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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논리: 16.정태적 현존의 생성. 17. 정태적 논리의 발생
-들뢰즈(G. Deleuze), Logique du sens, Minuit, 1969, pp. 101-114, 11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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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는 두 가지 축이 있다. 공간계열과 시간계열인데, 공간계열에서는 존재론적 또는 논리학적으로 인식론을 다룬다. 시간계열에서 현존론으로 실재성을 형이상학적으로 다룬다. 그런데 존재론과 현존론은 양면성을 지녔는데, 인식론과 존재(대상론)가 짝을 이루고, 형이상학은 현존(실재성)에서 시작하고 있다.
다른 하나, 실천과 이론의 측면에서 계열들의 가지치기가 있다. 도덕 실천에 관한 한 실천 쪽이 좌파에 가깝고 이론 쪽이 우파에 가깝다. 철학사적으로 보아 소크라테스 제자계열들에서 기원이 있다. 실천중심으로 보면 퀴니코스학파와 퀴레네학파가 있고 이론 쪽으로 크세노폰과 플라톤이 있다. 아테네 몰락이후에 퀴니코스 계보는 스토아학파로 삶의 공동체에 관심이고, 플라톤주의는 인간중심으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더불어 윤리학으로 다룬다. 그런데 스토아학파의 계열들은 무소유, 금욕주의, 세계시민사상으로 전개되어 리베르떼르 계열을 만들고, 프랑스 대혁명의 자꼬방 산악당들에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스콜라주의를 이어서 데카르트의 주체를 정신으로 강조하는 계열로 나가면서, 칸트와 후기 칸트주의자들에 의해 국가에 윤리 또는 인륜으로 나간다.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화 작업에서 도덕적 논의와 윤리학적 체계는 다른 가지치기 이다. 들뢰즈가 언어적 측면에서 플라톤주의(논리주의)의 상층, 스토아주의에서 표면의 이중성, 벩송의 심층으로 구별하고자 하는데, 여기 이 책에서 상층, 표면 이중성, 심층의 네 위상의 구별은 라이프니츠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들뢰즈는 이렇게 라이프니츠를 읽었을 것인데, 들뢰즈를 정리하여 단행본은 낸 것은 거의 20년 후에 "주름(1988)"으로 나타난다.
사물과 언어라는 측면에서 사물의 발생과 전개는 심층의 온사건으로부터이다. 그런데 언어도 신체를 통하여 온사건으로부터 입말이든 몸짓이든, 말투이든 옹알이이든 밖으로 나온다. 내부의 의식을 밖으로 표출이 발생의 기원이다. 그 입말이나 말투가 규약과 체계를 갖는 것은 사회적 활동과 연관에서이다. 사물로부터 기원을 논하는 쪽이 유물론에 가깝고 언어의 규약과 체계를 다루는 쪽은 개념론과 더불어 관념론에 가깝다. (56M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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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계열은 개체를 17계열은 명제를 다룬다.
공간계열에서 개념작업이 개념들을 생성한다고 여긴다. 들뢰즈는 생성에 하나는 정태적 발생이고 다른 하나는 논리적 발생으로 나누었다. 내가 보기에, 정태적 발생은 추상화에 의한 관념을 정립이고, 논리적 발생은 대상의 일반화에 의한 개념작업에서 개념을 구성하는 것에 속할 것이다. 들뢰즈의 설명으로는 라이프니츠의 개체화 또는 개별자에서 보편자로 이르는 층위에서 즉 선험적 위상에서 두 발생(정태적과 논리적)이 규정되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있다. 벩송은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에서, 정태적 관념은 상식에, 논리적 개념은 양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물론 관념의 형성이 고대의 것이고, 개념의 구성이 근대적이라는 관점에서 벩송이 전개한 것인데, 이런 설명의 배후에는 보다 중요한 문제거리가 있다. 고대의 상식은 하늘과 땅의 연관에서 인간류를 설정한 것이고, 근대의 양식은, 존재론적으로 하늘(정신)과 땅(물질)의 연관을, 인간에게로 변환하여 인간의 인식 양식을 매개로 인식론적으로 영혼과 신체의 관계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런 흥미있는 견해를 벩송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들뢰즈도 상식과 양식을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존재론적 생성에서 개체(관념적 대상)를 논리적 생성에서 명제(개념화)로 구별하여 다룬 이유가 있다.
