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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융위기의 세계화와 거품경제의 한계 1)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위기와 오류의 세계화 2) 저고용, 저소득에 기초한 신용팽창(부채) 소비 경제의 한계
2. 외부 금융충격에 취약한 한국의 금융시장 1)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변동을 보인 외환시장 2) 과잉 수익추구로 위험도에 노출된 한국의 상업은행 3) 외국인 주식시장 이탈과 국내 자본시장의 충격
3. 내수기반 없는 수출경제의 취약성 노출한 실물경제 1) 어두운 2009년 경제전망 2) 시작된 수출둔화와 그 영향 3) 중소기업에서 실체화될 실물경제의 타격 4) 이미 구조 조정된 자영업의 재구조조정 5) 유연화된 노동시장에 미칠 고용축소 충격
4. 위기를 구조전환의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한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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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융위기의 세계화와 거품경제의 한계
1)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위기와 오류의 세계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는 2007년 4월 미국내 2위 모기지 업체인 뉴센트리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의 파산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후,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발행된 복잡한 파생상품(derivatives),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2 등의 부실로 이어졌다. 자기 자본의 30~40배에 이르는 차입(레버리지, Leverage)을 동원하여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헤지펀드는 모기지 증권 부실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헤지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던 투자은행 역시 손실을 입으면서 금융위기는 월가 전체로 발전했다. 2007년 8월 프랑스 BNP파리바(Paribas) 은행이 미국 모기지 증권의 환매 중단을 발표하면서 월가의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위기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2007년 9월 영국의 노던록(Northern Rock) 은행의 파산을 거쳐 2008년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 금융부실이 실체를 드러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10월 미국의 금융부실 규모를 1조 4천억 달러로 추산했고, 영국 중앙은행은 전 세계 금융부실 규모를 2조 8천억 달러로 추정하기도 했다. 엄청난 규모의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이 월가를 탈출하여 상품시장으로 이동하도록 만들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초래했고, 최근에는 장기적인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200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단지 미국의 주택시장과 모기지 대출시장의 붕괴에서 머물지 않고,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파생상품과 레버리지의 연쇄고리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80년대 말 미국의 저축대부조합위기나 90년대 일본 부동산 부실과도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 금융정책의 수장인 금융위원회 전광우 위원장은 최근의 금융위기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 바 있다.
“교통사고(금융위기)의 원인이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운전과실(경영자의 모럴헤저드)이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감독시스템), 또는 과속을 막지 못한 교통경찰(감독기관)의 책임일 수도 있다”1)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단순히 금융기업 경영자의 과잉 탐욕이나 감독기관의 감독 소홀, 감독시스템의 허술함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이 원인을 무엇으로 짚어야할까?
① 우선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30여 년 동안 영미권을 중심으로 금융 비중의 팽창과 제조업 위축, 그리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금융기법의 혁신(?)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위기의 토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흔히 이를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세계화’라고 부른다.
1980년 세계 명목 GDP는 10.1조 달러, 세계 금융자산은 12조 달러 규모였던 것이, 2006년 말 기준으로 GDP는 48.3조 달러, 금융자산은 167조 달러로 급격하게 격차가 벌어졌다.2) 전 세계 금융자산의 급격한 팽창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이윤 가운데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980년대 10퍼센트 수준에서 2000년대에는 30퍼센트를 넘어갈 정도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금융부문이 담당하는 고용비중은 5퍼센트 내외에 불과했다.
제조업에 비해 금융부문이 비대하게 팽창하고 금융 자체에서 수익성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산업구조가 변화된 것이 현재 금융위기를 유발시킨 일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② 1980년대 이후 금융부흥을 이끌었던 선물, 옵션, 스왑 등의 각종 파생상품은 한때 금융혁신의 상징이자 금융에 내재한 위험도를 제로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험을 분산(헤지, Hedge)시킨 것이 아니라, 오류와 위험을 확산하는 매개자가 되었다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워렌 버핏 마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에 지금의 금융위기가 있다”며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인정했다.
이처럼 기초자산으로부터 끝없이 분화되어가는 파생상품은 위험도 측정과 관리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금융시장 내부에서도 위험도 인식과 위험도 분산기능, 위험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따라서 현대 금융자본주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존재하고 이것이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③ 미국 금융팽창을 선도했던 주요 플레이어들 가운데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는 사실상 법인체로 규정받지 않는 사조직으로 금융규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투자은행들 역시 금융규제를 제대로 받지 않았는데,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의 강제적 규제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투자은행지주회사와의 상호합의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감독을 받는 방식이어서 강제력과 집행력이 사실상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3) 이뿐 아니라 상업은행들조차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구조화 투자기관 등을 별도의 자회사로 만들고 여기에 신용공여를 하는 방식으로 부외거래를 하면서, 자회사를 통해 파생상품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실제로는 사적 기업에 불과한 3대 신용평가기관들은 자신이 수수료를 받는 파생상품 발행기관들이 발행한 모기지 기초 자산의 각종 파생상품에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하여 이들의 대량유통을 지원하기조차 했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의 중심부에 서 있었던 헤지펀드는 한때 1조 9천억 달러 규모, 1만 개 펀드로 고속 성장을 했지만, 모기지 증권 부실의 타격으로 2007년 7월 파산이 시작되었고 베어스턴스(Bear Stearns)와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 파산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4)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투매’로 영국 중앙은행을 손들게 하고 보름 만에 10억 달러 수익을 챙겨 세상을 놀라게 했던 헤지펀드는 1990년 390억 달러에 불과한 규모였다. 2000년에 4,900억 달러로 커지더니 2006년 말 기준으로 1조 5천억 달러까지 고속 성장을 했다.5) 물론 이번 세계 금융위기 조장의 주범인 헤지펀드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2008년 1/4분기 헤지펀드 규모는 1조 8,800억 달러 까지 늘어났지만 예년에 비해 성장률은 현저히 둔화되었고 헤지펀드로의 자금유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1/4분기 헤지펀드의 평균 수익률도 마이너스 3퍼센트로 20여년 만에 최악이었다. 금융위기가 심각한 금융경색과 자금 순환 단절로까지 발전했던 2008년 9월과 10월에는 약 700여개의 헤지펀드가 청산되면서 주가폭락과 펀드 환매사태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급팽창된 금융부문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규제하지 않고, 누적되도록 방조한 것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여기에는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및 규제, 주요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과 규제, 그리고 신용평가기관들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은 앞으로 이어질 미국 청문회 등을 거쳐 가시화될 것이다.
④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표면에 떠오르고 약 1년 동안 미국이 한 것이라고는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오직 금리인하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것뿐이었다.6) 지난 3월 14일 미국내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뒤늦게 공적자금 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시장에 개입했지만 그 때만 해도 “시장에 맡기고 간섭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눌려 보다 적극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연이은 메릴린치, AIG보험이 무너지는 걸 목격하면서 서둘러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을 내놓았지만 그 때는 이미 상황이 손쓸 수 없이 악화된 뒤였다. 미국 정부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보고서야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했고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 통과에 이어 은행지분 인수, 기업어음(CP) 직접 매입 등의 적극개입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위기가 표면화된 후에도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정부가 적극적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 역시 이번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2) 저고용, 저소득에 기초한 신용팽창(부채) 소비 경제의 한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 월가 금융위기 - 글로벌 금융위기 - 글로벌 인플레이션 - 글로벌 외환위기 - 글로벌 경기침체’의 연쇄 파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미국형 금융시스템 자체의 결함과 규제와 감독 소홀, 그리고 금융시장의 자기 조정능력에 대한 미국 정부의 믿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짚어볼 수도 있다.
