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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디도서 제 2 강 메시지(아산 UBF)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
말씀 / 디도서 2 : 1 – 3 : 15
요절 / 디도서 2 : 14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바른 삶은 무엇인가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바른 삶을 살아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또한 배우고자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며" 1장 10절~16절에 할례파들의 문제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할례파들이 허탄한 이야기를 할지라도... 그러나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 없는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교훈을 지켜야 합니다. 바른 교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서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교훈과 교리가 올바른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 내용을 조금이라도 부정하거나 변형하는 것이 있다면 바른 교훈이 아닙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이라 합니다. 바른 교훈에 어울리는 행동이나 삶을 말합니다. 바른 교훈이 가져오는 성품과 인격을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합당한 성품과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성품과 인격 그리고 생활과 삶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각 사람들을 권면하라고 합니다. 요즘 MZ세대들의 회사 이탈율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입사 후 1년 이내 퇴사율이 50%에 달하며 글로벌 톱기업으로 인정받는 회사들에서도 20%이상 30%까지 1년 이내 퇴사하고 있습니다. 각 기업들은 큰 비용을 들여서 선발한 인재들이 회사에서 기여하기도 전에 퇴사하는 문제에 대하여 분석 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MZ세대들이 부당하게 느끼는 것이 ‘회사 간부들이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부하직원들한테는 요구한다는 것’을 꼽는다고 합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하고 있는 척, 자기는 지키지 않으면서 남들더러는 지키라고 하는 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캠퍼스에 전하기를 바란다면 우리의 삶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합당하여야 영적인 힘, 영적 권위를 얻고 발휘할 수 있습니다.
2절부터 10절까지 디도서 말씀에서 크레테 교회 성도들에 대하여 4가지 그룹으로 구분하여 각 그룹별로 차이를 두며 권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도 예수님께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도 각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각 사람마다 예수님께서 대화하신 내용과 스타일이 다릅니다. 38년 병자에게는 병문제 중심으로 대화하셨고 나중에 다시 만나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는 정답을 일찍 말씀하신 후 그의 영적무지를 참고 인내하시며 대화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와는 물, 야곱의 우물, 하나님의 선물, 목마름, 예배, 예배장소, 메시야로 이어지는 관심사를 예수님께서 받아주시면서 여자의 관심사 따라 대화해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께서 각 사람을 인격적으로 듣는 사람 중심으로 대화하시고 도우신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나이든 남자는 '절제'와 '경건'을 먼저 도와야 합니다. 남자가 나이 40대가 되면 신체변화가 여러 가지 생깁니다. 미각이 약해집니다. 노안이 시작됩니다. 호르몬 분비도 달라집니다. 말이 많아지고 말이 길어집니다. 나이 든 남자는 말만 적게 해도 훌륭한 것입니다. '절제'는 '술을 절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아 정신이 맑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나이든 남자들은 맑은 정신을 가지고 말과 행동에 절제를 가져야 합니다. 또 도와야 할 것은 '경건'입니다. '경건'은 '진지함'인데 '무게감 있는', '존경할만한' 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이든 남자들은 무게감을 가져 젊은 사람들이 존경할 만하여야 합니다. 집착이 있어서 욕심대로 행동할 때 존경받을 기회를 상실합니다. 나이든 사람이 '유치하다' '어린아이 같다'는 비난 듣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할 때, 어린아이 같다는 비난을 초래합니다. '근신'은 다른 번역에서는 '신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생각 없이 머리에 떠오른다고 아무 말이나 다 뱉어내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 없이 말이 나오는 것은 매우 자기중심적이거나, 오만하거나, 연단 받아보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말하기 전에 좀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나이든 사람을 감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 들수록 말 적게 하고 행실이 본 받을 만 하여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이 나이든 여자들에 대하여 우선 강조하는 것은 행실이 거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자들보기에 남자는 언제나 유치합니다. 유치해 보이는 허물을 보고 함부로 판단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작은 실수를 보고 인격 전체를 판단합니다.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자기 판단이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마음대로 하는 생활이 나타납니다. 그러다 세상 여자와 같은 행실을 보입니다. 믿는 사람은 아무 때나 거칠 것이 없는 세상 여자들과 달라야 합니다. 차별화된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 덕목은 참소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소'란 현재 형법으로 금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공공연히 말하여서 타인의 존엄을 손상하는 것으로 ‘명예훼손죄’라 정의합니다. 허위사실을 말하면 처벌은 2배가 됩니다. 형법 33장 307조 입니다. 우리 같은 제자양성 모임에서 목자들은 예수님 제자들의 허물을 가까운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공유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돕다 보면 신뢰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 청할 수 있어야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UBF 제자양성의 성패는 사모님이 양들의 허물과 약점을 얼마나 덮어주느냐에 달렸다고 할 정도입니다. 목자는 제자양성의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목자의 제자양성 스트레스 내용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분이 사모님인데, 과거 90년대 대전 지역 어떤 사모는 남편이나 시니어 목자들의 스트레스를 들으면 해당 목자, 제자양성 과정의 젊은 사람에 대해서 불필요한 분노를 표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지부가 개척 되겠습니까? 