게다가 현상학이 관념의 대상을 존재론으로 다루는 것으로 보고, 근대 인식론은 개념의 구성과 설정이 명제의 주어와 술어차원에서 논리학적으로 보고 있다. 이런 서술은 서양철학사의 긴 과정에서 설득력이 있는데, 벩송 식으로 설명하면, 존재론적 생성은 플라톤주의에 가깝고, 논리적 생성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적이면서도 관념연합론적 방식에 가깝다. 그러면 관념연합의 관념을 플라톤의 이데아와 다른 측면인가 하는 물음이 생기는데, 근대의 그 관념은 플라톤의 등질적 관념이 아니라, 내포를 지닌 관념이며, 원자론자의 원자조합의 방식에 닮았다는 것이다. 즉 존재론에서 관념의 현실태로서 모방체가 원자론의 관념(사실상 논리적 개념인데)과 닮은 것이다. 두 발생론에서 이런 유사성은 아직(19세기) 동적 생성론이 출현하기 이전에 일반화와 추상화가 같은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다. 동적 생성론의 방향이 역방향으로 달라지는 것을 알아챈 철학자가 벩송일 것이다. (56M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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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계열 : 정태적 현존의 발생/생성 (de la genèse statique ontologique)
Gilles Deleuze, Logique du sens, Minuit, 1969, pp. 133-141.
[§16과 §17까지 오게 된 것은 인간(특이성, 인격성)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이 위상은 일반과 개체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모스 상태에서 계열의 생성과정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연에서 수동성으로서, 논리적 귀결로서 존재 규정이 있다. 그러면 능동성으로서는, 자기 형성으로서 존재 규정도 있어야 할 것이다.]
[과학과 철학은 미래를 예견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은 외연적 미래에 대한 측정이며, 철학은 내면적 의식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 사항이다. 이 희망의 투여에는 의미가 있다. 이 의미는 지칭도 표출도 기호화도 아니며, 양식과 상식의 의미도 아니며, 특이자의 자가-통일적(auto-unifie)이고 자기 의미화 과정이다.(41PLB)]
개체의 발생: 라이프니츠 Genèse de l'individu : Leibniz 133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불가분성(individu, 개체)은 엘레아학파의 사유논리의 주제이며,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물질의 요소를 정의하는데 쓰인다. 엘레아학파와 플라톤은 영혼의 불가분적 인격성을 찾으려 한 것이고, 에피쿠로스학파의 경우는 물체의 개별성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이에 비해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에 와서야 생명적(에너지)이고 인격적인 개체의 논리가 발생한다고 본다.]
133 실재적(réel) 선험 영역[장]은 표면의 위상학에 의해 이루어지고, 노마드적이고, 비인칭적이고 전개체적 특이성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개체는 어떻게 이 영역으로부터 개별화됨으로써 발생의 첫 단계를 이루는 것일까? 개체는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을 세계라고 부르는가? (133)
우리가 보았듯이 하나의 특이성은 두 방식으로 파악될 수 있다. 하나는 그것의 실존 즉 그것의 배분(sa répartition)에서 또 하나는 그것의 본성(sa nature)에서이다. .. 특이성의 점은 일상의 계열에서 분석적으로 이어져서 다른 특이성의 이웃에까지 등등으로 이어진다. [이 이어짐으로] 하나의 세계가 구성되고,.. 다른세계는 이 점들의 이웃에서 시작한다. ..(133)
하나의 세계(un monde)란 수렴에 의해 선별된 특이성들의 무한한 체계(système infini)를 이미 내포하고(envelopper) 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개체들이 구성되며, 체계의 유한한 수의 특이성들을 선별하고 내포한다. (133)
라이프니츠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개별적 모나드는 다른 신체들과 자신의 신체들 사이의 연관(rapport)에 따라서 세계를 표현하고, 자기 신체의 부분들의 연관에 따라서 연관 자체를 표현한다. (133)
한 세계는 수렴질서 속에서 무한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에너지, 가질 수 있고 또한 이 질서는 한계 지어져 있다. (134)
[라이프니츠는 세계가 내적으로 무한히 분할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세계의 한정과 질서의 통일성을 긍정한다. 이 사유에는 우주의 총량의 일정함을 상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엔트로피(l'entropie)의 문제를 깨닫는다. (134) [내적 무한은 총량에 대해 어떤 관계인가? 내적 무한에서 새로운 발생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총량에는 무관하다 할지라도.]
