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예禮를 올립니다 이를 예불이라 하지요 영어로 쎄레머니Ceremony라 하고 워쉽Worship이라고 하는데 의식이 쎄레머니이고 예불은 워쉽이 맞습니다
종교는 철학이나 사상과 달리 장엄스런 의식이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유교儒敎에서 시작된 예를 두고 유교는 과연 종교인가 하는데 촛점을 들이대곤 합니다
유교에서는 예를 얘기할 때 관혼상제冠婚喪祭를 거론하지요 인생사에 있어서 약관이 되면 관례冠禮를 치르고 혼례를 통해 가정을 꾸미고 명이 다하면 장사喪禮를 치르고 상례가 있고 나서 곧바로 삼우제三虞祭가 있고 매주 이레째 되는 날에 칠칠재七七齋를 지냅니다
상례와 제례는 성격이 다르지요 상례는 장례라고도 하는데 이를 어떻게 구분하느냐고요 탈상脫喪하기 전까지는 상례고 탈상한 이후부터는 제례입니다 탈상이 기준이 되는 셈이지요
그러므로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일주기에 소상을 치르고 이태째 되는 날에 대상을 치르는데 이때 만일 탈상을 하면 그 후로는 제례가 되고 따라서 명칭도 제사로 불립니다
요즘은 삼우제에 아예 탈상까지 치루는 데 상당히 빠른 편이지요 삼우제는 三五祭라고도 합니다 닷새째 되는 날이 삼오제지요 돌아가신 날을 포함하여 사흘 째 되는 날 발인發靷하고 장지에 이르러 묻거나 화장터Cremetorium에 이르러 시신을 태웁니다
나름대로 변명의 소지는 있지요 그러나 삼우제든 삼년상을 지나서든 사십구재에 하든 또는 백재百齋에 하든 요즘은 탈상이 어디까지나 제주 또는 상주의 고유권한이기에 남이 옳고 그름을 얘기할 수는 없지요
뜻밖의 많은 분들이 사십구재에 대해 물어오십니다 사십구재 백재를 비롯하여 천도재薦度齋 우란분재 등은 제사祭가 아니라 재齋에 해당합니다 재는 제사와 다르지요 선을 긋는다면 제사는 유교의 문화인 반면 재는 불교에서 파생된 문화입니다
유교문화든 또는 불교문화든 내용을 보면 매우 간단합니다 조상을 섬기고 조상을 위로하며 조상을 위해 음식을 베푸는 시식의 입장에서는 동일합니다
사십구재는 글자 그대로 사후 49일째 되는 날 베푸는 시식의 뜻을 담은 재의식입니다
시식施食이 뭘까요 음식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베푸느냐가 중요하지요 으레 죽은 이에게 베풉니다 죽은 이에게 베풀면 그 분들이 와서 실제로 드실까요
불교는 생사동질성입니다 죽음은 살아있음의 연장이지요 숨이 끊어지고 심장의 박동이 멈추고 생명과 함께하던 육신이 흩어져 각기 본래요소로 되돌아갔더라도 보이는 모습이 그러할 뿐 본바탕은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에너지보존의 법칙에서 본다면 몸을 이루고 있던 4가지 원소 곧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요소가 모습만 달리했을 뿐 이 땅 이 대기권 내에서 단 한 점도 따로 생겨나거나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는 에너지보존의 법칙보다 물질의 세계에서 보았을 때 질량불변의 법칙이 맞겠군요
불교에서는 죽은이를 위로하는 의식문儀式文중에 이른바《무상계無常戒》라는 매우 소중한 글이 한 편 있습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어떻게 그 옛날 분들의 의식이 이토록 현실적이면서 완벽하게 깨어있었고 깊은 철학을 담고 있었으며 자연과학을 담은 물리의 세계를 어쩌면 이렇게 깊이 꿰뚫고 있었는지 그저 감탄이 나올 뿐입니다
그 속에는 정신과 물질을 함께 다루는 구사俱舍 유식唯識을 비롯하여 번뜩이는 반야와 귀납歸納과 연역演繹을 조목조목 얘기하는 원각과 장엄한 화엄의 세계가 펼쳐지고 연꽃의 통섭을 담은 법화가 있고 모든 생명의 동일성을 담은 열반사상이 칼칼이 배어 있습니다
게다가 삶과 죽음을 하나로 잇는 정토사상과 이 글의 제목이 담고 있듯 삼취정계三聚淨戒가 들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과 그 인간이 몸담았던 세간의 종말이 있습니다
만약 무상계가 여기서 끝난다면 에스카톨로지Eschatology 곧 종말론이나 아포칼립스Apocalypse 곧 묵시록 등과 더불어 하등 다를 게 없겠지요 그런데 무상계는 그게 아닙니다 시식을 받는 죽은 자나 음식을 베푸는 살아있는 자가 함께 풀어나가는 공존의 길을 역력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무상계는 내 책《아미타경을 읽는 즐거움》541쪽 <쉬어가기-12>에 실려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시간차만 둘 뿐 동일선상에 놓고 보려 합니다 종교가 아니라 하더라도 유교는 장례와 제례를 통해 생사일여의 엄숙함을 보여 주고 불교에서는 그 일여사상에서 죽은 자에게도 산 자와 마찬가지로 생사일여의 길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아울러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를 귀납법과 연역법으로 동시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멋진 종교지요 아니, 무상계가 멋진 가르침입니다 불교의 예불에서 시작한 기포의 새벽 편지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지만 불교의 예에 관해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다룰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