바로 고용과 소득개선에 기초하지 않고 이른바 신용창출(부채)에 기초한 소비로 지탱했던 미국경제 구조이다.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경제의 금융화로 인해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비중은 갈수록 커졌고, 금융회사들은 전통적인 예대마진을 벗어나 고수익 투자에 집중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늘려 다수 국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성장은 멈추게 되었다. ‘소득향상 - 예금 - 대출 - 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투기 - 버블 - 소비’의 취약한 버블경제로 전환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후 미국에서도 예외 없이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지난 30년 동안 하위 20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사실상 정체된 1퍼센트 성장을 한 것에 반해 상위 1퍼센트의 실질소득은 111퍼센트 성장했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 미국 중산층은 급격히 붕괴되었고, 1970년에 58퍼센트에 달하던 중산층은 2000년에 접어들면 거의 20퍼센트가 줄어든 41퍼센트로 하락한다.7)
미국 경제가 잘나가던 90년대조차 미국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서민들의 생활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금융의 발달로 인한 신용적 가수요 때문에 마치 소비여력이 있고 자산이 많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양극화로 소득이 전혀 늘어나지 않았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약탈적인 대출행위를 자행하여 월가의 금융가를 키워왔다. 그것이 바로 한때 전체 모기지 대출의 20퍼센트까지 팽창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이며, 미국 국민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7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경제에서 미국 국민 대다수의 소득을 늘려주지 않으면서도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실질소득이 전혀 늘지 않은 하위 20퍼센트 저소득층이 서브프라임 대출부실까지 떠안고 있는 동안, 금융회사들은 전체 기업 이윤의 1/3을 차지할 만큼 성장을 구가했다. 월가의 최고 펀드매니저들은 고급 주택에 요트를 사서 즐기면서 고급 호텔에서 여가를 즐겼다. 2006년 기준 헤지펀드 매니저 상위 25명의 평균 보수는 5억 7천만 달러로, 이들 소득을 다 합치면 자그마치 140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이 연봉 6만 달러 이하를 받을 때 이들은 웬만한 국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넘어서는 연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문제를 일으킨 초고액 연봉의 펀드 매니저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서민들이었다. 주택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체, 압류, 가계 파산으로 인해 자산과 소득이 부족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소득과 고용에 기초하지 않은 채, 부채를 통해 이루어진 경제성장은 절대 지속될 수 없으며 거품이 꺼지면 중하위 소득의 서민이 제일 먼저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지금 미국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덧붙여 둘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달러 기축통화 국가라는 지위를 활용하여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국내 제조업 기반 위축 - 수입에 의한 소비 - 경상수지 적자 - 달러 유출 - 미국 국채발행 - 주요 수출국(경상수지 흑자국)으로부터의 달러 회수’라는 메커니즘으로 세계경제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기축통화인 달러 유동성이 경색되었고, 이는 곧바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동유럽이나 아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외환위기로 연동되고 있으며 유럽 역시 자유롭지 않은 형편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달러기축통화체제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화두로 등장했으며, 11월 15일 개최될 G20 정상회담을 필두로 해서 본격적인 신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해 논의 공간이 열릴 예정이다.
2. 외부 금융충격에 취약한 한국의 금융시장
미국 발 금융위기는 다양한 전달경로로 한국경제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그 가운데 외환시장과 자본시장 등 금융시장에 준 충격은 특히 위기가 고점에 달했던 9,10월에는 심각한 양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는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고, 특히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의 자유화 정도가 매우 높아져 외부 금융충격에 대한 완충장치가 거의 없는 한국의 금융시장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2007년 한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시장이 미국경제와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잠시 있었다.8) 하지만 그것은 잘해야 대미 수출입 의존도가 줄어든 상품무역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난 것일 뿐, 특히 금융시장에서는 과거보다 훨씬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오히려 재동조화(recouplin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9,10월 위기 국면을 보면 하루 전 미국증시 동향이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증시에 반영되기도 하고, 반대로 아시아 증시가 곧바로 미국 증시에 반영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1)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변동을 보인 외환시장
미국 금융위기가 준 충격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금융시장은 바로 외환시장이었고 이는 곧바로 환율변동과 외환위기설로 나타났다. 2008년 원화의 달러대비 환율 변동 폭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큰 것이었는데, 원달러 환율은 달러가 강세일 때나 약세일 때나 상관없이 약세를 이어갔고 미국 금융위기가 증폭될 때 마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환율 상승이 수출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9) 그러나 동시에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전반적인 소비자 물가, 수입원자재 가격 등을 급등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달러화 약세에 비한 원화의 초약세가 시작된 2007년 11월부터 이미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달러화 표시 수입물가와 역전되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147달러까지 치솟은 원유가격이 8월 이후 폭락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상승폭이 컸던 9월에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8월과 같은 42.6퍼센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0)
최근 한국은행 자료를 보더라도 환율이 10퍼센트 상승하면 물가는 2.62퍼센트(공산품의 경우 3.95퍼센트)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원유 가격이 10퍼센트 하락할 때 물가는 0.49퍼센트 하락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11)
덧붙일 것은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만 급상승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원 엔화 환율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는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하는 부품 소재 수입구조에 직, 간접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올해 들어 대일 수입액이 늘어나면서 2008년 1~8월가지 대일 무역역조는 누적으로 약 230억 달러에 이른다. 특히 고려할 것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부품, 소재 수입 단가가 올라가면 이들을 2차 부품으로 가공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원가는 높아지지만 대기업 납품가
는 그만큼 인상이 안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과 달러부족 현상은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① 기본적으로는 2008년 접어들며 시작된 경상수지 적자전환이 9월까지 지속된 요인이 있고, ② 2007년 6월부터 이어져 온 외국인 주식 순매도와 달러화 환전 송금이 있으며, ③ 이 밖에도 조선업 수출액 선물환 매도 물량이나 해외펀드 헤지물량, ④ 일부 역외 환투기 세력의 개입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9,10월에 접어들면서 국제적인 신용경색으로 국내은행과 외국은행, 국내 은행간, 은행과 수출기업들 사이에 달러 유통자체가 막히면서 달러 거래 자체가 축소된 상황에서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급상승하게 되고 외환위기에 노출되게 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10월 초까지 외환시장에 외환보유고를 푸는 방식을 취하다가 하루 이상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외환스왑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다시 은행권에 달러 지급보증과 직접 공급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환율이 요동치고 일부 NDF시장에서의 환투기까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를 적절히 제어할 어떤 정책적 기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2) 과잉 수익추구로 위험도에 노출된 한국의 상업은행
미국 금융위기에서 씨티그룹이나 JP 모건 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같은 상업은행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주요 진원지는 투자은행들이었다. 때문에 2008년 9월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상업은행들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과 연체가 높은 저축은행들이 먼저 위험수위에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극단적인 신용경색을 몰고 왔던 2008년 10월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은행권이 위기의 진원지로 돌변했고, 외신발 외환위기도 대부분 은행권을 대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10월에 정부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금융 안정화 대책은 증권시장이 아니라 은행권에 맞추어져 있는데, 1000억 달러 지급보증, 300억 달러 자금 직접지원, 은행채 직접 매입, 유동성 비율 완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의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자본 건전성을 강화해왔다고 자부해왔고, 최근에는 글로벌 메가뱅크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리, 신한, 하나은행에 이어 국민은행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서둘렀던 은행권이 어떤 연유로 미국 금융위기 충격에 그토록 쉽게 노출될 수 있었던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변동을 겪었던 은행들은 이후 ‘금융기관’으로서 자금 중개기능 보다는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회사’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규모화, 겸업화를 모토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까지 국민은행의 2조 7천억원 당기 순이익을 필두로 해서 각 은행들이 조 단위의 이익을 실현하며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나 통신회사에 견줄 수익창출력을 보여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현금 배당으로 돌려왔고, 대부분 은행들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이 60퍼센트를 넘었기 때문에 배당의 대부분은 외국인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행들의 수익성 위주 경영과 규모화에 대한 경쟁 압박은 2003년 신용카드 대란과 2006년 과잉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무리한 대출영업행위를 하도록 강제했고, 보험판매나 펀드 판매 수수료 수익에 집착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대출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2006년 이후 증시호황과 펀드상품 판매 호조로 시중 자금이 은행저축에서 펀드와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저축성 수신이 줄어들게 된다. 저축성 은행수신전체 금융기관 유동성(Lf)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말 42.4퍼센트에서 2008년 상반기 33.5퍼센트로 줄어들었고 같은 기간 동안 펀드 잔액은 14.7퍼센트에서 19.9퍼센트로 증가하게 된다.