134 개체-세계-상호개체성이라는 복합체가 정적 발생의 관점에서 효과화의 최초의 수준을 정의한다. 이 최초의 수준에서, 특이성들은 세계 안에서 그리고 이 세계의 부분을 형성하는 개체들 안에서 동시에 효과화 한다. 스스로를 효과화한다는 것 즉 효과화 된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일상적 점들의 계열 위로 이어가는 것, 수렴의 규칙에 따라 선별되는 것, 신체 안에 구현되고 신체의 상태가 되는 것, 새로운 효과들과 제한된 새로운 연결을 위하여 위치적으로 다시 형성되는 것이다. (134) [효과화의 정의]
효과화란 항상 집단적이고 동시에 개별적이고, 내적이며 동시에 외적이다 등등. (134) [표면의 이중성을 인정하면 한편으로 세계에서 자기생성이며 다른 한편으로 개체로서 부분의 생성이다.]
한 세계의 공가능성의 또는 계열들의 수렴(연속성)의 조건 Condition de la compossibilité d'un monde ou de la convergence des séries(continuité) 134
134-2 효과화 된다는 것은 또한 표현된 것(être exprimé)이다. 라이프니츠는 각각의 모나드는 세계를 표현한다는 유명한 테제를 제시한 바 있다. (134)
그렇지만 신이 모나드들을 창조했다기보다는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 그리고 표현된 것{효과화되는 것, 계열화된 특이점들}이 그것의 표현{모나드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표현된 것{특이점들, 순수사건들}은 존속/재속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134)
표현된 세계는 변별적[미분적] 관계들 및 인접한 특이성들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정확히 각 특이성에 의존하는 계열들이 다른 특이성들에 의존하는 계열들과 더불어 수렴하는 한에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이 수렴이 공가능성(compossibilité)을 세계의 한 종합의 규칙으로서 정의한다. (134-135)
계열이 발산하는 그곳에서 다른 세계 즉 처음 세계와 공가능하지 않는(incompossible 비공가능성) 세계가 시작한다. 공가능성의 비일상적 개념은 특이성의 연속성(continuumde sigularités)으로 정의된다. .. 또한 비공가능성의 개념은 모순의 개념에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모순이 비공가능성 개념으로부터 일정한 방식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135) [공가능성 세계가 하나의 수렴이듯이 비공가능성 세계는 다른 하나의 수렴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죄인 아담과 죄인 아닌 아담 사이의 모순은 아담이 죄를 짓는 세계와 죄를 짓지 않는 세계가 공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파생된다. 각각의 세계에서 개별적인 모나드들은 이 세계의 모든 특이성들 - 일종의 무한성 - 을 표현한다. 일종의 웅얼거림(murmure) 또는 일종의 소실(évanouissement)에서처럼. (135) [(이정우)특이점들 사이의 일상적 차이들의 연속을 웅얼거림 또는 소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각 모나드는 일정한 수의 특이성들만을, 즉 각 모나드 형성의 중심이 되며 또 각 모나드의 신체와 조합되는 특이성들만을, 명료하게 내포 또는 표현한다. (135)
라이프니츠는 발생의 이 첫 번째 단계에서 매우 멀리 있었다. 발생 첫 단계란 내포의 중심으로서 구성된 개체, 즉 세계 내에서 그리고 그의 신체 위에서 특이성들을 내포하는 것으로서 구성된 개체를 말한다. (135)
효과화의 첫 번째 수준은 개별화된 세계들과 이 각각의 세계 내에서 살아가는 개별적인 자아들을 상관적으로 생산한다. 개체들은 그들이 내포하는 특이성들의 이웃관계를 통해서 구성된다. (135) .. 표현된 것이 그 표현 바깥에서는, 즉 표현하는 개체들 바깥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한에서, 세계는 곧 주체(sujet)에 ‘귀속하는 것’(appartenance)이며, 사건은 곧 술어, 즉 한 주어(sujet)의 분석적 술어가 된다. (135-136)
그러나 푸름(être vert), 죄인임(être pécheur)은 이제 구성된 주어들(나무와 아담)의 분석적 술어들이다. .. 개별 모나드의 신체들이 명료함과 애매함의 지대와 더불어 변하는 혼합물들, 덩어리들, 연합들을 형성한다. 관계들이 혼합물들의 분석적 술어들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담이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136)
