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37〉상대를 차별하지 말고 보시를 하라
■ 사람이 부처이다
모두가 불성을 지닌 귀한 존재
평등한 마음이 진정한 법보시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세계를 오래전부터 선호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종교의 범주를 떠나 인간 중심의 고귀함이 담겨 있어서이다. 톨스토이 단편 가운데 불교 사상과 공감되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고자 한다.
주인공 마르틴은 구두를 만들고 고치는 제화공이다. 자식 둘과 아내가 죽고, 며칠 전에 막내아들까지 병으로 죽어 절망에 빠졌다. 그는 우연히 성경을 읽으면서 조금씩 희망을 찾아갔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틴, 내가 내일 찾아 갈 테니 창밖을 보아라.”
마르틴은 하루 종일 창밖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기다리는데, 늙은 청소부가 눈을 맞으며 청소하고 있었다. 마르틴은 그를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따뜻한 차를 대접하였다. 몇 시간이 흘러 아기를 안은 여인이 눈보라 속에서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가게 안으로 맞아들여 먹을 것과 옷을 주었다. 해가 질 무렵, 마르틴은 사과를 훔친 소년의 사과 값을 대신 변상해주었다.
그날 밤, 성경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낮에 만났던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틴, 네가 오늘 만난 사람들이 바로 나이다. 너는 나를 대접한 것이다” 마르틴이 깨어나 펼쳐져 있는 성경구절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들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주었으니…. 내 형제 중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극진히 대접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성경에 있다는 저 구절을 읽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순간적으로 무비스님의 책 제목인 <사람이 부처이다>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톨스토이의 작품세계에서 ‘내가 믿는 신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베푸는 그 사랑이 신을 섬기는 것과 같으니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 한번쯤 새길만하지 않은가! 실은 경전에도 성경의 내용과 유사한 구절이 있기 때문에 공감이 더욱 컸다. <유마경>에 유마거사가 급고독장자에게 참다운 보시에 대해 이렇게 설하였다.
“보시를 하는 사람은 부처님께 직접 올리는 마음으로 그 받는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정성스럽게 보시해야 한다. 설령 걸인에게 보시할지라도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과 똑같이 복전(福田)이라 생각하고 보시해야 한다. 과보를 바라지 않으면서 성인이든 중생이든 간에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 진정한 법보시이다.”
초기불교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재가자들에게 “보시하고, 청정하게 계율만 지켜도 생천(生天)할 수 있다”고 하셨다. 또 6바라밀에서도 제일 먼저 보시가 등장하듯이 보시행은 불자의 근본 수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보시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누구에게나 똑같은 평등심으로 중생에게 베풀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금강경>에서도 “상(相)을 보되 그 상에 집착하지 않고 볼 수 있으면 바로 부처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만나는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비구이든 비구니이든 그에게 참된 본성을 가진 존재로 본다면 어찌 내 마음에서 상대를 차별하겠는가! 그래서 <법화경>의 상불경(常不輕) 보살은 어느 누구를 만나든 간에 “나는 그대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대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인사를 하였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불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는 바로 인간이 고귀한 존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나날이 산업화되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욱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되는 느낌이다. 자신부터 시작해 우리 모두는 누구나 차별당할 수 없는 평등한 존재요,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점, 잊지 말자.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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