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人間革命 29卷 第3章 淸新(53~58)
<청신 53>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게 존엄한 매우 소중한 존재다. 누구나 동등하게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누구나 동등하게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 본디 어느 누구도 남의 행복과 평화를 빼앗을 수 없다.
이것은 일체중생이 부처의 생명을 갖추었다고 설하는 불법(佛法)의 법리에서 나온 귀결인데 인간 구제를 목표로 하는 모든 사상과 종교가 근간으로 하는 점이다.
도다 조세이(戶田城聖)가 말한 대로 예수나 마호메트 등 이 세상의 현인과 성인들은 종교적, 사상적인 신조는 달라도 ‘인간의 행복’이 근본 목적이라는 점에는 바로 합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기점으로 끊임없이 대화해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편견과 차별, 미움 그리고 증오의 실타래를 풀어 공존공영의 평화도(平和圖)를 그릴 것이 틀림없다.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종교가에게 필요한 자세는 가르침은 달라도 각 종교의 출발점인 ‘구제’의 마음에 서로 경의를 표하고 인류가 안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자고 노력하는 행동일 것이다.
하물며 니치렌(日蓮) 불법이 기반으로 하는 법화경은 모든 사람이 부처의 생명을 갖춘 존엄하고 비할 바 없는 존재라고 설한다. 그러므로 그 가르침을 신봉하는 우리는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도 존경해야 한다.
이 지구에는 사상, 종교, 국가, 민족 등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인간이 살고 있다. 그 차이에 얽매어 사람을 분단하고, 차별하고, 배척하는 사상과 삶의 자세가 바로 분쟁을 낳고, 평화를 파괴하고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흉(元兇)이고 마성(魔性)이다.
도다가 제창한 인간은 같은 지구민족이라는 ‘지구민족주의’ 주장은 그 마성에 저항하는 ‘인류 결합 사상’이다.
종교가는 모든 차이를 제거하고 ‘인간’ ‘생명’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며, 보편적인 공통점에 바탕을 둔 대화야말로 멀리 돌아가는 듯하지만 상호불신에서 상호이해로, 분단에서 결합으로, 미움에서 우정으로 키를 크게 돌리는 평화 창조의 힘이 된다.
<청신 54>
인류는 때때로 분규 사태를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력행사는 사태를 더욱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 원한과 증오심만 더 키울 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한편 대화로 전쟁을 끝내고 차별을 없애는 일은 인간의 마음을 감화하는 내적인 생명변혁의 작업이다. 그러므로 점진적이며 강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일단 분쟁이나 전쟁이 일어나 보복이 되풀이되어 처참한 살육이 장기간 이어지면 자칫 대화로 평화의 길을 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여기고 포기하고 절망하기 쉽다.
실은 이것이 평화로 가기 위한 최대 관문이다.
불법의 눈으로 보면 그 절망의 심연에는 인간의 불성(佛性)을 믿지 못하는 근본적인 생명의 미혹, 다시 말해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이 깔려있다.
세계 항구 평화를 실현하는 일은 달리 보면 인간의 무명과 대결하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기에 ‘신(信)’의 생명과 ‘불신(不信)’의 생명이 서로 대결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 불법자(佛法者)가 평화건설을 위해 해야 할 큰 사명이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평화를 바라는 불법자로서 중소분쟁이나 동서냉전 때도 소련의 코시긴 총리와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 그리고 미국의 키신저 국무장관 등 각국 수뇌와 적극적으로 회담을 거듭했다.
또 ‘종교 간 대화’와 ‘문명 간 대화’에 힘써 21세기인 오늘날까지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등의 지도자나 석학들과 솔직하게 대화하고 의견을 나눴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종교, 이념, 국가, 민족은 달라도 평화를 희구하는 마음은 모두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같은 인간이라는 좌표축이 정해지면 평화라는 도표를 그리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하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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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하는 시대 속에서 종교는 사람들의 정신에 평화와 행복을 창조하는 지혜의 빛을 비춰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다.
그러려면 종교가가 함께 최고의 진리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가르침을 스스로 비교 검토하고 절차탁마하는 등, 향상하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교는 사회와 동떨어지게 된다.
그럼 무엇을 척도로 종교를 비교하고 검증해야 할까.
쉽게 표현하면 ‘인간을 강하게 만드느냐 약하게 만드느냐’ ‘좋게 만드느냐 나쁘게 만드느냐’ ‘현명하게 만드느냐 어리석게 만드느냐’로 요약할 수 있다.
또 종교끼리는 인류를 위해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느냐를 경쟁해야 한다. 말하자면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가 주장했듯 ‘인도적 경쟁’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타 함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얼마나 ‘능력 있는 인재’를 배출했느냐로 공감하고 감복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필요할 때는 종교의 차이를 넘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이치는 올해 ‘일곱개의 종’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미래를 자꾸 사색하게 되었다. 21세기를 향해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학회가,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종교의 올바른 자세 등을 놓고 윌슨 교수와 의견을 더 나누고 싶었다.
신이치와 교수는 그 뒤에도 유럽과 일본에서 여러 차례 대담을 나누고 편지로도 의견을 나눠 1984년 가을 영어판 대담집 ‘사회와 종교’를 영국 맥도널드사에서 발간했다. 이듬해에는 일본어판을 고단사에서 발간했다. 그 뒤로도 대담집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서양과 일본, 종교사회학자와 종교지도자라는 처지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대화였지만,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는 정신의 공명음은 훌륭한 울림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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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시마 연산은 겨울 구름에 뒤덮여 엷은 햇살이 비치는가 싶다가도 눈이 흩날리는 불안정한 날씨였다.