동물적과 이성적, 녹색과 색깔은 동등하게 무매개적 술어이며, 이 술어들은 혼합물을 개별적 주체의 신체 안에서 번역한다. 하나의 술어는 다른 하나의 술어 못지않게 무매개적으로 주체에 속성이 된다. 스토아학파가 말했듯이, 이성은 동물적 신체 속에 침투되고 확장되는 신체(corps)이다. 색깔은 다른 물체를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빛나는 물체이다. (136)
137 그러나 이 최초의 효과화의 지평 위에서, 둘째 수준이 정초되고 발전된다. [최초의 수준 134쪽] .. 후설이 데카르트의 제5성찰에 대해 제기 했던 물음 .. 세계에 “구성의 질서에 있어 이차적인, 첫째 층위의 ‘내재적 초월’과 구분되는,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인 초월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러나 여기서 해결은 현상학의 해결이 될 수 없다. (137)
그래서 주체는 세계(monde)에, 즉 단어의 새로운 의미에서 세계(Welt)에 “마주하고(en face)” 있지만, 살아있는 개체는 세계 안에 또 자신 속의 세계(Umwelt)에 있어왔다. 따라서 우리는 그 모든 선분들이 수렴하거나 일치하는 연속체의 요소 내에서 동일화의 가장 높은 종합을 실행한 후설을 따를 수 없다. (137) - [주체는 세계(Welt)라는 대상에 마주하는 인식 기능이라면, 살아있는 개체는 자기가 세상(Umwelt, 생활세계)의 일부이며 세상(생활세계)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즉 후자는 생성하는 자기 변형의 존재이다. 우선 자연 속에서 인간에(Welt), 다음으로 인간들 사이에 사회성에(Umwelt) 대응시킬 수 있다.(41PLE)]
사건을 술어로 변형 Transformation de l'événement en prédicat 138
[특이성의 사건은 다양한 사건들을 술어로 싸고(포함하고) 있다. 마치 인격성 속에서는 다양한 이질성 혼합이며 수렴의 공가능성이듯이.]
138 이러한 발생은 어떻게 조작되는가? 후설의 무거운 기계조작이 아니라, 여전히 라이프니츠의 극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138)
결국 문제(problème)란 이 상위적이고 적극적인 비결정성을 구성하는 조건들에 관련되어야 하며, 사건(événement)이란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대사건 안에서 다시 결합하듯 끊임없이 분할되어야 하며, 특이점들(points singuliers)이란 모든 수(手)들을 유일하고 동일한 던짐(우발점)으로, 그리고 던짐을 수들의 다양성(multiplicité)으로 만드는 소통하는 동적 형태들(figures mobiles)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 (138)
라이프니츠가 말하기를, 문제는 필연적으로 애매한 기호들이나 우발점들을 즉 그에 일련의 상이한 답(答)들이 상응하는 특이성들의 다양한 배분들을 포함하는 조건들을 갖는다. 그래서 원뿔 단면들의 방정식은 그 애매한 기호에 의해(문제에 상응하면서 답들의 발생을 결정하는 그 만큼의 경우를 형성하는) 다수의(divers) 사건들, 원, 타원, 쌍곡선, 포물선, 직선들로 분할되는 유일하고 동일한 대사건을 표현한다. (138)
그래서 이 세계들 안에는 객관적으로 비결정적인 아담이 존재하며, 다시 말하면, 상이한 세계들 안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조합되고 완성되는 어떤 특이성들만(최초의 인간임, 낙원[정원 동산]에 살고 있음, 자신의 여인을 태어나게 함 등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정의되는 아담이 존재한다. (138)
공가능하지 않은 세계들은 같은 이야기의 변양태들이(variantés 다른 판본들이)된다. [예를 들어] 섹스투스(Sextus Empiricus ?-? 기원 후 3세기 초)는 신탁을 듣는다... 또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의 말처럼 “팡(Fang)은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지 모를 한 사람이 그의 문을 두드린다. .. 가능한 수많은 결말이 있다. 팡이 침입자를 죽일 수 있으며, 침입자가 팡을 죽일 수 있다. 둘 모두 살 수 있고, 둘 모두 죽을 수도 있다. ... 등 모든 결말이 생산되며, 각각은 다른 가지치기들의 출발점이다.” (138-139) [생성의 비결정성은 자유와 연관이 있다.]