이 결과 나타난 현상이 바로 예금 수신금액을 뛰어넘는 대출의 증가, 즉 예대율이 증가한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일반적인 예금은행의 총 예금(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 대비 대출비율은 2008년 8월말 현재 말잔 기준으로 149,2%(총 예금잔액은 635조원, 대출잔액은 891조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예금에 양도성 예금증서(CD)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럴 경우에도 6월말 기준 103퍼센트로서 일반적으로 적정선으로 간주되는 80퍼센트를 훨씬 넘기는 마찬가지다.12)
예대율이 높아지고 있던 조건에서 은행들이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은행채나 양도성 예금증서(CD)와 같은 시장성 수신을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대출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모화의 경쟁을 가속시키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저축성 수신이 아닌 시장성 수신이 급격히 팽창했는데 CD와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이 총 자본 조달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잔 기준으로 21.4퍼센트나 되었다. 이렇게 조달해서 대출해준 자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을 경우 은행은 만기가 도래한 CD와 은행채를 갚지 못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조달금리가 높아진 은행채의 경우 2008년 상반기 현재 추가로 25조 4천억원이 늘어나 발행잔액이 290조 4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13)
2008년 9,10월 금융위기 위험 수위가 높아져 자금경색이 극심해지면서 이런 내재적 문제점들이 표면화된다. 한편에서는 기업과 가계 대출 부실정도가 높아지면서 추가 대출은 고사하고 대출회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 발행된 CD나 은행채가 소화되지 않으면서 자금조달은 안되고 그럴수록 이들 수신 금리는 올라가게 되었다.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올라가 중소기업 대출이 7.5퍼센트를 넘어가고 고정금리 주택담보 대출금리가 10퍼센트를 돌파했는데, 한국은행이 10월에 기준금리를 0.25퍼센트, 0.75퍼센트를 각각 내려서 4.25퍼센트까지 낮추었지만 시중금리는 오히려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원화 유동성만이 아니었다. 은행들은 국내은행이나 외국은행 지점을 막론하고 2005년 이후에 단기 대외차입을 급격히 늘려갔고, 그 결과 정부발표에 의하더라도 2008년 10월 현재 800억 달러의 대외채무를 은행들이 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역시 2008년 9,10월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 경색이 악화되자 기존 대외채무 만기 연장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추가로 해외차입이 거의 단절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기존 수출대기업들 조차 수출대금을 시중에 풀어놓지 않게 되면서 은행들은 극심한 달러 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은행발 외환위기설까지 돌게 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과 300억 달러 통화 스왑계약 체결로 일시적인 안정세가 오기는 했지만, 그동안 환율 안정을 위해 정부에서 외환보유고를 축내면서 2008년 1월 기준으로 6618억 달러였던 것이 10월말 기준으로 2122억 달러로 줄어들었는데, 경상수지 적자로 감소한 금액을 감안하더라도 줄잡아 300억 달러 이상이 환율 방어에 소진했다고 보여진다.14)
3) 외국인 주식시장 이탈과 국내 자본시장의 충격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4조 9천억 원 순매도, 채권시장에서 역시 4조 1천억원 순매도. 이것이 미국 금융위기의 한국 자본시장 충격이 가장 심했던 2008년 10월 한국 자본시장에서 외국인이 취했던 포지션이었다. 이로서 2008년 10월까지 한국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빠져나간 자금이 총 41조 8천억원이었고 외국인 비중은 2000년 이후 8년만에 30퍼센트 밑으로 주저앉게 된다. 주식매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높은 금리를 노리면서 꾸준히 매수세를 유지했던 채권마저 주식매도에 버금할 정도의 대규모 매도세로 전환되었다.
그 사이 주가는 한때 1000선 밑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종합주가 기준으로 정확히 1년만에 반토막이 난 것이고 80퍼센트나 떨어진 종목도 무려 20여개에 달했다.
사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개방된 것은 1990년대 초의 일이다. 1992년 1월 3일 국민주를 제외한 모든 상장 종목에 대해 외국인 1인당 3퍼센트, 종목당 10퍼센트 한도에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함으로써 본격적인 주식시장 개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1997년 12월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종목 당 26퍼센트 미만이었던 외국인 투자 허용한도가 이후 급격히 무너지면서 결국 이듬해인 1998년 5월 25일 외국인 투자제한은 사라졌다. 2008년은 그로부터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외환위기로 외자 유치를 정책 당국자들이 가장 중요한 정책구호로 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외국인 직접투자 보다는 주식, 채권과 같은 포트폴리오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한때 300선을 밑돌던 주식시장에서 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 자본은 포트폴리오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한다. 한국경제의 최악의 상황이 외국 금융자본에게는 헐값에 주식을 매수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던 셈이다.
1998년까지만 해도 20퍼센트를 밑돌던 외국인 지분율은 2000년에 들어오면서 30퍼센트를 넘어서게 되었고, 그 후 2004년까지 외국자본은 가파른 속도로 국내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4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전 세계적으로 멕시코와 유사한 수준의 외국인 보유 비중의 국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이 순매수를 이어간 1999년~2004년 사이 주가는 대체로 500~800사이를 등락했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지분율은 18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무려 24퍼센트나 증가했는데 이때 외국인이 순수하게 투입한 금액은 대략 41조 7천억원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본격적으로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주식 매도세를 시작한다. 외국인이 매도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한 2005년 1월의 주가는 1000포인트를 돌파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가파른 상승세 속에서 외국인은 막대한 차익 실현에 성공한다. 2005년~2007년 동안 외국인은 주식매도로 39조 9천억 원의 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외국인은 1999년~2004년 사이 지분율을 24퍼센트 늘리기 위해 42조원의 자금을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했고, 2005~2007년 동안에 그 가운데 단지 10퍼센트의 지분만을 팔아서 그 이전 투자 원금에 가까운 40조원의 자금을 회수했다는 것이다. 14퍼센트에 해당하는 지분이 순 평가 이익으로 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본시장에 외국인 투자 유지를 한 대차대조표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부실 위기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2007년 6월부터는 단순한 차익실현 매도 성격을 넘어서 새로운 양상이 전개된다. 금융위기로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겪게된 외국 금융자본이 과거에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외국인은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신흥시장의 주식을 처분하여 달러로 환전한 뒤 송금하는 행위를 이어간다.
이런 모습은 특히 한국이 두드러졌는데,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서 2007년부터 외국인이 대규모 주식매도에 나선 국가는 거의 한국이 유일하며, 2008년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식매도가 이어졌지만 역시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2007년 하반기부터 금리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 이익을 위해 채권투자가 잠깐 늘어났었지만 2008년 10월 들어서는 이마저도 매도로 바뀌는 상황이 되었다.
이 국면에서 주가는 가파르게 폭락을 거듭했으며 그나마 주가 폭락 폭을 줄인 것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들의 매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고 금융불안이 시작되던 2007년 한 해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80만명이 늘어나서 2007년 말 기준 444만 명으로 직접적인 주식투자 인구가 확대되기도 했다.
금융불안이 격심했던 10월에는 투신권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마저도 펀드 환매사태에 대비해 주식을 매도하면서 한때 주가가 1000선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29퍼센트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어 일반적으로 선진국 수준이라고 할 25퍼센트보다는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규모가 조금 줄어들 수는 있어도 외국인 매도 행진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할 것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개방한 자본시장이 금융위기 국면에서 위기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고, 여기에서 피해를 본 것은 440만 직접 투자자와 2000만이 넘는 펀드 투자자들이었다.
종합해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은행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가면서 수익추구형 금융회사로 탈바꿈하고, 자본시장이 전면개방되면서 금융시장이 구조전환된 결과가 현재의 금융위기에서 내성을 키우고 금융안정성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음을 알 수 있다.
