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포유동물인 래크는 발이 셋이다.
한 발은 작은 귀에다 쥐머리같이 생긴 앞부분 가운데 붙었고, 두 발은 돼지처럼 생긴 육질이 많은 뒷부분을 무겁게 떠받치는 모양새다. 보편적 관념에서 어긋나 불편하기까지 한 불안정한 조합, 솥 다리 형상이지만 몹시 삐꺽거림의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세 발의 균형을 잡으려는 듯 짜리 뭉뚝한 꼬리가 엉덩이 뒤에 꽂혀 파리가 붙을 때마다 존재나 알리듯 까닥였는데, 그게 중심추 구실을 해서 간신히 꼴다운 꼴값을 했다. 그런 래크 생김새를 두고 제 학문만 으뜸이라 존잴 드러내며 으스대는 동물학자들이 제가끔 가설을 돌탑처럼 쌓아가며 추론을 폈다. 잡식성 포유동물이 분명하고 앞 생김새를 보아 쥣과로 귀속시키는 게 올바른 분류라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뒤를 보면 멧돼지과임이 영락없는데, 그렇게 생긴 게 어떻게 쥣과로 분류하느냐고 핏대를 세워 맞불을 놓았다.
이 말썽 많은 래크는 오직 커메러리랜드에서만 살았다. 커메러리랜드는 1/50,000 축척 세계지도에는 드러나지 않은 서아프리카 작은 섬나라이다. 일찍 포르투갈 지배에서 벗어나 주권을 되찾아 독립했으나 여전히 포르투갈어로 소통하는데, 왕이 다스리는 전제 국가이며 상주인구라곤 고작 일만삼천삼 명이다. 그러니 세상 밖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는 아니다. 그저 씨족국가라 성을 굳이 붙이지 않고 이름만 불러도 누구네 아버지, 누구의 자식임을 쉽게 알아차릴 만큼 물웅덩이 올챙이처럼 한곳에 그리 바글바글 모여 살았다.
그런데 섬이 워낙 척박해서 먹거리가 귀해 하루하루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섬 외곽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지형에다 주변의 해류 흐름이 빨라 바닷고기를 잡기에는 바닷물결이 사나워서 아예 바다에서 먹거릴 구하려는 마음을 접은 채 살아왔다. 그런 연유로 먹거리가 부족해 궁핍한 나라지만 생선을 잡아 생곌 영위하는 어부는 한 사람도 없었다.
섬 안 땅 역시 열대식물 숲으로 외양은 기름지게 보이는 듯했으나, 막상 숲 속에 들면 농작물 심을 널찍한 땅은 어디에서나 찾아낼 수 없었다. 섬을 받치고 중앙이 불쑥 솟아있어 비탈진 곳을 우벼파 심는 카사바나 고구마, 또는 옥수수는 일만삼천삼 명 섬 주민의 식량으로 메우긴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그들 가운데 굶주림으로 아사한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다.
래크 때문이었다. 래크에서 얻은 단백질로 아사를 면할 수 있었으니 달리 이야기해서 그 동물의 살이 구황식품이었던 셈이다. 뒤가 무거운 세 발 짐승인 래크는 숲 속에서 무릴 이뤄 야생으로 살아가지만, 뜀질이 느리고 성질마저 양순해서 길들어져 한 집에서 의무적으로 세 마리 이상 길러야 잡아먹을 수 있도록 규칙까지 정하여 엄격히 지키도록 했다.
그런데 발이 세 개인 이 래크의 기형성 때문에 동물학자들이 한 사람씩 섬으로 찾아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특히 박사학위가 필요한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 출신 동물학자가 이 수상쩍은 동물에 대한 연구로 한동안 커메러리랜드에 머물렀다. 그는 어려서 다윈의 동물 세계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듣고 자랐으며, 유명한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의 기적적인 성공 스토리에 감동하여 동물학자가 되기를 일찍 작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발표한 래크에 대한 연구보고를 돌팔이 의사가 멀쩡한 사람의 생살을 물어뜯어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매스컴에서 비아냥거렸다. 래크의 생김새가 네발짐승이 직립보행으로 이행하는 진화인지, 직립보행 두발짐승이 네발짐승으로 퇴화하는 과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한 방향으로 진화의 메카니즘이 아직도 작동하므로 흥미로운 일이라면서 이 명제에 깊이 있는 연구가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논문이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되자 동물학자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제작자는 물론 관광객까지 앞다퉈 몰려올 판국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문제를 불러일으킨 일은 논문 뒤끝의 고약함에 있었다. 공명심에서 앞서기를 즐기는, 그 동물학자는 인류의 직립보행 진화론에 획기적인 수확이라면서 세계의 관심을 부추겼다. 그는 그런 주장에서 한 발짝 더 내디뎌 래크가 진화론의 표본 동물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데, 야만 족속인 커메러리랜드인의 단백질원으로 공급되면서 멸종위기 동물이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세계동물보호협회에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래크는 지구 상에서 오직 커메러리랜드에만 살다 보니 세계동물보호협회는 <사이언스 저널>에 논문이 발표되기 무섭게 멸종 위기종으로 선정한 다음 보호해야 한다면서 언론매체를 동원해 대서특필했다. 그러고 내친김에 커메러리랜드 왕에게 래크에서 단백질을 취하기 위해 죽이지 말라고 강력한 내용의 항의서한까지 보냈다.