개체에서 인칭으로 De l'individu à la personne 139
[공가능성의 수렴에서 개체의 성립, 그리고 개체의 다른 변양태가 아닌 바로 그 변양태가 그 사람의 인격이다.]
139 우리는 이미 고정되어 수렴의 계열로 조직화된 특이성에 의해 구성된 개별적 세계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세계를 표현하는 규정된 개체들 앞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특이점들의 우발점들 앞에, 특이성들의 애매한 기호(signe) 앞에, 아니면 차라리 이 기호를 표상할 뿐만 아니라, 이 세계들 중 여러 개에 대해 그리고 결국에는 그 모두에 대해 유효한 것 앞에 있다. (139)
인칭들 자체는 우선 단 하나의 구성원을 지닌 분류들(classes à un seul membre)이며, 인칭들의 술어들은 어떤 상항(常項)만을 포함하는 성질들(propriétés à une constante)이다. (140)
그러므로 우리는 연역의 집합을 이렇게 표현된다. 1) 인칭들, 2) 이들이 구성하는 유일한 구성원을 가진 집합들과 이들에게 속하는 하나의 상항을 가진 속성들, 3) 외연적 집합들과 가변적 속성들, 즉 그로부터 도출되는 일반개념들이다. (140)
대자아(Ego)는, 다른 자아들(autres ego)이 여러 세계들에 공통되는 어떤 것=x에 상응하는 인칭이듯이, 정확히 모든 세계들에 공통적인 어떤 것=x에 상응하는 인칭이다. (140) [여기서 대자아는 의식일반이다. 제4인칭은 대자아와 동일한가?]
인칭들, 성질들, 분류들 Personnes, propriétés et classes. 140
[개체의 수동적 발생에서 인격의 지위]
140 우리는 이 연역 전체의 세부를 추적할 수는 없다. 단지 수동적 발생의 두 단계를 고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의미는 그것을 구성하는 특이성-사건들에서 출발해 첫째 복합체 - 이 안에서 의미가 효과화 된다 - 를 낳는다. 즉 수렴의 원환들 안에서 특이성을 조직하는 세상(Umwelt),.. 다음으로 이 첫째 복합체와 매우 다른, 그러나 이것 위에 구성되는 둘째 복합체가 등장한다. 즉 여러 세계들이나 모든 세계들에 공통되는 세계(Welt), .. (140)
발생의 첫째 단계가 의미의 연산(opération)이듯이, 두 번째 단계는 의미와 늘 공현존하는(coprésent) 무의미(우발점 또는 양의적인 기호)의 연산이다. .. 첫째 단계에서 양식/일방향 또는 차이들의 이미 고정된, 정착한 조직화의 원리가 형성되는 것을, 그리고 둘째 단계에서 동일화의 기능으로서 상식/공통감각의 원리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40)
[라이프니츠] 그는 다만 양식/일방향에 의해 이미 형성된 영역들 내에서, 또 구성된 개체들에 접근해서만 진정으로 비물체적 놀이의 분배 규칙들을 제기했으며 전개체적인 것을 생각한 것이다. (141)
[후설] 후설 역시 그의 구성이론에서 상식/공통감각을 완성된 형태로 전제했으며, 선험적인 것을 온인칭(Personne) 또는 대자아(Ego)로서 생각했으며, 그리고 생산된 동일시의 형식으로서 x와 이와 전혀 다른 심급x를 – 즉 탈물질 놀이와 비인칭적 선험적 장을 활성화하는 생산자로서 무의미를 - 구분하지 않았다. (141)
[조이스] 사실, 인칭은 곧 율리시즈인데, 인칭은 엄밀하게 말해 그 누구도 아니다.(la personne, elle n'est personne). 그것은 이 비인칭적인 선험적 장으로부터 생산되는 형식이다. .. 개체와 인칭, 양식/일방향과 상식/공통감각 수동적 발생에 의해 생산되지만, ..(141-142)
[캐럴] 마찬가지로 양식/일방향, 상식/공통감각은 이들을 생산하는 원리에 의해 침식당하며, 역설에 의해 내부로부터 전복 당한다. 루이스 캐럴의 저작에서 엘리스는 차라리 개체와도 같다. .. 실비와 브루노는 차라리 모호한 인칭과도 같다. (142)
(41PLB)
제17계열 : 정태적 논리의 발생 (de la genèse statique logique)
Gilles Deleuze, Logique du sens, Minuit, 1969, pp. 143-151.