3. 내수기반 없는 수출경제의 취약성 노출한 실물경제
1) 어두운 2009년 경제전망
2008년 경제 성장률이 1/4분기 5.8퍼센트 - 2/4분기 4.8퍼센트 - 3/4분기 3.9퍼센트 등 분기마다 거의 1퍼센트씩 떨어지면서 한국의 실물경제도 빠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IMF가 2008년 예상치를 4.1퍼센트로 보고 있는 등 대부분의 기관들은 2008년 한국경제 성장치를 4~4.5퍼센트로 전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전망치는 더 어둡다.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심지어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1퍼센트로 전망한다고 2008년 11월초에 발표한 바 있으며 미국 경제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들이 사실상 제로 성장 전후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 침체가 본격화되는 것인데, 이를 반영하여 일단 2009년 한국경제 성장전망을 4퍼센트 이상으로 보는 기관은 한군데도 없다.15)
최대 3.9퍼센트에서 최하 1.1퍼센트까지 전망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앞으로 금융위기 수습방향에 따라, 그리고 실물경제 침체 깊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09년도 상반기는 그 침체의 골이 가장 깊을 것으로 예상되며 침체의 장기 지속성 여부도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어쨌든 금융위기에 이어 본격적인 실물경제 침체가 이후 더 큰 충격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도 2008년 하반기부터 이미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는 가장 중요한 변수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시작된 수출둔화와 그 영향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실질적으로 수출에 의해 성장이 주도되고 반면 내수는 계속 부진을 면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2005년 기준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일본보다 2배 이상 높은 28.2퍼센트나 된다.16) 이는 10년 전인 1995년의 24.9퍼센트에 비해서도 3퍼센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수출이 수입을 유발하는 경향이 갈수록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수출이 국내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효과 즉, 내수 연관효과 역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2005년 기준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0.615로 10년 전의 0.698에 비해 낮아진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17)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과정을 볼 때, IT버블붕괴의 여파로 수출이 잠시 급락을 했고 신용카드 대란을 겪으면서 내수가 심각히 위축되기도 했다. 그런데 신용카드 대란이후 민간소비는 거의 살아나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위기 영향으로 이미 침체상태로 빠져들고 있으며 상반기까지 20퍼센트 이상의 고성장을 유지해왔던 수출마저 하반기에 들어 급격한 둔화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통관 기준으로 2008년 10월까지 수출실적을 보면 전년 대비 21.3퍼센트의 수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 오히려 2007년 증가율 13.7퍼센트를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상반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의 경기침체가 가시화된 정도였고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등 시장의 본격적인 침체 이전의 상황이다. 물론 그 조차도 수출금액이 아니라 수출물량 기준으로 보면 이미 8월부터 감소는 시작되고 있었으며 특히 자동차 수출물량은 7월부터 빠른 감소세를 나타내기도 한다.
미국 국민의 소비로 견인되고 있는 미국 경제의 경우 3/4분기 소비지출 증가는 -3.1퍼센트로 후퇴하면서 잠정 성장률이 -0.3퍼센트로 나타났다. 그나마 약 달러 덕택에 수출이 호조세를 보인 탓이다. 이 영향으로 미국 자동차 판매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2008년 10월 미국 시장에서 현대, 기아차가 판매한 자동차 수출 증가율은 각각 -31, -38 퍼센트를 기록(GM은 -45.1퍼센트, 도요타는 -23퍼센트)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 후반 들어 한국의 대미 수출비중은 10~13퍼센트로 줄어들고 있어 수출 증가율에 미치는 영향력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반면, 중국 21~23퍼센트, EU 13~15퍼센트, 아세안이 9~11퍼센트로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되었다.
그런데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중국 경제도 본격적인 하강 국면을 타고 있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3/4분기 성장률이 9.0퍼센트에 그친데 이어 차이나쳉진국제신용평가(CCXI)는 중국 경제 전망을 2007년 11.4%, 2008년 9.4%, 2009년 8.6%로 하향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이 향후에 미칠 영향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 2008년 10월 IT 수출 동향인데, IT산업 수출 규모가 122억3000만 달러로 전체적으로 전년 동월대비 6.4%나 감소한 가운데, 중국으로의 수출은 47억4000만 달러로 1% 감소했고, EU 수출이 20억8000만 달러로 14.5% 감소, 일본 수출이 6억2000만 달러로 26.4%나 급감했던 것이다.18)
2009년에 중국경제가 8퍼센트 성장에 머물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사실상 제로 성장으로 내려앉는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수출둔화는 기정사실화 될 것이고 한자리수 증가율을 겨우 유지하게 될 전망이다.19) 즉 세계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 내수의 뒷받침이 없는 한 수출부진으로 인한 한국경제의 동반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수출 둔화 양상이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주요 수출국 내부에서 자동차나 IT와 같은 내구재의 절대적인 소비 위축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수출증진을 위한 특별한 대책을 세우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11년 전 외환위기에서 한국이 그나마 비교적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서의 경기호조로 수출이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와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고 보면 한국 경제가 자체적으로 불황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수출이 아니라 내수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덧붙인다면 수출둔화는 외환시장 불안으로 치솟고 있는 환율을 안정시키는데도 부정적인 작용을 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OECD 30개국 가운데 벨기에와 함께 경상수지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전환된 두 나라 중의 하나인데, 10월까지 누적 무역수지는 -134억 5천만 달러였고 2008년 평균 100억 달러 내외의 적자가 예상된다.20) 10월에 무역수지가 12억 2천만 달러로 흑자전환 되기는 했지만 이는 수출증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원유가격의 대폭 하락에 의한 수입증가율 둔화 때문이다. 향후 수입증가율 둔화와 수출증가율 둔화의 속도 차이에 의해서 무역수지가 결정되겠지만 낙관적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대하기에는 이르다.
3) 중소기업에서 실체화될 실물경제의 타격
최근 부도위험에 노출된 C&우방을 제외하고는 미국과 같이 굴지의 대형 은행이 도산한 사례도 없고, 과거 외환위기 시기처럼 대기업이 도산하지도 않았는데도 심각한 경제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위기가 중소기업, 자영업, 고용과 같은 하부에서부터 심화되어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외환위기가 한보, 기아와 같은 대기업의 중복, 과잉투자를 촉발제로 해서 발생했고 이에 따라 대출에 물린 은행부실로 전파되고 대기업에 고용된 정규직 직장인들의 대량 해고로 확산되어 나갔다면,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는 이미 중소기업, 자영업에서부터 누적되어가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확대되면서 이들은 이미 오랫동안 경영난과 생활고를 견디고 있었다고 봐야 하고 이번 금융위기 충격과 글로벌 실물경기 침체로 거의 한계상황에 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위기의 여파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환율이 치솟기 시작했던 2008년 상반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것은 바로 고용의 87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던 한국의 중소기업이었다. 좀처럼 정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독자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던 중소기업들이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와 “환헤지 상품 피해대책 촉구”를 하고 나섰던 것은 문제의 심각성 정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준다.
