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봉-장성봉
2013/06/08
제수리재-막장봉-장성봉-버리미기재
나이가 들면서 험하고 오르기 힘든 산을 힘겹게 오르는 모험심보다 가깝고 비교적오름이 수월한 산을 가잔다. 꼭 산에 들어서서 지치게 걷다가 축 처져서 하산하기보다 즐겁게 여유를 가지는 산행지를 선택하고자 문경과 충북의 경계를 이루는 막장봉과 장성봉에 간다. 막장봉은 여러번 오른 산이나 백두대간의 장성봉과 연계한 산행은 처음이기에 암릉과 완만한 육산의 능선미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막장봉으로 가는 길은 바위들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형상만으로도 일치된 이름을 외칠만큼 사실적인 조각상이 늘어선다 제일 처음 마주하는 이빨바위 앞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는 바위처럼 우리도 함박 웃음이다. 오가는 이들을 커다란 입만 벌리고 허옇게 윗니를 장식처럼 자랑하는 바위 앞에 서면 웃음이 전염될 수 밖에.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고 가는 길이 녹음이 짙고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여 모두 발걸음이 가볍다. '아마 지금쯤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폭염과 씨름하고 있을 겐데.'
날카로운 암릉과 부드러운 흙길이 교차하여 걷는 재미에 빠지게 하면서도 간간이 펼치는 바위 조각상과 식물의 조화로 지루한 줄 모른다. 곳곳이 전망대이고 갈길도, 지나온 길도 멋진 용틀임으로 화답하여 걸음 멈추고 주변의 사물들에 주관적으로 이름 붙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소나무 아래 사랑나눔 물개바위, 고인돌 바위, 장성바위, 마당바위 등 느낌대로 이름이 붙여지는 바위들도 화사하다. 그늘 터널을 지나고, 평평한 바위 평상을 건너고, 작은 바위 언덕을 넘거나, 우뚝 전망대에 서서 사방으로 번지는 산 물결에 실린 배 위의 선원을 느끼거나.
막장봉의 하이라이트 바위인 백두산 천지 바위, 한사람이 우뚝 솟은 봉우리 분화구에 앉으면 만 천하에 군림하는 황제가 아니랴. 묘하게도 능선을 벗어나 우뚝 봉우리의 날을 세우고 그 꼭대기는 천지모양으로 푹 파여 있으니, 천지라 하지만, 별명도 많다. 의자바위, 황제바위, 왕관바위 까지 그런 모든 이름만큼이나 인기있는 사진 촬영지이다. 사방이 천지바위에서는 꺼리낌없이 뻥 뚫려 가슴 속까지 시원함을 맛보고 부터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된다.
산릉의 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한 그늘에 점심 자리를 편다. 정상이 그리 멀지 않으나 인체의 느낌은 주기성에 익숙하여 점심시간을 조금 늦추길 꺼린다. 짙은 녹음이 실린 숲의 바람은 흘린 땀을 말리면서 한기를 부른다는 과장을 할 만큼이다. 산의 골을 타고 능선을 향해 부는 골바람에는 골짜기가 가진 냉기를 실어 오기에 여름 산행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한다. 삼십도 이상을 오르내리는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를 잊을 수 있음은 산을 오른 사람이 누리는 특권이다.
마당바위 둔덕에서 점심상을 차린 이들을 지나 만나는 바위 벽이 쌓은 하늘 터널은 적당히 먹고 건강한지를 테스트라도 하듯 좁은 통로로 지나는 사람들을 시험한다. 너무 비대한 사람은 돌아가란다. 터널을 지나면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코끼리 바위가 막장봉 가는 길을 막아선다. 막장봉 지킴이 역할에 충실한 코끼리 상은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함께 지니고 있어 우리네 걸음을 잠시 붙잡는다.
막장봉은 오는 도중 널브러진 전망대와는 달리 시야가 탁 트인 곳은 아니다. 작은 잡목들이 그리 넓지 않은 정상의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 시야는 막히고 작은 광장은 둘러싼 나무가 키가 작아 그늘을 주지 못하여 뙤약볕이 따갑다. 잠시 머물면서 사진 몇장으로 막장봉의 머무름을 대신하고 서둘러 백두대간을 향하여 간다. 정상에서 한참동안 가파르게 내리꼳혀 절골 삼거리에서 시원한 골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대간의 언덕으로 오름길이다.