[§16과 17의 정태적 발생을 존재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다룬 것은 §27에서 역동적(dynamique) 발생과 비교하라 ... ]
명제의 차원들로 이행 Passage aux dimensions de la proposition 143
143 개체들은 무한한 분석명제들로 되어 있다. 개체들은 그들이 표현하는 것 안에서는 무한(infinies)하지만, 그들의 명료한 표현에서는 유한(finies)하다. 인칭들은 유한한 종합명제들로 되어 있다. 인칭들은 그들의 정의상 유한하지만, 그들의 적용에서 무한정(indéfinies)이다. 개체들과 인칭들은 그들 자체 존재론적 명제들이다. (143)
그렇지만 존재론적 발생의 세 번째 요소, 즉 이번에는 인칭들에 의존하는 여러 집합들과 가변적 속성들은 그 자체 존재론적인 세 번째 명제 안에서 구현되지 않는다. 역으로 이 요소는 우리를 명제의 다른 질서로 나아가게 하며, 논리적 명제 일반의 조건 또는 가능성의 형식을 구성한다. (143)
의미와 명제 Sens et proposition 144
144 게다가 논리적 발생에서 존재론적 발생으로 [이행에는] 평행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라짐(décalages 탈구)과 뒤섞임(brouillages 혼신 混信)을 허용하는 중간참(relais)이 있다. (144)
따라서 이미 [계열 3에서] 보았듯이 하나의 극히 복잡한 구조가 존재하며, 이 구조에 따라서 논리적 명제 일반의 세 연관[지시 표명 표지] 중의 각각은 자기 차례에서는 우선이 된다. 구조의 집합에서 구조는 언어의 제3의 배치(l'ordonnace tertiaire)를 형성한다. 이 구조는 존재론적이고 논리적인 발생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에 스스로(매우 상이하며 전혀 달리 배분되는) 이차적 조직화를 구성하는 것에 의존하듯이 의미에 의존한다. (144) [참조: 12계열(100) 제3 조직화(organisation tertiaire)와 비교해 보라.]
바로 이 때문에 명제의 제3의 배치를 넘어서, 나아가 의미의 제2차 조직화를 넘어서, 우리는 모든 언어가 퇴화하는 공포스러운 일차적 질서를 예감하게 된다. (145) [참조: 제34계열 : 일차 질서와 제2조직화 (de l'ordre primaire et de l'organisation secondaire)]
145 의미는, 우발점들과 특이점들, 문제들과 물음들, 계열들과 자리옮김들의 조직화 안에서, 이중으로(doublement 이중화하는) 생산자(générateur)이다. (145)
발생의 두 측면 사이에서 탈구와 혼신은 하나의 현상을 오류(erreur)의 현상으로 고려한다. 왜냐하면 예컨데 하나의 지시된 것은 고려된 논리적 명제에 상응하지 않는 하나의 존재론적 명제 내에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류는 매우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145)
따라서 문제의 시공간적 자가 결정(auto-détermination)이 존재하며, 이 자가결정의 과정을 따라서 문제는 결함(défaute)을 메우면서 또 그 조건들의 과잉을 경고하면서 나아간다. 여기서 진실이라는 것은 의미와 생산성(productivité)이 된다. (146)
의미의 중성 Neutralité du sens 146
146 그 의미는 명제들이 상응하는 문제처럼 표현되어 있다. .. 이 때문에 의미를 부정법이나 분사의 형태(구름-하얗다 la neige-être blanche, 구름의 하얌 l'étant-blanc de la neige)로 표현하기보다는 의문문의 형태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 사실 의문문의 형태는 단지 중성화된 분신(double neutralisé, 이중체)일 뿐이다. (146).