외환위기 이후 3~4퍼센트의 낮은 영업이익률과 대기업에 비해 1/3정도의 낮은 생산성으로 버텨오던 중소기업들은 한때 중국이나 동남아 진출로 비용부담을 낮추려는 탈출구를 찾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점점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에 중소기업 채산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납품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들은 납품가 인상에 인색했고, 글로벌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중소기업과의 연관도마저 줄여온게 사실이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줄을 쥐고 있었던 은행들은 수익성 위주의 경영체체로 돌아서면서 중소기업 대출을 대폭 줄이고 소매영업에 치중하게 되면서 중소기업의 자금회전을 어렵게 만들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의해 2008년 6월 기준으로 92.5퍼센트까지 폭등한 원자재 가격은 유가가 폭락하고 있던 9월에도 여전히 59.1퍼센트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제자리에 있는 납품가 부담을 견뎌낼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가동률은 갈수록 떨어져서 2008년 9월 현재 가동률 8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는 중소 제조업은 전체의 36.2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고 2008년 초부터 평균 가동률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하여 6월부터는 70퍼센트 미만으로 추락했다.21)
2008년 상반기 원가상승 압박이 극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아파트 분양원가 개념과 유사하게 원자재가 상승을 납품가에 연동시켜 반영해야 하고 이를 제도화, 법제화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안된다면 차선으로 각 산업별 중소기업 협동조합에게 납품단가 교섭을 위임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에 의한 자율교섭’을 내세우며 납품가 연동제를 반대했고, 중소기업들의 강력한 요구에 밀려서 이른바 ‘납품가 조정협의 의무제’라고 하는 변형안을 내놓고 이를 2008년 정기국회에서 입법 예고한 상태다. 원자재 가격에 납품가격을 연동하는 것 대신에 납품가 조정신청을 중소기업이 하면 대기업이 의무적으로 조정에 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청 중소기업과 원청 대기업 사이의 교섭력 격차를 무시한 발상이어서 중소기업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한 상태다.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에 이어 금융위기 여파로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두 번째 어려움은 바로 KIKO(Knock In, Knock Out) 환헤지 상품가입에 의한 대규모 손실이다. 잘 알려진 것 처럼 키코 파생상품은 유량 수출 중견기업들이 지난 하반기 이후 극심한 환율 변동위험을 회피하자는 취지에서 은행(주로 외국계 은행)의 권유로 가입을 했다가 2008년 환율이 폭등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는 상태다.
특히 환율상승폭이 매우 가팔랐던 3/4분기에 접어들면서 KIKO 손실액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성진지오텍이 10월 16일 공시한 바에 따르면, 3분기 통화옵션 평가 및 거래 손실이 1526억원에 육박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자본의 95.02%에 달하는 수치이고 3분기까지 입은 누적손실액(평가손실 포함)은 무려 2974억원이었다. 이는 성진지오텍의 10월 16일 기준 시가총액 1100억원 보다 무려 3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22)
이미 2008년 6월 중소기업들은 은행들이 키코상품의 손실위험성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았다며 불공정 계약이라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연합회 편을 들어준바 있고, 최근 120여개 키코피해 중소기업들이 씨티, SC제일은행, 신한, 외환은행등 13개 은행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고 있는 상태다.23)
중소기업들이 2008년 상반기에 주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채산성 악화를 감당해야 했다면 2008년 하반기부터는 금리 상승과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어려움이 한층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 대출은 2008년 7월까지 5.6퍼센트 증가율을 유지하다가 8월에는 1.8퍼센트, 9월에는 1.9퍼센트로 그 증가율이 급격히 위축된다.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는 늘어나는데 은행들은 고금리임에도 불구하고 은행 자체의 자금 유동성 해소를 위해 오히려 중소기업 대출 자금 회수를 검토할 시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을 시중은행에게 독려하고 있지만 시중은해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설사 대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평균 7퍼센트 이상인 대출금리를 상환할 수 있는 여력조차 없는 상황이 지금의 중소기업 상황이다. 2005년 이후 중소기업들의 이자 상환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데 이자 상환능력을 표시해주는 순이자보상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현재 중소기업의 40퍼센트 가량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내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원자재 가격 부담과 고금리 부담, 그리고 환헤지 상품 피해로 인해 줄도산 위기에 선 중소기업들이 2008년 상반기까지 견뎌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미 3/4분기 이후 본격화 되고 있는 국내 소비위축은 중소기업들의 판매실적에도 점점 더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의 연쇄 도산은 당장 고용에 미치는 충격파가 적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은행의 대출부실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4) 이미 구조 조정된 자영업의 재구조조정
2008년 들어 가장 심각한 생존 위기에 몰린 계층이 600만 자영업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아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소득상태나 영업활동 여건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 양극화와 생활적 고통을 상징하는 집단은 단연 비정규직이었고 이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2008년에 접어들면서 부쩍 자영업, 특히 영세 자영업인들의 어려운 경제형편이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골목경제가 흔들린다’(쿠키뉴스 2008/8/6), ‘하루 12시간 일해 고작 3만원, 폐업생각 굴뚝’(경향신문 2008/8/4), ‘점포 절반이 자릿세도 못내요’(서울신문 2008/8/6) 등 자영업인들의 채산성 악화를 표현하는 극단적인 용어들이 언론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 중국집 운영주는 “중국집을 시작한 이래 요즘이 제일 힘들다”면서 “예전엔 중국집을 차리면 90%는 잘됐다. 그런데 요새는 주변에 폐업하는 집들이 많이 생겨난다”. 그 이유는“지난해보다 식자재값이 전체적으로 35~40%가량 비싸졌”고, LPG가스비도 2배가량 올랐다는 것이다. 지난 2월부터 자장면 등 주요 메뉴가격을 500~1000원씩 올렸지만 손에 떨어지는 돈은 1년 전보다 100만원 넘게 줄었다고 한다.24)
그렇다면 어째서 현재의 경기상황에서 유독 자영업에 집중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지, 문제의 장, 단기적인 근원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좀 더 집중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드러나고 있는 자영업의 열악한 실태는 의례적으로 받아 넘기기에는 정도의 심각성이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추적을 해보면, 우리나라는 한쪽에서는 정부의 농산물 수입개방과 농정포기정책으로 인해 농민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반면 산업화와 함께 빠르게 유입된 도시인구는 미처 기업으로 흡수되지 않은 광범한 자영업인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처럼 자영업인구가 이미 90년대 중반까지 크게 증가되었는데, 여기에 임계선을 초과하는 추가 증가를 촉발시킨 것이 바로 97년 외환위기였다. 기업에서 실직자로 내몰린 직장인들이 영세한 규모의 서비스업으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자영업인은 한계를 넘어 증가하게 된다. 이와 반비례하여 시장개방의 확대로 농업인구 감소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줄어들게 된다.
특히 외환위기로 초과잉된 자영업인의 증가는 시장 수요를 넘는 공급확대와 내부경쟁으로 소득의 심각한 감소를 초래했고, 직장인과 자영업인이 소득 역전을 초래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한계상황이 넘어가면서 단순한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격차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즉, 1990년대 이후 도시로 유입된 취업자들이 곧바로 현대적인 기업에 취업하여 일할 수 있는 경제구조가 만들어진 것도 아닌 상태에서, 이들이 미처 현대적인 기업구조에 흡수되기도 전에 외환위기가 닥쳤고, 곧이어 도입된 신자유주의 보수적 경영, 노동배제적 경영방식은 오히려 기존 기업에서 일하던 직장인들마저 자영업으로 배출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농촌에서 올라오고 직장에서 배출되는 취업인력들이 자영업군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선진국의 최소 2배가 넘으면서도 자발적으로 선택한 전문직 자영업도 아닌, 영세한 도소매 서비스 자영업이 전체 취업자의 28퍼센트까지 올라가는 기형적인 산업구조, 노동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붕괴되는 농업과 구조 조정되는 기업, 양쪽에서 배출되어 초과잉, 초 영세 상태로 떨어진 자영업은 2003년 카드대란으로 일차 구조조정 압박을 받은 후 2006년 이후 다시금 2차 구조조정상태에 돌입했고, 이것이 지난해 말 이후 한층 급격하게 전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특히 자영업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도소매 음식업 종사자가 2003년 이후 한 차례, 그리고 2006년 이후 다시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고 최근에는 그 추세가 빨라지는 것이 그 사례다.
자영업인의 급격한 몰락은 최근 통계에서 볼 때 2007년에 비해 다시금 약 7만 여명이 감소하는데 까지 이르고 있으며,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자 물가인상, 국내소비 위축의 가장 직접적 피해 당사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 자영업인의 소득 역시 계속 추락하고 있는데, 최근까지 도시 근로자에 비해 소득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데서도 알 수 있다.