다음으로는 술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알콜 중독은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자들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크레테 교인들 중에는 술을 의지하여 풀다가 술의 종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대신 선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선한 것은 생명을 살아나게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잘 전하고, 양들에게 용기를 주고 살아나게 하는 교훈을 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젊은 여자는 직접 가르칠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젊은 여자들은 교회 내의 나이 많은 여자들이 맡으라고 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근신하고 순전할 것과 가정을 잘 가꾸고 돌보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는 것은 생각을 다루는 것이고 순전하다는 것은 실천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젊은 여자들은 감정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적인 생각 성령중심의 생각을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믿어주는 생각,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생각,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역사를 높이는 생각을 하는 연습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활이 순결하고 단정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남편이 용기 있게 주님의 일을 하고, 밖에서 힘껏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내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무리 위대한 꿈을 가져본들, 부인이 지지해주지 않으면 뜻을 펼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머니가 세계의 전부입니다.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어머니의 미소와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보면서 큽니다. 아이의 유치하고 어린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격려하고 칭찬해주어서,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확신 속에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런 아이는 영적으로나 인격으로나 지능면에서 훌륭한 아이로 자라납니다. 가정은 아내와 어머니의 헌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위대한 여자가 많을수록 그 사회와 교회는 건강해지고 복을 받습니다.
6-8절을 보십시오. 디도가 젊은 남자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전하고 있습니다. 남녀 노소 구별 없이 중요한 것이 근신, 생각이 건전하고 깨어 있는 것 입니다. 생각이 타락한 사람에게서 나쁜 말이 나옵니다. 젊은 남자들을 가르칠 때 중요한 것은 디도 자신이 반드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삶을 통하여 모범을 보이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합니다. 목자는 모범을 보여서 양들이 배우고 따르도록 하여야 합니다. 좋은 말씀과 교훈으로 가르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종들에 대한 교훈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노예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교회에 있는 노예 신분을 가진 신자들을 잘 도우라고 각별한 당부를 합니다. 형식적인 복종과 건성으로 하는 충성을 하지 말고, 믿는 자들은 마음으로부터의 순종과 진정성 있는 충성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다른 노예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1절에서 10절까지 사도바울은 그레데 성도들의 인격과 삶이 변화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디도로 하여금 각 연령층별로 구분하여 그들의 인격과 내면과 실제 삶이 변화되도록 도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도에게 강조한 것의 특징은 실생활과 인격이 변화되도록 돕는 내용이 많은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로 하여금 그레데 교회 형제자매들이 그 인격과 삶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비방 받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이 실생활에서 경건하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하여 비방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면 말로써 전도하는 것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믿는 자들의 삶과 생활의 차별성은 말씀역사에 꼭 필요합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겅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1~13절 말씀에 UBF 제자양성 Process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제자양성은 디도서 2:11~13절에 매우 정확하고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된 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Fishing - Growing up – training – Discipline – Apostle 단계로 제자양성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면, 양육과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양육에는 믿음이 자라나도록 하여야 하는데, 믿음이 자라나면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이 제거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Training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불경건과 정욕이 제거되면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이 몸에 배도록 합니다. 제자화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세를 기다리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의 일에 힘쓰며 주의 영광 주실 것을 기다리고 바라는 거룩한 사명인입니다. 우리는 이런 성장과 연단과 제자화와 거룩함에 이르는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이런 성장과 연단과 제자화와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소개하고 권하고 알려주고 이 길로 가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며 이것이 오늘 우리가 캠퍼스에 나가 전하고 권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짓던 삶이 청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추한 존재를 깨끗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들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은 본성과 세상풍조를 따르는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 거룩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실행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순종은 선한 일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뚜렷한 표징이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백성들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디도가 가르치고 권면하고 책망하는 것을 힘 있게 감당하라고 합니다. 성도들의 변화는 해산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가르치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책망하는 것이 골고루 필요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행하여야 할 것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책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하나님께 영광되지 못하는 것을 중단하여 징계나 심판의 대상이 되지 말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깨닫도록 돕고 하도록 권하고 하지 말도록 책망하는 것, 이런 전인격적인 수고를 하는 것이 영적인 리더입니다.