1979년 2월 1일, 신이치는 가고시마현의 규슈연수원에 있었다. 3일에는 가고시마를 출발해 홍콩을 거쳐 인도를 공식 방문할 예정이었다.
신이치는 5년 전인 1974년 2월과 10월에 시르벤가다 탄 주일인도대사와 회담하고 일본과 인도의 우호와 문화교류를 대화했다. 회담 때마다 대사가 인도를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2월 재일인도대사관을 통해 인도문화교류위원회(ICCR)가 정식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또 12월, 탄 대사의 후임인 에릭 곤살베스 대사와 회담할 때도 재차 인도를 방문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신이치는 인도측의 우정과 성의에 보답하려고 준비했다. 그리고 이해 2월 방문이 실현되었다.
인도는 중국과 함께 거대한 인구를 자랑하는 대국이고, 종교도 80프로를 차지하는 힌두교 외에도 이슬람교, 기독교,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 등이 있다. 또 다민족, 다언어로 인도헌법에서는 14개 언어(당시)를 지방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다.
신이치는 다양성이 풍부한 ‘세계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흥륭은 인류 평화의 축도이고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또 무엇보다 인도는 불교 발상의 나라다. 그 점에서 신이치는 큰 은혜를 느꼈다.
그래서 민간인으로서 일본과 인도의 문화교류를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인도의 발전에 공헌하겠노라 결심했다.
인도가 낳은 시성 타고르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은 길을 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개인의 이익이나 권력을 위한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다른 나라 형제들의 마음이 서로 오갈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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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가 되는 이번 인도 방문은 ‘일곱개의 종’의 대미를 장식하고 21세기를 향해 새롭게 출발한다는 매우 의의 깊은 세계여행이었다.
신이치는 기념할만한 인도 방문에 걸맞은 출발지를 어디로 해야 할까 생각하자 규슈가 바로 떠올랐다. 왜냐하면 규슈는 니치렌대성인의 유명인 ‘불법서환’을 서원(誓願)한 은사 도다가 동양광포를 의탁한 땅이기 때문이다.
도다가 서거하기 전해인 1957년 10월 13일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어느 대학 럭비구장에서 실시한 규슈총지부 결성대회에 참석해 3만여 명 앞에서 생명력을 쥐어짜듯 이렇게 외쳤다.
“오늘의 기상과 패기로 일본 민중을 구하고 동양의 민중을 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감을 담아 특히 남자부에 “규슈 남아, 잘 부탁한다!” 하고 동양광포를 의탁했다.
신이치는 ‘일곱개의 종’이 모두 끝나는 해를 맞아 21세기를 향한 세계광포의 새로운 출발도 ‘선구’를 달리는 규슈 동지와 함께 시작하고 싶었다.
신이치는 전날인 1월 31일 오후 6시에 규슈연수원에 도착했다.
규슈 대표 간부들과 간담을 나누고 근행한 뒤, 혼자서 잠시 사색에 잠겼다. 밖은 찬비가 부슬부슬 내려 정적이 감돌았다.
신이치는 ‘일곱개의 종’이 끝난 뒤의 학회와 광선유포의 미래를 생각했다.
‘올해로 회장에 취임한 지 20년째를 맞는다. 일본 창가학회 건설은 거의 기반을 완성했다. 일본 광선유포는 초석을 단단히 다졌고 미래를 의탁할 인재도 착착 성장하고 있다. 또 불법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 문화, 교육 단체로서 인간주의 운동의 날개를 점점 더 크게 펼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앞으로는 세계광포에 최고로 힘을 쏟아 인류가 나아갈 평화의 대도(大道)를 열어야겠다고 신이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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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치는 ‘세계광포 기반 완성’을 자기 인생의 최대 주제로 정했다.
세계는 매우 크고 넓다. 빨리 그 사업에 전념하지 않으면 세계 광선유포의 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신이치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일곱개의 종’이 모두 끝나는 지금이 바로 결단을 내릴 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월 1일, 신이치가 참석한 가운데 ‘전통의 2월’을 출발하는 규슈기념간부회를 규슈연수원에서 열 예정이었다. 신이치는 간부회에 앞서 이동의 편의를 위해 연수원 안에 놓은 다리를 기념하는 테이프커팅에 참석했다.
눈이 흩날리고, 기리시마 산들은 눈으로 아름답게 덮여 있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자부 대표가 나무다리 입구에 쳐 놓은 테이프를 잘랐다. 신이치는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다리 이름은?”
다들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선생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신이치가 바로 이렇게 제안했다.
“일인(日印)교가 어떻겠습니까? 일본과 인도에 우호의 다리를 놓겠다는 의미와 결의를 담아 그렇게 지었으면 합니다.”
환성과 박수 소리가 일었다.
그러고 나서 신이치가 앞장서서 다리를 건넜다. 동행 간부는 구두를 신은 신이치가 눈이 살짝 쌓인 다리를 건너다 넘어지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하며 바라보았다.
신이치는 준비해준 동지의 진심에 진심으로 보답하고 싶어 다리를 건넜다. 그 사소한 행동에도 세계를 이으려는 신이치의 철학과 신념이 담겨 있었다.
‘성실과 성실’이 서로 울려 마음이 공명할 때 영원한 우정의 다리가 놓인다. 이해와 타산의 결합은 상황에 따라 가랑눈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우정의 다리가 바로 인간의 유대가 되고 더 나아가 항구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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