5) 유연화된 노동시장에 미칠 고용축소 충격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은 주로 비정규직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우리사회 고용문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고 해결의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여기에 더해 글로벌 경제침체가 고용문제를 보다 포괄적이고 심각한 국면을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경제 불황이 장기화될 경우 고용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폭과 깊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가장 먼저 검토되어야 할 점은 한국경제 전체의 고용 창출력 약화의 문제이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인 2002년부터 지난 해까지 신규취업자 규모의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바 있다. 경제가 회복기에 있었던 이 기간 동안 평균 신규취업자 수는 약 28만에서 29만 명 정도로 외환위기 이전인 90년대 초반 평균 50만 명 이상이었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차이의 주된 요인은 경제성장률(GDP 성장률)의 하락과 제조업의 고용창출력 하락 때문이었다. 반면에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서비스업의 고용확대가 이를 보완해 왔으나 최근 3~4년 동안은 이마저도 막혀 버렸다.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을 중심으로 취업자가 아예 감소추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동안 과대 고용되어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의 제2차 구조조정이 2004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세자영업 제1차 구조조정은 이른바 ‘카드대란’이 일어났던 2002년 발생)
고용창출력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상태에서 2008년은 기름을 붓고 있는 격이다. 지난 해 7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신규취업자의 감소 추세가 올해 들어 더욱 가팔라졌고 그것이 장기화되는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2008년 1월 23만 5천명, 3월 18만 4천명, 6월 14만 7천명에 이어 지난 9월에는 11만 2천명으로 급락을 하게 된다. 정부도 4분기에는 아예 10만 명 미만으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정도이다.25)
올해의 고용창출력 악화는 그동안 비교적 고용성장을 유지해 오던 사업자서비스 부문의 고용 악화가 결정적이다. 미국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새롭게 취업자 감소에 동참하는 형국이다.
이상과 같은 고용창출력의 하락은 한국경제에서 특이하게도 실업자의 증가로 결과지어지지 않고 비경제활동인구 증가로 결과 지어져 왔다. 2008년 평균 경제활동 가능인구 증가분인 약 43만 명의 26%만이 (9월 기준) 취업자로 흡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3.2% 수준에서 고정되어 있는 이유다. 이들은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비경제활동 인구로 곧바로 편입되었다는 뜻이어서 그 심각성 정도를 더해주고 있다.
비경제활동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상태별 변화를 확인해 보면, 청년층 취업준비생의 증가와 함께 남성 장년층의 ‘그냥 쉬었음’ 증가가 눈에 띈다. ‘그냥 쉬었음’인구는 2007년 현재 130만 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80%가 남성이다. 경제사정의 악화에 따라 여기에 해당하는 인구가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의 추이를 판단함에 있어 여성 노동력의 추이를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여성 취업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남성 취업자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해 왔다. 이른바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나쁜 일자리’는 소폭이나마 확대되어 온 것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나쁜 일자리’를 주도한 대표적인 계층으로 여성과 노년, 그리고 단시간 일자리를 들 수 있는데 특히 전체 고용사정을 대표하는 계층은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여성의 고용률은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능가했다. 비농가 여성 고용률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 41.8%에서 2007년 47.6%까지 증가했다. 한편 이 기간 동안 비농가 남성 고용률은 불과 1.3%p 증가했을 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용의 질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면서 핵심 노동계층과 청년 노동계층의 노동력 확대가 용이하지 않자 노동력 부족이 지속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성 노동력이 확대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이런 추론이 맞다면,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 농림어업 부문이 제공했던 ‘싼값의 노동력’을 여성 계층이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여성 노동력은 대규모로 동원가능한 최후의 노동력 풀(pool)인 셈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여성노동력의 고용지표들도 남성의 그것과 더불어 나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남성 고용지표의 악화 속도보다는 아직 덜하지만 2003년 이후 최초로 고용률이 하락하는 추세에 들어선 것이다. 이 결과가 영세한 한계기업들의 고용사정이 반영된 것이라면, 이들 기업들의 도산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과 같이 대대적인 감원과 고용감소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물경제 하락 속도가 빨라지는 2008년 말 2009년 초에는 중소기업과 건설업에서의 상당한 기업들에서 비상경영, 감산, 인력조정 등이 예상되고 금융위기 여파 여부에 따라 금융권과 대기업에서도 일부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악화가 올 것으로 추정된다.26)
이는 정부 역시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정부는 3퍼센트 성장이라는 객관적 조건만 가정하여 내년 신규 일자리 창출을 12만개 내외로 보고 있다.27) 물론 정부는 감세와 재정지출 등으로 추가 1퍼센트 성장을 하여 20만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1퍼센트 성장에 일자리 7~8만개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근거를 밝히고 있지는 않다. 2000년대 기준으로 1퍼센트 성장으로 평균 6~7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졌지만 2008년 기준으로 놓고 보면 4만개가 채 만들어지지 않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다수 국민들은 주식, 펀드,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금리는 상승 기조를 꺾지 않아 이자부담은 늘어가고, 고용마저 축소되면서 소득마저 줄어드는 상황이 오면서 유래 없는 생활고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4. 위기를 구조전환의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한 이슈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일로를 걷던 2008년 9월까지만 해도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다르다”며 한국경제의 안정성을 주장했던 정부였다. 정부는 현실화되고 있는 위기에 ‘선제적’인 대응을 하기 보다는 정부의 원래 공약이었던, 민영화 정책(8월 11일 ~ 10월 10),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8월 21일~), 감세정책(9월 1일), 그리고 금산분리완화 정책(10월 13일)을 잇달아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10월에 접어들어 주가폭락과 환율폭등이 심상치 않은 국면으로 진행되고 외신발 국내 은행 위기설이 끊이지 않자, 갖가지 금융안정화 대책과 경기진작 대책을 진지한 정책적 고려 없이 백화점식으로 풀어 놓기 시작했다. 10.19 금융안정화 대책과 11.3 경제난국 극복 종합 대책이 그 사례인데, 감세와 재정지출확대가 서로 모순되고 충돌되는 등 설익은 정책들의 남발이 오히려 이후 장기화될 불황에 대한 체계적인 대처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 정도이다.
현재의 한국경제 위기는 외환위기 이후 내재된 문제점들이 외부 금융위기 충격에 의해 국내 금융과 실물 모든 부문에 걸쳐 터져 나오고 있는 대단히 심각한 국면이며, 여전히 급격한 충격과 변동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침체 자체도 장기화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임시방편적 응급처방이 아니라 경제시스템의 구조전환까지를 감안한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며 시점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1) 외부 금융충격을 완충할 시스템적 기제의 필요성
미국 대선결과 발표이후 미국 금융 불안정성이 완화되고 한국 역시 300억 달러 통화 스와프 체결로 금융경색의 고비를 넘긴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판단하고 있지만 아직 불안정성 해소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지금까지 금융경색이 기업과 실물경제를 압박했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실물경기 침체와 기업실적 악화가 반대로 금융부실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며, 금융위기를 확산시킨 뇌관들이 제거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금융시장은 외국 금융변동성에 대한 어떤 완충 기제도 없이 거의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밤사이 뉴욕증시가 폭락하면 바로 다음날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폭증하고 환율이 치솟는 상황이 2008년 9,10월 거의 매일같이 반복되었으며,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투기세력 마저 제한 없이 들어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처럼 외환보유고와 국가재정을 시장에 쏟아 붓는 방식으로 대처하기에는 이미 시장의 조절기능이 작동하지 않기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 외환거래를 안정화시킬 시스템적 기제의 필요성
최근 외환시장의 극심한 불안정성이 시사해주는 것은, 국내외의 경제 여건으로 볼 때에 우리가 지금처럼 외환시장의 완전한 개방과 제약 없는 자유변동환율제를 능동적으로 운영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1998년에 입법화되고 1999년에 시행된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외환시장이 자유화되고 자유변동 환율제로 바뀐 것은 외환위기로 인한 IMF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지 내부적인 여건 성숙에 따른 결과도 아니었다.
