도 중요하다.
전교조운동의 방향
진보 교육감 시대에 전교조가 어떤 구실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은 교육운동 전망에 아주 중요한 쟁점이다. 교육운동에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지만, 교육을 직접 수행하는 교육 노동자들의 조직이자 가장 큰 규모의 단체가 전교조이므로 전교조의 실천은 교육운동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몇 년 간 위기를 겪으면서 조합원 수가 줄었지만 전교조는 여전히 조합원이 7만 명에 육박하는 대형 좌파 노조다. 우파 언론들이 걸핏하면 전교조를 비난하는 것은 전교조가 ‘만만해서’가 아니라 전교조가 교육 정책의 방향은 물론, 학생과 다른 노동계급 부문의 의식과 사기에 끼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 제도는 자본주의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 인구를 양성하는 핵심 장치 중 하나이므로 교사들의 노동은 지배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지배자들은 학교 교육으로 다양한 숙련도의 노동력 인구를 양성할 뿐 아니라 체제를 정당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도 자연스레 심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교사 통제를 사활적으로 여긴다.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지배자들이 그토록 전율한 것도, 전교조가 다른 노조들보다 늦은 1999년에야 합법화되고 합법화 뒤에도 노조 활동에 큰 제약을 받으며 수많은 탄압을 받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2월에 치르는 2년 임기의 전교조 지도부 선거를 계기로 전교조 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위원장 선거에서 범좌파와 범온건개혁파(현 전교조 본부 집행부를 이루는 ‘참실련’과 여러 온건 의견그룹들의 연합) 간 논쟁의 핵심 쟁점은 상호 연관된 세 쟁점, 즉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의 관계, 민주당을 대하는 태도, 전교조 활동 방향 문제다.
온건파는 《진보교육시대》 창간호에서 “윈윈 관계 형성”을 위해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과 충돌을 피하고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함을 강조한다. 전교조가 “네이스 투쟁, 교원평가 투쟁으로 노무현 정부와 4년간(2003~2006) 적대적 관계 속에서 보내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당시 전교조 지도부는 좌파인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이하 교찾사) 계열이었는데, 2003년 5월 전교조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하 네이스) 전면 시행에 반대해 하루 연가 파업을 벌였다. 온건파는 이런 강경 투쟁 때문에 “결국 노무현 정권의 교육 개혁은 실패하고, 전교조는 국민적 고립 속에 조직의 정체와 후퇴를 겪”었고, “MB 정권이 들어서 교육 정책은 수십 년 전의 보수 정책으로 급속히 후퇴하고, 전교조는 혹독한 탄압을 받아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고 주장한다.[14]
이런 평가는 터무니없다. 우선, 2003년 5월 네이스 반대 연가 파업은 노무현 정부가 국가인권위의 인권 침해 판정도 무시하고 네이스 전면 시행을 밀어붙이려다 초래한 사태다. 학생, 학부모, 교사, 심지어 졸업생까지 포함해 무려 2천만 명의 신상 정보를 조사·집적하려는 네이스 시행에 반대한 투쟁은 고립되기는커녕 많은 학생과 학부모 들의 지지를 받았다. 연가 파업 한 달 전 한길리서치 설문조사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82퍼센트가 개인 정보 수집에 반대했다.
