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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의 시간 중에서 백성들이 그나마 나은 생활을 했다는 세 번의 시기가 있으니 그 때가 세종대왕, 성종, 영·정조 때이다. 특히 정조는 개혁정치로 유명한 왕이며 독살 의혹이 있는 미궁의 죽음은 그가 그의 성향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왕을 드라마로 재구성해서 방영하고 있으니 MBC 월화 드라마 ‘이산’이다.
그저 재밌게 보고 말면 될 드라마를 굳이 끌어들여 이야기하고 싶음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과 너무나 닮아서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상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면,
정부와 결탁하여 확보한 강력한 독점상업특권을 가진 시전상인과 상행위자 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자나 판매를 허가받지 않은 상품을 성 안에서 판매하는 난전상인들이 나오면서 대리청정을 받은 정조는 이를 개혁하려는 것이 요즘 내용이다.
무엇을 개혁하려 했는가?
시전상인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경쟁자가 생기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생존의 갈림길에서 바둥대는 난전상인들의 존재마저 부정한다. 그러기 위해 정부 실권자들과 결탁하고, 정부는 이를 지켜주며, 유지된 독과점으로 많은 이익을 남기고, 그 이익의 일부를 다시 실권자에게 바치며 유지되는 부패 싸이클을 형성한 것이다. 이에 정조는 난전 상인들에게 상권을 주는 대신 세금을 거둬들이고 경쟁으로 인한 물가하락까지 기대하려 하며 백성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 한다.
누가 봐도 멋진 정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미 부패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 시전상인과 정부 실권자들이 이를 방관하고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유통을 차단하는 행위 즉 경제 동맥을 막는 초강수를 행하며 결국 정조를 무능한 왕으로 모함하는데 성공한다.
이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 가지 더 수난이 찾아오는데 이 정책을 처음부터 반대하는 기득권(실권정치가, 시전상인)들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처음 약속도 지키지 못한 꼴이 되고, 게다가 최악으로 물동량마저 끊기게 만든 정책을 펼친 정조에 대해서 처음 지지세력인 난전상인마저 비난한다는 것이다.
과연 현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짧은 이야기에서 누가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없단 말인가?
누가 진정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노력하는지 알 수 없단 말인가?
이 짧은 이야기가 현 시점과 정확히 매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이란 말인가?
지방 균형 발전, 각종 연금 개혁, 사학법 개정, 사법 제도 개혁 등등 그 수많은 부패 싸이클을 끊기 위한 노력에 우린 어떤 지지를 보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의 암세포와 같은 전략에 우린 쉽게 굴복하여 분열되어지고 서민들끼리 싸우며 기득권에 힘을 실어주었으니 말이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실정이든 치정이든 점점 나중에 나타난다는 것을 망각한 체 눈앞의 현상에만 매달리는 우매한 국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좋은 본보기가 없어 처음 하는 잘못이라면 누구도 모르게 잘 못을 행할 수 있으나 우리는 현재 칭송해 마지않는 왕 정조를 안타까와 하면서도 현시대에서 그 당시 난전 상인들과 다를 바 없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나마 정조는 강력한 왕권 시대에 20여년 동안 권좌를 누리며 계속 자신의 뜻을 펼칠 수야 있었지만 우리는 고작 5년이다. 그 마저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훌륭한 지도자를 추대하여 후일을 기약해야 하건만 개혁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과 고생도 싫어 차라리 별탈(?)없는 부패 싸이클로 되돌리려 한다.
더 재미난 것은 정조 이후이다. 개혁을 육탄전으로 막아낸 기득권은 결국 더 부패한 세력이 되어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로 조선왕조의 근간을 부식시켜버린다. 이런 역사가 그대로 재현 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역사는 100% 재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들었으며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고로 역사는 재현될 가능성이 충분하기에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 똑같은 잘 못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