또한 향후 달러 단일 기축통화체제를 포함한 국제통화에 대한 다양한 체제전환 논의가 전개될 예정이며, 국제 외환시스템의 변동이 예상되는 만큼 우리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안정적인 외환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순전히 시장기능에 의존하는 방식 보다는 ‘시스템적 기제’를 다시 갖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향후 환율 불안정성이 심화될 경우 늦추지 않고 외환거래법에 규정된 세이프 가드 같은 것을 활용하여 외환통제를 적절히 할 필요가 있으며, 구조적으로도 외화가변예치제도에 상응하는 시스템을 두어 단기적인 대규모 외환 반출입을 제어하여 급격한 환율변동과 외환경색을 막는 대신에 중,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그만큼 우대가 되는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서 근본적으로 시장에 의해 자유롭게 환율이 움직이는 자유변동환율제도는 대규모화 되고 투기적 성격이 강한 외국 금융자본에 의해 정부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금, 적정한 수준의 관리변동환율제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외환보유고를 낭비하는 결과를 볼 것이 명확한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방식은 중단되어야 한다.
▶ 자금중개기능으로 재전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할 은행시스템
은행시스템에 대해서도 당장 원화와 달러화 유동성 공급으로 그치고 만다면 또다시 수익추구를 위해 수수료 수익처를 찾게 될 것이며, 예금으로 자금이 이동되지 않는다면 시장성 수신을 다시 확대하여 대출규모를 키우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된 원인을 찾아 해결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의 은행들은 은행을 매개로 한 금융과 산업의 ‘장기적 관계금융’이 위축됨과 동시에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financial intermediation)이 현저히 약해져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은행은 일반 기업(회사)과 다르다. 이는 10월 금융위기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자금 위험에 빠진 은행에 대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지원에 나서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 플레이어 가운데 특히 은행들은 수익추구 제일주의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은행 시스템이 붕괴하면 기업과 가계 전체가 위험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금지원과 지급 보증을 해주는 조건으로 배당금 지급 금지는 물론, 당분간 대주주 주식 매각 금지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공적인 자금으로 은행의 자금난을 해소해 주고 주가를 받쳐주었다면 주주들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은행 유동성위험 책임을 직원들에게 소득삭감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주주들에게 물어야 한다.
나아가 특히 은행에 대해서는 외국인 지분소유제한을 다시 부활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 재정이나 연기금을 통해서라도 지분을 매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 외환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던 말레이시아는 여전히 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 소유제한 3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28) 또한 최소한의 자금 중개기능을 살리기 위해 기존 중소기업에 해당되었던 기업의무대출 비율을 설정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중간 단계로 현재 매각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은행을 수익이 아니라 자금 중개기능을 수행하는 선도은행으로 적극적인 전환을 시도하여 외국자본에 넘어간 여타 시중은행들에게 자극을 주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과거 관치경제의 대체안이 자유 방임형, 수익 추구형 은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은행은 손실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판매 은행직원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파생상품에 노출된 펀드 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시킬 필요가 있다. 고객 대면 접촉이 가장 넓은 은행이 ‘은행’이라는 신뢰도를 기반으로 손실위험이 있는 펀드 판매를 하는 것은 은행에게는 수수료 수익을 안겨줄지 모르지만 위험이 닥쳤을 때 피해 범위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 자본시장의 탈동조화와 직접 금융으로서의 역할 확보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소유비중이 높을 때 위기국면에서 어떤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는지는 충분히 학습했다고 봐야 한다. 비록 미국 등 선진자본시장과 완전히 탈동조화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완충장치는 존재해야 하며, 외국인들이 쉽게 유동성을 회수할 수 있는 현금창고같은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율적으로 시장메커니즘을 통해서 외국인 지분율을 선진국 수준인 25퍼센트 전후로 조절해낼 국내 자본규모가 아니다. 그렇다면 외국인 지분소유 제한을 다시 부활하는 것도 검토해야만 하며, 그것이 어렵다면 외국인이 단기 차익매매를 할 수 없도록 단기차익 매매에 대해 높은 자본 이득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아울러 일정 규모 이상의 외국인 현금 배당 송금을 일시에 할 수 없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야한다.
또한 기업에서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사실 2008년과 같은 위기적 국면에서도 2008년 1월~10월 기간 동안 상장사들이 주가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취득한 경우가 112개 회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69퍼센트가 늘어났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 국면에서 유상증자나 기업공개로 자금 조달하기는 극히 어려운 실정인데 반대의 경우가 수월하다는 것은 균형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이 금융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고, 향후에도 글로벌 자본시장의 재편이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조건에서 미국 모델을 기초로 한 자본시장의 일대 재편을 가져올 자본시장 통합법은 무기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내년 연말로 예정된 헤지펀드 허용도 유보해야 한다.
2) 내수기반 확충을 통한 경기침체 대비
현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규제완화와 감세 ->수출 대기업 투자활성화 -> 중소기업 활성화 -> 고용확대로 이어지는 적하효과는 한국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이다. 더욱이 현재 수출부진은 수출기업의 내부적 문제 보다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위축에서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에 수출지원에 정부의 재정을 쏟아 붓는 것은 효과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 효과가 있다손 치더라도 내수 연관효과가 적어 국민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데 효율적이지 못하다.
대기업 수출지원 대책에 역점을 두기 보다는 대규모 부도위기로 갈 수 있는 중소기업들을 살리고, 자영업이 살아갈 숨통을 터주어야 하며 고용과 소득을 늘려서 내수 구매력을 창출하는데 정부의 재정여력과 정책 수단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생존기반 확보
납품가 원가 연동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장하듯이 자율계약 침해와 아무런 연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로서 하청 중소기업의 채산성을 맞출 최선의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무수히 많은 중소기업 대책을 남발하고 있지만 실제로 납품가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중소기업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하청 중소기업의 기업의 경영 상태를 호전시킬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100개의 중소기업 정책보다 1개의 납품가 연동제가 훨씬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정부가 대기업에게 중소기업을 지원해주라고 독촉하고 있는데, 이 역시 아직은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할 가장 유력한 대안이 바로 중소기업의 납품가 연동제를 받아주는 것이다. 납품가 연동제를 공정거래법 안으로 법제화하고, 중소기업청 산하에 중립적인 원가조정 센터를 두어 원가 변동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는 방식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업 거래관행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납품가 연동제와 함께 현재 가장 급한 중소기업 자금조달 문제를 보다 능동적이고 직접적으로 풀어야 한다. 거의 자금중개기능을 하지 않고 있는 상업은행들에게 정부가 자금을 쏟아 부어봐야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게 자금이 흘러들지를 않고 있는 상황은 현재 매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정부가 후선에 서서 지급보증이나 자금지원을 해주고 은행이 전방에 나서서 대출연장이나 추가 대출을 ‘자발적으로’ 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지난 10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우리·신한 3개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이 신보의 보증서를 갖고 가도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할 만큼 철저히 사익을 추구하는 일반 시중은행들에게 중소기업 대출을 독려하는 것은 사실상 ‘지원 대책’이라고 볼 수도 없다.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 분주한 것이 아니라 도산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을 선별하며 살생부를 만들고 있는 마당에 추가 지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은행의 자금중개기능 회복은 중장기적 과제로 둔다 하더라도, 당장 비상시국에서 정부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위해 직접적인 자금조달 통로와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강력히 제기되는 것이다. 대마불사 논리에 따라 주요 상업은행과 대기업 부실을 막기 위한 구제금융 대책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똑 같은 논리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위한 구제금융 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지원 기금 조직’을 별도로 만들어 정부재원으로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고, 자금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에 빠른 실사과정을 거쳐 융자를 해주거나 회사채를 매입하는 방식과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긴요하다. 동시에 아직 국책은행으로 남아있는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민영화는 재고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 자신도 시중은행을 통한 자금지원이 여의치 않자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을 활용하여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 중소기업을 위한 국책 공공 금융기관이 왜 필요한지를 정부 스스로가 입증해 주고 있는 셈이다.