둘째, 이명박의 교육 정책은 ‘급속한 후퇴’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시행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연장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야말로 부유층을 위해 외고 등 특목고를 대폭 확대해 고교 평준화를 뒤흔든 장본인이었다. 노무현의 교육인적자원부는 2004~06년 불과 2년 동안 외국어고 11곳을 신설했다. 이는 현재 전국 외고 30곳 가운데 36.6퍼센트에 이른다.[15] 수능 9등급화, 학생부 강화, 대학 입시 자율화로 학생들은 내신·수능·논술 본고사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시달렸다. 또, 열린우리당은 부패 사학 재단 보호에도 앞장섰는데, 기대를 모았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누더기로 만들어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2007년에는 한나라당과 손잡고 사학법 개악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셋째, 전교조 탄압은 노무현 정부 때도 혹독했다. 2003년 연가 파업 때 최초로 현직 전교조 위원장(원영만)을 구속했고, 2006년에는 교원평가제 공청회장에서 교원평가제 강행에 항의하는 전교조 간부 3명을 경찰력을 투입해 끌고가 구속하기도 했다.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으로 전교조 활동가 4백36명이 중징계 당했고 2천1백13명이 경고·주의 등의 징계를 받았다. 이런 탄압은 노동자·학생에 대한 수많은 탄압의 일부였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교육 개혁은 진보적 개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개혁이었으므로 광범한 저항에 직면한 것이 당연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유층 편향 정책 때문에 네이스 연가 파업뿐 아니라 여러 부문의 파업과 한미FTA 반대운동, 비정규직법 개악 반대 투쟁 등 수많은 대중투쟁이 일어났다. 또, 친제국주의 정책에 맞서 반전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고립된 것은 전교조가 아니라 바로 노무현이었다. 전교조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반대하고 여러 다양한 정치운동에도 참여한 것은 전교조에 대한 지지를 넓혔다. 2005년 이후 2008년 봄 촛불운동 때까지 진보 교육운동과 진보 운동 일반이 일시 위축된 것은 노무현 정권의 등장으로 한껏 부풀었던 진보 희망이 노무현 정권의 배신으로 꺾이고 환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진보교육시대》가 노무현 정부를 미화하는 것은 2012년 선거에서 민주당 등 부르주아 자유주의 야당 세력과 연합하려는 진보진영 주류가 시도하는 흐름의 일부다. 이런 적대 계급 간 협력 노선은 노동계급의 전투적 투쟁을 일정 수위 이하로 자제시키는 구실을 한다.
《진보교육시대》는 “민주·진보 세력의 통큰 연대”를 위해 “전교조 중심주의, 교원 정책 중심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 교육감은 “민주·진보 교육세력의 대변자이지 전교조의 대변자가 아니”라며 전교조 서울지부가 교육감 선거 당시 교원평가제 문제로 곽노현 후보와 마찰을 빚은 것을 진보진영의 연대를 해친 사례인 양 비판했다. 곽노현 후보가 선본 내 합의안인 교원평가제 반대 입장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언론에 사견을 밝힌 것이 충돌의 원인이었는데도 말이다.
온건파의 계급협조주의 노선은 이후 진행될 단체협약(2003년부터 정부의 교섭 거부로 중단됐다가 올해부터 일부 교육청과 협상 재개)에서 “근로자로서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요구”를 부차화하고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을 살리고 교육자적 지위와 역할을 높이고자 하는 요구”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전자는 일시적이고 표피적이며, 호소력이 교원 내부에 그치는 한계를 갖는 데 비해 후자는 지속적이고 내면적이며, 호소력이 대국민적 정당성을 갖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에 전교조가 단체협약으로 체결한 ‘방학중 근무 폐지’는 “교사의 교육자로서 자긍심을 높여”주지 못했고 “보수 세력이 전교조를 공격하는 하나의 빌미가 되었다”고 말한다.[16] 그래서 “국민적 요구와 교원 요구의 공통분모인 공모제 등 승진 제도 개혁”이 “학교 정책과 교원 정책의 중심적 요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육 노동자인 교사에게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 교육자로서 자긍심을 높이는 것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성과급제나 교원평가제가 도입된 나라에서는 과도한 업무와 감시 체제 강화에 따른 스트레스 증가로 많은 교사들이 교직을 떠났다. 일본의 공립 초중고교와 특별지원학교에서 중도에 그만둔 교원은 전국에서 해마다 1만 2천 명이 넘고, 최근 5년 간 6만 7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17] 전교조 충남지부 한 교사가 일본 구마모토 현 고등학교 교직원 조합원과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글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방학 때도 ‘의무 출근’을 해야 하는 일본의 교사들은 예전처럼 여유와 정으로 학생을 대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인간적 교육을 펼치던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18]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교사의 노동조건은 계속 나빠졌다. 2009년 초중고 주당 수업 시간은 1999년보다 모두 약 1~2시간씩 늘어났고[19] 교사들이 처리해야 하는 공문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교과부). 비정규직 교원 수도 늘고 있다. 2009년 기간제 교사 비율은 전체 교원의 5.6퍼센트로, 다른 부문보다는 낮지만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자제하기는커녕 노동강도 완화를 요구해야 하고, 비정규직 교사 차별을 없애는 투쟁에 전교조가 적극 나서야 한다.
