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섬...팔미도 여행 후~
작지만 의미있는 보물섬 여행...팔미도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함께한 팔미도 등대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있다.
연일 최고기온을 갱신하는 중에 팔미도 여행이 예정되어있는 주말까지 열대야는 계속되리라는 예보로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올 여름 마지막 휴가와 황금연휴를 팔미도에서 시원한 여름을 기대하며 gogo~
개인적으로 꼭 다시 가 보고 싶었던 팔미도 여행은 작년에도 일정을 잡았다가 많은 비가오는 일기로 올해까지 미루어젔던 여행이다.
팔미도등대(八尾島燈臺.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0호.높이 7.9m, 지름 2m)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다.
요즘 인기리에 상영되고있는 인천상륙작전 영화에도 나오는 역사적인 스토리를 많이 간직한 섬이다. 인천상륙작전 개시 전날인 1950년 9월 14일 오후 7시. 연합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최규봉 미 극동사령부 켈로부대(KLO) 부대장에게 15일 0시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히라고 명령했다. 15일 새벽 1시 45분 등대 불이 켜지고, '작전 명령'이 떨어지자 15일 오전 6시 206척의 함정에 타고 잇던 한미해병대 7만여 명의 군인이 월미도 상륙에 성공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교착 상태에 있던 6.25전쟁의 승기를 대한민국이 잡았다. 역사적인 섬으로 그동안 해군이 주둔하면서 섬 출입이 통제돼오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1월 개방되어 106년 만에 일반인들이 그 섬에 드나들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함께한 팔미도 등대.
외세들이 한참 우리나라를 삼키려 엿보던 구한말. 1880년 원산항 개방으로 인천과 부산항도 개항하라는 외세의 압력을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근대식 등대가 없어서 열강의 배가 암초 등에 부딪혀 사고가 많았었다. 일본은 조선에 근대식 등대를 요구하여 1894년에 공무아문이 설치되고, 1902년 5월 소월미도, 북장자서, 백암등표와 함께 건축에 착수하여 1903년 4월에 준공되었으며, 같은 해 6월 1일 국내 최초로 점등되었고, 일본제국주의에 불빛을 열어주며 침략의 이정표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등대는 그 나라 힘이 약할 때는 침략의 거점이고 힘이 강할 때는 개항의 상징이라서 등대의 역사는 곧 개항의 역사이며 그 나라 국력의 바로미터이다.
팔미도는 사주(沙洲)에 의하여 연결된 두개의 섬이 마치 여덟팔(八)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아 팔미도(八尾島)라 불리고 있다. 인천 사람들에게는 "팔미귀선(八尾歸船)", 즉 낙조에 팔미도를 돌아드는 범선의 자취가 아름다워 인천팔경의 하나로 꼽혔던 해상 경승지였다.
팔미도 둘레길은 소나무와 소사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와 칡, 담쟁이넝쿨, 패랭이꽃 등이 서식하고 있고. 아직은 개발되지않아 훼손되지않아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고있다.
유람선사에서 마련한 특별이벤트로 선상 낚시를 체험해보는 재미난시간과.
연안부두에서 맛보는 뒤풀이 회로 여행을 마무리지었다.
아름답고 특별한 팔미도 여행이었다~~
첫댓글 멋진 여행 하셨네요!!
저기 보이는.. 배.. 황금색 물고기 꼬리 모양을 한 배..
이번에 일본 나고야에 갔는데.. 나고야 성에..
사치호코라는.. 호랑이(용?)의 머리와 등에 가시가 있는 물고기의 꼬리..모양의 상상의 동물이..
지붕의 용마루에 설치되어있던데..
그 이유는.. 해태처럼 불을 막아준다는..
그런데.. 저 배모양이.. 그런 것과 관련이 있는지..
재미있네요? ㅎ
네 관련이잇는것같습니다.
그 배가 일본에서 수입햇다는 안내방송으로 봐서는...ㅎㅎ
우리나라는 세계최고의 선박 조선국이라고는하지만.
대형선박 외부만 세계최고지. 소형선박이나 유조선 등 정밀을요하는
선박은 만들지 못한다는...
@사수/서울 그렇구만..ㅎ