끝으로 소기업이나 자영업인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카드수수료 인하 역시 촉구나 권장 사항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적용해야만 실효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장기화될 실물경기 침체상황에서 우선 중소기업들의 생존 조건을 확보한 후 중소기업과 내수기반중심의 경제로 구조 전환하는 방향에서 경제위기 탈출구를 찾아 나가는 길이 가장 빨리 침체를 벗어나는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고용을 통한 구매력 창출과 내수 진작
미국 경제위기 교훈에서 얻은 것처럼, 장기화될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을 견뎌내면서 안정적으로 경기회복을 도모하자면, 고용과 소득을 늘려서 구매력을 창출하여 내수를 견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고용을 비용으로 치부하여 인력 조정에 의한 수익추구는 결국 부채경제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시대는 토목공사를 해서 내수를 부양할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서 감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추가로 11조원의 공공지출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SOC투자 확대 등 건설투자 확대가 4.6조원으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수년간 고통스런 경기 침체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위기를 기회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건설공사 보다는 대규모 사회서비스 사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방안은 예상되는 경제난 속에서 저소득층, 육아, 노인 등 사회복지 서비스를 대거 확충해주고 고통을 완화해주는 한편,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해 줄 수 있는 방안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현재 선진국의 절반도 안되는 사회서비스 영역을 확충할 수 있는 여지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대규모 토목공사 대신에 대규모 사회서비스 사업으로 내수 창출과 경기부양, 그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를 발판으로 경기회복 이후 사회서비스 영역을 현대화시켜 나가는 기회를 열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큰 폭으로 양산될 가능성이 높은 실업자 군을 위해 실업급여 기간을 늘리고, 청년실업자와 재취업자에 대해서도 정부의 임금 지원금액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재정지출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은행과 기업에게 자금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고용에 직접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 시장에 대한 국민적 사고발상 전환
끝으로 전 세계적으로 시장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 퇴조 조짐이 일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의 진보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제안되었던 모든 문제제기를 총론적으로 공론화 시키고 국민의 동의를 확대해가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 역시 세계사적으로 경제의 구조변동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각자의 자기 이익에 매달리는 순간, 11년 전 외환위기 시기처럼 위기에 끌려 다니면서 시점과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개별적 이익을 벗어나서 국민경제를 올바른 방향에서 살리는 쪽으로 힘을 모아야 그 속에서 개별적 노동조합이 살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1) <아시아투데이> 2008.10.10
2) Mckinsey Global Institute, 『Mapping Global Capital Markets Fourth Annual Report』, 2008.1
3) 원래 투자은행은 1929년 대공황 이후 1934년 증권거래법(Securities Exchange Act 1934)에 근거해서 규제를 받게 되어 있는데, 투자은행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명백한 감독 규정이 없다. 그래서 2004년 CSE Program에 따라 법적 근거에 의한 강제적인 규제가 아니라 투자은행지주회사가 CSE Program에 의한 자발적인 감독을 받을지의 여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4) 헤지펀드와 함께 지난 20년간 수십 배의 레버리지를 이용해서 미국 인수합병 시장의 1/3을 장악한 사모펀드는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다. 파생상품 부실로 신용이 급격히 경색되고 은행들의 자금회수(de-leverage)가 진행되면서 이들 역시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일정하게 금융위기가 진정될 경우, 살아남은 사모펀드가 부실화된 기업들의 인수합병시장에 다시 뛰어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5) McKinsey Global Institute, 『The New Power Brokers: How Oil, Asia, Hedge Funds, and Private Equity are Shaping Global Capital Markets』, 2007.10
6)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07년 8월 5.25퍼센트였던 금리를 2008년 4월 30일까지 7차례 인하하여 2.0퍼센트로 떨어뜨린다. 9,10월 금융위기가 다시 확산되자 2003년 초저금리 수준이었던 1퍼센트까지 인하한다.
7) 민주노총 정책토론회, 『서브프라임사태의 교훈과 투기자본 정책대응방향』, 2008.10
8) 탈동조화를 제기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와 같은 미국의 투자은행들이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장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07년 8월 이후에 부상된 이슈다. 골드만삭스는 2007년 9월 『글로벌 경제의 탈동조화 가설에 대한 검증(Stress-Testing Our Global Decoupling Thesis)』을 발표하면서 탈동조화에 불을 붙였는데 핵심내용은 이렇다.(한국 뉴욕총영사관, 2007.9.20)
“최근 미국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여타 국가는 탈동조화(decoupling)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증거가 금리, 주가, 환율에 걸쳐 나타났다는 것이다. (1) 금리를 보면,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유럽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지 않고 있고 스웨덴과 중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했다(2007년 9월자 시점에서-인용자)”, (2) 주가와 관련하여, 미국 기업 가운데 대외지향 기업바스켓(GSSU)의 주가는 2007년 7월 중순 이후 주가 하락시에도 3.9퍼센트 상승했지만 미국 국내지향 바스켓 주가는 4.1퍼센트 하락했다, (3) 환율의 경우, BRICS 등 신흥시장 통화 가치 상승이 지속되어 신흥시장 중심의 통화 바스켓이 2007년 7월 중순 이후 3.1퍼센트 절상되었다는 것이다.
9) 그러나 이 조차 KIKO나 스노우볼(Snowball) 같은 환헤지 파생상품에 가입한 중소수출업체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10) 한국은행, 『2008년 9월 수출입물가 동향』
11) 한국은행, 『2005년 산업연관표(실측표) 작성결과』, 2008.10
12)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외화 예대율은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데일 리가 HSBC 분석자료를 토대로 보도한 것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외화 예대율은 200퍼센트를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데일리 2008년 10월 30일자.
13) 은행채는 원화채가 230조원, 외화채가 60조 4천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2008/10
14) 여전히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경색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며 금융불안정성 증폭에 의해 재발될 수 있다. 이 외에도 2008년 연말 은행채 만기도래분 16조원, 2009년 83조원 등 원화 유동성도 불안한 상태다. 그런데다가 부동산 파이낸싱 대출과 주택담보 대출 부실 가능성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의 경우 내년부터 원금 상황이 시작되는 규모가 약 33조원에 이른다.
15) 정부도 공식적으로 3퍼센트 수준의 성장을 예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다만 재정지출을 늘려 1퍼센트 추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16) 대외의존도=[(수출액+수입액)/총수요]*100, 한국은행, “2005년 산업연관표(실측표) 작성 결과”
17) 수출이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수출이 1단위 증가하는 경우 직, 간접적으로 유발되는 부가가치의 크기이다. 예를 들어 유발계수가 0.617이라면 1000원어치를 수출할 경우 617원만 국내 부가가치로 창출되고 나머지 383원은 상품 수입에 따른 해외 지급으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18) 지식경제부, “10월 IT산업 수출입 동향”
19) 2008년 10월 시점에서 대부분의 민간 기관들이 수출 증가율을 8~9퍼센트로 전망하고 있다.
20) 지식경제부, “2008년 10월 수출입 동향”
21) 중소기업중앙회, “2008년 9월 중소제조업 평균가동률 조사 결과”
22) 이데일리 2008년 10월 16일자
23) 120여개 키코 피해 중소기업들은 11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는데, “키코 등 파생상품의 구조가 지나치게 기업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과, 환헤지 상품이라기 보다는 환투기 상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품을 중소기업에게 적극 권유하여 판매한 은행의 부도덕성을”문제삼아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보도자료
24) 경향신문, 2008/8/4
25) 이를 반영하여 2008년 1월부터 9월까지 전체 실업급여자 수도 78만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9만명(13.2퍼센트)가량 늘어나게 되었다.
26) 이미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대기업들도 비용절감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10월 27일, 취업 포털 인쿠르트에 의하면 직장인들 가운데 48.8퍼센트가 “최근 감원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는가”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연합뉴스 2008년 10월 27일자.
27) 기획재정부 외, “경제난국 극복 종합 대책”, 2008/11
28) 이규선,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대응비교: 한국과 말레시아를 중심으로”, 2008/7, 산은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