온건파는 교원평가제 문제가 “부차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현 전교조 지도부(참실련 계열)가 교원평가제에 맞서 투쟁하지 않고 불필요한 타협을 거듭 시도한 것을 정당화하는 주장이다. 교과부가 교원평가제를 법제화하려 할 때 전교조 지도부는 민주당에 기대어 6자협의체 참여를 시도했다(전교조 지도부가 6자협의체를 민주당에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교조 지도부는 지난해 6자협의체 참여를 승인받기 위해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했는데, 의결 정족수 미달로 대의원대회가 무산됐다. 이를 통해 교원평가제 수용에 대한 반감이 드러났는데도 전교조 지도부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6자협의체 참여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런 타협 시도조차 무시하고 올해부터 시·도규칙으로 교원평가를 강행했다. “대 국회 로비활동과 ‘3중 평가 불가론’ 등 논리적 대응으로 법제화를 지연시키고 막아냈다”는 《진보교육시대》의 평가는 참말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교원평가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크게 증가한 것은 현 지도부의 ‘슬기로운’ 전략 때문이 아니라 우선, 제도 자체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학부모의 86.4퍼센트가 찬성한다”고 주장했지만, 막상 학부모들의 평가 참여율은 저조했다. 서울시 교육청 관할 초중고 학부모 평가 참여율은 48퍼센트에 그쳤고 참여율이 10퍼센트도 안 되는 학교도 많았다.[20] 수업 참관도 저조했다. 서울 동부지역 중등학교 열세 곳의 학부모 수업 참여도를 보면 중학교는 대상 학부모의 5~25퍼센트, 고등학교는 0.5~5.6퍼센트에 불과했다.[21] 대부분의 학부모가 거의 수업 참관도 하지 못한 채 잘 알지도 못하는 담임, 교과, 보건, 특수교사 등 5~6명(초등)에서 15명(중등)에 관해 60~140여 항목을 놓고 점수 평가를 하는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었다. 교원평가제 시행 뒤 교사뿐 아니라 많은 학생과 학부모 들이 불만을 토로하면서 여론이 급격히 바뀌었다.
진보 교육감들은 대부분 현행 교원평가제 폐지 또는 수정을 약속했다. 이것은 제도 시행 전부터 전투적 교사들이 불리한 여론 속에서도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을 벌이며 문제점을 알린 것이 상당히 작용했다.
수정 방향이나 폐지 전망 등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김승환 전북 교육감은 현행 교원평가제를 폐지하고 자율적 평가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민병희 강원 교육감은 교사 평가가 아니라 학교 교육 종합 평가로 바꾸려 한다. 곽노현 서울 교육감은 점수화하는 방식의 교원평가제를 반대하고 학부모 평가를 없애려 한다. 이런 일들은 분명 전교조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그리고 교원평가제로 교사들을 줄 세우려고 했던 교과부의 시도에 적잖은 타격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교과부가 교원평가제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므로 일부 진보 교육감 지역의 개폐 움직임만으로 교원평가제가 저절로 무력화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교과부는 교원평가 시행 주체에 시·도 교육감뿐 아니라 교과부 장관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리 되면 각 시·도 교육청은 교과부 지침 틀 안에서 교원평가제를 실시해야 한다. 이를 어기는 시·도 교육감은 제재를 받게 된다.[22] 교과부는 현 제도를 약간 다듬어 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유지하고 평가 성적이 낮은 교사들에게는 장기 의무 연수(6개월)를 부과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23]