물어봄(l'interrogation)은 경험적 명제들에서 출발해 투사된, 아니면 차라리 재구성된 문제의 그림자(ombre)일 뿐이다. 문제 자체는 발생적 요소의 실재성이며, 명제의 어떤 테제로도 환원되지 않는 복잡한 테마인 것이다. (147)
우리는 후설에서 의식의 양자택일을, 즉 분신의 두 방식을 형성하는 모델과 그림자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반면 문제는 그것이 테마/의미인 한에서 그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중성(neutralité)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또한 그것은 모델도, 그림자도 그것을 표현하는 분신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47-148)
148 그것[문제]은 명제의 모든 양상들에 관련해 중성이다. 오직 동물(Animal tantum)‥… 오직 원(圓)인 한에서 원. 그것은 특수한 원도 그렇다고 그 일반적인 항들이 계속 각 경우 특수한 값을 받아야 하는 한 방정식 안에서 표상된 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특이성들의 방출을 상관자로 가지는 변별적/미분적 체계이다. (148)
문제가 명제들 밖에서 현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n'est pas)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명제들 안에 내속하며(insister), 존속하거나(subsister) 또는 영속하며(persister), 우리가 앞에서 만났던 이 열외-존재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 비존재[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것의 존재가 아니라 문제적인 것의 존재이다. 우리는 비존재/(non)-être라고 또는 ?-존재/?-être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 (148)
그래서 우리가 쾌락은 선[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 우리는 선의 성질에 의해 쾌락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토아학자들은 이 명제 자체가 긍정적(positive, lat, dedicativa)이라고 평가한다. “어떤 쾌락이 하나의 선이 아닐 수 있다. 이것은 이 쾌락에 일어나는 일을 제기하는데 있다…” (148-149)
표면과 안감 Surface et doublure [대역] 149
149 우리는 분신(double 이중체)과 중성이라는 두 개념을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의미는 중성적이나, 그러나 의미를 표현하는 명제들의 이중체가 아니며, 또 의미가 일어나는 사물의 상태도 명제에 의해 지칭되는 사물의 상태도 아니다. (149)
149-2 정적 발생의 관념 자체가 모순을 일소한다. 우리가 물체들과 그들의 혼합물들이 의미를 생산한다고 말할 때, 이는 개체화 때문이 아니다(개체화는 의미를 전제한다). 물체들 내에서 개체화, 혼합물들 내에서 측정, 이들의 변이들 내에서 인칭들과 개념들, 이 모든 질서 배열(ordonnance)은 그것이 펼쳐지는 전개체적이고 비인칭적인 의미와 중성적 장을 전제한다. 따라서 의미 자체가 물체에 의해 생산되는 것은 다른 방식에 의해서 이다. (149)
일단 중요한 것은 물체들의 분화되지 않은 깊이[심층] 안에서, 그것들의 척도 없는 맥동(pulsation 박동) 안에서 포착된 물체들이다. 이 심층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며, 즉표면들을 조직할 수 있는, 표면들 안에서 내포될 수 있는 힘(pouvoir)에 의해작동한다. 이 맥동은 때로는 최대의 물질을 위한 최소의 표면의 형성에 의해 작동하고, 때로는 여러(divers) 과정을 따른 표면들의 증가와 그 복수화(multiplication)에 의해 작동한다. (149-150)
표면은 능동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 표면은 혼합된 물체들의 능동들과 수동들의 산물이다. 그 고유한 되돌릴 수 없고 분할 될 수 없는 장(場) 위를 나르는 것은 표면의 소관이다. 마치 플로티노스(Plotin)가 말한, 이 얇고 연속적인 판(lames)처럼, 액체는 하나의 표면에서 다른 면으로 젖어들며 관통한다. (150)
우리는 물체들(전체로서 취해진, 그리고 그들을 내포하는 극한들 내에서 취해진)과 명제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경계선을 형이상학적 표면(선험적 장, champ transendantal)이라고 부를 것이다. 앞으로 보게 될 것이지만, 이 경계선은 표면과 연관하여 소리의 몇몇 성질들을 함축하며, 이 성질들은 언어와 물체를, 즉 물체적 심층과 음향적 연속체(continuum)의 분명한 배분(répartition)을 가능하게 한다. (150-151)