3장 1절을 보십시오.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크레테 성도들로 하여금 통치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크레테 섬은 지중해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 당시에도 이미 많은 나라들로부터 침략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지배하는 것은 로마제국입니다. 저항정신이 충만한 크레테에서 크리스천들도 함께 저항정신이 충만해질 수 있었습니다. 크레테에서는 로마에 대한 폭동과 반란이 일어났는데, 크리스천들도 여기에 많이 가담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반란과 폭동에 가담하지 말고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치라고 합니다. 나라와 정부와 지도자를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라와 정부와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법과 제도를 세우고 사회 질서를 유지합니다. 법과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질서가 국가 시민들의 기본 생존을 보장합니다. 법과 제도가 없는 사회에서는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폭력과 범죄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도로공사나 아파트 공사를 하다보면 청동기시대 유적들이 발견됩니다. 국가공동체가 없고 수많은 씨족 부족 공동체였던 시대 도처에 전쟁의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매장된 시신들의 뼈에 화살촉이 박혀 있고 두개골이 상해 있는 등 폭력에 희생된 형태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를 유지하고 운영하도록 하는 권력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권세자들은 사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일을 일정 부분 대신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 로마서 13장에서 위정자들을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권세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복음의 문을 여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국가가 주는 권리와 혜택은 누리면서 국가시스템을 부정하는 모순적인 행실을 보인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에 신뢰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보이는 것은 복음 전파의 기회를 넓혀 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억지로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교회 밖에서 선한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것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주 하나님께로 인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초대교회 로마성도들은 질병으로 가족들에게 버려진 시신들을 거두어 장사지내주었습니다. 노예 성도들은 주인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당시 사회가 돌보지 않는 고아와 과부들과 병자들을 섬겨주었습니다. 이로써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구별된 사람들이며 거룩한 사람들임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전도의 문이 닫히지 않았으며 예수님의 이름이 잘 나타났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사도 바울은 그레데 성도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숙하도록 도우라고 합니다. 교회 밖의 인간관계에서도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자들 사이에서는 비방의 말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말 옮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너그럽게 생각하고 들어주고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믿는 자는 화내지 말고 분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혈기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왜 정권에 대한 비판을 마음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까? 잘못한 것은 잘 못했다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화내지 말아야 합니까? 이해해주고 양보해주고 덮어주기만 하여야 합니까? 우리도 값없이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고집과 정욕적인 모습과 향락적인 모습, 악독과 시기심, 미움과 다툼을 참아주고 용서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도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불의에 대해서 화가 나는 것은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 죄를 짓고도 우리 주 예수님께 무한 용서받은 사람이 비판정신이 투철해 지는 것은 보기 민망합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용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내가 착하거나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보시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빚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내가 깨끗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신 것은 우리가 부활의 주 예수님을 믿고 그에게 붙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죄 없으면서도 털 깎이는 양처럼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들 속에서 참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화내지 않으시고 싸우지 않으시며 하나님 앞에 순종하신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고 온유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8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이 말이란 지금까지 권면한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가 지금까지 바울이 권한 바를 굳세게 말하라고 합니다. ‘힘껏 전하라’, ‘힘 있게 주장하라’는 말입니다.