그렇지만 교과부가 반격을 하더라도 교사들이 싸우기에 마냥 불리하지는 않다. 교총조차 반발할 정도로 교사들 사이에서 교원평가제에 대한 반감은 매우 크다. 또, 이명박 정부의 정치 위기가 심화하면서 교사들의 자신감도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많은 교사들이 제도 강행 뒤에도 현장에서 제도를 무력화하려고 저항했는데, 전교조 서울지부 교사 9천 명 중 5천 명이 동료 평가를 거부했다.[24] 교원평가제에 긍정적인 장만채 교육감이 있는 전남 지역은 교찾사 회원들이 주도해 교원평가 규칙 폐지 청원 운동을 벌였다. 10월 15일 전남도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작한 서명운동에 3주 만에 2백23개교 교사 4천14명이 참가했다. 경기도에서도 교찾사 경향 주도로 동료 평가 거부 운동이 있었고, 교원평가 규칙 폐지 청원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교사들의 높은 불만을 투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좌파가 능동적으로 주도력을 발휘한다면 이런 반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온건파의 투쟁 회피적 태도는 선거 중심적 전략과 연결돼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하는 것뿐 아니라 2014년 “전교조 출신 교육감을 다수 배출”하기 위해 “전교조의 대국민 이미지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25] 투쟁이 아니라 혁신학교 참여와 학교별 수업 혁신 활동을 가장 중요한 노조 활동으로 강조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투쟁을 회피하는 온건 개혁주의 정치로는 전교조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노조의 주된 활동이 수업 혁신 연구라면, 많은 교사들이 굳이 노조에 가입할 필요를 못 느낄 것이다. 노조가 아닌 연구 모임으로도 충분할 것이고, 탄압의 불이익을 감내하면서까지 노조에 가입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26]
전교조는 맹렬한 탄압 속에서도 당사자들의 저항과 동료 조합원들의 방어 활동, 대중의 지지 여론 덕분에 그럭저럭 선방해 왔다. 그러나 온건파 지도부의 대응 방식은 너무 수세적이었다. 진보정당 후원 교사 탄압을 두고 ‘법원 판결까지 징계 보류’만 요구하며 정치 활동의 자유를 공세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법원 판결이 불리하게 나올 경우 중징계 대신 경징계를 요구하는 실용주의적 타협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김상곤 교육감이 경징계 의결을 시도했을 때 전교조 본부는 경징계 방침을 비판하지 않았다(경기지부는 법원 판결 전에 징계를 시도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현하기는 했다). 교과부가 중징계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김상곤 교육감의 태도는 교과부 방침에 반발하는 면이 있긴 했지만, 다른 한편 교과부의 압력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모순되고 실용주의적인 태도로는 운동을 분열시켜 탄압에 맞선 교사와 진보진영의 힘을 한 곳으로 결집시키기가 쉽지 않다.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앞으로도 전교조를 계속해서 강하게 탄압할 것이다. 실용주의적 대처나 민주당에 의존해 국회 로비 활동에 주력하는 방식으로는 효과적인 방어 운동을 건설할 수 없다. 교총까지 교사 정치 활동 합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마당에 전교조 지도부가 정치 활동의 자유를 내세우지 않은 것은 지나치게 수세적인 태도였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이런 태도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 제도를 국가가 통제하고 보수 언론들이 신자유주의, 보수적 교육 정책을 맹렬히 지지하며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에서 전교조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어불성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승자박하는 격이다.
전교조 운동이 강화되려면 단호하게 투쟁을 조직할 좌파가 강화돼야 한다. 교찾사 등 좌파 교사들은 중앙 지도부가 일제고사와 교원평가 반대 투쟁 조직을 회피할 때 이 투쟁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많은 좌파 교사들이 해직 등 중징계를 받았지만, 이들의 단호한 투쟁 덕분에 일제고사와 교원평가의 문제점이 널리 알려졌다. 전교조 운동을 강화하려면 지배 이데올로기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노동계급의 요구를 선명하게 내세우는 정치가 필요하다. 전교조 내 사회주의자들의 구실이 중요한 까닭이다.