또한 우리는 여전히 의미는 일종의 안감이라고, 의미의 중성은 그 이중체라는 지위에서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안감이란 더 이상 소멸되고 형체없는(désincarné) 유사성, 즉 고양이 없는 생쥐처럼 살이 없는 이미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안감은 이제 표면들의 생산, 표면들의 다양체(multiplicité), 표면들의 응집(consolidation)으로 정의 된다. 안감은 표리의 연속성이며, 표면의 의미가 동시에 두 측면으로, 즉 명제 안에서 내속되면서 표현된 것으로 또한 물체의 상태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분배되는 방식으로 연속성을 수립하는 기술이다. (151)
이 생산이 실패할 때, 표면이 파열과 흠에 의해 찢어질 때, 물체들은 그들의 심층으로 다시 떨어지며, 모든 것은 익명적 맥동 내에 다시 떨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말들 자체는 이제 물체의 감화(affection 정동)일 뿐이다. 일차적 질서는 2차 조직화 아래서 으르렁거린다. 역으로, 표면이 유지되는 한, 의미는 그 위에서 효과로서 펼쳐질 뿐만 아니라, 거기서 준원인이라는 성격을 띤다. 의미는 이제 개체화 및 물체들의 규정과 그 측정된 혼합물들의 규정 과정 내에서 뒤따르는 모든 것을, 그리고 기호 작용 및 명제들과 그 부과된 관계들의 규정 과정 내에서 뒤따르는 모든 것 - 모든 제3의 배열(ordonnance tertiaire) 또는 정적 발생의 대상 - 을 생산한다. (151) (41PLA)
(정리, 7:35, 56MLD) (9:16, 56M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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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아풀레이우스(Apulée, lat. Lucius Apuleius, 125경-170경), 작가, 연설가. 플라톤주의 철학자. 소설 변신: 황금당나귀(Métamorphoses: L'Âne d'or). “des essais d'interprétation”
160 섹스투스 엠페리쿠스(Sextus Empiricus, Σέξτος Ἐμπειρικός, 160-210) 회의주의 철학자, 고대 경험적 의학파 의사. Adversus Logicos(Against the Logicians, 1935),
205 플로티노스(Plotin, Πλωτῖνος; lat. Plotinus 205-270)
1612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 프랑스 신부, 신학자,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 즉 사유의 기술(La logique ou L'art de penser: contenant outre les règles communes, plusieurs observations nouvelles, propres à former le jugement, 1683), Lettres Leibniz-Arnauld – CORRESPONDANCE DE LEIBNIZ ET D’ARNAULD, 1686-1690
1646 라이프니쯔(Gottfrid Leibniz, 1646-1716) 이 다재다능한 철학자. 새로운 논리계산(명제계산)을 발명하고자 했고, 뉴턴과 달리 미적분을 발명하였다. 40%는 라틴어로, 35%는 프랑스어로 25% 독일어로 썼다. 형이상학 담론(1686), 단자론(1714)
1798 보르다-드물랭(Jean-Baptiste Bordas-Demoulin, 1798-1859),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주의(Le Cartesianisme Ou La Veritable Renovation Des Sciences V1, 1843) Le
1859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독일 철학자. 논리연구(Logische Untersuchungen: Recherches logiques, 1900-1901), 이덴(Ideen 1913),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성찰들(Méditations cartésiennes (sous-titrées : Introduction à la phénoménologie), 1923)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Gottfried Wilhelm Leibniz (préf. Louis Couturat, fragments rassemblés par Louis Couturat), Opuscules et fragments inédits de Leibniz, Paris, Félix Alcan, 1903
1899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 불한당들의 세계사(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 1935), 영원의 역사(Histoire de l’éternité (Historia de la eternidad, 1936), 픽션들(Ficciones, 1944), 알레프(El Aleph, 1949). Enquêtes puis Autres inquisitions (Otras inquisiciones) (1952)
(10:02, 56MLI) (10:23, 56M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