어느 날 요구에 대한 대응은커녕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세계동물보호협회에서 일하는 에스투비도란 사내가 찾아들었다. 사내는 왕인 프론트 모널크를 만나기에 앞서 부락장이 베푼 만찬에 참석하여 성찬을 탐욕스럽게 배불리 먹었다. 물론 차려진 요리 가운데 가장 맛있다는 래크구이도 별미라면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는 이튿날 섬을 돌아본 다음에야 왕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에스투비도란 사람이오. 세계동물보호협회 일하고 있소.”
사십 다섯 에스투비도는 작은 나라 왕의 권위쯤은 얕잡아 말투가 자못 시건방졌다. 세계동물보호협회 잠재적 영향력에 비하면 소국 커메러리랜드의 국력은 손톱 밑 서캐였다. 물론 그런 힘의 우세를 계산해서 나온 행티였다. 그러나 그보다 다섯 살이나 젊은 프론트 모널크 왕은 사나운 바다를 건너오느라고 반쯤 혼쭐이 나가 있는, 이 사내의 카이저수염에다 가스라이터를 대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에스투비도씨 바닷길에 퍽 지친 모습이오. 세계동물보호협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오. 그런데 무슨 일로 이곳에 고생고생하며 오셨소?”
“세계동물보호협회는 동물의 보호를 위하여 일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단체요. 내가 이곳에 온 건 바로 래크 보호 때문이오.”
“분명 래크 보호 때문이라고 지금 말씀하였소? 명분을 내세운 다른 목적 때문이 아니고요? 흔히 사회 공익을 위한다고 나서는 집단이 명분과 달리 뒤로 검은돈까지 요구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래 이 경우 얼마면 되겠소?”
“우린 가증스러운 그런 단체가 아니오. 오직 래크와 같이 희귀동물을 멸종 위기에서 구해내야 하는 게 세계동물보호협회의 일이기 때문이오.”
“당신들이 래크를 보호하겠다, 지금 그 말씀이오?! 그 짐승은 이 커메러리랜드에서만 사는 특수한 동물임을 아시오?”
“그러기에 보호하려는 것이오.”
“보호한다?. 바다 건너 사는 당신들이 어떻게 이 먼 곳 동물을 보호한단 말이오. 참으로 아이들의 그림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황당한 발상이요. 당신들보다 래크는 우리에게 더 유용한 동물인데 도대체 그쪽에서 보호하려는 목적이 무엇이오?”
“진화론적 측면에서 학술적으로 유용한 희귀동물이기 때문이오.”
“지금 학문적 유용가치라 그런 뜻으로 말했소?”
“이를테면 진화론을 뒷받침할 만한 동물임이 분명하다는 말이오.”
“그건 자기 학문을 위한 변명일 뿐이오. 래크는 세계 땅덩어리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여러 동물 가운데 한 종일 따름이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선 동물이 아닌 인간이 같은 두 발로 걷는 인간에게 부당하게 핍박을 받으며 소통이란 언어가 있는 데도 말막음을 당한 채 짐승보다 못하게 죽어가고 있소. 그런데 당신들은 손길도 미치지 못하는 이곳 동물의 존재를 세계의 눈을 빌려 떠벌이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생물 존재의 소중함은 같은 것이오.”
“그야 물론 그럴 테지요. 그런데 상황에 따라 그것의 경중은 같을 수 없는 일이오. 사람의 목숨과 짐승의 명줄이 화급한 위중에 처했다면 당신은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겠소?”
“이곳 사람들의 우선된 일은 오직 래크의 멱을 따는 일이잖소?”
에스투비도는 바른 대답을 피해가며 얼굴을 붉힌 채 버럭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에스투비도씨, 좀 침착하시고 내 말에 대답하시오. 어제 이곳으로 왔으니 이 섬의 형편을 살펴보셨지요. 그래 이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있었소?”
“아사를 면하려고 세계 희귀동물인 래크를 잡아먹고 있었소. 세계동물보호협회에서 바로 그 일에 거세게 반대하며 분노하고 있소. 그러니 이 나라 왕으로서 지금 당장 금지입장을 밝혀주시오.”
“래크에 대한 취사선택은 자연의 질서요.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 이르기까지 약육강식은 우주의 섭리요. 당신들은 학문적 가치나 희귀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보호한다고 명분을 내세우지만, 우리는 생존을 위하여 당신들보다 더욱 그것이 존멸할까 봐 염려하여 기르기까지 하면서 보호하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소.”
“세계적인 희귀동물인 래크를 식용으로 잡아선 안 되오. 말이 나온 김에 그것을 잡는 자를 색출해 엄벌해주시오. 이것이 세계동물보호협회의 마지막 경고요.”
“나는 왕이지 세계동물보호협회 권고로 목숨을 연명하고자 식용인 래크를 죽이는 자의 잘잘못을 가리는 심판자가 아니오. 이 나라 국민인 그들이 어떻게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 안위를 우선으로 걱정해야 하는 게 바른 왕의 길이오. 그렇소. 나는 나의 국민의 잘잘못을 심판하는 형리刑吏가 아니라 바로 왕으로서 국민의 아사를 막는 일을 우선하는 직분에 있는 사람이오.”
--------------------------------------------------------------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1947∼). 자폐증 장애를 딛고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성공한 미국 보스턴 출신 콜로라도 주립대학 준교수인 여성. 2010년 미국에서 동명 109분짜리 영화화. 감독 믹 잭슨(Mick Jackson), 템플 그랜딘 역은 클레어 데인즈(Claire Da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