전교조가 강화되려면 당면 쟁점에 대응하는 것과 함께 대안 제시도 중요하다. 좌파적 교사·교육운동가들은(범좌파 후보의 당락 여부와 관계없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맞선 투쟁과 함께 ‘입시 폐지, 대학평준화’ 등이 전교조의 요구로 채택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2004년 공약이기도 했고 심지어 정동영조차 2007년에 공약으로 내건 대학 평준화 요구를 전교조가 ‘비현실적’이라고 제쳐버려서는 안 된다. 고도의 대학 서열화를 내버려 둔 채 학교 단위 개혁만으로 평등, 협력, 전인교육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비현실적이다.
전교조 운동이 강화되려면 교육 문제뿐 아니라 실업, 빈곤, 전쟁, 이주민·여성 차별 등 체제의 다양한 불의에도 맞서야 한다. 정치적·사회적 투쟁에 노조가 적극 참가하는 것은 사회 전반의 개혁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교사들의 시야를 넓히고 자신감을 높여 노동조합 강화에도 이롭다. 전교조는 이라크 전쟁 반대, 한미FTA 반대 운동 등 여러 정치 운동에 참가해 왔다. 비록 얼마 전 열린 G20 항의 시위에 전교조가 참가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경제 위기의 책임과 부담을 노동계급에게 전가하는 세계 지배자들은 또한 교육 서비스의 차별화와 양극화, 교사 노동·생활 조건의 악화를 부르고 있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맺음말
교육의 모순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 하에서도 교육은 ‘다양성’과 ‘창조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공장과 사무실의 노동처럼 획일적이고 지루하다. 전인교육을 말하지만, 시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더욱이 교육은 학교 밖 현실의 불평등을 제대로 다루지도, 해결하지도 못한다.
경쟁 교육은 경쟁적 축적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를 따른 필연적 결과다. 자본주의 교육은 모든 사람들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평등을 고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계적 계급 질서에 적절히 배치하고 착취에 필요한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발달했다. 시험 제도와 성적 경쟁은 진정한 배움이 아니라 적자생존이라는 체제의 논리를 자연스레 습득하도록 돕는다.
재력과 권력을 쥔 극소수가 대다수 노동계급과 민중의 필요를 무시하며 게걸스럽게 이윤을 추구하고, 방대한 빈곤을 해결하고 교육·의료·연금 등 복지를 확충하는 데 쓸 수도 있는 자원을 군비 증강과 전쟁으로 낭비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결코 온전히 성취할 수 없다. 평등, 협력, 전인교육의 이상은 계급 착취와 모든 억압이 사라지고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의 분리가 사라지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성취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노동계급이 아래로부터 권력을 장악해야 하고, 그 권력은 국제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러시아의 노동자 국가는 혁명을 국제적으로 확산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가지 못했고, 1920년대 말 스탈린 체제의 확립과 함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변형됐다.
그러나 반복되는 경제 불황, 실업, 복지 축소, 잔혹한 전쟁, 전쟁 위기 앞에서 모든 불의를 일소하고 평등과 해방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은 여전히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제2차세계대전 뒤 상당한 복지 제도를 성취한 북·서부 유럽 나라들에서조차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고, 반복되는 경제 불황을 제거하지 못하면서 복지 제도에 대한 공격이 증가했다. 근래에 심각한 불황을 맞이해 지배자들이 엄청난 공격을 감행하면서 이 나라들에서 계급투쟁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 그리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지에서 일어나는 총파업이나 대규모 파업, 대학생 점거, 대중 시위 등은 많은 나라의 노동계급, 학생, 민중을 고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이 계급 대결의 초점으로 부상했다.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투쟁은 이런 계급투쟁의 발전과 한 운명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멀리 나아갈수록 교육을 바꾸는 투쟁도 활성화되고 급진화될 것이다. 계급투쟁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이해를 거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류의 정치와 조직이 필요하다. 투쟁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반자본주의적 투사들의 네트워크 구축은 교육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변혁을 앞당길 것이다.
참고 문헌
http://chamcn.eduhope.net/bbs/view.php?board=chamcn-90-4&id=19&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