목자는 입을 열어서 말해야 합니다. 말을 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레데 성도들이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들이 됩니다. 목자가 말을 하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방향이 분명할 때, 우리는 좋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크레테 성도들이 이런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목자 디도는 힘 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도를 크레테에 남겨둔 것은 이런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선한 일에 힘쓰게 하고 성도들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힘 있게 가르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변론, 족보이야기, 분쟁, 율법에 대한 다툼은 복음의 진보를 가져올 수 없는 것들입니다. 당시 초대교회에는 유대교 전통과 그리스, 로마 철학 사상들이 여과되지 않고 들어와 교회에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벌어진 논쟁 몇 가지 예를 들면 천사의 계급과 역할 논쟁,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의 중요성, 특정 가문의 우월성 논쟁, 음식 규제 준수, 기독교인이 되었더라도 율법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의 논쟁, 이외에도 더 많은 논쟁 이슈가 있었습니다. 이런 논쟁은 신앙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분쟁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제가 예전에 천안기독교단체에서 주최하는 선교대회가 있어서 꽤 큰 교회에 갔었습니다. 담임목사실로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을 불러서 같이 들어갔는데, 한 시간 가량 계속해서 출신 신학대 이야기를 계속하더니 자기 이름 이야기를 하더군요. 출신 신학대와 자기 이름이야기로 100% 시간을 쓰는 것을 보고 왜 저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이 쓴 글을 찾아보았는데 (전부 다 그렇기야 하겠는가 싶은데요) 그 분 글에는 예수님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선교대회에 참석한 선교사님들을 격려하고 각 선교지의 성령의 역사나 선교사님들의 십자가에 관심 가져주는 것이 상식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배우고자 하는 것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성장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화합을 위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국내 여러 센터에서 예전에 족보 작성한 일이 있었습니다.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누가 누구의 일대일 양, 누구는 누구의 일대일 목자 이런 족보입니다. 센터가 망하고 제자양성이 깊이 침체되는 아주 나쁜 일입니다. 한 사람을 돕고 섬기는 일이 여러 사람들의 기도와 헌신과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런 족보가 나돌면 각 목자들은 양을 자기 자존심이나 자기 영광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열매 맺기 힘들어집니다.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느라 다른 사람 양은 돕지 않기 때문에 센터 제자양성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보면 불쌍하고 딱합니다. 그렇지만 미혹의 영이 역사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섣불리 열정을 가지다가는 영적인 상처를 입습니다. 한두 번 타이른 후 멀리하여야 합니다. 요즘 이단은 개인이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가족이 그런 이단에 빠졌다면 전문 상담 사역자에게 부탁하여야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편지로 다 하지 못한 당부의 말을 직접 상세하게 디도에게 전하고 목자의 길을 가르치고자 디도더러 니고볼리로 오라고 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디도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크레테 교회에 뛰어난 말씀의 종 세나와 아볼로를 보내고자 합니다. 크레테 성도들이 열매 맺는 사람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세나와 아볼로에게 잘 배우되 이 사람들이 크레테에 있는 동안 생활의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할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한, 먹어야 하고 써야 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말씀의 종은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영혼의 양식을 공급하며 자기를 희생하여 양들 영혼을 돕는 분들이 그런 일 하느라 자기의 기본 생활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은혜 받는 것만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말씀의 종들의 기본생활이 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멀리 있는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모두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임을 밝히고 주의 은혜를 구하며 서신을 맺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신중한 사람이 되어서 예수 안에서 믿음이 자라나 불경건과 세상 정욕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깨끗한 마음으로 스스로 말씀을 파고 능히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 있는 성품과 역량을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런 삶을 가르치고 전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서 이런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이런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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