대간 쪽으로는 안내 팻말이 없다. 대간 삼거리는 백두대간의 뚜렷한 종줏길과 막장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만나지만 아무런 표시가 없다. 악휘봉으로 장성봉 쪽으로 작은 표시조차 없으니 처음 온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알고보니 대간 길은 출입이 통제 되는 걸 제수리재 안내판에는 막장봉과 가까운 장성봉이 나타나 있는데, 버리미기재로 가는 장성봉 줄기에는 산행의 흔적을 없애는 중이다. 대간을 가고자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들과의 타협점을 찾아야지 막는다고 몰래 다니는 사람은 부득이 야간 산행이나, 다른 형태로 그 구간을 가고자 할거니. 자연훼손을 막는 생태 체험로로서의 대간 등산로를 생각해 본다. 장성봉에 선다 산릉이 만리장성모양으로 길게 용틀임을 하는 곳 기다란 토성의 중심부에 선 게라오.
잠시 장성봉의 시원한 바람을 안고 장성처럼 봉암사 계곡을 휘감아 가는 대간의 기운을 몸과 마음으로 체감한다. 봉우리를 벗어나 내림길은 군데군데 멋진 전망대를 제공하여 구왕봉과 희양산의 멋진 암봉을 눈 앞에 당겨 오고, 장성봉을 지나 가은읍 완장리로 흐르는 애기암봉과 원통봉의 앙증맞은 애교도 가까이 끌어온다. 커다란 산릉의 흐름에서 갈라진 작은 산줄기들이 골을 만들어 골마다 작은 산촌들이 다정한 이웃처럼 정겹다. 우리를 에워싼 산들의 물결 또한 장관으로 우리는 장성의 아늑한 품속에서 평화를 즐긴다.
14일째 백두대간을 홀로 가는 산꾼을 만난다. 궁상맞고, 이곳저공 물집이 생긴 발이나 긁힌 자국이 선명한 몸뚱아리가 지쳐 보여도 나름의 자신과의 싸움 중이라는 의지가 얼굴에 담긴다. 누구나 한번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여 자신의 굳은 의지를 다지는 거소 평생의 행복을 찾는 데 큰 거름이 되지 않으랴. 우리는 내림길이나 아마도 그는 희양산을 지난 습지에서 오늘밤 둥지를 틀지 않을까. 맑은 날씨로 보아 영롱한 별빛을 받고 내일은 또 다른 힘을 얻어 길을 떠나겠지. 우린 산행 종점인 버리미기재로 하산한다.
선유구곡의 학천정에서 하산주를 한다. 조선말기 한일합방과 관계 깊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유난히도 많이 남긴 곳이기에 역사의 교훈을 얻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특히 학천이라고 냇바닥의 바위에 새긴 이완용의 글씨가 혼돈의 역사를 다시 일깨워준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 이완용이란 이름을 쪼아 잘 보이지 않으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역사물로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의 진실을 알고 역사를 창조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 옆으로 물은 끊임없이 너른 바다로 흘러가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하는 게 눈에 보이는 데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기에 골몰한다. 물의 일부로 만들어진 사람은 물이 가진 순리를 외면한다.
'鶴泉' 이라고 쓴 이완용의 글씨
한일 합방의 장본인인 을사오적은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을 가리킨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을 보호국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같은 해 10월 일본의 총리대신 가쓰라[桂太郞], 주한공사 하야시[林權助], 외무대신 고무라[小村壽太郞]는 을사조약 체결을 모의하고, 11월 9일 추밀원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특파대사로 한국에 파견하여 고종에게 '한일협약안'을 제출하게 했다. 이완용과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이 대세를 장악하여 "조약의 체결을 거부하면 일본이 무력으로 한국을 침략할 것이므로 차라리 체면을 살리면서 들어주자"는 명분과 왕실의 안녕과 존엄은 유지할 수 있다는 조건을 들면서 조약 체결을 주장했다. 대신들 중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 탁지부대신 민영기(閔泳綺)만이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나머지는 체결이 불가피함을 시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하여 박제순과 일본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들은 한일합병 후에 모두 친일의 대가로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제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
오늘을 산다는 것은 늘 새로움이고 늘 마지막이다.
오늘을 어떻게 사는가는 사람의 몫이고
어제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것도 사람의 몫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은 거울에 간직되어 내일의 우리에게 비추어 줄테니.
오늘을 나혼자라 하지 말고 함께 하는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 앞에서 오늘의 나를 투영해 본다.
2013/07/01
경북 문경 산북의 산돌 |
첫댓글 산돌 교장! 멋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